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애덤이 가는 길에는 애덤이 진실이라고 결정한 것들 말고는 어떤 진실도 찾을 수 없었고, 그 진실은 화창한 볕이 내리쬐다 눈 깜짝할 새 폭우가 내리는,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게 바뀌었다. 말라치가 무엇을 보았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아침이슬을 아름답게 반짝이며 먹잇감을 유인하는 거미줄이었다. 그 중심에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 원하는 것 많은 신 노릇을 하는 헌신을요구하고 칭찬을 집어삼키며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지면서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애덤이 있었다. - P384

혼자 남았다. 이제 확신할 수 있다. 궤도에서 열흘이 넘도록 응답이없다 [데이터 손상] 너무 빨랐다. 여기에서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죽은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원격으로 우주선 발사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누군가 언젠가 이 경고를 받길 바란다. 사람들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인류를 멸종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어둠을 가르며 날아왔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져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누구든,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든, 이것은 애절한저녁노래호에서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우리의 임무는 끝났다.
- 기록 7, 애절한저녁노래호 UC33-X로 전송됨 - P390

나는 어둠 속,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에 깨어났다.
우리를 만든 모든 것들은 존재의 첫 순간 동안 생겨났다. 우주가 시작되고 100만 분의 1초만큼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 지났을 때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이 생겼다. 잠시 뒤 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되었고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몇 분이었다. 한 번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이 모든 시간이었을 때, 몇 분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입자들은 쌍으로 뭉쳤다. 시간과 공간이 늘어나고 늘어나서 몇 날이 몇 년이 되고, 몇 년은 몇백 년, 몇천 년이 되어 아무것도 없는 무로 뻗어 나갔다. 핵 주변으로 불안정한 확률 구름이 된 전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수소와 헬륨의 첫 번째 원자가 탄생했다. 100만 년, 200만 년, 재는 사람도 평가할 기억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중력은 외로운 원자들을 함께 뭉쳐 사납게 타오르는 빛을 만들고 어둠 속에 얼룩을 남겼다. - P391

나는 망설이면서 거대한 돔과 떠오르는 태양 아래 연약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변화하고 있는 도시를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우주가 더 크고 두렵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바로잡히지 않은 실수와 알려야 할진실이 남아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모두 파괴될 수 있었다. 인간이 꿈꾼 모든 것들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도시의 옥상 정원에서 나무들이 녹색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방 안에 들어서자 의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손의 떨림이 멈췄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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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아리아나가 말했다. "내가 아는 건 그게 변했다는 거야.
마치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여전히 두려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깨어있었지만 내 손을 움직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마치 내 머릿속에 갇혀서는………"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말끝을 흐렸다. 시오마라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멈출 수 없었어. 그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멈출 방법이 없었어." - P244

아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 했어. 그게 말한 거야. 마치………… 입력값과 출력값이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었어. 어떻게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입이 움직이고 소리도 밖으로 나오지만그냥 소음이나 마찬가지지. 젠장, 젠장.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내가 모를 수 있지? 정해진 순서가 그래서 그렇게 소리를 내고 움직이는것 같았어. 그리고 갑자기 뭔가가 생겼어. 뭔가 다른 것. 입력값이 더 많아졌달까. 방향을 바꿀 이유 같은 게 생긴 것 같았어." - P245

아리아나는 재빨리 창문 쪽을 바라보았고, 저 먼 곳에 있는 약하디약한 지구를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모르겠어. 그게 왜 여기로 왔는지. 그게 무슨 행동을 왜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어. 이유는 없어. 충동만 있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충동." - P245

우리는 일찌감치 아리아나의 피부밑에서 요동치던 그것의 목적을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지각없는 병원체라 여겼던 것을 결핍과 욕구가 있는 지각이 있는 생명체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설계를 통해 만들어진 물체였다.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물체.
인간 여자의 몸에 스며들어 신체와 언어와 의지를 통제하는 힘을 빼앗을 수 있는 물체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니. 혼란을 빚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그토록 폭력적인 행동, 피와 두려움으로 대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246

아리아나의 표정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피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있을 때, 머릿속에 계속 생각이 떠오르잖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든 단계를 떠올리잖아. 그런 느낌이었어. 그게 내게 시킨 모든 행동은 마지막을 향해 가며 거치는 단계 같았어." - P246

"나도 모르겠어." 아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시 지구 쪽을 슬쩍 쳐다봤다. "내 의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어. 뭔가………… 프랙탈 같은 게 보였어. 내 주변을 둘러싸고 프랙탈 같은 이미지가 사방에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는 원이 보였는데, 그게 뭐였는지는………나도 잘 모르겠어. 우주선 안을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어. 나는 원으로 다가가야 했어. 나는 그것이 원하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를 통제할 수 있지?" - P247

그것은 아리아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두 배 큰 남자를 공격하고 무기를 훔치고 죽이도록 만들 수 있었다. 타본 적 없는 우주선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문을 열고, 해치를 열고, 도망을 치도록 할 수도 있었다. 10년 전 기억을 저장하고 전달해 몸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다. 처음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 우주선을 격리시키고 데이터 전송을 방해하도록 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것이 숙주로부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우주선을 조종할 수도 있었다. - P251

"회의실이야." 내가 말했지만 아직 시선은 제사민과 다른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기생충은 크기가 작았다. 바늘로 찔린 구멍을 통해 피부 속에 침입하고 뉴런과 전기 신호 수준에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리고 숙주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만들었다. - P251

하지만 우리가 꿈꾸던 새로운 인생과 별들 사이에서 누릴 아름다운 자유는 우리가 지상을 떠나기 전 이미 가망이 없었다. 셔틀에 오르던 바타차르야의 얼굴에 비쳤던 두려움과 아리아나가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그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공포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오만했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는 성지가 아니라 심연이었다. 이 심연에서 거의 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을 여기로 데려오면 또 다른 300명의 목숨이 심연으로 사라질 것이다. - P265

나하리 선장이 말했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는 알 수 없는 인물 또는 인물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공격 수단은 혈액을 통해 전염되는 신경 공학적으로 설계된 병원체 또는 장치이며, 타깃으로 삼은 인물의 신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 출처도, 목적도 알 수 없다. 감염된 사람들은 대부분 즉시 사망하며 감염 초기 단계에서 자해로 부상을 입었다. 고의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매개체에 완전히 장악된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 P281

"적대 세력은 우주선의 운항 제약 사항을 바꾸고 있다. 충돌 방지메커니즘을 비활성화했고 대기 보정률을 0으로 줄였다. 가속 댐퍼도 모두 제거했다.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는 알고 있다. 짧게 말하면 우주선 주행 시스템에서 행성과 충돌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자동 및 수동 컴포넌트를 모두 비활성화시켰다. 적대 세력은 이 우주선을 지구에 충돌시키려 하고 있다." - P283

"이 우주선은 길이가 1킬로미터야." 시오마라가 말했다. "대기권에서 산산조각이 나든 어디에 충돌하든 그 영향은 재앙이 되었을거야. 수십만 명이 죽었겠지. 생물이 대량으로 멸종이 될 수도 있었어. 아마……… 아마 두 번째 ‘붕괴‘가 되었을 거야." - P285

애절한저녁노래호는 한때 외계 문명이 둥지를 틀었던 행성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무언가에 의해 말살되었고, 지구에 안부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해 UC33-X를 보냈다. - P289

[데이터 손상] 초대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낙원으로, 인류애가 남아있- 세계로 오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발견한 아름다운 행성을 보러 오라는 초대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 정도로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 살았던 사람들은 그게 누구였든, 무엇이었든 아름다움에 미쳐있었다. 그들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한때는 아름다운 행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행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다.
-기록6 애절한저녁노래호, UC33-X로 전송 - P293

그는 파냐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피부밑에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살갗을 뚫을 듯 불룩 튀어나온 작고 둥근 돌이 그녀의 팔목에서 팔꿈치를 향해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 P308

"다시 약속해 줘."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지만, 나는 꾸역꾸역 말을 뱉었다.
"약속할게." 내가 말했다.
인생의 반을 거짓말을 하며 살았다. 거짓말은 내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나는 밖에서 브라민의 문을 닫고 통제실로 돌아갔다. 자흐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딱히 도망칠 곳도 없었을 것이다. 하우스오브위즈덤호에는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 P335

지구의 도시들은 하나둘씩 잠잠해지겠지. 잊힌 자들의 거대한 무덤이 되어 셀 사람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다 못 셀 만큼 많은 시체에서 먼지가 날리게 될 것이다. 높은 빌딩 협곡 사이를 바람이 메아리치며 불고, 텅 빈 사막에는 맨발의 소년들이 절뚝거리며 지평선처럼 보이는 빛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텐트의 캔버스를 찢고 판자에서 페인트를 긁어내고 울타리에서 철사를 떼어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문명이 일어서고 쇠퇴했던,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다가 악착같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지켜본 지구라는 세계의 밤하늘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대기로 추락하는 인공위성들의 묘지가 되어 수천, 수만 년 후 외계탐험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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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는 찻주전자가 쉭쉭거리고, 포도덩굴은 벽 위에서 흔들거리고, 고양이가 슬그머니 지나간다. 내 어머니는 배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마침내 평범한 임산부처럼 휴식을 취한다. 시위와 유인물, 처녀의 머리에 박힌 못들과 멀리 떨어져서.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4

나는 오랫동안 당신에게 없는 것들을 보았다. 인생과 모성과 욕망의 부재. 이제 당신은 이 모두를 받아들이며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삶 속으로 스민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7

나는 당신을 쓴다.

당신에 대해 쓰거나 당신에게 쓰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쓴다’라고 말해야 옳다.

꿈속의 당신 얼굴을, 거짓말과 날 위로하는 모든 것에 버무려 노트에 끄적인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8

어머니 눈이 멀리 날아가는 새를 좇는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다른 곳에서의 삶을 위해 옷과 신발을 산다. 어린 소녀는 동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어야 한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부모는 마카렌코의 책에서 읽은 대로 소유는 천박하다고 가르친다. 아이는 ‘소유’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29

"너희와 헤어질 순 없어. 그러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자. 내가 재밌는 얘기 많이 해줄게. 다들 잠들면 마당 나무 밑에 구멍을 파서 거기에 너희를 숨길 거야. 나중에 찾으러 올게. 아주 빨리! 그때 다시 놀자. 동네 아이들은 믿을 수 없어. 심술쟁이들이라서 너희를 다 망가뜨릴 거야. 난 너희를 잘 보살펴주잖아. 절대 버리지 않을게."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0

나는 옷과 책과 가구들도 다 내주어야 했다. 기증을 강요당할 때마다 매번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우리 집에 와서 인형이나 책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아이들 앞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고는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내밀곤 했다.

나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손에 들린 장난감과 놀란 눈과 부끄럽게 미소 짓는 얼굴을 보았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4

마치 세상에 혼자 덩그마니 남은 것만 같았다. 나한테서 모든 걸 빼앗아가려는 두 괴물과 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5

두 사람은 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즉 물질에 무관심하고 소유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거라고 확신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35

기자가 머리를 들고 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미소를 짓더군.

그리고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대답했어.

"이건 바보 같은 만화가 아니야. 난 정상이니 걱정 마. 만화에서 누샤베 봤지? 말을 하는 작은 병 말이야. 누샤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내 아내야."

"사모님 목소리라고요?"

"아내는 성우거든. 아내는 누샤베 대사를 말하고, 나는 아침마다 아내 목소리를 들어."

감방으로 돌아와서 수첩에 ‘누샤베’라고 써놨어. 안 까먹으려고 말이지.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1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멋진 이야기들을. 수집한 이야기들을 가방에 담아 다니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주의 깊게 듣는 귀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드는 눈을 보고 싶었다. 모든 이의 귓가에 이야기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싹을 틔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 꽃이 사라진 자리를 가득 메우기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마리암 꽃들을 대신하기를 원했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1

그의 눈은 웃을 때도, 웃지 않을 때도 반짝였다. 환하게 빛나는 시선을 지닌 사람. 압바스는 별똥별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긴 생애를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 주고자 하는 사랑을, 심장이 감당 못 할 날이 올 테니까. 심장은 언젠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 속에서 분출된 사랑이 세상을 온통 물들였으면 좋겠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3

압바스. 삶에 대해 깊은 애정을 지닌 젊은 혁명가. 플라스틱 슬리퍼. 수감자. 총살. 죽을 때까지 ‘플라스틱 슬리퍼’라는 말만 되뇐 불쌍한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고통의 단어, 생살을 벗겨낸 듯한 지독한 단어, 불의에 넋을 놓은 단어, 그들만의 단어를 되뇌는 모든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아직도 들린다.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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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장난이 아니다.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해지지는 말라.

벼랑 끝에서 두 손이 결박되거나

커다란 안경을 끼고 흰 작업복 차림으로

실험실에서 일하다가 잡혀가지 않도록

너는 다른 사람을 살리려고 죽을 것이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깨달으리라.

삶보다 아름답고

진실한 건 없다는 사실을."

- 나짐 히크메트 - -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824756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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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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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도 이제 몇 일이 채 남지 않았다.
점심산책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종종 들르는데, 지난 번 갔을때 우연히 눈여겨 본 책이 있다. 임우진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도시> 이다.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 거주 20년 경험을 바탕으로 길, 건물, 공간,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을 문화 비교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 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총 2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부(보이지 않는 공간)와 2부(보이지 않는 도시)는 각각 5장으로 되어 있다. 작가는 여행에 빗대어 낯설다는 것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설명하며 이 책을 이끌어간다.

여행은 자신이 가진 절대가치를 내려놓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이르면, 전에는 당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면하게 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색한 환경에 당황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왜 그런지 이해할 때 즈음 비로소 진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처럼 예전에 살던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他者化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 11p.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우리 전통 가옥의 친근함과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처럼 불과 얼마전까지의 우리 동네 모습은 '인간은 원래 선하다'가 바로 우리네 현실 모습이었구나 싶다.

전통 한옥의 창문이나 방문에는 대체로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사람은 드물다.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래된 한옥이나 산사의 담장은 고개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다. 제주도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민가에는 대문에 나무 막대만 걸쳐 놓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얼마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 23p. 같은 책

흰쥐를 특정 크기 공간에 가둬두는 실험과 유럽과 우리 국회의사당 현실을 비교하면서 고함치고 졸면서 딴짓하는 우리 의원님(?)들의 모습이 아~ 그렇구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렇다고 흰쥐처럼 그들을 좁은 공간에 둘 수도 없고... 또한 우리네 묘가 그동안 추모만 끝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멀고 두려운 곳이었다면, 유럽(프랑스 파리)의 묘는 가족이 공원처럼 나들이 삼아 편히 올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정부가 앞장서서 장례문화의 개선을 가져온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이제 매장이 아닌 화장 90%가 넘는 현실에서 이른 바 추모공원(이라 쓰고 납골당이라 부르고)의 미래는 과연 어때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장례 건축 미학architecture funéraire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개념은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건물로 가득한 도심지처럼 묘지도 다양하고 활력 넘치는 '살아 있는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이게 한다. 묘지에 설치될 예술품이나 미니어처 건축물은 가족이 가장 신뢰하는 조각가와 건축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무언지 모르고 받았던 그 설계 의뢰는 앞으로 자신의 가족이 영원히 머물게 될 그 고객의 마지막 집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떠나면 살아 있는 가족과 자손은 죽은 자의 무덤이 아닌, 가족의 집에 들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묘지는 죽은 자들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도시의 일부다. - 98p. 같은 책

우리 전통한옥에서 중요시 하지 않던 방향은 풍수지리와의 레버리지(맞바꿈)를 위해 새롭게 등장한다. 남향 남향 남향...
그것은 예전 한옥의 구조와 지금 천편일률적인 고층아파트의 구조적인 차이에서 그 이유를 쉽게 찾게 된다. 남향으로 위치한 큰 거실과 큰 안방이 정작 북쪽에 위치하게 된 주방과 아이들방보다 그 이용 효율이 낮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다. 여기에 서구의 건물에 비해 건물의 손 보아 오래 사용하기 어렵게 한 이유가 아파트의 벽식구조와 온돌난방 방식이라면, 환경적 측면에서 예전 방식의 난방을 아파트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싶다.

근대에 들어 배산임수를 찾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자 전통적 풍수지리설에는 강조되지 않던 보완적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향’이다. 혹독한 겨울에 북풍을 정면으로 맞을 수는 없으니 북쪽을 등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붕 처마가 길게 나오는 한옥 건물에서는 바람에 비해 향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서향이 여름 오후에 덥긴 해도 지붕 처마가 가려 주니 실내 공간에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한옥의 모든 방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마당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에 의지하는 구조였으므로 한옥은 향에 강하게 구속되는 집이 아니었다. 따라서 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 112p. 같은 책
예전의 한옥은 가운데 마당에 비치는 자연광이 반사되어 모든 방에 빛이 골고루 퍼지는 구조였다. 동향이나 서향이라도 모든 방에 간접광이 비치니 별 상관없었다. 집을 굳이 'ㄱ’자나 'ㄷ’자로 만들었던 이유이자, 우리가 지금도 한옥의 툇마루에 앉았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진짜 이유다. - 118p. 같은 책
빛이 들지 않는 침침한 북쪽 공간으로 밀려난 사람은 하필이면 약자인 주부와 아이들이었고, 항시 밝은 남향 빛의 혜택을 입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티브이와 소파 그리고 킹사이즈 더블 침대였다. - 119p. 같은 책
물론 건물을 고쳐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더 직접적인 원인은 실내를 바꿀 수 없는 벽식 구조 방식 때문이지만, 바닥 온돌도 톡톡히 한몫을 한다. 재건축으로 더 큰 집을 얻게 될 몇몇의 조합원과 일거리를 보장받을 건설 업체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몰라도 건물을 30년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한 짓이다. 건축은 자연 자원을 오직 고갈시키기만 하는 소모적인 행위다. 우리 나라 건축 산업의 재활용 비율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 139p. 같은 책

공간을 지나 도시로 들어가 보자. 서양의 도시엔 광장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모이고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다.
여기에 전제가 몇 가지 있다. 이면도로/골목길에서 차와 사람의 구획을 명확히 나눈것이다. 반면 우리네 길은 때론 주차의 공간으로 때론 동네 골목 평상과 같이 휴식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큰 차이 없다. 유럽의 광장 문화와 한국의 광장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라는 것은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소통의 장소로 인식되는 광장은, 바로 권력이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 건설한 장소라는 것이 바로 이 역사의 진짜 모습이다. - 174p. 같은 책
보차步車분리를 철저히 하고 도로 시스템을 발전시켜 통행과 도시 서비스를 최적화한 서구의 도로에 비해, 한국의 도로는 통행은 물론이고 상업, 휴식, 오락 등의 여러 기능이 공존하는 일종의 '도시적 공터’가 된 것이다. - 187p. 같은 책

우리네 거주 문화가 벽과 담장이라고 했는데, 담장 밖 세상보다는 담장 안 식솔을 먼저 챙기려는 '자기 내향형' 건축 방식을 낳은 것이다. 모든 일상을 광장보단 사뭇 폐쇄된 공간(방)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한것 이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은 짐작하는 바 일것이다. 무조건 방 문화를 없앤다기 보다 오픈된 광장문화와 어떻게 균형있게 자리잡게 할지가 필요한 것이다.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찜질방처럼 '방’으로 끝나는 공간은 방으로 구획됐거나 최소한 옆자리와 칸막이로 구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좀 더 사적 공간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외부와 단절된 밀폐된 곳에 굳이 함께 들어가려면 이미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문이 닫히고 같은 행위를 '함께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문밖에 있는 타인과 구분되는 공동체가 된다. - 255p. 같은 책

한국적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1970~80년대 우후죽순 격으로 확장 확장하여 우리의 거주문화를 바꿔버린데는 국가, 기업, 그리고 우리의 삼각 공조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우리만'이라는 '자기 내향성'은 그 모습을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폐쇄적인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단지내 길 마저도 사유지 탓에 빙 돌아가게 하는 집단 이기주의 모습이 이웃과 사람간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이다.

국가는 도로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고 택지 개발하느라 드는 비싼 비용과 골치 아픈 관리 책임 없이도 낙후된 지역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편리함에 만족했고, 기업들은 건물을 짓기도 전에 도면과 모델 하우스만 보고 선금을 지불하는 맘씨 좋은 소비자 덕에 똑같은 아파트를 양산하기만 하면 돈을 버는 편안한 장사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비싸도 일단 청약에만 성공하면 몇 년 후 몇 배는 오를 집값에 소비자 또한 환호하는, 모두가 즐거운 '마법의 잔치’를 즐겼다. - 291p. 같은 책
가족적 내內집단의 결속감에 기초한, 유난히도 내·외를 구분하는 우리의 부족적 공동체 문화는 '집’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외부와는 단절을 택한 '울타리’ 건축 문화로 형상화돼 왔다. 그리고 그 자기중심적 건축은 다시 우리의 소小집단식 공동체 문화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서로 단절된 그 소집단들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관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른바 공공의 문제, 즉 '도시’의 문제였다. - 300p. 같은 책

방을 어지러 뜨리는 아이들과 아빠, 그리고 그것을 늘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엄마.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각의 편안함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간 주도권' 행사하려는 결과는 늘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바깥 활동이 많은 구성원이 느끼는 집은 사회 원심적 공간이지만, 주로 집에 머무르는 구성원이 느끼는 것은 정 반대인 사회 구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편한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우리 공간에 던지는 또 하나의 과제이다.

서로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게 이 '분쟁’의 핵심 원인이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도맡아 온 엄마의 경우(맞벌이를 넘어 남편이 육아하는 경우도 많은 요즘 부부들은 다를 수 있다), 집 구석구석의 사용은 물론이고 (청소를 포함한) 모든 관리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 306p. 같은 책
거대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21세기 한국인들은 철저하게 그것을 만들고 파는 사람이 지배하는 도시 구조에 종속되면서, 도시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건설 시장의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사용자가 되어 간다. 공간 소유에 무기력해지기 때문에 이웃과 관계 맺기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향상하려는 의지나 공간 감수성 같은 건 애초부터 품지 못한다. 현대 도시에 사는 우리는 집에서도 길에서도 도시에서도 공간 주도권을 빼앗겼다. 심지어 원래는 우리 것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할 정도가 되었다. - 332p. 같은 책

마지막으로 공공임대주택의 실패와 성공사례를 우리와 해외의 사례에서 살펴본다. 결국 그 성패의 갈림길은 입주자의 심리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까지 어떻게 살펴서 공간과 건축에 담아낼 수 있는지 이다. 빈민 주택에 오래 천착한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한정된 재원으로 어떻게 입주민의 마음을 얻고 임대주택의 성공사례를 가져왔는지 우리에겐 반드시 참고가 되었으면 싶다.

건축가는 주어진 예산으로 건설 가능한 40제곱미터의 공간뿐 아니라 차후에 증축할 수 있는 또 다른 40제곱미터의 빈 공간을 함께 분양하자는 기발한 제안을 한다. 비어 있는 절반을 꼭 지어야 할 의무는 없었으나 자신이 노력만 하면 지금 집보다 두 배로 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목표가 생긴 입주자들은 다른 사회 주택 입주자와는 다르게 변해 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기꺼이 주말에도 일했으며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집의 반쪽을 자신의 힘으로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닌가. 건축가는 절반의 필요와 절반의 희망을 같이 판 것이다. - 368p. 같은 책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아름답고 값비싸며 작품성 있는 건물을 지어 온 서구 선진국의 건축가에게 주어져 온 건축의 노벨상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2016년 가장 값싸고 가장 볼품없는 건물을 지어 온 남미 조그만 나라의 이 건축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수상 소식을 전했다. 반쪽 집은 전 세계 많은 건축가와 주택 당국자의 영감을 자극해 가나, 남아공, 태국, 멕시코의 사회 주택에 적용되고 있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 371p. 같은 책

예전에 읽었던 유현준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소재의 책인듯 하지만, 모처럼 몰두해서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프랑스를 가게 된다면 그들의 길, 공간, 건축, 그리고 도시를 여느 관광객과는 새삼 다르게 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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