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연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도 마사는 말들에게 감옥일 뿐이었다. 긴 복도를 따라 말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마방이 교도소의 방처럼 늘어서 있었다. 좌우로 다섯 발자국씩 이동할 수 있는, 사면이 콘크리트로 된 공간이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57

민주가 숨 가쁘게 말을 마치자, 연재는 무심히 반박했다.

"그래도 갇혀 있는 거 맞잖아요."

민주는 더 이상 항변하지 못했다.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초원과 비슷한 환경으로 꾸몄다고 할지라도 초원은 아니었다. 연재는 마방 사이를 지나는 것을 늘 답답해했는데, 자신을 쳐다보는 말들의 눈빛이 퍽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은혜는 말들의 눈이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연재는 은혜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리움을 느끼려면 그리워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했다. 말들이 실체를 기억할까. 한 번도 초원을 밟아보지 못할 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만 느낄 것이다. 갇혀 있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문명사회 이후 쌓아온 말들의 기억 DNA는 초원보다 마방에 더 많을 것 같았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59

"경기 도중에 떨어졌는데 바로 뒤에 오던 선수에게 밟혔어요. 제 실수죠. 딴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64

"날이 맑은 날 초원을 뛰고 있다는 상상을 했거든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가짜 말고 진짜요. 진짜 초원을 달려본 적 있나요?"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64

경마경기의 약점은 기수가 인간이라는 점에 있었고, 이는 말이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인 중 하나였다. 인간보다 작고 가벼우며, 떨어진다 한들 생명과 연관되지 않는 새로운 기수가 필요했다. 기수 휴머노이드는 평균 150센티미터의 신장과 탄소섬유로 이루어진 몸체 덕분에 인간보다 훨씬 가벼웠다. 말이 달릴 때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관절, 말의 목덜미를 매만질 수 있도록 상체보다 길게 제작된 팔. 색으로 기수를 구분하기 위해 만든 투구. 존재 자체가 말을 타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낙마해 부서진 기수는 그대로 폐기처분 됐고 머지않아 새로운 기수가 등장할 거였다. 민주는 단지 콜리가 하는 말들이 다른 기수와는 조금 달라 기수방에서 콜리를 빼두었던 것뿐이었다. 아주 잠시 동안만, 하늘이 보고 싶다고 해서….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68

하늘이 어땠느냐고 물으면 콜리는 마치 비가 온 후 날이 갠 것처럼 푸르고 창백했다고 대답했다.

"왜 말을 타다가 하늘을 바라본 거야?"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 다름을 연재도 느꼈을 것이다. 민주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콜리를 모르는 척할 수 없을 연재를, 그리고 끝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내놓으며 콜리를 사겠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68

모친은 인생의 2막이란 원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경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예견된 추락일 뿐이었다. 길거리에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 휴머노이드를 보고도 자신과는 엮이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도태의 씨앗이 된 게 분명했다. 물론 보경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말이었다. 아무리 휴머노이드가 만능이라고 하더라도 고철이 연기하는 드라마는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역풍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 불어와 보경을 낭떠러지로 밀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73

결혼 4년 차에 첫째 딸 은혜가 생겼고, 그 후 2년 뒤에 둘째 딸 연재가 생겼다. 은혜는 일곱 살이 되던 해 척수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범하며 수족 마비 증상이 일어났고 끈질긴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척수성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됐다. 의사는 은혜가 만 16세가 되면 인간의 뼈대와 관절을 그대로 재현하는 생체 적합성 소재로 새 다리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비용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으므로 보경은 푼돈으로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수술인 줄만 알았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80

보경은 한 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던 점집에 찾아가 부적도 하나 만들었다. 소방관의 베개 밑에 두면 불운을 쫓을 거라는 부적이었다. 미신은 믿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보경은 내내 그 3%가 불안했다. 3%의 수치가 이토록 멀쩡히 살 수 있었던 보경의 삶을 포기하라고 했던 것처럼 언젠가 소방관에게도 그런 3%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80

은혜에게 첫 휠체어를 사주던 날, 소방관은 연재에게 똑같이 세발자전거를 사줬다. 둘은 소방관에게 안전교육을 1시간 이상 들었으며 그날 한강 공원에서 멈추지 않는 질주를 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80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82

모친의 요리 솜씨로 시작됐던 인생은 긴 레일을 돌고 돌아 다시 모친의 요리로 돌아왔다. 보경은 과천 경마장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동산 업자의 말을 듣고 일찍이 그 근방의 망해가던 식당을 인수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 가게를 새 단장하고는 뒤편에 주택을 지어 그곳에 터를 잡았다. 요리는 연구하지 않아도 혀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금세 모친이 내던 맛이 났다. TV에 소개되어 명성을 얻을 만한 유명한 집은 되지 못했지만 아는 사람들은 찾아오는, ‘닭요리 전문점’의 주인이 되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85

사람은 이따금씩 강렬하게 무언가에 끌렸다. 그게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음악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있었다.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는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월급을 전부 꼬라박을 정도의 강렬한 끌림을, 어제 연재는 다 망가진 콜리를 보고 느꼈으리라.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92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 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은혜는 사람들이 전가한 ‘한 사람의 몫’을 아직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반쪽짜리 사람이랄까.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혼자 다니기 위험한 영유아처럼 은혜에게도 반쪽의 몫을 보충해줄 보호자가 늘 필요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은혜의 판단이 아닌 은혜를 지켜보는 타인의 판단이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96

거리가 꽤 멀었지만 은혜는 이팝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잔디가 깔린 주로를 내달리는 출전마들이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색이 다른 복면을 쓰고 눈가리개를 찬 말들이 오롯이 앞만 보고 힘차게 내달리는 모습을 봤다. 그때 말을 몰고 가는 기수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은 은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말만 보였을 뿐이었다. 말의 매력에 사로잡힌 날이었다. 1초가 100프레임처럼 펼쳐졌다. 말이 달릴 때 요동치던 갈기와 꿈틀거리던 근육, 바람에 흩날리던 이팝나무의 백색 꽃잎, 말을 향해 내던지던 사람들의 함성. 그 모든 것이 인상파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은혜는 그날 이후로 눈만 감으면 주로 위의 말을 꿈꿨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98

스물한 명이 한 반인 교실에서도 아이들 사이에서의 급이 있었는데 지수로 치자면 영어유치원을 다녔고, 한국에서 중학교를 나오는 대신 캐나다인가 호주인가에서 3년을 살다 돌아온 A급이었고 그에 반해 연재는… 딱히 설명을 말자.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110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112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연재가 스스로 절대 여밀 수 없는 크기로 말이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113

지수도 딱히 어울리는 친구가 없다는 건 그때 깨달았다. 빵을 입에 물고, 연재는 홀로 자리에 남아 급식실에 가지 않는 지수의 뒷모습을 봤다. 허리와 목을 꼿꼿하게도 펴 앉았구나. 근데 외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연재는 7교시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내달렸다. 달리기라면 내로라할 자가 없지 않았던가. 하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힘은 결국 문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수가 전동킥보드를 타고 유유히 옆에 섰을 때 연재는 하마터면 불공평한 세상에 침을 뱉을 뻔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114

"너 근데 달리기 더럽게 빠르더라."
지수가 말했고 연재가 한 귀로 흘려보냈다.
"너 그렇게 안 보이는데 공부 빼고 잘하는 거 되게 많구나."
"…욕 같은데."
"욕 맞아.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해도 모자랄 판에 공부 빼고 다른 거 다 잘해서 뭐 먹고 살 건데?"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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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못 견디게 지겨워졌던 찰나 연재는 정해진 레일을 이탈했다. 하필 견딜 수 없었던 그날이 체육대회였던 건 유감이었지만. 연재는 커브길에서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질주했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힘차게 응원하던 소리가 멀어져서 들리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연재의 돌발 행동 때문에 모두가 얼어붙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연재는 그저 더 빨리 뛰라는 목소리가 지겨웠을 뿐이고 그렇게 레일을 벗어나 학교 정문을 통과해 막다른 길이 나올 때까지 계속 달렸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34

돌이켜보면 열한 살의 자신은 운동장이 아니라 이 동네를 떠나고 싶어 필사적으로 달렸던 게 분명했다. 이 동네를 벗어난다고 해서 갈 곳이 마땅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도 현실을 살아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순간의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간절하게 원했다면 진작 뛰어나갔어야 했다. 지금 이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말이다.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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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의 등에 앉아 달릴 때마다 콜리는 숨을 쉬었고, 호흡이 생명의 특권이라면 콜리는 그 순간만큼 생명이었으며, 생명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콜리는 살아 있었다.
콜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투데이가 달릴 때만큼은 살아 있다. 그렇다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26

그래서 그날, 관중석이 꽉 찬 늦여름의 경기에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했다. 투데이가 콜리의 무게를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로에 선 이상 투데이는 멈추지 못할 것이며 이 상태로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실격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규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후자를 선택했다. 투데이를 지켜야 한다.
콜리가 푸른 하늘이 펼쳐진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찾았다. 콜리가 트럭을 탔을 때 처음 마주했던 햇빛처럼, 좁은 틈을 밀고 서로 들어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스크린이 없다면 더 좋았을 텐데. 투데이와 주로가 아닌 초원을 달릴 수 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 <천 개의 파랑>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96644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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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위해 우리 모두 일해야 하리니
그날을 못 보고 죽을지라도,
암소와 말, 오리와 칠면조
자유 위해 모두가 힘써 일하리니.
 
영국의 동물들아 아일랜드 동물들아
온 누리 모든 땅 위의 동물들아
열심히 귀기울여 널리 전하라
황금빛 미래 향한 내 소식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동물들은 야성적인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메이저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부터 그들은 스스로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멍청한 동물도 벌써 곡조와 몇 마디 가사를 외웠고 돼지나 개처럼 머리 좋은 동물들은 몇 분 안 되어 그 노래 전부를 익혀버렸다. 그러고는 몇 번 연습한 끝에 농장 전체가 떠나갈 듯 커다란 목소리로 <영국의 동물들>을 제창했다. 암소들은 워워 하고 개들은 멍멍 하며 양들은 음매 하고 말들은 부르르 하며 오리는 꽥꽥거리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그 노래가 너무나 즐거웠던 나머지 연거푸
다섯 번이나 잇따라 불렀고 아마도 훼방만 없었더라면 밤새
껏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댔을 것이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38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동물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돼지들에게 당연히 부과되었다. 돼지 중에도 가장 뛰어난 것이 존즈 씨가 팔아먹기 위해 사육하고 있는 스노볼과 나폴레온이란 두 마리 수퇘지였다. 나폴레온은 몸집이 크고 사납게 보이는, 이 농장 유일의 버크셔 종(種) 수퇘지로, 말은 많지 않으나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는 것으로 평판이 높았다. 스노볼은 나폴레온보다 더 쾌활하고 말이 유창하며 창의력이 더 많지만 나폴레온처럼 성격이 깊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농장에 있는다른 수퇘지는 모두 식용 돼지였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스퀼러란 이름을 가진 작고 뚱뚱한 돼지로, 뺨이 둥글고 눈은 반짝거리며 행동은 민첩하고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는 훌륭한 연설가로 좀 어려운 문제점을 토의할 때에는 이리저리 뛰면서 꼬리를 휘두르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 꽤 설득력이 있었다. 다른 동물들은 그에 관해 스퀼러라면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할 정도였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41

이 세 돼지들은 메이저 영감의 가르침을 완벽한 사상체계로 치밀하게 구성해 놓고 거기에 ‘동물주의’ 란 이름을 붙였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41

"동무."스노볼이 말했다. "당신이 그처럼 애지중지하는 그 리본들은 노예 근성의 표지요. 당신은 자유가 리본보다 더 값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없겠소?"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42

한편 동물들은 존즈와 그의 일꾼들을 한길로 쫓아버리고는 다섯 개의 판자로 만든 문을 쾅 닫았다. 그리하여 자신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거의 알지 못하는 새에 ‘봉기’ 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존즈는 추방되고 매너 농장은 그들 것이 되었던 것이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46

그런 다음 그들은 농장 건물로 뛰어 돌아와 가증스런 존즈의 통치 흔적을 마지막까지 깨끗이 닦아 내는 것이었다. 외양간 끝에 있는 마구간이 부서져 열렸다. 재갈, 코뚜레, 개사슬, 그리고 존즈 씨가 돼지와 양을 거세하는 데 사용한 잔인한 칼 등을 모두 우물에 던져버렸다. 고삐, 굴레, 눈가리개, 그리고 치욕적인 꼴 주머니는 마당에 지핀 쓰레기 불에 던져버렸다. 회초리도 그렇게 했다. 동물들은 회초리가 불 속에서 타오르는 것을 보자 모두 희희작약했다. 스노볼은 또 장날이면 으레 말갈기와 꼬리를 치장하는 리본을 불 속에 던졌다.
"리본이란……"그는 말했다. "의복처럼 인간의 표지로 생각해야 해요. 동물들은 모두 옷을 입어서는 안 돼요."
복서는 이 말을 듣자 여름이면 귓가에 몰려드는 파리를 막기 위해 썼던 작은 밀짚모자를 가져와 다른 것과 함께 불 속에 팽개쳐버렸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47

돼지들은 이제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존즈 씨의 자식들이 쓰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낡은 철자교본을 가지고 독학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온은 검은색과 흰색 페인트통을 가져오라 해서 한길로 통하는 다섯 판자 문으로 모두를 데리고 갔다. 스노볼이(글씨를 제일 잘 쓰는 게 스노볼이었다) 두 개의 앞다리 사이에 붓을 끼우고 문짝 맨 위에 적힌 ‘매너 농장’ 을 페인트로 지워 없앤 후 그 자리에다 ‘동물농장’ 이라고 썼다. 이것이 이제부터 불리울 농장의 이름이 될 것이었다. 이 일을 마치자 그들은 농장 건물로 되돌아왔고 스노볼과 나폴레온은 큰 창고 벽 끝에 세워두었던 사다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들은 지난 석 달 동안의 연구 끝에 돼지들이 동물주의의 원칙을 ‘칠계명(七戒名)’ 으로 요약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 ‘칠계명’ 을 벽에 쓰겠으며 이것은 동물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앞으로 영원히 지키며 살아야 할 불변의 율법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스노볼은 약간 애를 먹으면서(돼지가 사다리에서 균형을 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어올라가 일을 시작
했고 스퀼러가 그 아래 몇 계단 밑에서 페인트통을 들고 있었다. 계명은 30야드 떨어진 곳에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흰 글자로타르 칠을 한 벽 위에 씌어졌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50

칠계명
1.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든 적이다.
2. 네 발로 걷든지 날개를 가진 자는 누구든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의복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51

복서는 모든 동물들의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는 존즈 시대에도 충실한 일꾼이었지만 이제는 말 세 몫보다 더 힘차게 보였다. 농장의 모든 일이 그의 튼튼한 어깨에 걸려 있는 듯한 날들도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는 일이 가장 힘든 곳에서 항상 밀고 당기고 했다. 그는 수탉 한 마리와 약속해서 아침에 다른
동물들보다 반 시간 일찍 자기를 깨우도록 해서 정규 일과가 시작
되기 전에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을 하곤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곤란에 부딪칠 때마다, 그가 하는 대답은 "내가 좀 더 일하지!"라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자기의 개인적 모토로 삼았던 것이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55

스노볼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는 영국의 들판을 표현하기 위해 초록색이며 발굽과 뿔은 종국적으로 인류가 전복될 때 수립될 미래의 ‘동물 공화국’ 을 표시한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57

스노볼과 나폴레온은 토의에서 단연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둘의 의견이 일치한 적은 한번도 없음이 밝혀졌다.
둘 중 하나가 무엇이든 제안을 하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기에 반대했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57

돼지들이야 벌써 완벽하게 읽고 쓸 수 있었다. 개들은 아주 잘 읽을 수 있을 만큼 공부했지만 칠계명 외에 다른 것을 읽는 데는 아무런 흥미를 갖지 않았다. 염소 뮤리엘은 개보다 좀더 잘 읽을 수 있었고 때로는 저녁에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신문 스크랩을 다른 동물들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벤자민은 어떤 돼지보다도 잘 읽을 수 있었지만 자기 실력을 발휘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읽을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클로버는 알파벳 전부를 배웠지만 묶어서 읽을 줄을 몰랐다. 복서는 D자 이상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는 그 커다란 발굽으로 흙에다 A B C D를 쓰고는 귀를 뒤로 축 늘어뜨리고 때로는 앞머리를 흔들면서 글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전력을 다해 그 다음 것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정말 그는 여러 차례 E F G H를 배웠지만 그 글자들을 알았을 때는 A B C D를 벌써 잊어버렸던 것이 밝혀졌다. 마침내 그는 처음 네 글자만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했고 하루에도 한두 차례 기억을 되살려 그 글자들을 써보곤 했다. 몰리는 자기 이름을 쓰는 글자 여섯 개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나뭇가지로 말쑥하게 자기 이름을 맞춰놓고는 꽃 한두 송이로 그걸 장식한 다음 그 주위를 빙빙 돌며 감탄하곤 했다.
그 밖의 다른 동물들은 A자 이상을 배울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양, 암탉, 오리 같은 좀 더 둔한 동물들은 칠계명을 외울 수조차 없음이 밝혀졌다. 스노볼은 한참 생각한 끝에 칠계명을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라는 한마디의 격언으로 훌륭히 요약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격언에 동물주의의 기본 원칙이 들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말을 충분히 파악한 자는 누구든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얘기였다. 새 종류들은 처음, 자기네들도 다리가 둘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했지만 스노볼이 그게 그렇지 않다고 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60

"새 날개도 발이오, 동무"하고 그가 대답했다. "추진 기관이지, 조작 기관이 아니오. 따라서 그건 다리여야 하오. 인간에게 유별난 표적은 모든 악덕을 자행하는 도구인 ‘손’ 이란 말이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60

이제, 동물들이 철저히 확신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존즈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하자 아무도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돼지들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 그리하여 우유와 떨어진 사과(그리고 다 익었을 때 거둬들일 사과도)는 돼지들만을 위해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점은 더 이상의 토의 없이 가결되었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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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와 언론의 자유에 적대되는 주장들은 있을 수도 없다고 강조하는 주장들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주장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1백 년에 걸친 우리의 문명이 그와 반대의 관념 위에 서 있어왔다고만 대답할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현존의 소련 정권이 악한 것이라고 믿어왔으며,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는 전쟁에서 소련이 우리의 동맹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말할 권리를 갖고 있다. 나 자신을 해명할 텍스트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고래(古來)의 자유란 주지의 법칙에 의해(By the known rules of ancient liberty)’ 란 밀턴의 구절을 고르겠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22

고래란 말은 지적 자유가 뿌리 깊은 전통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는데, 그러한 전통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개성적인 서구문화는 그 존재가 의심스러울 것이다. 그 전통으로부터 많은 지성인들이 눈에 띄게 전환하고 있다. 그들은 책을 출판하거나 억제하는 것,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그 책의 장점에서가 아니라, 정치적 편의에 따른다는 원칙을 수락했다.n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견해를 갖지 않는 여타의 사람들은 순수한 비겁성 때문에 여기에 동의한다. 이 같은 예는 수많은 영국의 평화주의자들이 소련의 군국주의에 대한 예찬을 반박하는 항의의 소리를 올리지 못했다는 데에서 볼 수 있다. 이 평화주의자들에 의하면 모든 폭력은 죄악이며, 그들은 전쟁의 매 단계마다 굴복하거나 적어도 화평을 맺으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그들 중 몇 명이 전쟁이 적군(赤軍)에 의해 수행될 때 그것을 죄악이라고 말했는가. 소련인은 분명히 자기 변명할 권리를 갖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중대한 죄악이다. 이런 모순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음 한 가지뿐이다 —— 즉 영국보다 소련에 애국심을 바치고 있는 인텔리겐치아 대부분과 공동 보조를 취하려는 비겁한 열망 때문이라고.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23

나는 영국 인텔리겐치아가 스스로의 소심증과 부정직에 대해 갖가지 이유를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자기 변호 주장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파시즘에 대항하는 자유의 옹호에 대해 더 이상 난센스를 말하지 말자. 자유가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은 아직껏 희미하게나마 교리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에n 의해 행동한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나라가 똑같지 않다. 프랑스 공화정에서도, 오늘의 미국에서도 그렇지 않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n 자가n자유주의자이며, 지성에 재를 뿌리고 싶어 하는 자가 지성인이n다.n내가 이 서문을 쓰는 것은 이런 사실에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n서다.* - <동물농장>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99346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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