아, 호동 왕자 (양장) 푸른도서관 11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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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은 어릴 적부터 많이 접해 왔던 이야기다. 어릴 적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서동과 선화공주, 공민왕과 노국공주 따위를 역사속 기록의 전후 맥락을 알지 못하고 막연히 동화로만 받아 들였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종묘를 찾았을 때이다. 동행들과 함께 문화해설자의 안내를 받았다. 조선왕조의 신위를 모셔 놓은 종묘에서 막상 발 거름을 멈추게 한 곳은 정전이 아니라, 공민왕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민왕 신당에서 였다. 안내하시는 분이 신당 안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이 모셔져있고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자료를 보는 두 인물에게 순간 묘한 매력이 끌렸다. 우리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운  700여 년 전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역사 속 사랑이야기는 내게 특별한 흥밋거리가 되었다. 그 중 우리에게 그 어떤 사랑보다도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야기 일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여인,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한 사나이. 이 운명적인 사랑에는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다. 한 나라의 왕이 되고자 사랑하는 여인까지 이용할 정도로 큰 야망을 품었던 사나이가, 뜻을 이루고 왜 자살을 했는가, 낙랑공주에 대한 죄책감과 애통함 때문이었을까,

우리에게 보여 진 것은 낙랑공주의 주검을 끌어안고 애절하게 통곡하는 호동의 모습이 전부였다. 호동왕자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호동왕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쓸쓸하고 허망한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에 누구보다도 잘 생기고 늠름한 왕자 호동. 그는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갈사국 왕의 손녀딸로 무휼의 둘째 부인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자 호동이 태자의 자리에 오르는 일이 조금씩 불리해진다. 그러나 호동은 아버지의 사랑에 의지하여며 고구려왕이 되는 꿈을 키워 나갔다.
 
호동은 아버지인 왕에게 인정받아 태자가 되고 싶었다. 그 마지막 수단으로  이미 혼례까지  치룬 낙랑공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명고를 찢게 하였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아버지 무휼에 뜻에 따라 조국을 위해 큰일을 이루었다고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무휼은 선뜻 태자자리를 내리지 않고, 정실왕비는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호동을 비방한다. 왕비의 모함으로 아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무휼은 결국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더 이상 자신이 태자가 될 희망이 없어지자 호동왕자는 자신이 사랑을 미끼로 낙랑공주와 거래를 한 것을 후회하고 마지막으로 왕자로써 죽기를 결심하고 궁으로 향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낙랑의 왕 최리가 처음부터 호동왕자에게 호의를 보이고 공주와 인연을 맺게 한 것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와 인연을 맺어 놓으며 그들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막상 딸의 배신을 알고 기가 막혔던 최리는 나라의 기강이 흩어질까, 두려워 딸을 죽인다. 이렇게 두 나라 왕은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자식의 순수한 사랑마저 이용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에 이르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젊었을 때는 은연중에 과격한 역사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사랑보다는 조국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만약 낙랑 공주 같은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나 역시 낙랑 공주처럼 사랑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건 어쩌면 젊거나 늙거나 간에 일반 사람에게 그런 극적이고 긴박한 선택의 기회란 애초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려 보는 생가의 호사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그려낸 낙랑공주의 사랑방식은 우리가 추측했던 것과 좀 다르다. 호동왕자가 보내온 ‘자명고를 찢으면 태자비로 맞이하겠다.’라는 전언을 듣는 순간 낙랑공주는 더 이상 호동을 목숨 바쳐 사랑해야할 연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명고를 찢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나라의 운명을 두고 겨우 사랑놀이를 하냐’는 비웃음에 저자는 공주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 주고 싶었는지, 공주를 위한 변명을 한다. 낙랑은 고구려보다 힘이 약하다. 자명고에만 의지해 나라를 지킬 수는 없다. 고구려가 낙랑을 쳐들어오려한다면 낙랑은 어차피 고구려를 이기기 어렵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순고한 사랑을 보여 주어, 목숨을 바쳐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어 호동왕자의 허언을 부끄럽게 하리라.

만약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고 살아남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공주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사로 잡혀를 것이다. 또 호동왕자에게 이용당했다는 마음에 상처로 살아 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해야하는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후손들에겐 어떠한 변명의 여지없이 조국과 부모를 배신한 철없는 여인으로, 자신의 사랑만을 쫓는 여인들의 한계로만 비쳐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오명을 쓰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낙랑공주의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가 강숙인에게  고마움마저 들었다.

요즘 TV드라마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벗어나 고려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신돈과 서동요가 시청자들을 TV앞에 모으고 있다. 짧은 기록을 근거로 장편의 역사 드라마를 엮다보니, 다소 무리 있어 보인다. 그래도 이런 역사드라마는 이제 역사적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해주는 훌륭한 가족 드라마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역사 속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사랑이야기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드물텐데...., 이왕이면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였으면.....’ 조금 생뚱맞은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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