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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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도 이제 몇 일이 채 남지 않았다.
점심산책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종종 들르는데, 지난 번 갔을때 우연히 눈여겨 본 책이 있다. 임우진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도시> 이다. 건축을 전공하고, 파리 거주 20년 경험을 바탕으로 길, 건물, 공간,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을 문화 비교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 보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총 2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1부(보이지 않는 공간)와 2부(보이지 않는 도시)는 각각 5장으로 되어 있다. 작가는 여행에 빗대어 낯설다는 것이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설명하며 이 책을 이끌어간다.

여행은 자신이 가진 절대가치를 내려놓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일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 이르면, 전에는 당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기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면하게 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어색한 환경에 당황하고 힘들어하지만, 그것 또한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왜 그런지 이해할 때 즈음 비로소 진짜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거짓말처럼 예전에 살던 익숙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그래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남처럼 타자화他者化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 11p. <보이지 않는 도시> 중에서

우리 전통 가옥의 친근함과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처럼 불과 얼마전까지의 우리 동네 모습은 '인간은 원래 선하다'가 바로 우리네 현실 모습이었구나 싶다.

전통 한옥의 창문이나 방문에는 대체로 밖에서 문을 잠그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사람은 드물다. 집을 나설 때 문을 잠글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래된 한옥이나 산사의 담장은 고개를 들면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낮다. 제주도 등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민가에는 대문에 나무 막대만 걸쳐 놓고 주인이 있고 없음을 알렸다. 이런 예들은 한국의 전통 사회가 얼마나 더불어 사는 이웃들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 23p. 같은 책

흰쥐를 특정 크기 공간에 가둬두는 실험과 유럽과 우리 국회의사당 현실을 비교하면서 고함치고 졸면서 딴짓하는 우리 의원님(?)들의 모습이 아~ 그렇구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렇다고 흰쥐처럼 그들을 좁은 공간에 둘 수도 없고... 또한 우리네 묘가 그동안 추모만 끝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멀고 두려운 곳이었다면, 유럽(프랑스 파리)의 묘는 가족이 공원처럼 나들이 삼아 편히 올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정부가 앞장서서 장례문화의 개선을 가져온 사례가 부럽기만 하다. 이제 매장이 아닌 화장 90%가 넘는 현실에서 이른 바 추모공원(이라 쓰고 납골당이라 부르고)의 미래는 과연 어때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장례 건축 미학architecture funéraire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개념은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건물로 가득한 도심지처럼 묘지도 다양하고 활력 넘치는 '살아 있는 도시의 축소판’처럼 보이게 한다. 묘지에 설치될 예술품이나 미니어처 건축물은 가족이 가장 신뢰하는 조각가와 건축가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내가 무언지 모르고 받았던 그 설계 의뢰는 앞으로 자신의 가족이 영원히 머물게 될 그 고객의 마지막 집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떠나면 살아 있는 가족과 자손은 죽은 자의 무덤이 아닌, 가족의 집에 들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묘지는 죽은 자들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도시의 일부다. - 98p. 같은 책

우리 전통한옥에서 중요시 하지 않던 방향은 풍수지리와의 레버리지(맞바꿈)를 위해 새롭게 등장한다. 남향 남향 남향...
그것은 예전 한옥의 구조와 지금 천편일률적인 고층아파트의 구조적인 차이에서 그 이유를 쉽게 찾게 된다. 남향으로 위치한 큰 거실과 큰 안방이 정작 북쪽에 위치하게 된 주방과 아이들방보다 그 이용 효율이 낮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다. 여기에 서구의 건물에 비해 건물의 손 보아 오래 사용하기 어렵게 한 이유가 아파트의 벽식구조와 온돌난방 방식이라면, 환경적 측면에서 예전 방식의 난방을 아파트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싶다.

근대에 들어 배산임수를 찾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자 전통적 풍수지리설에는 강조되지 않던 보완적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향’이다. 혹독한 겨울에 북풍을 정면으로 맞을 수는 없으니 북쪽을 등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붕 처마가 길게 나오는 한옥 건물에서는 바람에 비해 향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서향이 여름 오후에 덥긴 해도 지붕 처마가 가려 주니 실내 공간에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한옥의 모든 방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마당에서 반사되는 간접광에 의지하는 구조였으므로 한옥은 향에 강하게 구속되는 집이 아니었다. 따라서 남향에 대한 집착도 없었다. - 112p. 같은 책
예전의 한옥은 가운데 마당에 비치는 자연광이 반사되어 모든 방에 빛이 골고루 퍼지는 구조였다. 동향이나 서향이라도 모든 방에 간접광이 비치니 별 상관없었다. 집을 굳이 'ㄱ’자나 'ㄷ’자로 만들었던 이유이자, 우리가 지금도 한옥의 툇마루에 앉았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진짜 이유다. - 118p. 같은 책
빛이 들지 않는 침침한 북쪽 공간으로 밀려난 사람은 하필이면 약자인 주부와 아이들이었고, 항시 밝은 남향 빛의 혜택을 입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티브이와 소파 그리고 킹사이즈 더블 침대였다. - 119p. 같은 책
물론 건물을 고쳐 쓰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더 직접적인 원인은 실내를 바꿀 수 없는 벽식 구조 방식 때문이지만, 바닥 온돌도 톡톡히 한몫을 한다. 재건축으로 더 큰 집을 얻게 될 몇몇의 조합원과 일거리를 보장받을 건설 업체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몰라도 건물을 30년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비경제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한 짓이다. 건축은 자연 자원을 오직 고갈시키기만 하는 소모적인 행위다. 우리 나라 건축 산업의 재활용 비율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 139p. 같은 책

공간을 지나 도시로 들어가 보자. 서양의 도시엔 광장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모이고 민주주의가 꽃핀 것이다.
여기에 전제가 몇 가지 있다. 이면도로/골목길에서 차와 사람의 구획을 명확히 나눈것이다. 반면 우리네 길은 때론 주차의 공간으로 때론 동네 골목 평상과 같이 휴식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큰 차이 없다. 유럽의 광장 문화와 한국의 광장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라는 것은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소통의 장소로 인식되는 광장은, 바로 권력이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 건설한 장소라는 것이 바로 이 역사의 진짜 모습이다. - 174p. 같은 책
보차步車분리를 철저히 하고 도로 시스템을 발전시켜 통행과 도시 서비스를 최적화한 서구의 도로에 비해, 한국의 도로는 통행은 물론이고 상업, 휴식, 오락 등의 여러 기능이 공존하는 일종의 '도시적 공터’가 된 것이다. - 187p. 같은 책

우리네 거주 문화가 벽과 담장이라고 했는데, 담장 밖 세상보다는 담장 안 식솔을 먼저 챙기려는 '자기 내향형' 건축 방식을 낳은 것이다. 모든 일상을 광장보단 사뭇 폐쇄된 공간(방)에서 하는 게 마음이 편한것 이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은 짐작하는 바 일것이다. 무조건 방 문화를 없앤다기 보다 오픈된 광장문화와 어떻게 균형있게 자리잡게 할지가 필요한 것이다.

노래방, PC방, 비디오방, 찜질방처럼 '방’으로 끝나는 공간은 방으로 구획됐거나 최소한 옆자리와 칸막이로 구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좀 더 사적 공간의 느낌을 준다. 실제로 외부와 단절된 밀폐된 곳에 굳이 함께 들어가려면 이미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문이 닫히고 같은 행위를 '함께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문밖에 있는 타인과 구분되는 공동체가 된다. - 255p. 같은 책

한국적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1970~80년대 우후죽순 격으로 확장 확장하여 우리의 거주문화를 바꿔버린데는 국가, 기업, 그리고 우리의 삼각 공조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우리만'이라는 '자기 내향성'은 그 모습을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폐쇄적인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단지내 길 마저도 사유지 탓에 빙 돌아가게 하는 집단 이기주의 모습이 이웃과 사람간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는 것이다.

국가는 도로를 만들고 공원을 조성하고 택지 개발하느라 드는 비싼 비용과 골치 아픈 관리 책임 없이도 낙후된 지역을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편리함에 만족했고, 기업들은 건물을 짓기도 전에 도면과 모델 하우스만 보고 선금을 지불하는 맘씨 좋은 소비자 덕에 똑같은 아파트를 양산하기만 하면 돈을 버는 편안한 장사에 행복해 했다. 그리고 비싸도 일단 청약에만 성공하면 몇 년 후 몇 배는 오를 집값에 소비자 또한 환호하는, 모두가 즐거운 '마법의 잔치’를 즐겼다. - 291p. 같은 책
가족적 내內집단의 결속감에 기초한, 유난히도 내·외를 구분하는 우리의 부족적 공동체 문화는 '집’ 내부에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외부와는 단절을 택한 '울타리’ 건축 문화로 형상화돼 왔다. 그리고 그 자기중심적 건축은 다시 우리의 소小집단식 공동체 문화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서로 단절된 그 소집단들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관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른바 공공의 문제, 즉 '도시’의 문제였다. - 300p. 같은 책

방을 어지러 뜨리는 아이들과 아빠, 그리고 그것을 늘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엄마.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각각의 편안함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간 주도권' 행사하려는 결과는 늘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은 바깥 활동이 많은 구성원이 느끼는 집은 사회 원심적 공간이지만, 주로 집에 머무르는 구성원이 느끼는 것은 정 반대인 사회 구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편한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균형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우리 공간에 던지는 또 하나의 과제이다.

서로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게 이 '분쟁’의 핵심 원인이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도맡아 온 엄마의 경우(맞벌이를 넘어 남편이 육아하는 경우도 많은 요즘 부부들은 다를 수 있다), 집 구석구석의 사용은 물론이고 (청소를 포함한) 모든 관리 책임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 306p. 같은 책
거대 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21세기 한국인들은 철저하게 그것을 만들고 파는 사람이 지배하는 도시 구조에 종속되면서, 도시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건설 시장의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사용자가 되어 간다. 공간 소유에 무기력해지기 때문에 이웃과 관계 맺기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향상하려는 의지나 공간 감수성 같은 건 애초부터 품지 못한다. 현대 도시에 사는 우리는 집에서도 길에서도 도시에서도 공간 주도권을 빼앗겼다. 심지어 원래는 우리 것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할 정도가 되었다. - 332p. 같은 책

마지막으로 공공임대주택의 실패와 성공사례를 우리와 해외의 사례에서 살펴본다. 결국 그 성패의 갈림길은 입주자의 심리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까지 어떻게 살펴서 공간과 건축에 담아낼 수 있는지 이다. 빈민 주택에 오래 천착한 칠레의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한정된 재원으로 어떻게 입주민의 마음을 얻고 임대주택의 성공사례를 가져왔는지 우리에겐 반드시 참고가 되었으면 싶다.

건축가는 주어진 예산으로 건설 가능한 40제곱미터의 공간뿐 아니라 차후에 증축할 수 있는 또 다른 40제곱미터의 빈 공간을 함께 분양하자는 기발한 제안을 한다. 비어 있는 절반을 꼭 지어야 할 의무는 없었으나 자신이 노력만 하면 지금 집보다 두 배로 큰 집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과 목표가 생긴 입주자들은 다른 사회 주택 입주자와는 다르게 변해 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기꺼이 주말에도 일했으며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집의 반쪽을 자신의 힘으로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닌가. 건축가는 절반의 필요와 절반의 희망을 같이 판 것이다. - 368p. 같은 책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아름답고 값비싸며 작품성 있는 건물을 지어 온 서구 선진국의 건축가에게 주어져 온 건축의 노벨상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2016년 가장 값싸고 가장 볼품없는 건물을 지어 온 남미 조그만 나라의 이 건축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수상 소식을 전했다. 반쪽 집은 전 세계 많은 건축가와 주택 당국자의 영감을 자극해 가나, 남아공, 태국, 멕시코의 사회 주택에 적용되고 있고, 계속 확산되고 있다. - 371p. 같은 책

예전에 읽었던 유현준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소재의 책인듯 하지만, 모처럼 몰두해서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프랑스를 가게 된다면 그들의 길, 공간, 건축, 그리고 도시를 여느 관광객과는 새삼 다르게 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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