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권의 세계 일주
데이비드 댐로쉬 지음, 서민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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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의 세계일주 이상으로 흥미로운 세계문학 탐험 !! 프랑코 모레티 다음은 데이비드 댐로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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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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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에서 영장류로 바뀐 제목만 봐도 새로운 번역본에 슬며시 기대감을 품게 된다. 신뢰감을 주는 역자 목록, 검은색과 주황색의 강렬한 폰트 조합, 환양장까지(아마 페이지가 부드럽게 넘어갈 듯?)... 20여 년만에 복간된 만큼 앞으로 오래오래 읽힐 수 있는 책이 나올 것 같아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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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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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시리즈 등 아파트라는 창을 통해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건축, 사회학적 텍스트를 재밌게 읽었는데요. 나의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의 이인규,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등 아파트 카드들이 직접 쓴 아파트라는 세계가 더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아파트 원주민도 아닌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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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575호 : 2023.01.05 - #큐레이션의 시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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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엇을 구독하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누군가 어디선가 이 문장을 써먹었으리라 예상된다. 그만큼 오늘날 구독, 큐레이션은 경제와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박물관/미술관Museum 바깥으로 나온 큐레이션. 큐레이션은 뮤지엄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정보 과잉 시대에 가치 있는 정보,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맞춤'으로 선별하고 추천해주는 일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마케팅, 저널리즘, 출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큐레이션은 이제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알려주는 것'이란 뜻으로 통용된다.


이 글에서 큐레이션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려 한다. 인간 큐레이션과 기계 큐레이션. 큐레이터-큐레이션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다. 기계 큐레이션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걸 추천해준다. 유튜브를 실행하면 열리는 창의 화면은 이미 큐레이션이 적용된 결과물이다. 유튜브와 OTT 플랫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온라인 공간일 이곳들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가 최대한 시간을 쏟아붓게끔 설계되었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창업자가 자신의 경쟁자는 사용자의 수면시간이라고 말을 했겠는가. 누구나 한 번쯤 유튜브에 접속하고 눈 뜨고 코 베이듯 시간을 '순삭'당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기'가 아닌 '추천'을 원하는 사회>의 최홍규는 추천 알고리즘이 낳는 문제를 비판하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며 그러한 정보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싶은가에 대한 메타적 사고'를 키워야 함을 역설한다. 추천 알고리즘이 자신의 생각, 입장, 취향과 비슷한 콘텐츠'만' 긁어모아 자연스레 '닫힌 계'를 형성하여 이용자를 편협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콘텐츠를 무작위로 추천하는 기능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큐레이션, 추천 서비스가 보편화된 만큼 이제 큐레이션/추천 자체에 대해 성찰적,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메타적 사고를 키우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하는 시점임에 분명하다.


인간 큐레이션의 사정은 어떠한가. 인간 큐레이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온라인은 최근 들어 급부상한 '뉴스 레터' 서비스를 예로 들고 싶고, 오프라인은 본문에서도 소개된 '큐레이션 서점'의 예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얼리어답터'가 못 되는 느림보인 탓에 '일간 이슬아'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각종 구독 서비스가 범람하던 시절에 한걸음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구독하고 있는 뉴스 레터만 해도 13개 정도가 된다. 그중 꾸준히 열람하는 레터는 유유출판사의 <보름유유>, 마티 출판사의 <마티의 각주>, 오월의봄 출판사의 <오!레터>, 한겨레신문의 <반올림(#)책>, 민음사의 <한편> 정도다. 세상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줄어든 환경에서 <뉴닉>을 점점 안 읽게 되었고, 재미있게 읽었던 클래식 뉴스레터 <GLIT>이나 <인스피아>는 출판사의 뉴스레터를 우선적으로 읽다 보니 후순위로 밀려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뉴스레터를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문학평론가 최가은의 <리뷰레터>와 영화평론가 김철홍의 <원데이원무비>. 구독은 창작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효율적으로 내 관심사와 연관된 콘텐츠를 추천해줄 수 있을지언정 지인의 추천처럼 효과적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안면을 튼 사이가 아니더라도 글을 통해, 혹은 다른 정신적, 심리적 교감을 통해 쌓은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추천을 따른다.


이실직고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스스로 정하는 편이다. 읽을 만한 책인지 아닌지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하고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고, 관심사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지점에 가장 가까운 책을 찾고자 탐색에 열심인 편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좌표의 책을 선물받으면 바로 독서에 돌입하기 어려워한다. 그렇다고 당연하게도 항상 다음에 읽을 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어서 책의 본문에서 추천된 책이나 평소에 좋아하고 신뢰하는 저자가 어느 인터뷰나 방송에서 추천한 책에는 마음이 동해 안전한 모험을 나서곤 한다. <어쩌다산책>과 <어쩌다책방>의 디렉터 김수진 님의 글을 읽고 큐레이션 책방을 방문하면 전시된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들의 진열, 전시, 배치에 따른 공간의 형식을 헤아려보고 싶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어쩌다산책>의 특집 테마는 '존 버거'다. 열화당에서 나온 미니멀한 디자인의 존 버거 책들이 그야말로 미술품처럼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 <A가 X에게>를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집 책장에도 꽂혀 있는 책들이었지만 책장과 조명, 여백을 고려해 책 자체를 제대로 관찰하고 감각할 수 있게끔 배치해둔 덕에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총서, 열화당의 존 버거 책 등의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책의 판형과 형태에 알맞게 책을 진열하고, 책장에서 한 권이 빠졌을 때의 변화/차이가 주는 부담감을 고려해 같은 책을 여러 권 꽂아둔다는 내용을 읽고 큐레이션 책방은 아무나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느꼈다.


세상에 좋은 콘텐츠는 넘쳐나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같은 2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콘텐츠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이 '최선의 선택'을 유도하는 큐레이션 시장은 고도화되고 확장되고 있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의 감동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콘텐츠를 추천받아 향유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을 찰떡 같이 잘 알아맞히는 큐레이션을 찾아 환승할 테고, 누군가는 큐레이션의 홍수에 질식해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회귀할 지도 모른다. 큐레이션의 시대에 어떻게 읽고 보는 것이 현명할까. 허희 문학평론가의 <미디어 큐레이션의 어제와 오늘>에 등장하는 한 단락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을까 한다.


큐레이션은 '돌봄, 관심, 책임'과 연관을 맺고 영혼을 돌보는 행위와 같다. (...) 상업적 욕망에만 휘둘리지 않고 타자와 함께 나의 영혼을 돌보게 하는 큐레이션이 과연 있을까. 어쩌면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이 벌써 저마다의 자리에서 예사롭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감응한 책 속 문장을 캘리그래피로 공유하고, 자발적 독서모임 등을 여는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실천들로.

<기획회의> 575호, 37p


큐레이션의 큐레이션. 메타적 사고와 비평이 활성화된다면 단순히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밥상에 누구를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타자와 함께 나의 영혼을 돌보게 하는 큐레이션이 수월해지리라 생각한다. 관점과 태도, 수많은 별무더기에서 당신이 그려낼 별자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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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원봉사자를 만나다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81
안드레이 클류치코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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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년 11월에 입대했다. 그리고 올해 2월, 부대의 행정반이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장소. 핸드폰으로 속보를 접한 간부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껴있다가 알게 되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2022년에 전쟁이라니. 그것도 평소에 분쟁이 잦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중동 지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국제정치 및 시사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전쟁의 감운이 이미 감돌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지만 종교, 민족, 인종, 좌우 이데올로기 등을 이유로 타 집단을 말살하려는 극단적인 폭력은 더 이상 재현되기 힘들 거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는 명제가 불행히도 아직 유효했다. (자국의) 이익을 얻기 위해 무력이란 수단을 동원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정치적 행위... 문득 내가 군대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전쟁에 대비한다는 말이 그저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실재하는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게끔 억누르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일 21시 뉴스 시청시간과 정신전력 교육시간에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참전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미국, EU 등 주변국의 군사 원조, 우크라이나의 끈질긴 항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입대와 단결된 모습, 공습과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민간 주거지역,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전쟁의 이미지들에서 이상하게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쟁은 무기와 기계, 그것들로 무장한 군인들만 치루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4월인가 5월 즈음에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일상을 회복한 도시의 모습이 비춰지자 오묘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최전방과 후방,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격차가 확연해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과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분명한 건 각자 겪고 있는 전쟁의 현실이 같지 않을 거라 예상되었다.

전쟁 발발한 직후에는 충격에 휩싸여 유니세프를 통해 일시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했었다. 하지만 일병 월급으로 생활비 이외에 추가지출이 부담되기도 했고, 인류애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먼 나라를 지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SNS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는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영화연구자 S, 후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목소리를 내는 걸 멈추지 않았던 인문학 연구자 A, 대기업 출판사에서 나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첫 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책을 낸 편집자 Y 등 학문과 예술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 휘발성이 강한 동정과 슬픔, 분노와 문제의식을 물질화시켜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내 일상에 매몰돼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점점 멀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뉴스에도 점차 우크라이나 소식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뉴스를 접한 이들은 ‘아직도야? 아직도 안 끝났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잔인하리만치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나라고 크게 다를 바 없었기에 함구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예스24 리뷰어클럽에서 이 책을 만났다.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우크라이나 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인터뷰집이란 설명에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살리고, 일상을 복구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공동체를 복원하는 이들의 이야기. 포탄과 미사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서 묵묵하고 조용히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안드레이는 IT 계열 종사자였으나 ‘방탄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전쟁 발발 이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접하는 전쟁의 이미지는 날아오는 포탄, 미사일 폭격, 총탄에 목숨을 잃는 것이지만 전쟁의 리얼리티는 가스와 수도가 끊기고, 물류유통망이 파괴되어 생필품을 조달받는 게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이 ‘의식주‘ 문제의 디테일에도 있다. 안드레이는 방탄조끼를 입고 배달을 했다. 원래 시장의 동력으로 이뤄졌던 물류의 이동을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도착할 수 있게끔 재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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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상태는 어땠나?

내가 사는 곳은 주코프스키라는 마을이었는데 폭격이 가장 심했던 살토프카 지역과 도보로 15분 거리다. 주로 북동부 지역을 따라서 교전이 일어났는데, 러시아는 하르키우 북부의 치르쿠니를 점령해 살토프카를 비롯한 하르키우 북동부 지역을 공격했다. 살토프카는 길이만 10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동네라 지역 내 건물의 파괴 정도가 매우 달랐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은 대부분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고 남부로 이동할수록 폭격의 흔적이 조금씩 줄었다. 치르쿠니가 5월에 해방되며 일부 지녁엔 슈퍼마켓이 열리고 지하철이 운행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일상을 보내고 한쪽에서는 전쟁이 이어지는 묘한 상황이었다.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독 공습이 심한 지역에 있으니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다.

복잡한 심정이다. 누군가가 투쟁할 때 누군가는 살아가야 한다. 때때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는 것을 보면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전쟁 중인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하르키우의 위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여기서 더 버티고 견뎌야 서쪽 르비우에 있는 우리 지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하루라도 더 안전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나. (...)

(2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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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이외에도 이 책에는 체르니하우의 테타냐, 부다페스트의 나스차, 키이우의 올레나 발베크, 드미트로와 아르촘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테타냐는 체르니하우를 중심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부서진 잔해를 수습하고 망가진 건물을 수리하는 재건-복구 작업을 한다. 디제이의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파티를 열면서. 테탸냐가 소속된 ‘리페어투게더‘라는 단체는 IT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파티 플래너였던 친구들 일곱 명이 만든 자원봉사 단체라고 한다. 재건복구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즐겁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살려 파티를 접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테타냐의 사례를 보며 ‘두리반‘ 투쟁을 기록한 영화 [파티 51]이 떠올랐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기업 자본의 횡포로 보금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홍대 두리반(칼국수집)이 예술가들의 연대를 통해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며 긴긴 투쟁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파티 문화를 즐기는 일상을 빼앗겨버린 테타냐에게 ‘리페어투게더‘ 활동은 물리적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복구하는 일임과 동시에 폐허 위에 일상의 축제를 쌓아올리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이 말한 ‘재난 유토피아‘처럼 누군가에게 이 복구 현장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끈끈하고 뜨거운 유대감과 이타심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재미와 행복의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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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클린업‘이 정말 인상 깊었다. 어떻게 자원봉사에 음악을 곁들일 생각을 했나?

지금 키이우는 그나마 안정적인 상태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통행 금지가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는 어려운 상태다. 자유롭게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봉사를 하면서 우리 자신들도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을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 자신부터 필요했다(강조는 데부씨). 그러다 테크노 음악을 떠올렸고 자원봉사 현장을 마치 파티처럼 만들어 보고자 했다.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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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 나스차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러시아인이다. 그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정착을 도우며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헝가리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출신 교사들이 전쟁 이후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만들어나갈 학생들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학교를 운영하는 ‘국경 없는 교실‘ 단체에서 활동한다. 전쟁 이후 러시아인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의 시선은 어떨까. 그리고 극우정권이 들어선 헝가리의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의 예상대로 국적은 사람들을 반목하게 하고 갈라서게 만들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장소에서 갈등보단 협력이 꽃핀다고 한다.

-

-아무래도 러시아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러시아인이 많은가?

정말 많은 러시아인이 난민들을 돕고 있다.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구소련 국가 출신 사람 중에도 난민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돈을 보내고 침구와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여러모로 지원해 준다. 그런데 이들이 왜 직접 나서지 못하는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직접 우크라이나인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진 말을 듣지 않을지, 도움을 거절하진 않을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엔 그런 것이 없다. 온라인상으로는 모두 서로 증오하고 욕하고 모진 말을 내뱉지만, 사실 온라인은 현실의 일그러진 거울이다. 현실에는 오로지 ‘도움‘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인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나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유리 두즈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난민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내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는데 원래 모스크바 출신이라고 답했다. 그때 공기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침묵이 아픈 침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하는 침묵이었다. 어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어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을 돕고 있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미쳐버릴 것 같다. 다만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다.

(74-75)

-

국경 없는 교실‘ 프로젝트 말고도 나스차(아나스타샤의 애칭)는 ‘훈헬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훈헬프라는 플랫폼에 난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식료품 카드를 구입해 우편으로 보내준다. 이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그들에게 음식의 선택권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스차는 음식의 선택권을 줘서 입맛에 맞는 익숙한 음식을 고르고 먹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익숙한 음식이 주는 아늑함과 선택권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70).

내가 지원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 같다. 난민에 대한 구호 활동과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굶지 않는 걸 감사하게 여기며 주는대로 먹을 것을 종용하고, 음식 ‘선택권‘을 부정하려 들 거라 예상된다.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의식주, 그중에서도 먹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며 구체적인 지원 과정에서 어떤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이 사례를 통해 세심하게 엿볼 수 있었다. 과연 한국의 공무원들은 이런 세심한 배려와 존중을 발휘할 수 있을까(했으면 좋겠다).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는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남을 돕는 봉사활동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전쟁이 속히 종결되길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작은 도움이나마 건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려 한다. 책에 소개된 ‘헬핑 투 리브‘나 ‘리페어투게더‘에 성금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고, 책을 좀 더 찾아보고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좀 더 확실하게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러브 앤 피스. 사랑과 평화가 이 땅에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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