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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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 남는지 궁금하다.

우선은 감동을 주거나 자신의 감성이나 머릿속에 한 구절이라도 남는 글이 살아 남는 것 같다.

아니면 공감이 많이 가고 재미있거나 자신의 공부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 살아 남을 것 같다.

글쓰기가 치유와 위로를 주면 또 오래 살아 남을 것 같다.

나도 성경을 쓰고 꿈다이어리,공부다이어리, 건강다이어리, 기도다이어리, 버킷리스트다이어리, 서평이벤트다이어리를 쓰면서 치유가  된다.

다양한 다이어리들을 쓰면서 내 인생이 가치있고 의미있어지고 존재의 무게감이 생긴다.

저자가 비판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논리적이고 자신만의 가치가 정립이 되어 있다는 얘기같다.

계층적 사회와 언어를 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하고 프랑스철학자들이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닐까라고 짐작을 해본다.

 창조성이 불균형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뭔지 궁금하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이유는 앞으로 로스쿨을 가든지 직장을 가든지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 전부 글쓰기였다.

논술까지도말이다.

그리고 요즈은 SNS에도 전부 글쓰기로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짧은 문자메세지도 전부 글쓰기이다.

평생 글쓰기를 하고 사는데 그렇게 많이 쓰는 글쓰기가 나중에는 공허하고 전부 날아가버리는 죽은 글쓰기만 한다는게 아쉽다.

살아남는 글쓰기가 뭔지 알고 싶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만났다.

저자가 일본의 대표사상가라서 그런지 책이 가볍지 않고 무게감이 있다.

계층적인 사회와 언어에 대한 얘기가 궁금했었는데 소쉬르와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나온다.

그들은 언어학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보면 사회적 활동 안에 있는 기호이 양상을 연구하는 과학을 구상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심리학의 일부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심리학의 일부를 이룬다.

우리는 그것을 기호학이라고 부른다.

기호학은 기호한 무엇인가, 어떠한 법칙이 기호를 통제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기호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지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호학은 존재할 권리가 있고 그 지위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소쉬르가 천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존재하지 않은 학문을 연구한다는게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소수르의 천재성으로도 기호의 본질에 대한 학문적 체계화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래도 반드시 체계화해야 한다.

랑그는 언어이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등 인간은 어떤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태어난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언어가 모어이다.

국어라고 해도 좋겠지만 국민구가라는 정치 개념은 베스트팔렌 조약이전에는 없었고 국민국가를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주위와 다른 언어공동체를 형성하는 집단의 언어도 있기 때문에 랑그라고 부른다.

우리는 랑그를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날 때 부모가 이야기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선택할 자유가 없다.

인간은 모어 속에 던져지는 방식으로 태어난다.

랑그에 관여할 수 없다.

태어나면서 쉼 없이 물로 적시듯 랑그를 듣고 자라기 때문에 어느새 언어로 사고하고 그 언어로 숫자를 세고 그 언어로 말장난을 하고 그 언어로 네올로지즘을 창조한다.

문법적으로 파격적이고 처음 보는 표현을 만나도 금방 뜻을 알 수 있고 또 파격적인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장난 아니다'라든지 '정반대'라든지 들으면 곧장 뜻을 안다.

몇 사람이 사용하다 보면 그런 일본어는 없어라고 고칠 마음도 없어지고 내버려두는 사이에 사전에 올라가기도 한다.

외국어는 그렇지 않다.

자기가 영어로 문법적인 잘못을 저지르면 곧장 정정을 받는다.

잘못 말하면 정정을 받지 퍼져 나가지 못한다.

랑그란 그 안에 있는 이상 화자에게 폭넓은 자유를 준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롤랑 바르트가 랑가주라는 말로 그려내는 언어 현상과 우리가 어법이라는 일본어를 통해 막연하게 떠올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사용하는 어법의 진리 안에 즉, 그 지역성 안에 얽매여 있다.

내 어법과 이웃의 어법 사이에는 격렬한 경합 관계가 있고 거기에 우리는 끌려들어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어법은 패권을 다투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어떤 어법이 패권을 쥐면 그것은 사회생활 전반에 퍼져 무징후적인 편견이 된다.

정치가나 관료가 말하는 비정치적인 말,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에서 이야기하는 말, 일상적으로 떠드는 말, 그것이 패권을 쥔 어법인 것이다.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에서 인용한 글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사용하는 어법의 진리 안에 즉, 그 지역성 안에 얽매여 있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말하는 셀러리맨의 에크리튀르나 아주머니의 에크리튀르 같은 지역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그런 어법은 딱히 패권을 다투지 않는다.

간사이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간사이에 있을 때나 가족이나 친구와 간사이 말을 하지, 취직하러 도쿄에 가면 표준어로 바꾸어 말한다.

딱히 표준어라는 패권 언어에 대해 굴복하는 자세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간사이로 돌아오면 다시 지역의 언어로 돌아온다.

일본의 경우는 어법을 간단하게 바꿀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한 언어 능력과 글쓰기를 보면 상하이가 독해력, 과학적 리터러시, 수학적 리터러시 세 부분 전부 다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 대만, 그리고 일본도 꽤 좋은 성적을 얻었다.

5,6위 정도에 올랐다.

5위이면 5위이고 6위이면 6위이지 5,6위정도라고 얘기하는 건 6위가 아닌가 한다.

PISA의 문제는 일반적인 시험 문제와 다르다.

정답이 없는 문제가 있다.

이 문장은 좋은가 싫은가, 좋다면 좋은 근거를 쓰고 싫다면 싫은 근거를 쓰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댈 수 있다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해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점수가 낮다.

미리 암기해둔 정답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 의도를 읽어 내려 한다.

이 물음이 어떤 능력을 측정하려는 것인지를 꿰뚫어 보는 쪽이 승산이 있다.

당신은 그렇게 물음으로써 무엇을 알고 싶은 것입니까,,,,

출제자 앞에 서있는 대면 상황을 외부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이런 물음을 감당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정경을 조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면 폭 넓은 시야가 요구된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와 같은 반성하는 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조금 멀리서 자신이 참가하고 있는 게임의 구성 요소나 규칙을 고찰하는 능력, 이것은 범용성이 높은 지력이라고 쓸모 있는 지혜이다.

핀란드의 학교 교육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제도 문제뿐만이 아니다.

훌륭한 교육을 창출한 핀란드는 정세와 관련이 있다.

핀란드 인구는 530만 명이다.

일본의 효고현보다 적다.

건국 이래 끓임없이 이웃나라의 침략에 시달렸다.

그건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에 시달린 것과 비슷하다.

북유럽중에서 자원도 없고 숲과 호수가 많은 나라이다.

이 작은 나라가 엄혹한 국제 사회적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본국이 자리 잡고 있는 세계적인 위상을 조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랑 비슷해서 잘 봐야 겠다.

글로벌한 시각으로 볼 때 자기 자신은 어떠하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명료하게 언어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

소국이 주변 대국의 이기심에 휘말린 상태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좋으니 싫으니 논할 처지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선호만 고민해 핀란드라는 일국의 이해관계를 내세운다고 해서 살아남을 기회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보다는 일단은 자기 자신을 괄호에 넣고 바깥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 세계에서 핀란드가 서 있는 위치는 어디쯤인지,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효과적인지 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좋다거나 싫다거는 감정을 억제하고 이해득실의 주판알을 튕기기 보다는 국제사회 안에서 소국 핀란드의 존재가을 가장 뚜렷하게 부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핀란드에는 이런 일에 지적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습관이  있다.

핀란드는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를 유난스럽게 주장하지도 않았고 외교적으로 세게 나가지 않으면 이웃 나라들이 얕잡아보기 때문에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유아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소국이 살아남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또 생각나는 대목이다.

폭 넓은 시야로 스스로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회적 평가를 받는 나라에서는 PISA학습 도달 성적이 좋다.

북미에서는 캐나나, 오세아니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유럽에서는 룩셈부르크나 핀란드 같은 작은 나라가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다.

이런 나라는 자신들이 놓인 역사적 조건이나 지정학적 문맥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훈련을 항상 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다.

일본도 파멸이라고 할 정도로 영어를 잘 못한다.

영어를 가르칠 때 영어공부의 동기를 부여하려면 영어를 잘하면 10억 인과 대화할 수 있다도 한다.

그러나 외국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로는 외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외국어 학습의 의의는 원래 자신의 종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나 존재하지 않는 감정, 알지 못하는 세계의 관점을 다른 언어 집단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나한테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영어를 못하면 내 마음을 전 할 수 없으니까 영어를 공부해야겠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신체 감각에 상응하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외국어는 애초에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외국어는 자기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외부로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를 자기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 자기 신체안에 대응할 것이 없는 개념이나 감정을 접하는 것, 그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훌륭한 의의라고 생각한다.

물을 뒤집어쓰듯 다른 말의 세례를 받는 동안 어느새 모어의 어휘에는 없고 외국어에만 존재하는 말에 자기 신체가 동화하는 순간이 찾아 온다.

태어난  이후 줄곧 갇혀 있던 종족의 사상이라는 벽에 금이 가면서 과거에는 맛본 적 없는 감촉의 바람이 솔솔 불어 오는 것이다.

외국어의 습득이란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영어를 잘하면 취업에 유리하다 같은 실리적인 이류와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휘가 늘어나고 발음이 좋아져도 자신이 갇힌 우리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언어는 도구가 아니다.

돈을 긁어 모으거나 자신의 지위와 위신을 추어 올리거나 스스로를 문화자본으로 장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렇게 욕망하는 주체 자체를 해체하는 역동적이고 생성적인 것이다.

생생한 언어를 습득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본성이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에 동기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기존의 자아를 일단 해체하고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자아로 재편성하는 것, 이런 과정이야멀로 생명의 자연에 적합하다.

따라서 일부러 이익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레 타자의 언어에 가상적으로 동일화하고 타자에 동기화하려고 한다.

이익의 유도는 도리어 그 자연스러운 과정을 방해한다.

독창성의 신화도 영어를 잘하는 글로벌 인재도 결국은 통화라는 물신으로 인간이 조작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는 바깥으로라는 생동감 있는 취향을 망가뜨리고 있다.

현대 일본인의 언어적 빈곤함은 바깥으로 향하는 자기 초월의 긴장감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본다.

외국어공부하는데 순수한 동기로 해야 한다는 얘기가 와닿았다.

살아남는 언어는 자신의 벽을 깨고 나와서 외부까지도 포괄하는 글쓰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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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버리기 기술 - 나는 왜 네가 잘되면 배가 아플까?
마스노 슌묘 지음, 강정원 옮김 / 슬로디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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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고 모든 것들을 수치화해서 없던 열등감도 생기게 만드는게 현실같다.

그런 현실에서 열등감을 뛰어 넘는 자기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싶은데 너무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아서 이 책으로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이나 사상이 있는지  모색하면 된다.     

 요즘 공부 잘하는 기술,행복해지는 기술, 불행을 피하는 기술, 행복해지는 기술, 신경끄기의 기술, 미래를 읽는 기술, 늙어감의 기술등등 기술시리즈가 많은 것 같다.
그마큼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여러가지 기술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보기 좋게 짧은 고민들과 상담들을 모아 놓아서 찾아 보기 좋다.
궁금한 점이 있거나 해결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찾아서 보면 해소되는 문제들이 많을 것 같다.
세상을 살아 가다보면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저자가 가르쳐 준다.
요즘 갑질, 미투운동을 보면 을의 반란도 우습게 보면 안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왜 평생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호감이 안 느껴지는 건지 이해가 간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야, 그것도 못해? 정말 도움이 안 되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남을 깔보고 하대하며 자기의 뛰어남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자기라는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고 시인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못하는 누군가를 도움이 안 되는 누군가를 거론하지 않으면 자기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어떤 철학자는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이다. 좌우지간, 내가 갈 길을 나는 간다라고 말했다.
이런 것이 산뜻하고 강인한 삶의 자세이다.
남과 비교해 자기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나약한 삶의 자세의 전형이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주변에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기를 깔보는 얘기를 한다면 마음이 몹시 아프지만 거기에 굴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게 도움이 될 수 있게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면 된다.
어,,,,너무 약한 받아침같다,,,,
바꿀 수없는 것은 배려 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를 향상시키고 인간으로서 매력을 더해 가는 길이다.
누군가가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상대를 험담하고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자기가 위에 있음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할 말이 있다면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하는 것이 성인의 자세이다.
일단 싫다는 생각이 들면 선입견이 생기면 상대가 하는 모든 것이 싫어진다.
뜻이 맞지 않다는 것의 근원을 더듬다 보면 별것 아닌 순간에 느낀 싫다라는 희미한 기억에 다다른다.
그 기억이 부풀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싫어진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망상이다.
사람은 다면적이라서 나 자신이 싫어하는 점만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미점응시는 상대의 좋은 점만을 지긋이 본다는 뜻이다.
덜렁이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배려가 있구나,,도도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남에게도 꽤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미점을 찾았다면 솔직히 칭찬을 하면 된다.
서로 칭찬을 하다보면 유연함이 싹터서 싫은 마음도 사라지게 된다.
싫은 사람을 칭찬하라는 것이다.
저자가 스님이라서 그런지 수행을 많이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인간관계 속에서서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많다.
남에게 배신 당하며 속으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다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상대를 탓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당연히 생긴다.
어떤 수행승이 폐가를 빌려서 잠을 자는데 집이 너무 엉망이라서 욕이 나오려고 했는데 뚫린 천장사이로 달빛이 들어 오니까 쓸쓸함, 비참함이 달아나고 마음이 행복감으로 채워졌다.
아름다운 달빛이 자신을 비치고 운치있는 밤을 보내게 돼서 행복하다고 했다.
폐가에서 자는 상황은 바뀌지 않아도 마음은 쓸쓸함과 비참함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선의 사고이자 선적인 삶의 자세의 진면목이다.
괴롭거나 분하거나 슬프거나 속상한 마음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서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그것을 살아가는데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긍정적인 해석을 한다는 얘기같다.
나를 상대의 입장에 놓고 보면 상대와 똑같은 마음이 된다는 동사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을 갖기란 힘들다.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웅크려서는 안되고 마음을 바꿔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붐비는 차안에서 어깨가 부딪힌 것만으로도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사람은 희노애락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희노애락의 폭이 크면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기쁨에 들떠 주변에 대한 배려를 잊거나 분노에 내몰리다 그대로 폭발하기도 한다.

마음의 평상심을 가져야 한다.

매일 30분이나 10분이라도 고요히 앉아 있는 것으로 마음은 크게 바뀐다.

고요히 않아 있는 걸 한 번 해봐야 겠다.

사람 마음은 늘 변화하고 있어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머리 아픈게 시샘이다.

시샘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시샘이 날 만한 상대는 나보다 급여가 많거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 비싼 차를 모는 사람, 멋진 연인이 있는 사람등이지만  어떤 예이건 그와 나를 비교하는 데서 시샘의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시샘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이 커져 내가 점점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저 사람만 못한 나와 저 사람처럼 될 수 없는 자신을 용서 못하는 것이다.

따져야 할 점은 그 사람이 왜 시샘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급여가 많은지, 왜 고급 아파트에 사는지, 왜 비싼 차를 모는지, 왜 멋진 연인이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주변 사람들보다 몇 배나 성실하게 일을 했고 그 력과 급여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뜰하게 살면서 꾸준하게, 견실하게 돈을 모아 고급 아파트에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 온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그 결과만을 보고 시샘하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다.

이 얘기는 정말 공감이 간다.

시샘을 하지 않고 자기의 노력이 족하지 않음을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매력이 확실히 늘어난다.

꼭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 상담도 많이 해주는데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결혼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현실의 결혼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근사하지 않다.

저자는 결혼을 할 때 중요한 것이 가치관, 기호, 취미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연봉, 학력, 외모등을 결혼을 정하는 요소로  보지만 오랫동안 같이 생활할 것이기 때문에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치관, 취미, 기호가 완전히 맞는 상대는 없다.

태어난 곳, 자라온 환경, 받아온 교육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60%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감지덕지이다.

때문에 맞지 않는 부분은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 이럴 수 없냐며 상대에게 요구하면 기껏 맺어 놓은 사랑에 금이 간다.

겹쳐진 부분으로써 어떻게 두 사람의 시간을 충실하게 만들어 나갈까를 고민해야 한다.

인연은 사소한 계기로 맺어지기도 한다.

또 어떤 청년이 와서 부모님에 대한 부채의식을 토로했다.

부모님이 바라시는대로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가 요점이었다.

사람으로서 자신을 향상시키고 자신이 세상과 이별할 때 배웅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주체는 나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식이 없는 삶이라도 그 삶을 있는 힘껏 살아가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힘껏 살아 가야 한다는 얘기를 명심해야 겠다.

대지황금은 어떤 상황일지라도 전력을 다하면 그 자리가 황금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든 전력으로 있는 힘껏 살아가는 자세라면 삶이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전력으로 있는 힘껏 살기,,,,,,정말 중요한 얘기같다.

상속문제가 생겼을 때는 법률가를 찾아 가라는 조언도 해줬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모두 비교의 산물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무엇을 , 어디를 비교하든지 언제든 바뀐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거나 뒷면이 나오는 것과 같다.

남과 비교해 내가 위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안심이나 만족이 된다.

하지만 아래라는 느낌을 가지면 불안과 불만이 생긴다.

그러나 위를 보아도 끝이 없고 아래를 보아도 끝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비교를 멈추지 않는 한, 사람은 열동감과 우월감 사이를 오가게 된다.

위를 보아도 끝이 없고 아래를 보아도 끝이 없다는 얘기는 깨달음같다.

위와 아래만 보면 조바심이 나며 차분해질 겨를이 없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승리와 패배를 뛰어 넘어 견실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것이다.

남과 쓸대없이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의 내가 성장해 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배움이다. 

나날이 배워간다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인 것 같다.

이 책은 정말 좋은 책같다.

비교의 비참함에 쓸려다니지 말고 자신만의 멋진 삶을 꿈꾸면서 배우고 전력을 다하라고 하니까말이다.

저자는 어디가서도 들을 수 없는 인생의 진리같은 얘기들을 많이도 풀어서 얘기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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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대한 더 깊은 이해 - 천국 해석서의 최고봉
최혁준 지음 / 하늘글방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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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이 천국이다.

성경에 천국에 대한 정보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자나 뱀과 애들이 어울리고 황금으로 길이 되어 있고 면류관을 많이 받은 사람이 좋은 자리에 살고 맛있는 것이나 고통 외로움이 없고 놀수 있으면 마음껏 놀 수 있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찬양하고 살 수 있는 곳이다라는 정도의 정보만 있다.

하나님곁에 가까이 살 수 있는지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았던 행적을 전부 볼 수 있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위에서 쳐다 볼 수 있는 건지 휴거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가는 곳이라고 하는데 조금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요즘은 천국을 믿지 않으니까 이 세상에서 최선으로 살려고  한다.

천국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을 미리 대비하고  알고 싶다.

난 천국에서 하나님곁에 꼭 붙어 살고 바로 옆에서 전원주택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어서 꼭 가야 할 곳이고 알고 싶은 곳인데 정보가 너무 없는 곳이 천국이다.

어릴 때 교회에서 목사님이 천국의 위치는 안드로메다를 넘어 우주에 있다고 농담처럼 얘기를 해준적이 있다.

그 뒤로는  천국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들어 본적이 없다.

천국의 위치는 과학적 지식이나 인간의 영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영국의 저명 신학자 톰 라이트는 그의 저서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공간과 우리의 공간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맞물려 있고 교차한다라고 했다.

손에 잡히는 실체적인 천국을 바라는데 이 책은 그런 천국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한다.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은 그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있을거라고 얘기해준다.

이는 죽음과 동시에 영혼이 어딘가에 위치한 천국에 이동함을 의미한다.

성화도 되지 않은 강도가 바로 천국에 간다고 하니까 평생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으로서 억울한 마음이 든다.

죽어서 천국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굉장히 짧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오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길어도 하루가 안 걸리며 사실상 순식간에 천국에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에 대한 근거를 찾는데는 성경밖에 없는 것 같다.

천국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가정을 해보면 첫 번째는 이 세상을 산 자와 죽은 자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경우이다.

천국에 즉시 도착할 수 있다면 천국이 가까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은 성경에 기초해 볼 때 가능성이 제로이다.

주기도문의 시작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로 시작한다.

이 땅에 계신 혹은 근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다.

천국이 하늘 어딘가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사야 14장에서는 천국이 하늘에 있음을 알리는  구절이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천국에서 쫒겨난 사탄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표현을 쓴다.

천국이 이 세상과 다른 곳에 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는 천사들의 거처가 하늘이여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하셨다.

또한  사도행전 1장 역시 천국이 하늘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이 있다는 가정은 아닌 것이다.

두 번째 가정은 천국이 우주의 어딘 가에 위치할 것이란 가정이다.

우리의 영혼이 아득히 먼 우주의 어느 공간에 순식간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이 가정을 많이 지지한다.

나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목사님과 선교사님에게 그 얘기를 들었다.

인간의 지혜로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이 바로 우주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다.

우주의 넓은 공간과 일치하는 점이다.

이 가정이 성립하려면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거리와 공간 그리고 시간 개념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17장에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른 예수가 기도 중에 천국에서 내려온 모세 및 엘리야와 대화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이 장면을  보면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천국 거주민은 필요하면 언제든 세상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시공을 완전히 초월한 곳이고 천국에 가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기하학, 천문학, 물리학 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세계를 맞이 하는 것이다.

천국이 우주 끝바락에 있든 아니면 우리 은하계 안에 있든 우주 내에서의 거리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대기권을 벗어나는 순간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어차피 상식을 넘어선 한계 개념이다.

시공을 초월한 천국을 상상하면 세번째 가정도 생각할 수 있다.

3차원을 넘어선 개념이 있다.

고정관념을 깨드린다면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에 속한 천국도 이해할 수 있다.

고차원적 개념이 도입되면 현재의 우주를 통해 고차원의 천국으로 진입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고차원적인 개념이 필요한 것은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초월적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부담이 있다.

난해한 상황들은 그냥 믿음으로 받아 들이면 된다.

그냥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 싫어서 창조과학회를 들어서 공부를 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고차원 세계에서는 저차원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저차원 세계로 오고 갈 수도 있다는 가정을 믿으면 오든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고차원적 천국에 대한 묘사가 고린도후서 12장 사도 바울이 얘기를 햇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바울은 천국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셋째 하늘이란 표현을 썼다.

구약성경 신명기 10장을 보면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신명기 저자인 모세 역시 하나님의 우즈 창조와 통치 영역을 설명하는데 하늘과 모든 하늘, 그리고 모든 하늘의 하늘로 구분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늘을 3단계로 나누고 있다.

고대의 유대인들은 하늘을 세 개 층으로 이해했는데 첫째는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하늘, 새가 날아다니는 하늘을 의미한다.

둘째는 달과 별이 떠 있는 하늘, 우주를 말한다.

셋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가 있는 하늘이다.

셋째 하늘의 위치를 고차원에 입각한 장소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고차원이 반드시 새로운 우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외의 다른 우주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훨씬 우세하다.

또 다른 우주는 없다는 견해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달라스 윌라드이다.

위라드는 그의 저서 '하나님의 모략'에서 '천국이란 현재의 이 우주에서 맞을 미래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 우주 외에 다른 우주는 없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 그것으로 전부다. 오늘날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천구과 지옥의 위치를 피조된 우주 바깥의 또 다른 실체에서 찾으려는 오랜 성향때문이다.'

천국의 위치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믿음의 구간이다.

천국의 위치가 우주안에 있든 우주 바깥에 있든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천국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가 우리가 그 곳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이다.

자신이 영원히 보내개 될 곳이니까말이다.

세상에서 살면 계층 계급 신분이 있다.

천국에 가면 면류관이 있고 거기에 따라서 사는 장소나 계급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있는 것 같다.

천국의 보상과  관련해서 사도바울이 한 얘기가 있다.

디모데후서 4장에서 바울은 자신을 위해 천국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고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믿음의 성도들에게 마찬가지라고 했다.

면류관을 받는 것이 모든 성도들에게 열려있다고 했지 그 면류관이 모두 동일한 면류관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천국의 상급은 모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세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성경은 각 사람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즉, 행한 분량만큼 상이 주어질 것이라고 깔끔하게 결론을 내린다.

천국의 지배구조를 보면 천국에도 직위가 존재한다.

대학교 다닐 때 선교단체 친구가 장애가 있었는데 천국에 가면 자기는 정상인이어서 좋을 것같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계급차이가 있다면 외모 차이도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마테복음 18장을 보면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세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아닐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는 큰 자에 대한 자격을 얘기하고 있고 더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면 누가복음 19장이 있다.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하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함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실체가 있음을 암시한다.

어,,,,어쩌지,,,,계층이 있다,,,,

신분의 차이가 있는데가 천국이다.

신분의 차이가 구원받은 인간들 사이의 신분 차이는 아니라고 한다.

인간과 다른 여타 천국 피조물간의 신분 차이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그건 다행이다.

구원받은 모든 인간들이 세세토록 왕노릇을 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이미 공언했다.

반면에 열 고을 다스리는 자와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있다 함은 또 다른 얘기다.

구원받은 인간들 사이에도 엄연히 직위 차이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하늘의  천사마저도 미가엘이나 가브리엘과 같은 천사장들이 존재함으로써 천사들간의 직위와 역할이 구분된다.

천국에서 유독 인간만 동일한 직위가 보장되어야만 하는 이유란 딱히 없다.

하나님과 함께 우주를 통치하고 천국 문명을 일으키는데 직위와 역할분담이 없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천국을 단순한 놀이공간이나 편안한 쉼터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금이 깔려 있는 호털같고 맛있고 놀이공원도 실컷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 생각을 다시 바꿔야 하는 것 같다.

우주의 대역사를 일구고 역동적인 사역들이 일어나는 천국을 사모한다면 직위의 존재가 결코 어색하지 않다.

사람들이 직위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직위에 따라 구성원간의 갈등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보상의 차이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천국을 뒤흔들 것으로 걱정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과 상급에는 여러 등급이 있지만 누구도 이를 시기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에 따라 보상은 다르지만 그것이 행복의 잣대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세상적인 잣대로는 이해가 안된다.

천국과 세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자원의 양이다.

세상은 제한된 환경 하에서 서로 싸워 이겨야만 자원을 쟁취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서 시기와 질투와 다툼이 비롯된다.

천국은 무한대의 자원을  영원히 사용함에 있어 어떠한 제한도 없는 곳이다.

따라서 직위에 따라서 누가 더 행복한 것도 누가 더 많은 풍요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행복의 질에 있어 직위간의 차이는 없다.

다만 서로의 역할과 기능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직위와 이 세상의 직위를 동일시해선 안된다.

천국의 직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제이다.

천국에서 인간과 천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또 궁금하다.

천사의 창조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천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임에 확실하다.

골로새서 1장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러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욥기 38장에는 '그 때에는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놀을 때 천사들이 이를  지켜 보고 있었다.

인간 창조이전부터 천사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천사를  창조했을까,,,

우주가 창조되자 필연적으로 관리할 일들이 많아졌고 명령을 수행할 충실한 일꾼들이 필요했다.

천사도 무조건 복종하는 것만이 아니고 타락한 천사도 있다.

일부 천사가 하나님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걷겠다고 하나님께 대들었다.

곧이어 하늘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고 타락한 천사들, 즉 귀신과 이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이 일으킨 쿠데타는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에스겔서 28장을 보면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구름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타락한 천사들은 하늘에서 내팽개쳐 쫓겨났다.

원래의 처소로 복귀할 수 없고 영원히 지옥에 갇히는 최악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간섭이 거추장스럽고 앞으로 창조될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지위가 높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독립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절대 선만 존재하던 우주에서 큰 범죄가 일어난 것이다.

사탄과 귀신들을 바로 즉결 심판해서 모두 단 칼에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 가두어 버리지 않았다.

몇 명정도 되는 것이지도 좀 궁금하다.

사탄을 하늘에서 쫓아내어 이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그냥 사탄을 영원한 불구덩이 속에 가두어 놓고 인간은 완벽하게 조성된 에덴동산에서 보호받고 살았더라면 인간이 타락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사탄의 반란사건을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으셨다.

하나님의 소망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다.

사탄에 맞서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원하였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이상 인간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맥없이 넘어가 버린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마저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우주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플랜 B를 위해 만들어진 역사이다.

플랜 B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라는 시나리오이다.

만약 천사들의 일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사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사탄은 이 땅에 내려 오지 않았을 것이고 아담과 하와는 사탄에게 유혹 받아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순종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일부 천사가 타락했고 그 결과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되었다.

천국에서 인간과 천사의 지위와 역할은 어떻게 구분될까,,,

사람들은 천국이 좋다는 사실만 강조한다.

천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족할 것이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로마서 8장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린다.

곧 상속자의 지위이다.

구원받은 모든 인간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지위를 부여 받게 된다.

천사들의 지위는 인간처럼 높지 않은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들이 구원받을 인간을 섬기라고 보내졌음을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다.

천사들은 일꾼이고 인간의 하나님의 자녀이다.

천국은 광활한 우주를 포괄하고 있다.

그 정점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음은 인간이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다른 영적 피조물은 없다.

교회에 가면 목사님의 설교가 같은 주제로 반복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정말 궁금한 것은 이런 책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찾아서 알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너무 궁금했던 천국의 실체에 대해서 너무나 작게나마 알게 돼서 좋았다.

천국에 대한 허기짐이 약간은 채워지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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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의 화가들 - 서로의 연관검색어로 남은 미술사의 라이벌 16
박미성 지음 / 책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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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을 가장 좋아한다.

내  마음에 살아 있고 내  곁에 있는 화가는 고흐와 모네이다.

내 마음에 가장 많이 품고 있는 화가는 고흐이다.

그 다음은 모네이다.

처음엔 그림이 왠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다가 고흐가 나오는 책은 다 읽고 고흐가 나오는 영화나 전시회는 다 갔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서나 인상주의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러면서 더 좋아졌다.

알게 돼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더 알고 싶어 진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좋아하는 고흐와 모네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 알게 돼고 그의 작품을 바라 보는 눈이 깊어진다는게 마음에  든다.

빛을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마네로부터 시작해서 모네로 끝난다.

고흐는 자신의 붓이나 물감을 살 정도로만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서 마음이 짠했다.

죽은 다음에는 고평가를 받는데 살아 있을 때 피카소나 모네처럼 인정을 받지 못해서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행복은 주관적인 가치니까 자신의 열정을 불살라서 그림을 그렸으니까 행복했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고흐영화도 이번에 봤는데 그림이나 그의 인생이 더 좋아졌다.

고갱도 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들의 사정을 나는 모르는데 이 책을 읽으면 더 자세히 나온다.

아잉~~~좋앙,,,,,

고흐는 그림을 수정하는 걸 수십 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네의 그림은 비평가나 전문가처럼 뭔지는 잘 몰라도 감성을 건드리는 그림같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 느껴지는게 아름답고 잔잔하다이다.

모네전시회에 가서 봤는데 모네의 주변환경이나 모네의 집과 정원도 정말 아름다웠다.

자신의 정원에 수련이 많았다.

74세에 백내장이 왔는데 수련 연작 8점과 버드나무를 그렸다고  한다.

눈도 안 좋았는데 그 그림들이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백내장수술을 해서 잘 안보이는 수련이나 버드나무를 그리고 신기하다.

그의 정신이나 예술가적인 역량은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 자연이 반사하는 무수한 빛의 향연을 보면 우주적인 감성이 생기는 것 같다.

모네의 그림을 사진으로만 봐도 깃털들이 수만개 모여서 빛과 어떤 형태를 이루는 것 같은데 그런 걸 전시회에 가서 직접 보니까 설레었다.

감성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모네를 생각하면 신기한 감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장수를 해서 그런지 삶의 공감각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통찰력과 초연함, 넉넉함, 은은함이 그림에서 느껴진다.

인상파화가들의 그림은 자연이나 정적인 모습, 사물을 많이 그렸는데 모네는 생자르역이라고 역동적인 기차를 그렸다.

기하하적인 기차, 소음이나 증기에서 나오는 연기을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때 시절은 사람을 옮기는 수단이 마차가 다 였을텐데 기차를 보고 충격을 어지간히 받았던 것 같다.

기차의 연기도 몽환적으로 표현해 낸 것 같다.

하늘의 구름이 있다면 기차역에는 기차가 뿜어내는 연기가 다.

그 연기가 디테일한 모습이 아니라 주변을 연기로 삼켜서 모든 풍경을 평면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인상주의파는 대상을 명확하게 그려내는 것보다는 풍경속에서 변화하는 빛을 잡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그의 그림을 보고 그림이 온통 안개 투성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네는 정말 그림에 안개를 접목해서 그리는게 유일한 관심이자 목표였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색이 노랗고 빨갛고 강렬한 것은 미래에 대한 것과 자신의 고향에 대한 희망을 품어서 그런 색을 많이 썼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면 정말 역동적이고 전 우주를 담으려고 노력한게 와닿는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냥 설득이  된다.

그의 그림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내사랑 고흐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고흐뿐만 아니라 덤으로 고갱도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서로  라이벌인 화가들을 같이 세트로 모아 두어서 한 사람만 만나려해도 또 다른 사람을 같이 만날 수 있다. 고갱과 고흐는 시각적인 즉흥성을 화면 속에 담아내려 한 인상주의 예술가와는 다르게 단단히 고정될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내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색채였다. 예술가의 감정을 담아 내고 고유하고 주관적인 색채를 찾아 내려 한 것이 고갱과 고흐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다. 두 작가는 여러 측면에서 대중에게 잘못 알려져 있다. 뭐가 잘못 알려졌다는 것일까,,사람들이 기억하는 반 고흐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상과 소통을 하지 못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고 알고 있고 철저하게 예술만을 위해 살았다고 알고 있다. 고갱은 고흐의 귀를 자르게 한 장본이이고 그에게서 예술적 영향을 받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고갱은 늘 고흐와 함께 다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고갱에게는 너무 억울한 일이다. 고흐의 삶 역시 많은 부분이 잘못 알려졌지만 고갱이야말로 고흐로 인해 큰 손해를 본 작이다. 고흐때문에 유명해진 건 아니고,,,,   고흐는 누구보다도 작품이 많이 팔리기를 원했고 화가로서 성공하고 싶어 했다. 생전에는 성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고 사후 11년 째 되던 1901년에 파리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작품이 잘 팔리는 유명한 화가 되었다. 살았을 때 잘 팔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흐에게 열광한 사람들이 고흐 신화화 작업으로 어린 시절 평범했던 그의 모습도 사실과 다르게 각색되기 시작했다. 대중은 고흐의 감각적인 색채에도 반했지만 불행한 그의 일생에도 관심을 가졌다. 고흐가 흠모한 자가가 바로 고갱이다. 고갱은 이미 파리 미술계에서 유명한 작가였고 고흐의 3번의 부탁으로 그와 같이 지내며 작업을 하게 된다.  그들의 동거는 2개월정도였고 고흐가 사망하면서 그들의 동거에 대한 얘기는 더 부풀려 졌다. 고갱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서머 셋 몸이 쓴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이다.  그 책을 읽었지만 그 주인공이 고갱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예술을 위해 가족을 버린 비정하고 이기적인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가 바로 고갱을 모티프로 탄생한 인물이다. 그 소설로 인해 더 이기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로 낙인 찍혔다. 그는 저널리스인 아버지와 페루계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갱은 어린 시절 페루에서 살게 되면서  잉카문명을 접했다. 그는 평생 유랑자의 살면서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데 그 모습이 근원적이고 순수한 원시 세계였다.  유랑이 체질인 그는 선원이 직업적으로 맞았다. 항해사가 돼서 세계 각지를 떠돌다가  23살에 파리의 증권거래소 베르탱 상회에 취직을 했다. 결혼을 해서 자식도 다섯이나 낳았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35살에 예술가가 되기로 하고 가족을 외면했다. 경제적인 안정을 이룬 인상파의 젊은 화가들의 그림을 수집했다. 수집가로서 그림에 관심을 갖다가 직접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직장도 그만두고 코펜하겐에 갔다가 아들만 데리고 프랑스에 다시 와서 그림을 그렸지만 생활이 힘들었다.

어떤 작가의 영향으로 퐁타방에 와서 생활하면서 고갱 특유의 예술적 특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퐁타방에서 지내며 고갱은 시각에 포착된 장면의 즉각적인 인상을 담아내려 한 인상주의와 결별한다.

그는 인상주의가 주목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시골, 미개지의 순박하고 원시적인 이미지에 사로잡혔고 자신만의 색채로 원시적 모습을 그려 내고자 했다.

고갱은 예술가로서 자신감을 키워 갔지만 여전히 근근이 생활했다.

그런 그에게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작업해 보자고 지속적으로 제안한 작가기 빈센트 반 고흐이다.

파리의 구필 화랑에서 일하는 잘나가는 미술상인 동생 태오 덕분에 고흐는 여러 화가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고갱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친분을 쌓은 것이다.

화가공동체를 제안한 고흐는 동생 테오가 돈을 대주고 작품에 대한 일부의 소유권을 태오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고갱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집세를 못 낼 정도가 되니까 고흐가 있는 아를로 간 것이다.

공동 생활은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으로 끝이 난다.

이들의 공동 생활이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아를의 곳곳을 다니면서 같이 그림도 그리고 원만하게 잘 지냈다.

고갱은 아를에서의  생활이 별로였지만 절실했던 고흐는 점점 고갱에게 집착을 했다.

성격도 달랐고 가톨릭과 개신교인 종교도 달랐고 작업하는 방식도 대조적이었다.

고갱이 그린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분분하다.

그들이 싸운 이유가 바로 이 그림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초점없이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표현된 자신의 모습을 본 고흐가 매우 분노했다는 것이다.

고흐의 분신이기도 한 해바라기는 시들어 생기가 없고 손에 들린 붓도 너무나 가늘어 그림 한 번도 완성할 수 없어 보인다.

고흐의 독단적인 성격에 질린 고갱이 그림으로 복수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갱은 그림을 통해서 고흐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고흐의 천재적 재능에 대한 질투심과 그러한 재능과 열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고흐에게 연민도 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 고흐가 그린 그림을 보면 고갱의 의자는 팔걸이가 있고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만 어두운 색감이며 의자에는 책과 양초가 올려져 있다.

이는 고흐가 바라본 도시인 고갱의 이미지였다.

의자에 놓인 책은 체계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고갱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것이다.

고흐의 의자는 소박하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이다.

의자위에 담뱃대 하나가 놓여져 있다.

고흐가 생각한 예술가는 농촌의 생활과 그곳 사람들의 삶 자체를 담아 내는 밀레와 같은 모습이었다.

주인없이 비어 있는 두 의자는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려운 당시 그들의 모습을 암시하며 고흐가 스스로 인식한 고갱과 자신의 차이를 보여 준다.

고흐와 동거가 비극적으로 끝난 후 도피하듯 파리로 갔다가 다시 퐁타방으로 돌아가 그의 역작중에 하나인 <황색 그리스도>를 완성한다.

나도 이 그림을 싫어하는 교회오빠가 핸드폰으로 보내줘서 갖고 있었는데 평상시의 붉은 계열의 고갱그림이 아니라 신앙이 느껴지는 그림이어서 보관하고 봤던 적이 있다.

고갱이 타히티로 떠나기 전 그린 것 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강렬한 노란색으로 칠한 예수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의 깡마른 몸과 표정이 너무나도 단순하게 표현되어 샛노란 색채가 더욱 강조된다.

사람이 몸이 너무 안 좋으면 황달에 걸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고갱도 그걸 나타낸 건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난 고갱의 양식적 변화가 잘 드러나는데 작가의 주관이 담긴 강렬한 색채와 그것을 더욱 부각해 주는 평면화된 화면이  나타난다.

그는 원근법과 명암 표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고 각 채색면의 둘레를 윤곽선으로 감쌌다.

평면의 채색면과 굵은 윤곽선이 두드러지는 이 기법은 클루라조니즘이라고 하고 인상주의에서 비롯된 형태의 해체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작품의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는 여인들은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즉 그의 그림 속에는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섞여 있다.

그는 공간과 색채는 의도적으로 단순화했지만 사실적 요소를 작품에 함께 담았다.

이것이 주관과 객관의 조화를 추구한 고갱의 종합주의다.

이런 종합주의는 야수주의와 추상에 이르는 현대 회화에 영향을 주었다.

고갱은 타히티의 수도와 떨어진 곳에 정착을 해서 원주민의 삶에 주목했고 13살의 원주민 소녀  테후라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녀를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나이는 43살이었기에 대중은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당시에는 유럽인들말고는 전부 미개하고 구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고갱은 원주만들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표현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유럽인들에게는 고갱의 그림은 신성모독이었다.

고갱은 그의 작품을 뤽상부르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희망을 품고 온 파리에서 전시회는 실패하고 그림을 전혀 팔지 못해서 다시 타히티로 돌아 간다.

경제적으로 빈곤해지고 문란하게 생활해서 매독에 걸렸다.

그래서 고갱이 싫은 거다.

자신의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졌다.

고갱은 자살시도도 했지만 실패하고 매독과 영양실조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둘 때까지 티히티 원주민의 삶을 매개로 이국적 원시주의를 시각화해서 그렸다.

난 화가든지 작가든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은 정말 싫어한다.

가우디를 좋아하는 것도 금욕주의자라서 좋아한다.

고갱에게는 관심없지만 고흐와 관련이 돼서 읽는 것이다.

최후의 승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고흐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해서 10년 동안 1000점의 그림을 남겼다.

멋지다,,,,,








고흐는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서 작업량이 왕성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고 원하는 것을 가져 보기도 못했다.

실패의 아이콘인 것 같다.

고흐는 자신의 형이 죽고 이름을 그대로 물려 받았고 생일을 제대로 맞아 본 적이 없다.

그의 엄마는 고흐의 생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형을 애도했다.

고흐는 자신의 탄생이 어머니에게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자 더욱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고 어머니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 졌다.

그가 생전에 보여 주었던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그것이 실패했을 때의 깊은 상실감을 넘어선 절망감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게 뭔지 아니까 정말 마음이 아프다.

고흐는  내성적이어서 기숙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삼촌이 설립한 파리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있는 시기에 거장의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된다.

구필 화랑 런던 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후 본점을 파리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 여자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로 꼽히지만 그의 러브스토리나 그의 연인에 대해서 아는게 없다.

그냥 짝사랑을 하고 자른 귀를 창녀에게 줬다는 얘기는 들었다.

고흐는 신기할 정도로 일관되게 비정상적인 사랑 혹은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했다.

그것도 거의 짝사랑이었다.

첫 번째 짝사랑 상대는 런전 시절 하숙집 주인의 딸 유제니 로외였다.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한 그녀에게 거절당하자 고흐는 패배감에 시달렸다.

이 일로 화랑의 업무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삼촌의 배려로 파리지점으로 가게 된 것이다.

고흐는 항상 짠한 사람이다.

파리에서도 동료와 손님을 업신여기고 고객과 언쟁을 벌여서 일을 그만두었다.

상업적인 미술계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종교에 심취를 했다.

신학대학을 가려 했지만 못가고 선교사를 하다가 교단과 갈등을 빚어서  또 실패를 한다.

종교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다시 예술의 길로 눈을 돌렸다.

헤이그의 화실에서 미술교육을 받는데 렘브란트에게 영향을 받는다.

음영이 뚜렸한 색채 기법과 전체의 강렬한 효과를 위해 세부 묘사를 생략하는 방식등을 렘브란트이 작품을 통해 익혔다.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는데 그는 극빈층 노동자의 삶을 멀리서 연민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난의 고통을 체험하며 그들의 일상을 담아 냈다.

그에게 기법에 영향을 준 사람이 렘브란트라면 주제 면에서 영향을  준 사람은 밀레다.

고흐가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는 것은 고흐 신화화작업때문이다.

고흐는 미술학교에 다닌 적이 있고 불성실해서 퇴학을 당했다.

아틉[르펜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곳에서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를 접한 것이다.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일본의 풍속화로 극도로 평면적인 화면 속에 축약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우키요에에서 드러나는 흐릿하지 않은 확실한 그림체와 대담한 구도, 그림자의 부제 등의 특징은 회화에서 대상의 사실적 재현'에 익숙했던 유럽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매력으로 다가와 일본 문화 열풍이 불었다.

글로벌한 세상을 많이 넓게 접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고흐는 아를로 와서 화가공동체를 꿈꿨고 테오의 도움으로 고갱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전체적으로 싹뚝 잘랐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귀볼을 살짝 잘랐다.

그 사건을 신문에 나왔고 그 일로 고갱은 뒤도 안 돌아 보고 고흐를 떠났다.

고흐도 마을에서 추방이 되었다.

고흐는 사람들이 자신을 감금시켜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상처를 받고 정신병원으로 들어 간다.

테오는 결혼을 하고 고흐는 그 사실에 더 소외감을 느끼고 어두운 정신병원병실에서 걸작들을 탄생시킨다.

그 작품이 바로 <별이 빛나는 밤>이다.

나도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다.

그 그림은 뉴욕 현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뉴욕에 가면 고흐그림을 꼭 보고 싶다.

직접 보면 그 동안 고흐에 대해서 공부하고 읽었던 책들때문에 감동이 더 클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가 3일 밤을 새워 완성한 것이다.

파란빛과 보랏빛, 초록빛을 머금은 밤하늘이 힘차게 밤짝이는 노란 별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이 느껴진다.

짧지만 거친 선으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붓터치로 칠흑 같은 밤하늘과 그 아래 조용히 잠든 마을을 그려 냈고 밤의 풍경 한 쪽에는 거대한 탑처럼 사이프러스 나무가 솟아 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고흐가 이 시기에 즐겨 그리던 것으로 서구 문화권에서는 이 나무가 주로 무덤가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죽음이나 외로움, 고독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짝이는 밤의 풍경을 마치 검은 그림자처럼 가로막고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고흐의 소외감과 고독이 느껴지는 듯하다.

고흐는 색을 그 자체로 인간으로서의 화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이 작품에서 전해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처연함은 당시 작가의 내면이었을 것 같다.

고흐는 가셰박사의 치료와 격려를 받았다.

고흐가 가셰박사의 딸을 사랑하니까 그때부터 냉랭해져 고흐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있다.

고흐는 가계박사의 딸인 마르그리트의 초상화를 여러 점을 그렸고 마르그리트는 7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은둔해 살았다고 한다.

가셰는 고흐가 죽자 그림의 소유권을 가로채고 그의 작품을 모사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고흐 고갱은 다른 듯하지만 그들만의 주관적 색채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했다.

살았을 때는 성공적이지 않아 보였지만 후기 인상주의라고 이름이 알려졌고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표현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후기 인상주의는 프랑스에서 나타난 예술 사조이다.

이 책은 물론 너무 재미있고 그동안 잘 몰랐던 미술사사건을 알게 됐다.

난 언제나 고흐에만 빠져 있고 고흐만 좋아하고 고흐만 사랑한다.

고흐를 통해서 고갱에 대해서 알게 됐고 고흐를 통해서 인상파, 모네, 마네, 렘브란트, 아를, 뉴욕, 일본미술을 알게 됐다.

언제나 고흐를  시작점으로 화가들과 화풍을 알아가고 확장한다.

고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라이벌인 고갱에 대해서  읽고  서양미술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고흐에게 영향을 주는 건 모두 알고 싶어서이다.

미술이라는 장르에 시선이 멈추게 만든 건 바로 고흐이다.

이 책은 소장하고 있다가  시선을 끄는 그림이나 화가가 만났을 때 책장을 펼치면 멋진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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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 -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는 말투는 따로 있다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보면 상처받은 대화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잘 나오는 것 같다.

말은 잘하면 무기가 되고 자기 자신이 당당해진다고하는데 정말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난 말을 잘하면서 자기주장을 잘하고 유머러스하게 분위기를 주도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렵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은 요즘같은 막말과 독설이 심한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대화법이다.

얼마전에 강적들인가하는 프로를 봤는데 보수와 진보가 나와서 극명하게 대립하고 첨예한 의견으로 대화를 하는 프로였다.

 어떤 야당의 대표가 나와서 분당하는데 자기를 디스하면서 유머러스하게 얘기를 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관심이 가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를 믿느니 차라리 동네 개를 믿겠다,,남자를 믿느니 차라리 옆 집 수캐를 믿겠다,,이런 유머는 재미있으면서 간만에 크게 웃게 되는 것 같다.

예능만 보는데 보는 이유가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흠이나 불쾌하게 만드는 농담이나 웃긴 얘기는 싫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게 어떤 부정적인 상황이나 절망적인 상황도 반전으로 바꿔 놓으니까 그런 것 같다.

나도 안 좋은 분위기나 상황을 반전으로 바꿀 수 있는 말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공부하면 된다고 하니까 말발여신이 되는 꿈도 한 번 꿔 보고 싶다.

말이 무기로 다가올때는 뭔가가 잘못돼서 따질 때 무기로 다가온다.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이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 같다.

말을 잘하는 것에서 성공과 실패도 좌우한다.

말을 잘해서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기도  한다.

주변에서 보면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독설을 잘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것 같다.

말발이 세면 통쾌하게 받아치기도 하고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보면 말을 잘하고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기가 맞는 것 같다.

다그치는 말투도 무기가 된다.

손석희같은 분을 봐도 말을 너무 잘하고 가장 논리적으로 말을 해서 본받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난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독설을 하는 여자친구들에게 유머러스하면서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대처법을 알고 싶다.

그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탁 받아 치는 것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매력적이기도 한 것 같다.

곤란한 질문을 받았는데 그 질문을 한 사람을 다시 곤란하게 탁 받아 치는 것은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화도 안내고 큰소리도 안 치면서 자기가 표현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것을 할줄 알면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하는 좋은 기술같다.

면접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말을 잘하면 억울하게 당하고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같이 독설가들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말이다.

말만 잘하면 되는게 또 아니라 내면도 단련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마음도 전해진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말을 잘하면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들이 덜해지고 만만한 상황도 잘 이겨낼 것 같다.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나같은 경우는 그냥 넘어갈 때가 많고 속으로 삭히는 스타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두 배로 돌려 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알게 돼서  엄청나게 기쁘다.

타인에게 기분 나쁜 말을 듣거나 놀림받거나 조롱을 당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놀림 받을 일은 없다.

인상이 무섭고 험악한 분위기를 띠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무례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을 놀렸다가는 엄청난 반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타인에게 얕보이지 않는 방법은 싫은 말을 들었을 때 지체 없이 꼭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이 사람은 만만치 않구나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두 번 다시 싫은 말은 듣지 않게 된다.

난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그냥 참고 넘어 갔었는데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인이 반 장난으로 중국인의 변발을 잡고 돼지꼬랑지라고 부르자 그 중극인은 영국인의 넥타이를 꽉 쥐어 잡은 채 개 목줄이라고 반격을 가했다.

당하면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을 자신의 신조로 여기고 행동하는 것이 비결이다.

입력~~~~~!!!!!!!!

미주리 대학의 케네스 셀든박사는 당하게 되었을 때 그대로 돌려주면 상대방에게 만만치 않은 인상을 줄 수 있고 상대방의 공격 또한 멈추게 되었음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제대로 반격을 하자 상대방으로부터 친절하고 협력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상대방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는 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반격하는 말들을 정말 많이 알아 둬야지 또 다른 반격을 맞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반격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뿐 자신의 이득은 전혀 없다.

상대방에게 놀림받거나 무례한 말을 들으면 그 두배로 되돌려줘야 이 사람과 싸우는 것은 관두자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놀림을 받았지만 바로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센스 있는 말로 받아치지 못할 때가 있다.

정말 그렇다.

재치있게 받아치지 못하면 계속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왜 그때 그 얘기를 못했지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이 경우에도 어정쩡하게 웃어주면서 상대방의 눈치를 봐서는 절대 안 된다.

확실하게 상대방을 쏘아보며 눈을 피하지 않고 10초 정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이렇게도 할 수 없다면 자신이 화나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상대방에게 전해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꿔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적도 쏘아보는 것으로라도 반격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쏘아 봐야 한다,,,,,,,

재치있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꼭 쏘아 봐야 한다.

또 책의 마지막에는 양그림이 있고 포인트라고 하면서 팁을 준다.

양에게는 늑대나 이리에게 먹히는 이미지가 있어서 양그림인 것 같다.

약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괴롭힘을 당하기 마련이다.

무례한 말에는 바로 반격이 생각나지 않더라도 웃지 않고 노려봐 주는 것이 무시당하지 않는 비결이다.

이 책,,,,,,정말 실질적이고 필요한 팁을 준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군요라는 말에 솔직하게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때는 젊을 때뿐이다.

어느 정도의 연령이 되면 경험이나 지식이 풍부하게 보여야 유리하며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노출하지 않는게 좋다.

나도 너라 몰라서 그래, 이런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면서 은근히 기분이 나쁘다.

미시시피 대학의 폴 부슈박사는 타인에게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할 때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얕잡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무지를 지적 받는 상황이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거냐는 대답에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일단은 좀 더 확실히 해두려고 물어본 것뿐이다나 확인을 했을 뿐이다라고 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업계용어나 경제용어를 듣게 되면 뭐뭐라는게 뭔가요라고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질문하는 것 자체는 상관이 없지만 만약 모르는 것이 엔고 현상이나 디플레이션처럼 흔히들 알고 있는 듯한 용어일 경우 자칫 질문을 하게 되었을 때 정말 무지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지극히 상식적인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할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확인하는 건인데라고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난 후엔 처음 듣는 것처럼 흥미로워하는 반응을 보일 것 아니라 아, 그랬지라고 가볍게 응답을 해주면 된다.

어설픈 지식이라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다면 뭐뭐란 뭐뭐를 말하는 것이지요? 하고 물어 보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면 완전히 모르지는 않는다는 어필을 할 수 있다.

양의 포인트는 어느 정도 연령이 있다면 경험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모르는 이야기가 나와도 알고 있지만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한다는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

거절을 잘하는 사람의 표정과 기술은 따로 있다.

상대의 부탁에 무턱대고 예스만 외치는 것보단 자신의 상황에 따라 거절하는 것이 좋다.

그런 거절에도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요구받았을 때 다짜고짜 거절하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 게 뻔하다.

부탁을 받았을 때 싫어요라고 딱 잘라서 말하면 안되고 거절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말아야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본래 거절이란 상대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심리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행위이다.

그러니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상대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게 예의다.

싫다는 말을 뱉어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대신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살짝 역제안을 하는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의 사회를 맡아 달라고 하면 사회는 어렵지만 서기를 해줄께라고 한다.

이러면 하고 싶지 않은 역할을 피할 수 있었음을 물론이고 한편으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든 것이 된다.

누군가에게 귀찮은 부탁을 받아 거절 해야 할 때는 불쾌한 얼굴을 하지 말고 도리어 방긋 웃는 밝은 얼굴로 대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심리학과 귀도 헤르텔교수는 사람이 밝은 기운을 지니면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게 되더라도 다른 대안을 금세 찾아 낼 수 있게 된다.

밝은 얼굴로 상대를 대하면 머리 회전도 빨라져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금세 다른 좋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귀찮은 청소를 맡게 되거나 하기 싫은 역할이 주어져도 유쾌한 기분을 유지하다 보면 훌륭한 대안을 내놓게 되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거절은 해도 그 방법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기지 않으려면 단순히 NO라고 거절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다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전부 부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현명하다.

이때 싱긋 웃어주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머릿속에서 대안을 떠올리기가 더 쉽다.

딱 잘라 거절하는 건 안된다는 것이다.

난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일에 신경질을 내면 하찮아 보인다.

약한 개일수록 쉽게 짖는다고 하는데 금방 흥분하고 화내는 것은 대개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자존감이 바닥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작은 일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질적이 되면 하찮은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실수를 해도 그것이 작은 일이라면 눈감아주면 좋다.

작은 규범을 위반했다고 그때마다 화를 내서는 안된다.

난 무단횡단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 걸리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데 그런 걸 넘어가라는 건가,,,,

만나기로 했던 상대가 1분이라도 늦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

내온 차가 너무 미지근하다고 분노하는 사람,,비가 오는 날에 일 때문에 밖에서 영업하는 것이 최악이라며 투덜거리는 사람,,,

도장이 아주 조금 삐뚤어졌다고 해서 서류를 다시 작성해  오라고 지시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도 속 좁다는 인상을 주며 상대방은 정말 하나하나 까다롭네라는 불만을 품게 되어 그 결과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니까 주의해야 한다.

캐나다에 있는 몽크턴 대학의 뤽 부샤드박사는 466쌍의 부부를 조사하여 부인이나 남편, 어느 한 쪽이 너무 신경질적이면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신경질적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질에 맞지 않더라도 작은 일은 눈감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타인의 일에 대해선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쉽게 냉정함을 잃는 것도 속 좁다는 평을 듣지 않으려면 피해야 할 모습이다.

더운 날에는 덥다, 덥다고 불만을 쏟아 내고 추운 날에는 추워, 추워하고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푸념과 불평만 늘어 놓는 사람 역시 그릇이 작아 보인다.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참을성이 뛰어나다.

아무리 가혹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쿨한 표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대단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참아내야 하는 고통속에서도 남들에게 쉽사리 힘든 표정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런 일쯤은 자기에게 별 일이 아니라는 얼굴을 하면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동경이 따르게 된다.

조금 걸었을 분인데도 피곤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다른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작게 보인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곧바로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어린 시절에나 혀용되는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내심이 강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어필하면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

양포인트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집에서나 하든가, 아니면 내 마음을 허용해줄 만한 사람들 앞에서만 해야 한다.

평소에는 웬만한 작은 일은 넘어갈 줄 알고 참을성 있는 태연한 태도를 보여야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고 한마디로 대답을 하는 편이 좋다.

그 점은 대답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주절주절 떠벌리며 설명할 수록 신뢰와 호감은 줄어들고 만다.

대답할 수 없다면 대답할 수 없다고 간명하게 대답하는 편이 좋다.

어떤 협상에서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을 알아 두면 좋다.

협상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 의논하여 합의점에 도달하고 절충하는 것이다.

절충이란 양자의 의견을 알맞게 조정하여 서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의 말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기만 한다면 협상이라고 볼 수 없다.

자신에게 이득이 없는 협상은 복종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A라는 일을 요청받았을 때 곧바로 그렇다면 대신 B를 해주세요라고 조건을 붙여 응수하면 상대방은 그 사람을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런 당당함이 협상의 첫째 조건이다.

내가 A를 해줄테니 당신은 B를 해주세요,,나의 C와 당신의 D를 교환합시다,,이처럼 서로 조건을 붙이면서 누구 한 사람만이 이득을 독차지하는 게 아닌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맺어가는 것이 바로 협상이다.

협상을 잘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며 대화를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많은 협상을 해보면 된다.

운동경기처럼 꾸준히 훈련을 쌓으면 누구라도 협상을 잘할 수 있다.

경험을 많이 쌓기 위해서는 때론 용기를 내야 한다.

회사에서 커피나 차 심부름을 지시받으면 그럼 다음 프로젝트에서 제가 리더를 맡게 해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요청해봐도 좋다.

그것을 승낙해줄지 말지는 별개지만 일단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비칠 테니 이득이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서 경험을 쌓고 훈련을 해나가면 협상을 잘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어떤 조건을 붙이면 상대방이 받아들일지 어떤 대화 스타일을 유지해야 좋을지에 대한 감은 사전에 충분한 연습이 뒷받침될 때에야 얻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대화에서 생각하는 대로 입이 움직이지 않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협상력을 비롯해서 대화 테크닉, 말투 습관 등을 새롭게 가다듬으려 할 때는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실제 현장에서 지식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양포인트는 협상이라고 하면 왠지 무거운 인상을 줄 수 있으나 실은 결국 대화를 하라는 것을 가리킨다.

서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말을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협상이다.

인생을 사는데는 계속 말의 연속이고 협상의 연속인데 이 책은 그런 연속안에서 어떻게 대책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가르쳐 준다.

책대로 하면 많은 용기와 위로, 반박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100%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변하고 만만하지 않은 사람, 만만하지 않은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는 것이다.

말발이 없어서 억울한 사람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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