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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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망설였었다. 난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만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전기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검색을 하다 그의 회고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먼저 읽었다. 그리고 회고록에서 작곡가가 그의 《교향곡 7번》에 관해 많은 말과 많은 글이 있지만 자신의 작품으로만 판단해 달라고 했다는 걸 읽고 그럼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작곡가의 뜻에 따라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난 《교향곡 7번》이 궁금했고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교향곡 7번》에만 국한된 글은 아니다. 앞부분은 그의 전기처럼 전개된다. 앞서 읽었던 회고록이 회고록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 작곡가의 인생을 개괄해 주지는 않는 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가령 작곡가의 가족 관계와 집안 분위기라든가 첫사랑, 그리고 아내와의 만남과 신혼 초의 위기 등.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기존에 나왔던 쇼스타코비치의 많은 전기들을 취합한 것처럼도 보인다. 당대의 사회, 정치적 배경이 꽤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작곡가 개인의 일화도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저자 자신이 참고한 문헌도 꽤 방대하고 중간중간에 사진도 삽입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물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교향곡 7번》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길고 깊다. 사실 앞부분의 모든 정보들은 《교향곡 7번》을 이야기 위한 빌드업이긴 하다. 작곡가가 《교향곡 7번》을 착수했을 때 그리고 완성하고 초연하기까지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세계 정세 등이 사진과 함께 매우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쇼스타코비치나 그의 《교향곡 7번》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당시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교향곡 7번》에 관한 정보만 놓고 보면 그간 알려진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물론 나야 이 곡을 좋아하니까 쇼스타코비치가 1, 2 악장은 레닌그라드에서 작곡하고 나머지는 피난처에서 마무리했다는 것, 1악장의 메인 테마를 주위에 들려주었을 때 다들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침공을 떠올렸다는 것, 그리고 당시 레닌그라드와 소련 인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 곡이 완성되기 전부터 이용되었고 작곡가 자신도 그걸 알았지만 묵인했으며 초연이 되자마자 역시나 열광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이 곡을 연주하기를 원해서 악보를 서방 세계로 보내는 데 마치 비밀 작전과 같은 계획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전세기로 이동했어야 할 마이크로 필름 형태의 악보가 이란과 이집트, 브라질을 거쳐 겨우 미국에 도착했지만 홍보 대행사 직원의 실수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뻔 했다는 것 등의 이야기는 당연히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저자도 얘기했고 나도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음악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교향곡 자체가 핵심이다

음악을 들어라.

그와 함께 쓰는 것은 당신의 교향곡이다.

- 186~187


당대에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이 갖는 의미가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작곡가 본인도 이 곡의 의도를 이야기했다. 물론 작곡가의 의도는 매우 중요하다. 작곡가가 레퀴엠이라고 얘기한 이 음악을 축제 음악으로 사용해선 안 될 것이다(예전 라흐마니노프 전기를 읽을 때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이 곡을 축하 음악으로 연주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삶의 상황과 경험에 따라 곡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1악장의 메인 테마는 침공을 의미하지만 그게 반드시 어떤 ‘ism’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 곡은 레퀴엠이지만 청자가 애도해야 할 대상이 반드시 전쟁 혹은 이념의 희생자만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곳에서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이 곡을 통해서 얻는 위로,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PS. 이 아래로는 다 사족이다.


아무래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은근히 거슬렸던 부분은, 저자가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 볼코프가 받아 적었다고 주장하는 것 에 대해 나도 약간의 의문을 갖고 있기는 했다. 내 생각에는, 말년의 쇼스타코비치가 예뻐하는 젊은 음악학자(볼코프)에게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 특히 자신이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했고 볼코프는 충실한 청자 역할을 했으나 그 자리에서 그걸 받아 적지는 못했을 거 같다(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싫어했을 거 같다. 그는 대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아마 작곡가의 아파트를 나와서야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메모를 했을 거라 짐작했고,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렇게 추정한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그가 기억에 의존하여 책을 썼을 가능성이다. 쇼스타코비치의 화법과 글 쓰는 방식을 흉내 내면서 말이다. 그 말은 『증언』에 나오는 이야기의 세세한 면이 정확한지 여부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교향곡 5번》의 피날레에 대한 내용도 그렇다. (중략)

 설령 이 회고록이 나이 들고 죽어가는 작곡가가 한 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진정한쇼스타코비치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순 살의 작곡가는 서른 살 때와 같지 않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했을까? 아니면 본인의 과거를 윤색했을까?

-185~186


그런데 사실 난 저자의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곡가가 자신의 과거의 진실을 마음 깊이 알고 있으면서도 윤색했다한들 그게 뭐 어떤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픈 욕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기억이란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작곡가 자신이 한 말이든 아니든, “내 음악으로 나를 판단하라고 하라(『증언:쇼스타코비치 회고록』 449)”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그의 삶 자체가 이를 계속 주장하고 있으니.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말을 하긴 한다.


그렇다면 《교향곡 5번》의 피날레는 어떨까? 그것은 낙관적일까, 비극적일까?

마지막 악장에 투쟁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중략) 투쟁에서 누가 이겼을까? 쇼스타코비치는 진정한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곡을 끝맺었을까?

 이는 어쩌면 듣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음악의 기적이다.

- 186~187


그리고 저자는 《교향곡 7번》의 메인 테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의 침공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아니라고 그것은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인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볼코프의 주장이 그가 앞서 쇼스타코비치가 전쟁이 일어나자 재빨리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과 모순된다고 했지만(366), 그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에게 동의할 수 없다. 볼코프는 분명히 쇼스타코비치는 오래 구상하고 구상한 것을 빠르게 악보로 써 내려가는 타입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쇼스타코비치 친구의 입을 빌려 이 주제에 관한 작곡가의 생각이 변했을 거라 얘기하는데,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어쩌면 쇼스타코비치의 친구였던 레프 레베딘스키의 설명이 가장 그럴듯할 수 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가 유명한 행진곡을 전쟁 전에는 스탈린 주제라고 불렀다가 그것을 교향곡에 통합하면서 의미가 바뀐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작곡가는 반히틀러주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더 일반화해서 악의 주제라고 불렀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그 주제는 음악계의 고집과 달리 반스탈린적인 만큼 반히틀러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중략)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곡의 의미를 한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영혼의 속박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것, 우리 안에서 처참하게 자라 우리를 파괴의 춤으로 이끄는 온갖 추하고 옹졸한 것들을 들으려고 한다.

- 367


그리고 이건 볼코프가 전한, 쇼스타코비치가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전부터 이 곡을 구상했고, 독일이 침공하자 구상하던 곡의 규모가 커졌으며 그걸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쇼스타코비치의 말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나도 볼코프가 쇼스타코비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고 단 1%의 윤색도 없이 책을 출간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자처럼, 그리고 그 회고록에 의문을 제기한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볼코프가 허구를 마구 섞어 넣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말이란 어쩔 수 없이 발화되는 순간 변형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볼코프를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 자신도 여러 에피소드들을 마치 소설처럼 가공했지 않은가. 다행히 저자의 말을 통해 『증언』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두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명시한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증언』이 말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을, 그의 말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서구 세계에 쇼스타코비치의 진짜 모습이 알려지게 되어 다행이라고, 작곡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난 믿는다. 어쩌면 이 얘기는 이 책의 리뷰가 아닌 『증언』의 리뷰에서 했어야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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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밤 해변의 무무씨(조해진. 다산책방. 2025. 172쪽)

: 은희는 수연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준다, 자신처럼 그 골목에 있는 이국의 도시 이름을 가진 가게들을 수연도 알아채는 지 궁금해하면서. 암이 재발해 입원해야 하는 은희는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집을 관리해 주고 고양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고, 함께 일하는 동준의 소개로 수연을 집에 들이게 된다. 은희의 럭키타운 402호는 은희가 사랑했던 무무씨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고 고양이 양평이와 오모리도 무무씨가 키우던 아이들이다. 은희와 무무씨는 한밤에 무인 세탁소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파도 소리로 들으며 앉아 있곤 했다. 


정갈하고 깨끗한 문장과 담담한 문체와는 달리 은희와 수연의 삶은 뜨겁고 치열하다. 물론 차갑고 밍숭맹숭한 삶이란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은 무겁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세탁기의 물소리에서 함께 파도 소리를 떠올려 줄 누군가 있다면, 그건 행복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곁에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에 앉아 있던 세탁소 테이블 앞 자리에 한 칸을 비워두고 앉아 주는 누군가가 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곁에 앉아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이 많이 따뜻했다. 이 작가만의 조용한 처절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2.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김희정,조현주 역. 웅진지식하우스2025. 368쪽)

: 저자는 형을 암으로 잃고 삶의 의욕을 잃는다. 똑똑하고 착하던 형 같은 사람이 이렇게 일찍 떠나는데, 위로 올라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다니던 <뉴요커>지를 떠난 저자는 어릴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어머니와 함께 갔던 기억을 떠올리다 그곳의 경비원으로 취직한다. 조용히 관람실 한구석에 서서 예술 작품을 바라보며 저자는 애도를 이어가고, 관객들, 동료들과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는 그저 예술을 통해 위로를 받는, 애도의 이야기라 생각해서 읽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다니는 도서관의 신착 도서 코너에 이 책이 있길래 이제는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 그리고 개정판을 읽기를 잘한 게, 각 페이지마다 QR코드가 있어서 저자가 말하는 예술품들을 바로바로 조회해 보면서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저자의 직장 생활과 애도 자체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술 작품을 보는 저자의 견해들이 진솔하게 쓰여 있다. 저자의 감상은 전문가의 그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 초보의 견해도 아니어서 적절한 정도의 이론과 삶에의 대입,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의 연결이 독자를 너무 깊이 슬픔으로 침잠하지 않게, 혹은 너무 예술품에만 집중하여 의미를 잃지 않게 해주었다. 몰랐던 예술 작품들만 알게 되어도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가볍게 집어들었는데,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얻어서 좋았고 또 의외로 삶에 대해, 예술에 대해 그리고 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서 좋았던 독서였다. 



3. 기이현상청 사건일지(이산화. 안전가옥. 2022. 292쪽)

: '기이현상청'은 당연하게도 기이들 - 귀신, 정령, 요괴, 이매망량 등 - 이 일으키는 현상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이다. 일상에서 생기는 일들 중 기이가 일으키는 일들에 대한 사례들이 다섯 편의 연작으로 묶여 있다. 가벼운 맘으로 읽었다. <잃어버린 삼각김밥을 찾아서>는 이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은 거라서 이 소설집의 분위기를 대강 알고 시작했지만 간혹 지루하거나 적응이 힘든 작품도 있었다. 가장 재밌었던 건 <마그눔 오푸스>. 



4. 브뤼셀의 한 가족(샹탈 아케르만, 이혜인 역. 워크룸프레스. 2024. 168쪽)




5. 테세우스 패러독스(이경희. 안전가옥. 2025. 352쪽)

: 석진환은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몸이 모두 망가진 후 사이버네틱 신체로 교체한 채 깨어난 진환. 그는 자신이 그곳에 있게 된 경위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이복동생이자 자신과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미진을 의심한다. 그룹의 지분을 상당수 갖고 있는 삼촌들이 진환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언제 배신할 지 모르고,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초거대 바이오 기업 트라이플래닛의 신체 개조 사업의 개선을 현재 미진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면 꼭 필요한 정보가 자신이 살던 집 금고에 있다. 패스워드 뿐 아니라 생체 정보도 필요한 상황에서 모든 신체가 기계화된 자신이 금고를 열 수 있을 지 의심스럽지만 일단 그곳으로 가는데, 거기서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맞닥뜨린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신체를 비롯한 겉모습? 내 기억? 아니면 내 성격?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나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분리되어 각각 존재한다면? 사실 난 기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이야말로 조작되거나 이식되기 가장 쉬운 정보 아닌가? 어쨌든 석진환은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해 승리한다. 그 과정이 꽤 흥미진진했고 복제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사실 읽고 나서 뭔가가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6. 헨리 6세 1.2.3.(윌리엄 셰익스피어, 김정환 역. 아침이슬. 2012. 192쪽, 204쪽, 200쪽)

: 헨리 5세가 사망하고 어린 헨리 6세가 즉위한다. 어린 왕의 등극으로 프랑스는 잉글랜드에게 빼앗겼던 영토의 회복을 노리고 이 백년 전쟁에는 영웅 잔다르크가 등장한다. 이 와중에 랭커스터와 요크의 편이 갈리며 장미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이후 호국경 글로스터가 음모에 의해 죽게 되고, 프랑스 출신의 마거릿 왕비는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헨리 6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요크를 지목하고 이에 반발한 마거릿 왕비는 내전을 일으키지만 패한다.


사실 읽기 전에는 이 시기 잉글랜드의 복잡한 왕위 계승 전쟁에 지레 겁먹고 긴장하며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 뒤편의 해설을 먼저 읽어도 좋았을 걸 그랬다 싶기도 하지만, 대강의 흐름만 알아도 각 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번역이 불편하다.  시어의 맛을 살리려 노력했다는 번역자의 말에 따라 시를 읽듯 마음을 열고 읽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그나마 이제까지 읽었던 번역 중 나은 거 같기도 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산문이 분명한 부분 - 귀족이 아닌 평민이나 군인의 대사 - 에서도 비문으로 읽히는 문장들이 발견되는 게 읽기에 편하진 않았다. 너무 직역이어도, 완전 의역이어도 안 될 거 같은데... 이 책은 직역에 가까운 듯.  원서를 못 읽는 서러움이라고 해야 하나, 무능력자의 적반하장이라고 해야 하나. 



7.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바바라 몰리나르, 백수린 역. 한겨레출판. 2025. 236쪽)




8. 우리들의 반역자(존 르 카레, 남명성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 492쪽)

: 옥스포드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는 페리는 학교에서 교수직을 제안받고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학교에 묶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갈등을 하다 변호사인 연인 게일과 함께 카리브 해의 섬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서 페리 삶의 전환점이 될 인물을 만난다. 바로 러시아 대부호 디마. 페리의 뛰어난 테니스 실력을 본 테니스 강사가 디마와의 시합을 주선하고, 페리는 디마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낯선 분위기에서 디마와 경기를 한다. 이후 디마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들 생일 파티에 이 커플을 다시 초대하지만 정작 안내된 곳은 폐가. 이곳에서 디마는 러시아의 자금 세탁 조직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을 말하고 자신과 가족들이 영국으로 망명하여 보호받기를 원한다고 한다. 


페리와 게일, 그리고 디마 가족의 이야기는 곧 페리가 접촉한 영국 정보부 요원 루크와 헥터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들 모두의 사연이 생생하고, 독자는 그들 각각에게 이입된다. 그러기에 결말은, 예상했지만 막상 닥치니 꽤 충격적이었다. 앞으로의 일들도 걱정되고...결국 가장 냉혹한 건 정치 체제도 경제 시스템도 아니다. 사람이다. 이야기는 정말 매혹적이었지만 난 책 속의 모든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애도를 금할 수 없다. 



9.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헤르만 헤세, 김윤미 역. 북하우스. 2022. 408쪽)

: 헤세가 음악에 대해 쓴 에세이와 시, 음악을 소재로 쓴 소설의 부분 발췌 등을 모았다. 헤세는 음악에 늘 진심이었다. 늘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에 진지했으며 항상 음악과 함께였다. 어릴 때 배웠던 바이올린에 대한 단상은 길지 않지만 그의 애정의 시작을 알 수 있으며 그가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베토벤과 쇼팽, 슈베르트는 그의 취향을 말해준다. 그는 또한 늘 그랬듯 정치 사회적 문제에도 침묵하지 않았고 이는 음악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난 그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대해 한 얘기에 공감한다. 유대인 가족 - 며느리가 유대인이었다고 난 알고 있다 - 을 위해서라지만 엄연히 나치 치하에서 국립 음악원 원장을 지냈고, 종전 후에도 행보에 제한을 받기는커녕 병을 핑계로 출국해 버리기까지 하다니. 오히려 나치 치하에서 수감되었던 다른 예술가들은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굳이 지인이 아니더라도 화날 만 하지.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명사가 특정인을 지목해 비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통해 헤세가 그저 음악을 사랑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음악은 그의 생각, 그의 삶에 대한 태도, 철학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수많은 사람들의 편지에 대한 지겨움과 알고 지낸 많은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 등, 헤세에게 관심이 있다면,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즐겁게 읽었다면 흥미로울 만한 글들이 많다. 헤세의 소설들을 읽은 지 꽤 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좋았고 - 대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 안 읽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더 즐겁게, 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몰랐던 면을 알게 된 좋은 독서였다.



10. 안녕이라 그랬어(김애란. 문학동네. 2025. 320쪽)

: 돈에 관한 이야기들. 어떤 독자는 공간과 삶의 이야기로 읽었을 지도 모르겠으나 난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돈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했다. 돈이 엮여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돈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에는 돈이라는 게 끼어들어 어색해지고 마는 이야기들. 당연히 편안하게 읽히지 않았다. 모든 상황에 나를 대입해 보게 되고 나라면 어땠나, 나같으면 아예 저런 자리에는 가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거기에 있고 그 상황에 처한 이상 화자들의 마음에는 십분 공감이 되고... 거창하게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든가 부르주아의 위선 따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들이고 소설을 통해 더 핍진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었다. 다만 그 속에서도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부여잡고 있는 건 결국 그냥 소시민들이었지. 조금은 도망치고 싶은 이야기였다. 



11. 증언 : 쇼스타코비치 회상록(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솔로몬 볼코프 엮, 김병화 역. 온다프레스. 2019. 656쪽)




12. 마지막 거짓말(라일리 세이거, 남명성 역. 밝은세상. 2023. 456쪽)

: 첫 개인전을 여는 화가 에마. 그녀의 그림은 15년 전 있었던 사건의 개인적인 기록이자 치유이다. 에마는 자신의 그림 앞에 서 있던 프레니와 재회한다. 15년 전 그 사건이 벌어졌떤 나이팅게일 캠프의 주인이자 운영자였던. 프레니는 에마에게 캠프를 다시 열 거라면서 강사로 와달라고 청한다. 아직도 그 사건에 관한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에마는 이제는 더이상 그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그 캠프에 가서 그 때 사라진 세 소녀에 관한 진실을 찾게 되면 자신이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리라 믿고 캠프로 향한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진 세 소녀에 대해 다시 떠올린다.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자신에게 확신이 있었던 여왕벌 비비언과 비비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던 내털리, 앨리슨을.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캠프 경험도 많은 이들과 한 오두막에 배정되면서 에마는 캠프에 적응하게 되고, 비비언에게 많이 의지하지만 비비언이 자신이 좋아하는 테오에게 접근하는 걸 알고 분노한다.


이야기가 좀 지지부진한 면이 있다. 회상신은 괜찮은데 현재의 이야기는 괜히 분위기만 조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에마와 한 오두막을 쓰던 세 여학생이 또 사라지기 전까지는. 사실 책 속 진실은 약간 허무하기도 했는데, 마지막에 반전이 꽤 흥미로웠다. 그래, 그게 마지막 거짓말이었구나. 현재에 일어난 사건의 범인은 뜻밖이었고 동기가 약했지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면의 필력은 뛰어났다. 이 작가를 다시 읽는다면 아마도 내용보다는 문장력 때문일 거 같다. 



13. 림 :  드그다 읏따읏따(김멜라,김화진,서장원,차현지,함윤이. 열림원. 2025. 202쪽)

: '함께'를 주제로 한 앤솔러지...라고 했으나 꼭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의미있고 재밌다. 이 사회에서 약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도 좋았고,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외면할 수 없는 소수자의 이야기들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함윤이. 



14. 가끔 난 행복해(옌스 크리스티안 그뢴달, 진영인 역. 민음사. 2018. 164쪽)




15.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테스 샤프, 고상숙 역. 북레시피. 2023. 468쪽)

: 노라는 전에 함께 모금한 돈을 저금하기 위해 전 남친 웨스, 현 여친 아이리스와 함께 은행에 들어선다. 줄을 섰는데, 앞에 있던 남자들이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은행 안의 모든 사람들을 엎드리게 한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것. 노라는 재빨리 언니에게 긴급신호를 보내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한다. 사실 노라는 어릴 적부터 엄마의 사기 행각에 동원됐었다. 엄마가 정해준 역할을 습득하고 연기하는 건 노라에게는 정체성 같은 거였다. 이제 노라는 과거의 그 '완벽했던 딸들'에게서 얻은 지식을 끌어모아야 한다.


가벼운 맘으로 집어들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중간중간 멈춰야만 했다. 범죄 소설이지만 이건 아동 학대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라가 어떻게 엄마에게 이용당하며 키워졌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지가 은행 강도들의 인질극이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조금씩 드러난다. 해피엔딩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인질극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자 조금 초조해 지기도 했다. 범죄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안녕을 이토록 간절히 바란 건 처음인 듯. 그만큼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훌륭했고 구성과 문장력도 좋았다. 마음 아픈 이야기였고 현실에선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이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16. 나의 완벽한 무인도(박해수. 토닥스토리. 2025. 264쪽)

: 지안은 날이 밝자 집 앞 바다로 내려간다. 이제는 잠수복도 혼자서 잘 입을 수 있다. 바다 깊이 내려가 문어를 잡아 올린다. 오늘치 식량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오전에는 선장 현주 언니가 배를 타고 섬 앞을 지나가며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인사를 건넨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고 이제 지안은 혼자만의 생활에, 섬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 텃밭을 가꾸고 생선을 잡아 말리며 혼자 가꾸는 혼자만의 생활.


읽는 내내 이게 진짜 힐링 소설이지, 싶었다. 최근 '힐링' 타이틀을 달고 출판되는 수많은 엇비슷한 이야기들 속에서 이 이야기야말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품고 있는 시원한 이야기였다. 내가 바라마지않지만 콩알만한 심장과 게으른 팔다리를 가진 나로서는 절대 실현할 수 없는 삶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안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 구구절절하게 펼쳐지지 않아서 좋았다. 지안이 받은 상처는 간접적으로 보여질 뿐이어서. 그래, 중요한 건 현재이다. 지금, 여기의 삶. 지안은 이제 괜찮고, 앞으로는 더 괜찮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나마 지안이 편안해서 정말정말 좋았다. 어딘가에는 이렇게 깨끗하고 평온한 삶이 이어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17. 남극(클레어 키건, 허진 역. 다산책방. 2025. 344쪽)

: 저자의 데뷔 단편집. 위험에 처한 여러 삶의 이야기들. 이전에 읽은 저자의 다른 단편들보다 훨씬 좋았다. 작품들 속 여성들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위험에 빠지거나 타인을 위험하게 하기도 하지만 선택에 의해 자신을 구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오랜 기다림과 욕망 그리고 선택. 가장 좋았던 건 <남자와 여자>.



18. 림 : 옥구슬 민나(김여름,라유경,서고운,성혜령,예소연,현호정. 열림원. 2024. 200쪽)

: 김여름, 라유경을 읽고 죽음이 주제인가 했는데 그보다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죽음이 가운데에 놓여 있든 아니든. 물론 이야기 중간에 죽음이 끼어들고 꽤 큰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다만 표제작인 현호정의 작품은 조금 결이 다르게 읽혔다. 소통이 주제라고 할 때 끼워맞추기 힘든 건 아니었지만. 가장 좋았던 건 김여름. 



19. 문이 열리면(헬렌 라일리, 최호정 역. 키멜리움. 2024. 304쪽)

: 이브는 12월의 안개 낀 저녁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복 여동생 나탈리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지내왔지만 자신이 전하는 소식이 그들을 기쁘게 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낮에 찾아왔던 이모 샬럿을. 가족은 예전부터 나탈리가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에 기대어 살아왔고 이브는 그걸 싫어해서 독립했다. 하지만 나탈리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브가 막 자신과 가족의 오랜 친구인 짐 홀랜드와의 약혼 소식을 전하는데 나탈리의 약혼자 브루스가 나타난다. 사실 이브가 낮에 샬럿의 방문을 받은 이유는 샬럿이 브루스와 이브의 사이를 의심했기 때문. 어릴 때부터 이모는 나탈리를 편애했다. 심지어 나탈리는 자신의 친조카가 아니었음에도 - 샬럿은 이브와 이브의 오빠 제럴드의 친모의 언니이다. 이브는 저택을 나갔다가 저녁 늦게 다시 방문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이모 샬럿이 죽은 채 발견된다, 가족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원에서.


이 출판사의 고전 추리물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재밌게 읽었다. 범인과 반전은 전혀 짐작 못했다. 읽는 내내 추리를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늘 그렇듯 엉뚱한 사람만 의심했지 뭐. 다만 범인에 대한 평가가 슬며시 바뀌는 게 조금 슬펐달까. 그건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20. 쓰지 않은 결말(우다영,도재경,정용준,최정나,김성중,김덕희,정은,이민진,이지,민병훈,송지현,박서련,한정현,김솔,김멜라. 아침달. 2024. 232쪽)

: 처음엔 소설 앤솔러지인 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호텔 프린스의 '소설가의 방' 을 이용했던 작가들의 에세이였다. 대부분 좋았다. 우다영은 내게 다시 카프카를 불러왔고 최정나는 내 가슴을 찢었다. 이지는 그녀의 소설, 정확히는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켰고 김덕희는 안타까웠으며 이민진과 민병훈은 소설처럼 읽혔다. 송지현과 박서련은 소설가의 작업 노트를 들여다 본 기분이라 신기했고 한정현은 깊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같았던 김멜라는 이 책의 닫는 글로 맞춤이었다. 정말 좋았던 에세이들. 



21.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조라 닐 허스턴, 이미선 역. 문예출판사. 2014. 280쪽)




22. 자개장의 용도(함윤이. 문학과지성사. 2025. 313쪽)

: 원하는 것 혹은 곳을 위해 이동하는 여성들.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때로는 돌아오기 힘들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들. 다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수호자>.



23.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슈테판 츠바이크, 배명자 역. 다산초당. 24. 148쪽)

: 츠바이크의 미발표 에세이들. 그의 글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모든 글들이 다 소중하지만 이런 작품집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 글들에서 저자는 삶의 방향을 이야기한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와 그걸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그의 마지막을 알기에 이 글들이 더욱 아름다우면서 안타까웠다. 버틸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24. 신이 떠나도(윤이나. 유유히. 2025. 368쪽)

: 무연산 산자락에 위치한 무연 맨션. 언덕이 가팔라 차도 경차 밖에는 못 올라오는 이 곳 무연 맨션은 집주인이자 오랫동안 부동산을 운영해 온 박길순이 얘기하듯 터가 좋다. 4층은 없는 이 곳 B동 503호에 살던 마이클은 어느 비오는 날 문강우를 '주워'왔고, 밝은 성격의 강우가 주변 사람들을 설렁설렁 도와주면서 용돈을 받는 걸 보고 강우와 함께 심부름센터를 차렸다. 어느날 강우는 산 밑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고등학생 미래의 지갑을 찾아주고, 그날 저녁 심부름센터 의뢰를 받는데, 비어 있던 맞은편 505호의 입주 청소. 그런데 시간을 정해주었다. 해시에 시작해 자시를 넘기지 말 것. 의뢰대로 밤중에 청소를 시작한 강우는 그곳에서 재림과 미래 모녀를 마주친다. 재림은 한때 여의도를 호령했던 신점의 대가. 하지만 어느날 홀연히 신이 떠났고, 재림은 신을 돌아오게 할 방법이 이곳 무연 맨션에 있다고 생각하고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이사온 것.


오컬트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굳이 이야기하자면 휴머니즘 소설. 작가가 드라마 대본으로 쓰기 시작했다더니 정말 시트콤처럼 재밌다. 그러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신은 존재 이유이며 때로는 존재 자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이 떠나도 삶은 계속된다. 신이 없어도, 인간 사이에서라면 얼마든지 버텨나갈 수 있고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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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떠나도
윤이나 지음 / 유유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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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신은 존재 이유이며 때로는 존재 자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이 떠나도 삶은 계속된다. 신이 없어도, 인간 사이에서라면 얼마든지 버텨나갈 수 있고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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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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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이야기한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와 그걸 향해 다가갈 수 있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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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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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 혹은 곳을 위해 이동하는 여성들.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때로는 돌아오기 힘들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원하는 걸 갖기 위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들. 다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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