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있었던 존재들(원도. 세미콜론. 2024. 192쪽)

: 현직 경찰관이 과학수사대에서 근무하며 목격한 죽음들을 이야기한다. 뉴스에서 한 번쯤은 언급되어졌을 사연들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여다 봤기에 더 생생하고 더 절절하다. 현장에서의 어려움도 엿보이고. 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꼭 써줘야 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로뎀 입숨의 책(구병모. 안온. 2023. 256쪽)

: 13편의 단편들. 각각은 짧고 위트 있으며 재밌지만 묵직하다. 작품마다 작가가 짧게 작품 의도를 언급해 준 것도 좋았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였지만 가장 좋았던 건 「영 원의 꿈」.



3. 로베르 선생님의 세번째 복수(장 클로드 무를르비, 윤미연 역. 북극곰. 2023. 220쪽)

: 로베르 선생님은 이제 정년이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고생한 그는 이제 날듯한 심정으로 자신이 원래 교사가 되기로 한 대로,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따돌림 피해자였던 로베르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려 교사가 됐지만 아이들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교권이 하락하면서 내내 아이들의 무시와 괴롭힘을 당해왔던 것이다. 그 많은 아이들 중 세 명을 추린 로베르.


정년 퇴직을 한 하얀 머리칼의 인자한 선생님은 없다. 과체중인 몸을 끌고 다니며 옛 제자를 염탐하고 계획을 세우는 선생님이 있을 뿐이다. 앞뒤가 안 맞는 듯 하고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어쩐지 이해가 가고 조금은 통쾌하기도 한 복수극이다. 세 번째 복수에 이르러서야 조금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는 이 책은, 로베르 선생님의 뒤늦은 성장기이다. 난 이 작가를 다시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재밌을 수도 있겠다.



4. 위치스 딜리버리(전삼혜. 안전가옥. 2020. 180쪽)

: 고등학생 보라는 콘서트 티켓값을 벌기 위해 알바를 찾는데, '위치스 딜리버리'라는 특이한 이름의 택배 회사에 가게 된다. 뜻밖에도 진짜 하늘을 나는 마녀 소윤정에게 고용되어 청소기를 타고 마법 물품들을 배달하게 된다.


이 작가는 정말 날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기대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충족시켜 준다. 이번에도 딱 원하는 만큼의 무게감과 가벼움을 조화롭게 분배하여 어디에도 없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표제작만큼 뒤의 연작도 좋았다. 이 시리즈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5. 중요한 건 살인(앤서니 호로위츠. 이은선 역. 열린책들. 2023. 424쪽)

: 영화배우 아들을 둔 부유한 60대 다이애나는 스스로 장례업체를 찾아가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한다. 그리고 여섯 시간 뒤, 자택 거실의 빨간 색 커튼 끈에 목이 졸려 죽은 다이애나를 가사도우미가 발견한다. 다이애나는 죽기 전 점심 식사를 자신의 돈을 투자한 연극 투자자 레이먼드와 함께했는데, 레이먼드는 투자금을 잃고 있다. 아들 데이미언은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로 쪼들리고 있다. 게다가 고인은 10년 전 어린 형제 둘을 차로 치여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 현재에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나' 호로위츠는 이 사건을 수사하는 전직 형사 호손을 따라다니며 책을 쓰기로 한다.


호손이 너무 비호감이라 진도가 잘 안나갔다. 그전에도 성격 나쁘고 사고방식 이상한 탐정들은 꽤 있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 아래 있어서 독자도 어느정도 포용이 가능했는데 이 책은 직접 개입하는 작가 자신이 호손을 싫어해서 그의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봐줄 수가 없다.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었나 보다. 먼저 읽은 이 작가의 작품이 좋았어서 다시 선택했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호손을 보고 싶지 않다.



6. 엘리아스(그라치아 델레다, 나윤덕 역. 마르코폴로. 2023. 260쪽)

: 경미한 절도죄로 감옥에 다녀온 엘리아스 포르톨루. 고향 사르데냐 섬의 누오로로 돌아오니 형은 약혼을 해 두 집안이 한 집인 것처럼 지내고 있다. 성 프란체스코 축제일, 모두 함께 산 위의 수도원으로 향하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엘리야스는 형의 약혼녀가 계속 눈에 밟히는데 그녀 또한 엘리아스를 바라본다는 걸 알아챈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엘리아스의 모습은, 막달레나의 모습은 유혹에 약한 인간 모두의 모습이다. 짜증이 나는 건 엘리아스에게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겠지. 나의 경우엔 상대가 밀가루와 초콜릿이지만. 


저자의 글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심리묘사가 훌륭하고 사르데냐 섬의 풍광과 농장의 생활에 대한 묘사도 사실적이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삶의 모습들. 그래도 이 작품은 결국은 엘리아스의 성장기이다. 답답하고 우유부단한 인간이 그래도 조금이나마 나아가는 모습.



7. 내일 또 내일 또 내일(개브리얼 제빈, 엄일녀 역. 문학동네. 2023. 644쪽)

: 교통 사고로 다리를 다친 샘은 어린이 병원 휴게실 게임기 앞에서 세이디와 알게 된다. 암에 걸린 언니 때문에 늘 병원에 있던 세이디는 샘에게서 게임 치트키를 배우며 친해지지만, 샘과 함께한 시간들을 자원봉사로 기록한 기록지를 샘이 알게 되면서 멀어진다. 한참 후 대학에 진학한 샘은 붐비는 지하철 역에서 세이디를 발견하고 둘만의 농담을 외친다. "당신은 이질에 걸려 죽었습니다." 세이디는 자신이 학교 과제로 만든 게임을 샘에게 건네고, 플레이해 본 샘은 세이디에게 함께 게임을 만들자고 한다.


애정 관계에선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다. 우정도 그럴까? 왜 서로 툭 터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안 하는지 내내 답답했지만 사실 그게 현실에선 정말 흔한 상황이라는 거 알지. 한마디만 더 하면, 물꼬만 트면 진심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금세 서로를 안아주게 될 텐데 그 한마디가 어렵다. 


결말은 열려 있긴 했지만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난 많이 서글펐다. 삶의 한 챕터가 닫혔고 그게 너무 분명해서. 돌아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반짝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닫힌 챕터가 있다는 게.



8. 집으로 가는 먼 길(루이즈 페니, 안현주 역. 피니스아프리카에. 2023. 516쪽)

: 스리 파인즈에서 은퇴 생활 중인 가마슈 경감. 매일 아침 언덕 위의 벤치에서 얇은 책을 접어놓은 부분까지만 읽는다. 그런데 마을의 화가 클라라도 매일 아침 그의 곁 벤치에 앉는다. 머뭇거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며칠이 지나고, 마침내 클라라가 그에게 털어놓는다. 1년 전 별거하기로 하고 집을 나간 남편 피터가, 약속한 날이 지났음에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가마슈와 클라라, 부관 장 기, 그리고 서점 주인이자 클라라의 단짝 머나가 피터의 궤적을 좇는다. 


다시 읽고 싶어지는 추리소설은 이 시리즈가 유일하다. 시리즈를 읽다보면 각각의 에피소드보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배경, 인물들에 더 집중하게 되는데 이 시리즈는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다 좋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읽다가 스며들긴 했지만. 사실 이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이 대부분 이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생긴다. 이번엔 열등감. 피터의 열등감은 그전에도 언급된 적 있지만 이번 에피의 주인공이야말로 피터다. 만족스러웠을까, 피터는? 


결말은 안타깝지만 맘이 아프진 않다. 내가 마음 아팠던 지점은 올리비에의 말. 먼 곳에서 바라보는 불빛과 그 안 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켜보는 심경은 나도 알지. 그래도, 스리파인즈 주민들은 다들 앞으로 나아갈 거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9. 메타버스의 유령(박서련 외. 앤드. 2023. 264쪽)

: 박서련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표국청이 가장 좋았다. 사실 첫 번째인 곽재식의 작품이 너무 짜증나서 읽다가 던져버릴 뻔 했다. IT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일 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너무너무 현실이라 정말 혈압 오르는 이야기여서. 그래도 꾹 참고 뒤의 이야기들을 읽기를 잘한 거 같다. 김상균도, 박서련도 좋았기 때문에.



10. 사악한 목소리(버넌 리, 김선형 역. 휴머니스트. 2022. 248쪽)

: 세 편의 고딕 소설. 다 재밌었다. 공포 소설이라고 하긴 했지만 많이 공포스럽진 않다. 다만 신비스럽다. 세 편 모두 유약한 남성 캐릭터들과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드러내는 여성 캐릭터들이 흥미로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첫 번째 작품인 「유령 연인」.  그 싸늘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영국 시골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11. 붉은 인형의 집 상. 하(타마라 손,황유선 역. 황금가지. 2005. 368쪽, 428쪽)

: 꽤 유명한 호러 소설가 데이빗은 딸 앰버와 함께 바닷가 마을의 흉가로 소문난 바디 하우스에 이사 온다. 새 작품에 영감을 받기 위해. 그 집은 오래전 부두교 흑마술사인 리찌 보디에 의해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이다. 집을 둘러보던 데이빗은 3층의 어떤 방에 들어가자 기분나쁜 재스민 향과 함께 강한 성적 충동을 느끼고, 함께 있던 부동산 중개업자 테오도 그를 유혹한다, 한편 10대 앰버는 자기 방의 숨겨진 공간에서 인형을 발견하는데...


결국엔 사랑이 승리한다. 편하고 가볍게 읽으려 빌렸는데 은근 잔인했다. 호러보단 슬레셔 느낌. 성적인 요소들을 대놓고 범벅했는데 내 기준 에로틱하진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다 캐릭터가 뚜렷한 건 좋았지만 그만큼 전형적이기도 했다. 말 많고 남을 캐기 좋아하는 가정부 미니, 착하고 눈 밝지만 마을에서 바보취급 당하는 에릭, 전형적인 요부 테오 등. 사실 이 책은 호러에 에로틱 로맨스를 섞으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된 느낌이긴 하다. 불량식품 먹은 기분. 어쨌든 해피엔딩.



12. 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건너갈 때(조나단 레섬, 배지혜 역. 황금가지. 2023. 348쪽)

: 인류학자인 필립은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물리학자 앨리스와 연인 사이이며 함께 살고 있다. 요즘 앨리스의 실험실에서는 버블을 통한 새 우주의 생성에 관한 큰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필립은 앨리스를 보러 갔다가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걸 보게 된다. 이 실험의 결과로 '결함'이 생성됐는데, 앨리스는 이 결함을 연구하면서 점점 빠져든다.


(약스포)여러 이론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사랑 이야기. 앨리스의 실험실에서는 결함 앞에 테이블을 두고 결함에게 여러 물건을 던져 보는데, 받아들이는 물건과 뱉어내는 물건이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진행은 맘에 들었지만 결말이 맘에 들지 않았다. 모든 사랑은, 적어도 책 속에서는 이루어져야 하는데 말이지. 그러나 작가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으리라 생각되긴 한다. 내 입장에서는 꽤 하드한 SF였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13. 클로드와 포피(로리 프랭클. 김희정 역. 알마. 2023. 620쪽)

: 의사인 엄마 로지와 소설가 지망생인 아빠 펜. 이들은 다섯 명의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막내 클로드는 어느 순간부터 드레스를 입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는 쉽지 않다. 아이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해주는 부모님이 있어도 말이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그저 아이는 아이가 원하는 성별로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다섯 살 짜리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남자아이인지 아니면 성별 불쾌감을 느끼는 건지 어떻게 바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클로드는 그냥 치마를 입고 싶었을 뿐인데, 어른들은 네가 남자라면 치마를 입지 말아야 하고, 여자라면 여자 화장실을 써야 하며, 놀림 당하지 않기 위해 양호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계속 한숨이 나왔다. 책 속에 들어가서 클로드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게 만약 내게 닥친 현실이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매뉴얼은 있지만 감수성은 멀었다. 아이를 규정하려고만 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에,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기울여 주면 안 될까? 꼭 그렇게 분류를 하고 정의를 내리고 비슷한 누군가와 묶어야만 하나? 역시 삶은 쉽지 않다. 



14. 푸른 밤(존 디디온, 김재성 역. 뮤진트리. 2022. 264쪽)

: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하다가 내용이 너무 생생해서 새삼 검색해 보았던 책. 사랑하는 딸이 죽고 7년이 지난 후의 에세이이다. 딸 퀸타나는 네 번의 중환자실 입원과 네 곳의 병원을 거친 20개월 동안의 과정을 거친 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저자의 푸른 밤들이 사라졌다. 하지를 전후로 해질녘의 푸른 색이 점점 짙어져 밤새도록 그 푸르름을 갖고 있던 여름 밤들. 딸은 '그 아이를 두렵게 하는 키츠의 시구(258쪽)'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푸름 속으로 되돌아'(258쪽)갔다. 이후 저자의 푸른 밤들도 사라졌다. 


가슴 안으로 흐르는 눈물이 있다. 담담하기까지는 못하지만 애써 참는 눈물이 행간에서 느껴졌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찢어지는 아픔을 이야기하는 이 책을 천천히 오래오래 읽고 싶었다. 



15. 공존하는 소설(최은영 외. 창비교육. 2023. 272쪽)

: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을 주제로 하는 앤솔러지. 가진 게 없어서 소외되고 남들과 달라서 지탄받는 사람들과 가진 게 많든 많지 않든 뻇기지 않으려 부당함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재가 어떻든 같은 주제로 묶인 만큼 비슷한 느낌이다. 가장 좋았던 건 최은영. 다른 작가들도 다 잘 쓴 작품들이었다. 다만 조남주는 내용이 너무 뻔했다. 이 작가는 늘, 설마 이렇게 전개되는 건 아니겠지 싶은 방향으로 가서 좀 시시하다. 서유미의 작품은 앤솔러지에서만 세 번째인데 같은 작품이 여러 주제로 분류되는 게 흥미로웠다.



16. 변론의 법칙(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역. RHK. 2023. 560쪽)

: 우리 미키가 이번엔 살인 피의자가 됐다.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6권. 또 한 번 승소한 미키는 바에서 거나하게 축하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술은 한 잔도 안 마신 그는 자신의 링컨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가 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 본 경관이 음주 측정을 하기 위해 그를 세운다. 그런데 링컨 차 트렁크에서 뚝뚝 떨어지는 액체. 경관은 트렁크를 열게 하고, 거기서 미키의 오래전 의뢰인이자 수임료를 떼어먹고 도망친 사기꾼의 시신이 발견된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미키의 기나긴 싸움.


법정물은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다. 말과 자료로 이루어지는 변호사와 검사의 싸움이 이 책처럼 현실적으로 상세히 묘사된다면. 하지만 이 작가는 절대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미키의 무죄를 알고 있지만, 그리고 그가 자신을 증명해낼 것임을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따라가는 건 한시도 눈을 돌릴 수 없게 흥미진진하다. 미키의 초조함과 불안함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현실감과 캐릭터들의 생생함 때문에. 오랜만에 읽은 시리즈가 재밌어서 정말 좋았다. 은퇴한 해리 보슈가 한자리 차지해서 더 좋았고.



17. 말과 꿈(양선형. 자음과모음. 2023. 268쪽)

: '그'는 꿈에서 만난 말을 알고 있다. 공항 활주로에서 목격된 말. 그는 택시를 타고 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한다. 택시 기사는 계속 그에게 말을 건다. 


못 쓴 소설은 아니다. 분명 괜찮은 문장들인데 이상하게 집중이 되질 않았고 종국에는 지루해졌다. 뒤의 산문은 더했고. 앞으로 이 작가 못 읽을 거 같다.



18. 날 기억하지 말아요 - 2005 오늘의 추리소설(서미애 외. 산다슬. 2004. 265쪽)

: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엮은 앤솔러지. 서미애의 단편을 읽고 싶어서 빌렸다. 역시 서미애의 작품이 가장 맘에 들었다. 2005년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20여년 전이다. 읽으면서 문체가 올드하고 너무 평범하고 무난한 작품들이 많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20년 전 작품들이네... 그래도 판타지소설과 추리소설은 어느정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당시에도 그런 지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19. 섬데이(루이스 새커, 김영선 역. 현북스. 2020. 216쪽)

: 앤젤린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바다에는 어떤 생물들이 사는지, 고래는 왜 우는지, 피아노는 어떻게 치는지. 심지어는 다음날 날씨까지 알아맞힐 수 있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런 앤젤린은 여덟 살 나이지만 6학년으로 월반하여 나이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데, 아이들은 어린 앤젤린을 무시하고 괴롭히고, 담임 선생마저 앤젤린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구박한다. 


읽는 내내 앤젤린이 가여워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주위의 가까운 어른들은 앤젤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쓰레기 수거차를 운전하는 아빠는 갑자기 아내를 잃은 슬픔과 똑똑한 딸에 대한 부담감에 딸을 멀리하고, 담임은 답도 없고. 그나마 아빠의 직장동료 거스 아저씨가 앤젤린이 원하는 걸 알지만 거스 아저씨는 아빠가 아니니까. 원작 발행년도가 1983년인 걸 감안하니 상황을 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정말 답답해서... 그래도 해피엔딩이라 다행이었지만, 약간의 억지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앤젤린은, 나중에 커서 이 일들을 상처가 아닌 해프닝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20. 밤이 오면 우리는(정보라. 현대문학. 2023. 140쪽)

: 로봇이 인류를 멸종시키려 전쟁을 시작한 세상. 로봇과 로봇 추종자인 인간들은 곳곳에 숨어 있는 생존자들을 추적하고, 생존자들은 들키지 않기 위해 체온과 체취를 최대한 지우며 버틴다. 한때 인간이었던 흡혈인 '나'는 로봇에 대항해 싸우며 생존자를 확인하던 중, 인간형 로봇 빌리와 마주치고, 빌리는 자신이 인간이라고 우긴다.


길지 않지만 여운이 긴 작품이다. 어쩌면 흔할 수도 있는 주제이지만, 빌리의 '당신이 인간인 걸 어떻게 알았냐'(65쪽)는 물음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불어, 인간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생각도. 인간은 과연 늘 인간편이어야 할까? 과거를 보면, 지구에게는 인간이 없는 게 훨씬 유리하다. 그런데 앞으로 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인류가 멸종당해야 할까? 몇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21. 반가운 살인자 - 2005 올해의 추리소설(서미애 외. 산다슬. 2005. 272쪽)

: 역시 잘쓴다, 서미애.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약간의 기시감이 있긴 하지만 꽤 흥미진진하다. 딸이 화자의 의도를 알아차릴까 궁금해 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결말이었고, 결말은 머리로는 좋았지만 마음은 좀 아팠다. 김차애도 좋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그저 그랬다.



22.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백수린. 창비. 2022. 232쪽)

: 좋아하는 작가의 순한 에세이. 작가는 시내 중심에서 가깝지만 기울기가 급한 산동네인 탓에 집값이 저렴한 성곽길 근처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천천히 해준다. 바쁘고 빡빡하게 뛰어다니던 중에 문득 스치는 서늘한 바람같은 글들. 많이 위로받았다. 다만, 앞으로도 난 반려동물은 절대 못 기를 거 같다. 



23. 모든 열정이 다하고(비타 색빌웨스트, 임슬애 역. 민음사. 2023. 240쪽)

: 슬레인 백작인 헨리 홀랜드는 평균 수명을 훨씬 넘긴 나이까지 정정하게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많은 영국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 자신이 식민지 총독으로서, 의원으로서 또 총리로서 훌륭한 정치인이었기에 런던 정계에 막대한 영향은 미치고 있다. 이런 그가 사망하고, 자식들은 저택으로 모여든다. 늘 조용히 내조에만 신경써왔던 레이디 슬레인을 누가 모셔야 하는지 자식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때, 레이디 슬레인은 30여년 전에 봐두었던 헴스테드의 작은 집에서 혼자 살 것이라고 선언한다.


남편이 죽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으로 살아가는 레이디 슬레인. 시대적 배경과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녀의 행보는 꽤 파격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통쾌했고 시원했다. 그녀의 나이는 제목처럼 모든 열정이 다한 나이일 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이라고 해서 모든 걸 정리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집주인 벅트라우트 씨의 말처럼 모든 가능성은 열어둔 채 합리적으로, 나 자신으로, 레이디 슬레인이 아니라 데보라로 살아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열정은 이제야 시작되는 것일 수도. 



24.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 2006 올해의 추리소설(서미애 외. 산다슬. 2006. 272쪽)

: 역시 서미애 때문에 읽었는데, 수록된 작품들이 전부 다 별로였다. 심지어는 서미애도. 특히 많은 작품들에서 여성혐오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나 있어서 놀랐다. 2006년이면 얼마 전인 거 같은데, 물론 18년 전이긴 하지만, 이렇게 작가라는 사람들이 무지했나 싶다. 사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좀 젠더의식이 나아졌기를 바란다.



25. 비타와 버지니아(세라 그리스트우드, 심혜경 역. 뮤진트리. 2020. 276쪽)

: 1920년대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친우이자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의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인생을 각각 만나기 전(1882~1922), 가장 친밀하게 지내던 때(1922~1930), 각자의 삶으로 조금 멀어진 때(1931~1962)로 구분지어 시대순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쩌면 둘의 연인관계나 open merriage에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두 사람의 지적 능력과 신념, 각자의 글들과 작품에 끼친 서로의 영향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사람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도 이들의 교류를, 애정을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감히 말하자면 어쩌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전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저작을 괜히 피해왔다. 왠지 내가 감당하기에 쉽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올랜도』를, 『등대로』를, 『막간』을 읽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버지니아보다는 비타 때문에. 



26. 플래쉬포워드(로버트 J. 소여, 정윤희 역. 미래인. 2010. 428쪽)

: 2009년 제네바 인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서 힉스 입자를 생성해내기 위한 실험이 행해진다. 현지 시간 오후 5시에 행해진 이 실험이 시작되자마자 책임자 로이드 박사와 테오, 미치코는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다. 그리고 2분이 채 못되는 시간 동안 먼 미래의 자신에게 빙의된 듯한 환상을 본다. 이게 자신들만의 상황이 아니라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일어난 현상임을 알게 되고, 곧 어마어마한 후폭풍에 직면한다.


설정이 흥미로웠고 이 책을 기반으로 미드도 만들어졌다기에 읽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이었다. 특히 미래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이는 로이드와 미치코(둘은 약혼한 사이)의 갈등이 너무 답답했다. 거기에더해 잊을만 하면 보이는 교정 오류 때문에도 꽤 짜증이 났다. '지구에 유일한 생명체는 인간'이라든지 '그건 사람마다 틀려요' 따위의, 단순 오탈자 이상의, 편집자의 역량을 의심케 하는 오류들이 많았다. 이 출판사는 전에 읽은 다른 책도 그랬던 거 같은데, 앞으로 책 선택할 때 참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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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존재들 - 경찰관 원도가 현장에서 수집한 생애 사전
원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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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꼭 써줘야 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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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구병모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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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의 단편들. 각각은 짧고 위트 있으며 재밌지만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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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선생님의 세 번째 복수 북극곰 이야기바다 3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그림, 윤미연 옮김 / 북극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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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선생님의 뒤늦은 성장기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재밌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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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스 딜리버리 안전가옥 쇼-트 4
전삼혜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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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정말 날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기대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충족시켜 준다. 이번에도 딱 원하는 만큼의 무게감과 가벼움을 조화롭게 분배하여 어디에도 없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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