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he Bastard Brigade 이거 욕 맞지. 개자식 무리. 아마도 트리니티 가제트 직후 케네스 베인브리지 선생이 내뱉었다는 말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이 되었다”에서 따온 것이겠거니 했다만. 베인브리지 원문은 이렇다고 한다. “Now we are all sons of bitches!” 배스터드냐 선즈 오브 비치스냐, 이것은 문제 아니로다. 그냥 둘은 상관없는 걸 거다. 연합국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가 자책하며 스스로 무리를 개자식이라 불렀다면, 샘 킨의 원자 스파이들은 나치의 원자폭탄을 막으려고 노력한 ‘녀석들’인 터이다. bastard는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사전의 말처럼, <원자 스파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나는 친근해져버린 기분이다. 다른 책들에서 단편적으로만 접해 납작했던 이름들이 샘 킨의 글발을 입어 입체적인 사람들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다른 데서 종종 조연으로 등장했던 가우드스밋이나 보리스 패시 같은 이들이 각자 성격과 이야기와 업적을 가지고 살아났다. (실제로는 다 죽었다) 또한 맨해튼 프로젝트 책을 모아 읽을 때에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듣보잡 전직 야구 선수 모 버그는 이번에 알게 됐다. (역시 죽었다) 난데없이 야구 선수가 떡하니 우선 등장하나 <원자 스파이>는 엄연한 (핵)과학역사서다. 딱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중반까지 OSS와 알소스 프로그램을 다룬다. 대작 영화 덕을 본 빅 스타 오펜하이머가 한쪽에 있다면, 같은 시기 다른 편에 (혹은 더 비밀리에) 이들이 있었다.


원자폭탄을 만들다보니 상대편에게도 뭐가 ‘중헌지’ 알게 된다. 1. 우라늄과 2. 중수와 3. 과학자(특히 하이젠베르크)들이다. 1번과 2번 빼돌리고 파괴한다.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한 결과, 나치 독일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준에 이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끝냈어도 되었다. 3번, 체포하여 팜홀에 감금하고 도청(원폭에 이르지 않았음을 또 확인)한다. 여기서 끝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상대가 혹시 먼저 개발할까봐 무서워서 만든 무기였으니까. 하지만 과학자들은 궁금해 했던 거라고, 나도 생각한다. 이왕 만든 거, 터뜨리고, 성공하여 만족한 동시에 자책(개자식)하고, 완전 굴복(내가 제일 잘 나가)시킨다. 연합국 만세.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무기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단순히 방어 무기로 사용한다는 개념도 사라졌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지만 불가피하게 원자폭탄은 다른 성격의 무기-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무기-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리란 것을 가우드스밋은 직감했다. (552)


잘 쓰인 역사서는 스릴러 같더라, 아닌가. 80년 전 오늘(8월 6일) 히로시마를 폐허로 만든 리틀보이와, 며칠 뒤 나가사키의 팻맨 운명을 알면서도 <원자 스파이>를 읽는 이유다. (모두 죽었다고 했지) 조 케네디의 야망을 보았고, 브라운 박사의 V로켓과 아폴로를 보았고, 천재 보어의 ㅋㅋ코믹을 보았고, 가우드스밋과 하이젠베르크의 얽힌 사연을 보았다. 내게 줄곧 안개 속 ‘먼 그대’ 같은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라면, 아주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나치에 동조했다는 비난보다도 자기의 물리학 수준이 원폭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를 더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이가 궁금해서 읽었던 <코펜하겐>은 영어 원서여서 더 안개 속에 밀어 넣은 효과를 발휘한 바 있다. (번역 출간해 주세요) 생각난 김에 챗쟁이한테 한 페이지를 보여줬다. 와, 신기해. (그래도 번역 출간해 주세요2) 




챗쟁이가 사진에서 텍스트 추출해주는 데 좀 감동해서 몇 번 시켰는데 글쎄 자세히 보니 문장을 제 마음대로 써서 채워놓는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져서 요즘은 포기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면서 엉터리 정보 주는 꼴도 몇 번 봤으니, 챗쟁이 잘 이용하려면 품이 많이 든다는 게 결론이다. 바로 사과하는 건 좀 귀여웠어.







클링조르가 뭐냐. 히틀러의 비밀 과학 고문 암호명이다. 나치 시절 독일 핵폭탄 개발 및 과학자 감시 역할을 맡았던 이로, 본인 또한 과학자가 아니겠느냐는 게 중론이다. 책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얘기도 곁다리로 설명해준다. 클링조르가 <파르지팔> 등장인물에게서 따온 이름이어서다. 당연히 픽션이다. 가상 인물 두 명이 중심에 있고, 실존했던 과학자들을 등장시킨다. 폰 노이만, 하이젠베르크, 보어, 플랑크, 슈뢰딩거, 괴델, 호우트스미트 등 기라성 같은 이들이 예사롭게 출현해주시니 무척 재밌게 읽힌다.


알소스 특명에 참여한 바 있는 가상의 물리학자 베이컨은 클링조르를 찾으러 다닌다. 가상의 수학자 링스가 합류한다. 베이컨은 링스를 클링조르로 의심하고 링스는 하이젠베르크를 클링조르로 의심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전쟁 기간 내내 승승장구하며 카이저빌헬름물리학연구소 책임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우라늄협회 핵심 멤버인 데다, 발키리 작전 중심인물들과 접점이 있었음에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링스의 주변인들조차 피하지 못한 5000여 명 보복 숙청에서 말이다. 나치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의견이 어땠는지는 여기서도 애매모호하다. 적극적으로 가담했는지 소극적으로 저항했는지. 하여간, 하이젠베르크는 안개 속 인물이라니까.


클링조르를 어떻게 찾아내야 할까? 그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충분치 못하다면 우리는 그의 행위를 통해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사한 영향력을 통해서, 그 과정에서 남긴 그의 흔적을 통해서, 그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세계관을 통해서 클링조르를 찾아내야 한다. (1권 241)


이 책이 재미있다면 실제 과학자들 이야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원자 스파이>나 <카운트다운 1945>가 스릴러 같다는 말은 앞서 했다. 이미 재미있는 실제 인물 일화들에 비해 <클링조르를 찾아서>의 가상 인물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거 참, 별로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을 쓴 융크 선생도 처음에는 소설로 집필하려 했다는 사연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런데 현실이 소설보다 더 낯설더라는 얘기. 클링조르를 찾는 볼피 선생은 가상의 두 캐릭터에 슈뢰딩거와 보테를 한 숟갈씩 넣어 자극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짐작하시겠지만, 사랑과 섹스에 관한 거라고만 말하겠다. 그래서 클링조르는 누구냐. 재미를 위해 챗쟁이에게 물어봤다. 바그너 오페라와 헤르만 헤세만 언급하기에 내가 그만.




챗쟁이가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했어. 아놔. 기분 좋아졌잖아.




부피부터 압도하는 작품이다. 가족사진에서 다른 책들을 꼬마로 만들어버렸어. 실라르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연합군에게 원폭 개발을 종용하다가 나중에는 만류하려고 애쓴 과학자다. 화자는 놀랍게도 우라늄이다. 실라르드 비롯한 숱한 과학자의 의도보다는 (그럴 리 없지만) 우라늄의 의지대로 역사가 흘러왔다는 느낌도 든다. 큰 도판에 470쪽이 넘는 양이나, 정보를 욱여넣으려다 보니 대화들이 작위적이다! 느낌표가 만발한다! 하지만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리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대단히 멋지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인간 대상으로 벌였던 플루토늄 실험도 큰 비중으로 다룬다. 나중에 클린턴이 공식 사죄했다는데 나(만?) 몰랐어. 등장인물 몇몇의 이후 행적을 담은 에필로그는 물론, 저자 디디에 알칸트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와의 우정을 소개하는 후기까지 감동적이다. 작중 히로시마인 얼굴과 이름에 친구를 넣었다고 한다. 친구 한 명이 어떤 사람의 인권 감수성을 결정하기도 하더라. 주로 넓고 예민해지는 쪽으로.


마지막은 히로시마의 수많은 거주자들 중 한 명이었던 나오키 모리모토를 위해 남겨두었다.

나는 은행 앞에 앉아 있던 이 남성을 기억한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바로 그 시각에 나도 해방되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또다시 먼지가 되어버린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1971년, 문제의 은행은 철거되었다. 하지만 그 계단은 보존하여 히로시마 박물관에 전시해두었다.

이 계단 위에는 나를 제일 가까이서 목격한 자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물리 화학적인 작용으로 돌에 영원히 새겨져 지워지지 않을 기억…

이 그림자는 나의 서명이다. 아마 내 영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명백히, 내 힘이다. (에필로그)




현대 과학 서적의 고전. 다시 말해 위의 <원자 스파이>, <클링조르를 찾아서>, <원자폭탄>의 어머니 격 책이다. (아버지는 로즈의 <원자폭탄 만들기> 쯤 되려나) 1956년 출간이니 해당 핵과학자들이 이승에 존재했고, 융크 선생이 이들과 대화하고 편지를 나누어 구성한 역작이다. 러더퍼드의 ‘물질 변환’ 사건으로부터 본서 집필 시기 냉전까지가 잘 담겼다. 차분하고 충실한 가운데 품격이 느껴진다. 내게는 안개 속 하이젠베르크가 저자에게 쓴 편지가 가장 솔깃했다. 1941년 보어를 만나 나눴던 대화에 관해서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기억한다. 원폭이 원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엄청난 기술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전쟁 기간 중에는 실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보어는 이 말을 경고로 받아들였고 보어가 연합국으로 피신했을 때 바로 독일의 원폭개발 소문을 전하게 된다. 천재 ‘비밀 무기’ 보어는 청자로서는 형편없었다고, 여러 책에서 본 바 있다.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가 부제다. 그중에는 흑역사도 없지 않아서, 실험 중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한 경우(슬로틴, 대그니언), 알소스 부대의 농담이 워싱턴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경우(방사능 활성 있는 루시용 레드와인), 무사 탈출한 보어의 진심어린 안부가 애너그램 암호로 받아들여진 경우(모드 레이 켄트), 친구를 배반하고 끝까지 고백, 사과하지 않은 경우(오펜하이머), 하우드스밋 부모 구명을 위한 청원에 미적지근하게 대응한 경우(하이젠베르크) 등이 대강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하이젠베르크 안개에 관심이 있으므로 덧붙인다. 전쟁 전, 그러니까 알소스 임무 전에 하우드스밋과 하이젠베르크는 (여느 다른 과학자들처럼) 서로 교류하던 친구들이었다. 네덜란드가 나치 치하에 들어가면서 유대인을 추방하기 시작하자 하우드스밋은 코스터르에게 부모를 찾도록 도움을 청한다. 코스터르는 독일 내에서 힘이 짱짱한 하이젠베르크에게 부탁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느지막하게 코스터르에게 아무 소용없는 답장을 보내고 만다. 하우드스밋 부모는 수용소에서 사망한다. 그러니 이이를 둘러싼 안개를 어떻게 걷을 수 있겠나.


알소스 임무로 하우드스밋이 하이젠베르크 연구소를 수색하러 갔을 때 장면마저 이야기하자. 하이젠베르크는 자리를 피한 후였고, 텅 빈 연구소 책상 위에는 사진액자가 있었다. 하이젠베르크가 하우드스밋과 다정하게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이고. 전쟁이 하는 짓이 이렇다. 부모 사건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하우드스밋은 하이젠베르크가 사망했을 때 너그러운 추도사를 썼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그는 어떤 면에서 나치 정권의 희생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본다.” (<원자 스파이>, 562)


하우드스밋은 독일의 원자 무기 계획을 다룬 바이츠제커의 문서를 발견한 직후 전쟁부와 연결하는 연락 장교로 알소스 부대에 배속된 소령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산책 도중에 하우드스밋이 이렇게 말했다.

“독일이 원자폭탄을 갖고 있지 않다니 정말 잘된 일 아닙니까? 이제 우리도 원자폭탄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우드스밋은 직업 군인의 대답을 듣고서 충격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오랜 군사적 사고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예언했기 때문이다.

“샘, 당신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봅니다. 어떤 무기를 갖고 있으면, 반드시 그걸 사용하게 되지요.” (285)


체홉의 권총 이론도 아니고 말이야. 특히 원자폭탄에 대해서는 이 말 또한 들어맞을 듯하다. “‘기술적으로 달콤한’ 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474) 1945년 이후 과학자들의 경각심, 도덕적 고민과 노력까지 후반부에 이어진다. 반핵 운동가의 걸작답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이 멋진 책에 대해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아무 말이나 해버렸다.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위 책 네 권에서 나는 네 가지 이름의 Goudsmit을 만났다. 가우드스밋(원자 스파이), 호우트스미트(클링조르를 찾아서), 구드스미트(원자 폭탄), 하우드스밋(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네덜란드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은데, 뭘까.




외래어 표기법까지 따져도,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표기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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