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온갖 것이 나를 비난하는구나,
그리고 나의 무딘 복수에 박차를 가하는구나! 인간이 뭔가.
시간을 보내며 주로 한다는 일이기껏해야 자고 먹는 것뿐이라면? 짐승이지, 그 이상은 아냐.
분명 우리에게 이토록 엄청난 논리력을 부여한 분은.
앞뒤를 재고 주신 것이다.
지능과 신을 닮은 이성을,
썩히지 말고 쓰라고 주신 게다. 지금 그것이짐승의 망각인지, 아니면 모종의 비겁한 망설임으로너무 자세하게 사태를 생각하는 것인지생각은, 곰곰 새길 경우, 일부만 현명하다.
그리고 언제나 4분지 3은 겁쟁이다 나는 모르겠다.
왜 아직도 내가 살아 ‘이 일을 해야 한다‘ 말하고 있는건지.
왜냐면 내겐 이유, 의지, 그리고 근력, 수단이 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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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 - 2026 뉴베리 아너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오브리 하트먼 지음, 마르친 미노르 그림, 황세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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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뉴베리아너상 수상작품을 다시 접했네요.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란 독특한 제목의 책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페이지터너면서도 유독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단어로 말 할 수 있을 것같아요. 슬픔과 기쁨.

“클레어는 죽었다(필기체)
그런데 또 생생히 살아 있었다.” (7쪽)

죽은 나무숲에서 죽은 동물들을 네 개의 다른 사후세계인 평화계, 쾌락계, 발전계, 그리고 고통계로 각각 보내는 길잡이인 클레이는 ‘죽다 만 여우‘ 입니다. 엄마와 떨어지고 어릴적 사고로 한쪽 귀, 한쪽 눈을 잃고 듬성듬성 빠진 털을 외알 안경, 붉은 망토와 두건으로 감추려는 여우예요.

’죽다 만’ 클레이는 기존의 선배 길잡이로 부터 <길잡이의 서> 책과 함께 후계자로 선택되어 외로운 삶의 벗이 되어 준 ‘선장‘을 비롯한 버섯들을 가꾸며 평온하게 여러 해를 보내고 있었죠. 그러다 불청객 ’생강촉새‘란 이름의 오소리가 찾아 옵니다. 부모와 형제로부터 상처받고 뜻하지 않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클레이와 어쩜 데칼코마니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길잡이 역할이 잘 안되고 만성절 전야의 노랫말 수수께끼도 풀고자 선지자 헤스터파울을 함께 찾아 나서면서 여러 난관을 헤치며 둘은 점점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게 되는군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클레이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고 다시 이야기는 둘의 긴장관계로 변곡점을 맞이하죠.

엄마의 상실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버섯가꾸기를 넘어서 새로운 친구를 통해 어쩌면 더 잘 치유할 수 있을 것같은데, 운명의 서사는 그렇게 내버려 두질 않네요. 운명이 엇갈리는 ‘역할극’의 주인공들처럼요. 만성절날 잠깐의 해프닝으로 운명을 수습하려 했던 클레어는 이날 또 다시 죽은 나무숲을 찾은 아이들로 인해 더 일을 키우게 되죠. ‘빨간 신발‘ 소녀와 ’빨간 망토‘ 클레어의 놀라운 인연도 다시 소환되고요.

단순한 어린이 동화로 접근했다 미스테리 추리물과 버디무비를 한 번에 관람하고 나온 듯합니다. 볼 수록 오소리 ’생강촉새‘의 매력도 오래 담은 장맛 같아 여우 ’클레이’보다 더 정이 간 것도 사실입니다. 슬픈 사연에 공감하며 울다가 화해와 구원의 기쁨에 어느 덧 미소짓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상실의 슬픔을 겪게 되기 마련이죠. 내가 겪는 상실도 있고 나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겪을 상실도 분명 있겠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화해와 구원을 통해 기쁨으로 받아드릴 수 있음 좋겠네요. 클레이와 생강촉새처럼요.

“…영혼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으니까살다 보면, 더 많은 슬픔이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될지 모른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건, 더 많은 기쁨이들어설 자리도 있다는 거다. 두 팔 벌려 기쁨을 맞이하는 건 그대의 몫이다. 기쁨을 자꾸자꾸 맞이하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거다.”(354쪽)

*도서제공 받은 책으로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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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는 숨이 막혔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깃털처럼 혀끝을 간질이는 진실을 내뱉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확실히 클레어는 형편없는 거짓말쟁이였다. 너무 조급하고 서투르고 죄책감에도 시달렸다. 조금이라도 성공을 기대하려면 말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 P189

그러자 회상으로 본 상황이 좀 더 분명해졌다. 생강촉새는 무정하기 짝이 없는 아빠를 사랑했다. 아빠가 그저 끔찍하기만 한 부모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아주 몹쓸 아빠였다면, 생강새도 그런 비난쯤은 좀 더 쉽게 흘려들었을 텐데.
사랑하는 이가 던진 잔혹한 말은 영혼을 파고들어 가장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는다. - P205

"그러니까 내 말은 누구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랑을 줄수 있는 건 착한 영혼뿐이라는 거야." - P226

사랑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클레어는 주위 세상에 깊은 사랑을 느꼈다.
버섯들은 클레어의 벗이었다. 책은 가족이었다. 차는 열정이었다. 일은 삶의 목적이었다.
생강촉새의 말이 진실이라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돌보는 것도사랑이라면, 결국 나도 착한 영혼인 걸까? - P227

클레어는 그 말을 다 믿는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지금껏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시선을 하루아침에 거둘 순 없었다. 하지만 생강촉새는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고, 그 믿음이 클레어의 가슴속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었다. - P232

클레어는 아직 떠도는 영혼의 길잡이다. 운명을 그 주인과 이어 주는 고리이다. 영혼이 곤경에 처했다면, 돕는 게 클레어의 일이다. 그리고 아이는 이생을 떠나도 아름다운 사후 세계의 품에서 잘 지낼 테지만 엄마의 영혼은 그러지 못하리라는 걸 클레어는 제삼의 눈으로 선명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 P298

이 이야기는 죽음을 다룬다.
또한 사랑을 다룬다.
하지만 조용한 책장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탐구하는 것은 상실이다. 목적의 상실. 믿음의 상실. 삶이 (또는 죽다 만 삶이) 어떠해야한다는 기대의 상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결국 내려놓는 법을 탐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붙잡는 법을 탐구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아주 살짝이라도 붙잡는 법을.
왜냐하면 친애하는 독자여, 상실은 슬픔보다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 P353

슬픔은 무게와 부피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울지도 모른다. 슬픔은 영혼의 가장자리를 짓누르며 형태를 바꾸어 놓는다. 슬픔은 비어 있지 않기에 채울 수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다만 슬픔을 짊어지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슬픔을 그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질수록,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슬픔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공간을 차지할 거다.
영혼이란 그래서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영혼에는 무한한 공간이 있으니까살다 보면, 더 많은 슬픔이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될지 모른다. 하지만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건, 더 많은 기쁨이들어설 자리도 있다는 거다. 두 팔 벌려 기쁨을 맞이하는 건 그대의 몫이다. 기쁨을 자꾸자꾸 맞이하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거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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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절 전야에 죽은나무가 고사리빛에 풍파를 몰고 올지니, 달이 지기 전 죽은나무숲에 있는 자는 영영 사라지리라. - P45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평화계는 안식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가는 곳이다. 동쪽의 쾌락계는 평생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던 이들에게 알맞은 곳이고, 서쪽의 발전계는 노동과 봉사, 노력을 사랑한 이들을 위한 곳이지. 마지막으로 남쪽으로 가면..." - P53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어른 인간들은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려 하고, 온갖 고통을 막아 주려 애쓴다. 이 시점에서 고통이란 내일의 피로감이다.
그러나 어린 영웅이여, 언제나 타인의 방패 뒤에 숨기만 하면 안전할지언정, 그대가 지닌 검의 위력은 영영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밝힌다고 너무 죄책감을 느끼진 말자.
딱 이번 한 번만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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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시 후에는 같은 계좌에 추가로 돈을 넣을 수 없습니다. 연금 개시는 ‘적립 단계’에서 ‘수령 단계’로 전환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연금 개시 후에도 연금을 계속 모으고 싶다면, 새로운 연금 계좌를 개설하면 됩니다. 이렇게 새 계좌에 납입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원래대로 연금저축의 경우 연 600만 원, IRP는 연 900만 원 한도 내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며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박곰희 연금 부자 수업> (박곰희 지음) 중에서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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