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열망하다 -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일상
R. T. 켄달 지음, 손정훈 옮김 / 두란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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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충만에 잠긴다는 얘기가 가슴 떨린다.

나도 하나님을 열망한다.

하나님을 열망하면 하나님을 받는다.

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더더더더더더더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하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서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필립 얀시, 고든 맥도날드,  팀 켈러, 티머시,  릭 워렌, 오스왈드 챔버스,  존 비비어,  헨리 나우웬,  로버트 멍어,  유진  피터슨, 조나단 에드워드책들을 무진장 읽었다.

지금 찰스 스펄전의 책을 읽고 있는데 좀 옛날스러운 어투도 있다.

오직 원하는 것은 주님이라고 되뇌이는 것은 그렇게 도움이 안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지 그 분을 깊이 경험할 수 있다.

저자는 시험도 기쁨도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성경을 계속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하니까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주는 건 전부 하나님이 허락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기쁨과 시험을 전부 조율하시는 분이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에 하나님의 다른 뜻을 깨달았다면 그것을 추구하라고  한다.

성경을 보면 끝까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부분도 있다.

지금보다 하나님을 두 배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 같다.

난 20살이 넘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음성을 듣기 시작했다.

직접 듣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말씀을 하셨다.

다윗이 하나님이 침묵하셔서 하나님께 울부짓었다는 얘기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점점 자주 듣기 시작하다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하나님의 음성이 그립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루에 3시간 이상 기도를  한적도 있다.

매일 그렇게는 기도를 못한다.

하루중에도 계속 하나님께 얘기를 걸기는하지만말이다.

내가 아팠던게 유익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나서 더 하나님의 음성을 엄청나게 자주 듣는다.

하나님도 나랑 교제하고 수다를 떨고 싶으신 거다.

나도 하나님이 산타처럼 뭔가를 해줄 때 더 사랑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하나님이 자신을 그냥 존재자체로 사랑해주시기를 원한다는 걸 알고 성경통독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 생각과 그분의 비밀과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걸 알게 된다.

난  언제나 하나님을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덛 알고 싶고 그분을 갈망한다.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분은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멋지고  대단하고 세계 최고의  권력자이고 능력자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스러움 그 자체이다.



나도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다니엘서를 보면 하나님이 지혜나  생각이나 마음을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의 곳곳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생각이나 마음을 주신다고 할 때가 많다.

성경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도 그의 나라는 어떤 것이고 의는 또 무엇이고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건지 항상 궁금했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 여러가지를  요구하기보다는 긍휼을 먼저 구하기 원하신다고 한다.

긍휼을 가장 먼저 바라는 이유는 성화된 사람이 많이 없기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기도를 끓임없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응답받지 못하고 있는 기도 제목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런 기도제목이 꼭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무언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어서이다.

나도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제일 싫은데 하나님도 그럴 것 같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자신을 알아주시기를 바라고 질투가 심하시다고 한다.

그런 분을 이용하려고 하면 그런 이용을 받아주시겠는가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존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분께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에게 우리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분이 필요해서이다.

우리가 아쉬운 것이다.

질투가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 삶에서 그분의 뜻이 실현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유일하시면 진실하시고 하늘과 땅과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절대자이심을 우리가 인정하기를 바라신다.

나는 하나님이 그런 절대자라는 걸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회복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고 긍휼을 구하게 된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고 그리 아니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공의는  성취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일에 곧장 뛰어드시도록 만들 수 없음을 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고 하셨다.

그럼 전부 하나님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질투하시는 성품과 같이 그분의 속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

이것이 그분의 영광의 핵심이며 그분의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도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기대속에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나병 환자는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나아가 주님이  저를 치유해 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원하시기만 하면 주님이 저를 낫게 할 수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우리도 나병환자처럼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고 우리가 간청할 때 긍휼을 베풀고 싶어 하신다.

그러한 간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위엄을 높여 드릴 뿐 아니라 그분에 대한 우리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경을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그 부분을 꼭 원하시는 것 같았다.



난 매일 기도를 하고 있지만 항상 기도를 잘하고 싶다.

잘하는 기도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기쁜 기도와 나도 만족감이 있는 기도이다.

상호보완이 잘 된 기도를 하고 싶달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보면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전 세계 위에 높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유명해지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도 유명해지시는 걸 좋아하시는구나,,,,

난 유명해지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또 아닌가보다.

난 학교에 다닐 때 난 모르는 애들이 날 알고 있어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 그게 좋은 현상이었던거다.

하나님이 그분의 기도 제목을 우선순위로 삼았다면 하나님의 기도제목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 제목을 올려 드리기전에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존중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성경의 구약을 보면 질투하신다는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그래서 나도 지기 싫어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질투를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그분께 집중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난 항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부분이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부분은 예수님이 상산설교를 하실 때 언급을 하신다.

그 설교는 성령론에 해당한다.

천국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성령님이 다스리는 영역이다.

천국에 거하는 것은 더 이상  근심하지 않으시는 성령님으로 충일한 곳에 사는 것이다.

충일하다는 것은 가득차서 넘친다는 뜻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시키겠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주장이라고 한다.

지난날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겠다는 약속이다.

도덕법(십계명)과 의식법(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법)과 민법(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관한 율법들을 모두 끝가지 지키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그 사명을 완벽하게 성취하셨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것은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을 정확히 이루었음을 선언하는 승리의 선포였다.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낫다는 것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음욕을 품지 않으며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것은 근심하지 않는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내면적인 의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관심사를 우선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왕국이다.

근심하지 않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필요와 욕망을 구하기보다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는 것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하나님 자체를 더깊이 경험하기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하나님께 더 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될 것인지 자기선택이다.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기를 원하고 그분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신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 자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무엇이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지,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우리 속에 근심하시지 않게 하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분의 길을 알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우리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줄지 항상 고민하는 것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바리새인들의 의를 넘어서고 산상설교 말씀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하나님 나라이 진정한 의미를 꼭 붙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열망한다는 것은 나 자신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에 대해서 계속 알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려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임재에 더 큰 배고픔과 갈망을 갖게 만든다.

나도 성경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을 수밖에 없다.

계속 읽고  읽어도  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게 또 있고 하나님에 대해서 또 뭔가를 알게 되고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중독성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배고픔과 갈망은 하나님이 얼마나 실제적인 분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주셨다.

신약은 더 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단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안다는 것인데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스릴이 넘친다.

난 그게 뭔지 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더 많이 경험하도록 기록되어 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더 큰 임재에 목이 마르다면 그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도 그럼 하나님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거네,,,,

그분은 충만히 받게 되리라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도 아니면서 그저 나를 놀리거나 헛된 희망을 주어서 미혹하게 하거나 그저 갈증만 나게 하려고 그런 열망을 나의 마음에 주신 것이 아니다.

다행이다.

내가 하나님을 너무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나를 너무너무 원하신다는 것에  기쁨이 벅차 오른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급함과 배고픔, 목마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런 열망은 사탄이나 인간이 집어넣어 줄 수 있는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그분의 더 깊은 임재를 추구할 수 없다.

내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내가 그런 열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증거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섭리하고 계시니  난  축하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숨쉬는 공기보다 더 실질적이고 날마다 보는 자연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계신다.

두 눈도 부릅뜨고 나를 지켜 보시고 계시지,,,,부담스럽게말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실재하신다는 사실과 성경이 진실되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도 없다.

난 매일 흥분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액티브티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갑자기 행복해진다.

이 책을 기도시간에 먼저 읽고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기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도를 갖게 하는 이 책은 그래서 유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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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국은 없다 - 시진핑이 모르는 진짜 중국
안세영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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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위대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위대하지 그 광활한 땅과 인력에도 그것밖에 안되면서 뭐가 위대하다는 건가,,

우리 민족이 그 정도의 자원을 가지고 있었으면 벌써 세계 최고가 됐을거다.

우리나라가 왜 중국의 속국이야?

시진핑주석 정말 웃기다.

난 공산당과  중국이 싫다.

유튜브에서 위그르족들을 탄압하거나 홍콩에 하는 짓들을 보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체제와 나라중에 하나이다.

난  중국에 간이식하러 간다고 한 목사님이 있는데 이식을 하고 나서도 건강했다.

어떻게 돼지간이 인간에게 맞을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돼지간을 이식했다고 하는데 위그르족들의 영상을 유튜브로 보니까 중국 체제에 반대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장기를 살아 있을 때 빼서 이식을 했던거였다.

그게 인권이 있는 나라인가,,

공수처도 중국꺼를 본 딴 것이고  홍콩인사들이 소리 소문없이 잡혀가는 곳이 공수처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도 중국 사람들에 의해서 잠식 당하고 있는데 철저히 조심하고 법적 제재를 해야 한다.

태양광도 전부 중국꺼고 중국배만 자꾸 불려 주고 있다.

왜 우리가 중국몽을 따라야 하지?

한국몽을 꿔야지,,

저자의 유튜브 방송이 있다고 해서 또 들어봐야겠다.

중화사상을 가진 사람들 보면 정말 짜증난다.

난  중국이 패권 국가가 될 수 없는 5가지 이유는 꼭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우리나라는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도 일본도 미국도 세계 어떤 나라도 함부로 할 수 없고 건드리지 못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중국의 패권주의가 무너지고 망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난  우리역사에 자부심이  크다.

트럼프도 항상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데 나도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로 위대하게라고 외치고 싶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 아니라는 반박을 할 수 있는 논리를 갖추고 시진핑에게 페이스북으로 답을 보내고 싶었는데 시진핑은 페이스북이 없다.

그럼 시진핑은 왠지 잡아 갈 것 같다.

아베한테는 가끔 보냈는데말이다.

저자의 얘기대로 중국은 절대로 영원히 패권국가가 안 됐으면 좋겠다.










일본, 중국, 북한, 러시아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가  잘 버텨서 영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해서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고 얘기한 것에 분노를 느꼈는데 시민단체나 문재인정부는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만약 일본이 그랬다면 가만히 있지 알았을거면서 북한이나 중국이 우리를 비방하면 가만히 있는 정부가 이해가 안된다.

국격이 떨어지고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더 대단한 나라이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삼각구도의 군사동맹국이었다.

한족이 위험할 때 우리나가 도와준 적도 너무 많은데 그런 자부심있는 역사에 대해서 왜 얘기를 안 하는건지 모르겠다.

중국몽에 동참을 하겠다는 둥 사드나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왜 말을 못하느냐말이다.

중국몽은 중국몽에서 끝나고 우리는 우리의 꿈을 꿔야 한다.

중국은 미군만 나가면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심산을 가지고 있다.

중국외교관도 미국만 없었으면 한국도 가만히 안 둘거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난 우리나라 대통령이 어느 나라를 가나 당당하고 한국의 국격을 높였으면 좋겠다.

난 아빠엄마가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라고 해서 항상 어디를 가나 누구를 대하나 당당하고 자부심있게 대하려고 한다.

난 조선을 혐오하는게 그때도 어느 나라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는 거다.

우리나라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상황 판단을 못해서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상사회여서 신분이 낮은 사람과 여성에게는 지옥같은 곳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중국과 친하게 지내서 도움이 됐던게 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도 한족뿐만 아니라 거란이나 몽골족이 다스린 적이 많다.

그런 나라가 무슨 중화사상이 있고 정통성이 있느냔말이다.

주변에서 중국사람들을 쓰는 사장님들의 얘기를 들으면 중국사람은 거짓말을 잘하고 돈밖에 모르고 시간을 안 지킨다고 한다.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정직성을 가진 민족은 아니라는 거다.

중국의 역사때문에 시진핑주석이나 베이징 사람들은 한국 같은 북방 몽골리안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을지도 모른다.

송나라, 명나라 같은 중국의 한족 왕조를 섬기는 모화사상에 빠져 우리의 정체성을 소중화에 두고 우리도 고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것을 당연한 역사로 받아 들이면 안 된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패권국가로 부활하는 중화제국의 그늘로 들어갈지 모른다.

동북아 역사를 중국과 한반도 고려, 조선이라는 양자관계로 보면 중화제국-속국같은 상하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동북아 역사를 한족, 한반도, 북방민족으로 이어지는 마의 삼각구도에서 봐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 굽실거리는 비굴한 속국이 아니었다.

대륙에서는 한족 왕조와 북방 민족이 끓임없이 싸우고 점령하고 통치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한족 왕조와 북방 민족 사이의 파워 게임에 따라 우리는 궁지에 몰린 한족 왕조의 군사동맹국이거나 북방 몽골리안 세계의 형제국가 역할을 했다.

강력해진 거란, 몽골, 여진 등 북방 민족이 중원을 정복하려면 인구가  겨우 수백만 명인 그들은 싸울 수 있는 장정을 전부 다 동원해 만리장성을 넘어야 했다.

그렇게 중국을 도와주면 고향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실제로 압록강을 건너면 만주족의 어지간한 본거지는 몇 주 만에 달려가 공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남쪽으로 가서 싸우고 있다가 정통적으로 송나라, 명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던 고려, 조선이 한족 왕조와 손을 잡고 압록강을 넘어 협공하면 완전히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된다.

그래서 항상 북방 민족은 중원으로 출병하기 전 한반도부터 평정하려고 했다.

점령이 아니라 평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왕조를 적당히 굴복시켜 중원의 한족 왕조와 싸울 때 최소한 뒤통수만 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족 왕조입장에서는 고려, 조선이 일종의 군사동맹국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제2 전선을 형성해 북방 민족의 전력을 분산 또는 약화시켜주었다.

강성해진 거란, 몽골, 만주족에게 몰리던 공나라, 명나라에 군사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 것이다.

그리고 고려, 조선때 첩지를 받았다거나 조공을 바쳤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과거이고 지금은 아니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를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보다 수평적 대등관계로 봐야 한다.

고려, 조선은 한반도에서 제2 전선을 형성해 북방민족의 위협을 받는 한족 왕조를 도운 군사동맹국이었다.

동맹국은 대등관계지 상하관계가 아니다.

비한족 왕조, 즉 북방 몽골리안인 요나라, 원나라, 청나라와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혈연적, 역사적 관계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족을 가혹하게 대한 것과는  달리 고려와 조선을 대했다.

역사에서 안보를 더 생각하게 된다.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국제정세 변화를 잘 분석하고 서희장군처럼 실용외교를 펼쳤더라면 항몽전쟁, 병자호란 등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배계층의 잘못된 명분론, 즉 한족의 중국을 하늘과 같이 모시는 모화사상 때문에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전쟁에 휘말리고 애꿎은 백성들만 고초를 겪었다.

우리 역사 해석의 고질적 병폐인 자학적 한풀이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평소엔 국방을 소홀히 하다가 외적의 침략을 당해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초를 겪게 하고는 모든 잘못을 침략자의 탓으로 돌린다.

안보를 등한시한 통치자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입조를 거부했으면 그들이 채들어올 것을 알고 당연히 전쟁 준비를 했어야 한다.

새로운 역사교육은 삼전도의 치욕에 분개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인조와 당리당락만 일삼던 조정 대신들의 책임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책임을 더 냉정히 묻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도자와 백성이 합쳐 나라를 튼튼히 지키지 못하면 주된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돌아온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절대 2050년까지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허황된 군사적 패권을 꿈꾸는 중국을 구소련식으로 몰락시키는 것이다.

냉전시대 국민총생산의 30퍼센트가 넘는 돈을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쏟아붓던 소련은 경제 파탄으로 자멸했다.

미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중국의 6개 항모전단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사일 같은 무력을 쓸 필요가 없다.

군비 확장에 퍼붓는 달러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미국에서 흘러 들어 간 것이다.

그 돈줄을 막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8년부터 관세전쟁을 시작해 중국을 후려치고 있다.

2~3년이면 미중 무역전쟁이 끝날 거라고 한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을 단순한 경제전쟁으로 보는 낙관론이다.

경제 패권뿐만 아니라 군사적 패권 그리고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의 싸움까지 뒤얽힌 복잡한 싸움이다.

미국이건 중국이건 한쪽이 큰 상처를 입고 굴복하기 전에는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기존의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해야 한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오늘날 중국의 번영은 차이나 혼자 잘해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다.

WTO에 가입해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을 하고 세계의 소비자들이 중국 물건을 사주고 외국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해서이다.

중국에 투자한 미국, 일본, 한국 등의 글로벌기업들이 일본, 한국 등에서 수입한 부품, 소재를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 생산하여 최종재를 미국 등 세계 시장에 팔아서이다.

국제분업을 전문용어로 글로벌 가치사슬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투자한 미국기업의 철수 명령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글로벌 가치사슬을 아예 흔들어버리려는 것이다.

이건 중국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과거 미국기업의 해외투자 패턴을 보면 아무리 기대 수익이 높아도 정치적 리스크가 큰 나라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차이나 리스크가 임계점을 넘어 애플, 구글, 인텔 같은 미국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유럽기업들과 우리나라 기업들도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빠져 나오고 있다.

중국처럼 덩치만 커진다고 패권국가가 되는 게아니다.

조지프 나이가 지적하듯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소프트 파워라고 하는 보편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대영제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자유 같은 것을 말한다.

중국이 내세우는 건 고작 위대한 중화사상이다.

이건 보편적 가치가 아닌 자국우월주의일뿐이다.











세계 역사를 되돌아볼 때 위대한을 내세운 나라 치고 제대로 된 나라가는 없다.

위대한 독일 게르만 민족, 위대한 대일본제국처럼말이다.

세계질서에서 우두머리가 되려면 따르는 무리, 즉 동맹국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70여 개의 동맹국이 있다.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 29개국과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끊임없는 영토 팽창욕으로 국경을 접한 1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하는 중국은 외롭다.

중국의 동맹국은 파키스탄과 북한뿐이다.

전혀 도움이 안되는 동맹국이다.

시진핑은 주석이 너무 일찍 칼을 빼들었다.

미국이 1870년대에 경제적으로 영국을 추월하고 70년 정도가 흐른 1940년대에 군사패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중국은 2050년에 경제, 군사 두 개의 패권을 한꺼번에 차지하겠다고 한다.

독일제국, 일본제국, 구소련 모두 중국처럼 너무 성급히 군사패권에 도전하다가 자멸했다.

세계 역사를 보면 경제패권과 군사패권이 바뀌는 데는 적어도 20~30년의 시차가 있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마음이 급한 데는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국몽이 시진핑의 개인적 야심인 영구집권을 위한 국내정치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건 지도자가 법을 바꿔 영구집권을 하려면 국민에게 꿈을 심어줘야 한다.

이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장기집권을 해야 한다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미국, 일본의 자유주의 국가와 중국이 패권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 일본 동맹의 편에 서느냐 아니면 중국의 편에 서느냐는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미국이다.

일본과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국가들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고 무늬만 시장경제지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국가자본주의 국가다.

또한 중국은 법치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중국어공부를 해볼까해서 중국잡지나 중국신문 중국방송을 찾아 봤는데 별로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게 공산주의 사회주의였던거다.

시진핑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많은 기대를 가졌지만 시주석이 영구집권의 길을 트고 중국몽을 내세우며 역주행하는 것을 보고 모두 중국에 실망을 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한족 왕조인 한, 송, 명나라를 숭상했다.

우리 스스로를 작은 중국, 소중화라 칭하고 북방 민족을 오랑캐라 깔보며 그들이 세운 원, 청나라에는 진심으로 복속하지 않았다.

병자호란도 따지고 보면 청나라에는 진심으로 복속하지 않았다.

병자호란도 따지고 보면 친명배청 사상에 빠려 신흥왕조 청을 무시하고 망해가는 명나라를 따르다가 자초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우릴 동쪽 오랑캐란 뜻의 동이라고 부르며 깔보았다.

명나라는 조선을 순이라고 말을 잘 듣는 오랑캐라고 불렀다.

이것은 확실히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잘못된 소중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혈연적, 언어적으로 우리 민족의 주류와 가까운 몽골, 여진, 튀르크 같은 북방 몽골리안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역사적 한중관계가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바뀌어 그간 느껴 보지 못한 역사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민주화를 하지 않고 선진화에 성공한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오늘날 같은 지식기반 경제 사회에서는 창조적 인적 자본을 많이 가진 나라가 국제경젱에서 앞선다.

이 창조적 두뇌는 사회의 다양성에서 나오고 다양성은 민주사회에서만 싹튼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정신없이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것도 민주사회의 다양성이다.

공산당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국에는 우수한 인력은 있어도 창조적 인력은 없다.

중국의 우수한 인력을 보면 공산당이 허용한 제한적 분야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인공위성도 쏘아 올린다.

그런데 이들은 정부의 허영을 벗어난 다양하고 창조적인 분야에서는 헤맨다.

아이폰은 만들지만 중국에는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은 없다.

개인적인 문제, 가족문제, 거기다가 나라문제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짠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나라가 최고이고 가장 사랑하는,  조국은 쓰고 싶지 않아서  모국, 내나라이다.

우리나라의 이념과 국민들이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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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학습법 - 배움을 즐기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고수 시리즈
한근태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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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배움을 좋아해서 학습법을 한 권으로 정리를 했다고  한다.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메모를 하고 카테고리화해서 지식을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몰두해야 한다고  한다.

저번에도 책을 한줄이나 한 페이지로 요약을 하라고 하는데 그 방법이 맞는데 긴 제시문을 읽고 그 글을 요약하는 능력이 있으면 머릿속에 지식이 저장도 잘 되고 시험 문제도 잘 풀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서평을 쓸 때 한 권을 처음부터 전부 다 읽고 외워서 서평을 쓰니까 진짜 내 머릿속에 지식이 남았다.

자신의 언어로 정리를 할 줄 알고 창출을 하라고 하는데 그게 진짜 맞는 말같다.

지식이 무기가 되고 몰두해서 하는 공부가 진짜 배움이라고  한다.

부는 세습이 되지만 지식은 세습이 되지 않는다.

나도 그 말을 이해하는게 부모님은 전부 박사이고 책벌레인데 나만 공부나 책보기를 좋아하고 남동생은 평생 책 한권을 안  본다.

석사까지 공부해도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식을 획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식을 접하기가 또 힘드니까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

지식은 철저히 개인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이 중요해지는 세상에 지식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엄마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계속 배움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삶의 계층도 업그레이드되고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사셨다.

대학만 나오고 배움을 멈춘 사람들은 무식하고 돈밖에 모르고 건강관리도 못하고 죽기도 빨리 죽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공부가 몰두하게 한다.

난 책을 문진장 읽었는데 모르는게 너무 많은 것 같고 책을 읽어도 읽어도 또 읽을 게 읽고 더 알고 싶고 더 궁금한게 점점 더 생겨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저자가 쓴 책도 4권을 읽었다.

저자와 코드가 맞는 것 같다.






지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요를 해도 지나치지 않고  돈과 달리 지식은 세습이 불가능하다.

지식은 철저히 개인이 노력하여 얻어야 한다.

그개 더 매력적이다.

이번에 영국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영국은 끼리끼리 결혼을 한다는 주의라고 한다.

과거에는 의사가 간호사와 결혼했지만 요즘에는 여성의사도 많아서 의사는 의사끼리, 변호사는 변호사끼리 결혼을 한다고 한다.

끼리끼리 결혼을 안하면 아예 결혼을 안하다는 주의라고 한다.

아빠엄마도 같은 박사이니까 끼리끼리 결혼을 한 것 같다.

난 책을 많이 읽는 엘리트랑 결혼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지식의 완성자이고 난 하나님 딸이고 연인이니까 지식의 추구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빨려 든다.

문체의 비밀같은데 어떤 문체를 써야 사람을 빨려 들게 하는지 난 아직 잘 모르는데 그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어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만 읽고 싶고 읽는게 힘든 책이 있다.

지식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데 배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저자는  배움을 포기하는 것은 원주민같다고 하는데 캐나다의  빨간머리앤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인디언 원주민 아이들을 천주교학교에서 잡아 간다.

아이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영어만 쓰라고 하고 거의 학대를 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원주민은 그런 대우를 했던 것이다.

배움의 시작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무언가를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에서 출발한다.

늘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모든 것에서 배우는 것, 배운 지식과 경험을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주변과 나누고 피드백을 받는 것, 이것이 지식의 신진대사다.

경험만 하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원주민으로 머문다.

원주민은 사전적으로 원래부터 그 지역에 쭉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저자는 그곳의 지리에는 빠삭하지만 타지인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은 갖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지식인으로 거급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론적인 것을 결합시켜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성공했다면 왜 성공했는지, 이론적 바탕이 무엇인지 자신이 알아 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문제가 닥쳤을 때 대응이 가능하다.

경험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거기에 새로운 경험을 통해 그 이론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분야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교류도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는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경영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최초의 세대라고 한다.

영문학과에 다닐 때는 놈 촘스키, 놈 춈스키, 물리학과에 다닐 때는 아인쉬타인, 아인쉬타인, 경영학과에 다닐 때는 피터 드러커, 피커 드러커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이 책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또 피터 드러커이다.

어떤 분야의 역사는 오랜 시간이 됐어도 항상 등장하는 인물은 일치한다.

그가 그 분야에서 업적을 크게 이뤄서 그런 것 같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최고가 돼야 하는 이유를 알고 최고가 되고 싶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 그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다.

나도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다.

최고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최고는 글자 그대로 한 사람만 존재한다.

최정상에 여러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 한다.

최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공부는 되고 싶은 미래 내 모습과 현재 내 모습사이의 갭을 메우려는 모든 행위다.

너무 멋진 말이 아닌가,,,,,

공부에 대해서 다시 보이고 공부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다고 할까,,,,

진정한 배움을 뇌가 기억하는 것을 넘어 몸이 기억하는 것이 참다운 지식이다.

배어 들다에서 배우다라는 말이 나왔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학, 습, 관, 행의 프로세스를 익혀야 한다.

이 글자에서 나온 말이 학습, 습관, 관행이다.

학습하고 이를 습관으로 만들고 이게 내 몸에 관행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매일 꾸준하게 학습하다 보면 어느새 최고가 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문제는 집중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문제점을 명확히 하고 거기에 레이저처럼 생각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강할 때 무언가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결연할 때 실마리를 찾게 된다.

돈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는 수가 있다.

눈먼 돈이 갈 수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사둔 땅값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식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간다.

지식은 절대 스스로 찾아 가지 않는다.

미래는 지식의 시대다.

저자는 지식의 습성에 대해서 정말 잘 알려준다.

뭔가를 하면서 진짜 집중을 해봤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을 하느라 식사시간을 깜빡했다거나 책을 읽다 보니 날이 훤해졌다거나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니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갔던 경험이 바로 집중이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목적성보다는 뭔가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때 행복을 느낄 수 있고 그런 시간이 축적되면 뭔가 좋은 관계도 성과도 만들어진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최고의 장애물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산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덜 성숙한 사람이다.

인간은 가만히 놔두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온갖 생각이 뇌를 점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만히 있는데 집중력이 좋아지지 않는다.

집중력은 훈련의 산물이다.

매일 근육운동으로 근육을 만들듯이 집중력 근육을 키워야 한다.

운동할 때는 운동만 하고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앞 사람과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야 하고 글을 쓸 때는 글에만 집중해야 한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건 책 내용을 한마디로 줄일 수 있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다.

강연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걸 아는 것은 강연 내용을 한마디로 줄일 수 있으면 된다.

요약은 최고의 공부다.

요즘 읽은 책들에서 계속 나오는 얘기가 한 줄 요약, 한장 요약이다.

뇌는 말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글을 읽는 것에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독을 많이 하고 정독을 한다.

공부의 핵심은 독해력과 요약능력이다.

독해력이 부족하면 업무파악이 잘 안되고 요약능력이 부족하면 보고 하고 소통하는 것이 힘들다.

두 가지 능력을 올리는 방법이 독서이다.

뇌는 익숙하고 쉬운 것에 빠져들면 성능이 뚝 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는 것도 뻔하고 쉬운 내용만 잔뜩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집도 텔레비전이 고장 나기 일보직전인데 완전히 고장이 나면 안 사기로 했다.

지금도 cnn이나 nhk만 조금 보고 거의 안 보기 때문이다.

뇌를 기쁘게 하려면 자격증, 영어 학습, 까다로운 문제, 두꺼운 책 등 한 번 보고 싶지만 어렵고 부담스러워서 미뤄뒀던 일을 보면 된다.

뇌는 시간 여유가 많다고 성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뇌는 시간의 압박을 반가워한다.

단 5분이라도 좋으니 완벽하게 학습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뇌는 완벽하게 몰입할 때 최고의 기쁨을 맛본다.

과거에는 글을 읽지 못하면 문맹자였지만  요즘에는 책을 읽기를 멈추고 배우지 않으면 문맹자라고 한다.

저자의 책은 정말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저자가 영원히 배우는 지식주의자라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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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데이비드 굿하트 지음, 김경락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난 책을 많이 읽지만 고흐책을 몽땅 읽었었는데 그 책을 끝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끓으려고 했다가 다시 고흐에 빠졌다.

어릴 때부터 아인쉬타인이나 스티븐호킹 양자역학, 화이트홀, 블랙홀, 상대성이론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 세상을 넘어 뭔가 대단하고 뛰어넘을 무언가 인간의 근원과 비밀을 찾아 낼 거라는 기대였지만 그런 기대는 없다는 걸 알았다.

미술에 대한 책들도 무진장 읽은 이유는 예술이 이 세상에서 뛰어넘을 무언가를 찾고 싶은 기대였지만 세금포탈과 화가들의 타락성만 진하게 알았다.

고흐나 모네를 끝으로 물리와 같이 미술에 대한 관심은 나에게 어떤 높은 사상이나 이상을 심어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냥 그들의 그림을 내 삶의 배경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영문학, 물리학,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그런 높은 이상과 이 세상을 뛰어넘는 사상을 기대해서인데 내가 깨달은 점은 실질적인 학문과 책을 추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 정치, 신앙, 건강, 외국어, 심리, 관계성에 대한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

이 책도 그런 발로에서 읽고 싶어졌다.

난 정치는 관심을 안 가졌다.

정치는 속물적이고 골치 아프고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걸 보면서 보수와 진보, 좌파, 우파가 뭐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가 국회의원 보좌관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나도 했는데 아빠엄마가 가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분은 지금 정권의 높은 사람이 됐다.

난  내가 진보라고 생각했는데 진보가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 인사들인  유시민, 조국, 안희정, 진중권의 책들만 읽었다.

강남좌파인 그들의 위선을 보고 그 책들을 전부 버리고 중보인사의 책들을 보면서 그런 건 사회를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가 돼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어서 보수에 대한 책들을 계속 읽고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서 마르크스는 논리적 모순이 계속 보이는데 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이 트럼프를 뽑는 걸 보고 미국인의 수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치에 대한 책들로 이제 무장해야 할 것 같아서 읽었다.

난 기독교세계관만 잘 정립하면 될 줄 알았더니 이데올로기도 정립을 또 잘해야 한다.

할게 어찌나많은지,,,








내가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이승만대통령이 세운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이다.

4월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승리하지 않으면 베네수엘라나 베트남꼴이 난다는 걸 감지했다.

여당에서 발표하는 정책들이 내가 책에서 읽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책이 많다.

난  안희정이나 진보인사라고 했던 사람들이 자신은 민주주의자라고 했는데 그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이승만대통령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보수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이승만대통령이 얼마나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분인지 처음 알았다.

항상 4.19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과오뿐만 아니라  업적도 엄청난 분이었다.

이승만대통령은 돌아가실 때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기독교기반을 엄청 두고 있다는 걸 이번에 또 알았다.

저자는 브렉시트와 트럼프가 당선이 되는 걸 보면서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현상은 포퓰리즘으로는 해석이 안 된다고 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정치적 사건은 충격적이지만 일탈이라고 하는 인식이 강하다.

정상이 아니라는 거다.

나도 트럼프가 당선되는 걸 보면 미국사람들의 수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도 일부3%만  엘리트이고 남부시골같은데를 가면 말을 타고 농사를 짓고 학력 수준이 낮다고 했다.

내가 하는 얘기의 거의 다는 책에서 읽은 것들이다.

브렉시트의 지지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많이 배우지 못한 인종주의자라는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

이들의 지지를 얻는 정당은 극우 정당이거나 부정적인 포퓰리즘 정당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류 미디어에서 무례하고 비상식적이며 예측이 어려운 럭비공 이미지라고 한다.

저자는 영국 사회의 큰 틀에서 섬웨어와 애니웨어로 구분한다.

애니웨어는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 대학을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며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말한다.

애니웨어라고 하는 이유는 어디든지 머무를 수 있으며 변화를 반기는 그들의 속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애니웨어는 런던이든 뉴욕이든 서울이든 도쿄든 어디에서도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으며 다양한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을 환영한다.

지난 30여 년간 다양성과 경쟁을 축복하는 쪽으로 이뤄진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가 그들의 이해관계에도 유리했다고 한다.

섬웨어는 어딘가에 머무르면서 변화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동체와 전통,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을 중시한다.

중하층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하지만 지난 30년간 영국 정치에서 존재감이 없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잊힌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이 책을 옮긴이는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조국 법무부 장관사태를 보면서 현 집권이나 이들을 지지하는 여론 주도층의 발언과 태도를 보면 이들의 세계관엔 경쟁 상대이자 타도 대상인 검찰과 자유한국당 등 보수 세력으로만 들어차 있고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는 통째로 누락돼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한다.

야당 역시 집권당을 타박할 뿐이지 한국 사회 저류에서 누적되고 있는 불만이나 분노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과의 괴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노정돼 있다.

노정은 거쳐지나가는  길이나 과정이니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외면했을때는 말이다.

잊힌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 정서를 오늘날 엘리트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형 브렉시트, 한국형 트럼프가 등장한다는 말이다.

영국은 애니웨이와 썸웨어, 중간층이 있고 중도 좌파정당은 거의 쇠락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대표는 영국에서 폭망한 중도 좌파를 왜 자꾸 고수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유럽의 일부 중도 좌파 정당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지지 기반을 잃고 있다.

성경에서도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고 해서 그런지 애매한 건 망하는 것 같다.

노동 계층은 포퓰리즘 정당으로 중산층은 녹색당이나 좀 더 좌파 성향 단체로 표심을 옮겨 가고 있다.

핵심 지지층인 대학 교육을 받거나 대학 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 상당수가 녹색당과 민주주의 등의 자유주의 성향 정당으로 옮겨 갔다.

애니웨어와 섬웨어 간 가치 균열은 사회 민주주의 쇠락을 보여 준다.

역사적 사회 민주적 목표가 달성됐으며 탈산업화가 진행되고 있고 사민주의의 튼실한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은 무너지고 있으며 포퓰리즘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사민주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보수당 정부 행보에서 보듯이 노동당과 경쟁하던 정당들은 생활 임금제, 견습세와 같은 노동당이 주장하던 정책을 수용하고 있으며 사민주의 용어도 쓰고 있다.

중도 우파 정당도 지지율은 낮아지고 있다.

이들 정당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에 표를 뺏기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이민 개방에 반대하면서도 유럽 통합과 자유 시장, 기업 규제 완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한다.

보수당은 주요 정당 중 당직자의 대졸자 비중이 가장 작다.

노동당은 대졸자가 60퍼센트이지만 보수당은 38퍼센트이다.

최근 들어 보수당이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는 이유이다.

보수당은 섬웨어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보수당 당원 중에는 부자도 있지만 섬웨어도  많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인구가 늘고 자유주의적 흐름이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노동당이 가장 큰 수혜를 누린다.

노동당 혹은 그 뒤를 이을지 모르는 새로운 정당은 중산층 중 좌파 성향 유권자를 지지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

보수당은 중산층의 우파 진영을 장악하고 포퓰리즘 정당은 노동 계층 유권자를 놓고 중도 좌파 혹은 중도 우파 정당과 쟁탈전을 벌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중도 좌파 정당은 계속 고전을 거듭할 게 확실하다.

중산층에 진입한 소수 인종들이 노동당을 떠나 우파 정당으로 옮겨 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를 일군 인도와 중국계 사람들이 다수다.

이들은 노동당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버리고 경제적 이해관계를 좇아 투표하고 있다.

소수 인종 중 지식은 압도적으로 좌파 성향이 많다.

백인 노동 계층인 섬웨어가 중도 좌파 진영 내에서 목소리가 큰 애니웨어에 둘러싸여 소외되거나 포퓰리즘 정당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탓에 좌파 진영 내 자유주의적 애니웨와 소수 인종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 노동자는 시장에서의 지위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정치인이 약속한 노동의 긍지나 안정된 생활, 경제적 성과 기여에 따른 인정 등을 체감하지 못한다.

브렉시트 투표와 같이 섬웨어가 공공연한 사회 불만을 갖는 이유도 상당 부분 여기에 있다.

대학 미졸업 노동자의 지위 하락은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임금 하락과 대도시의 거주 비용 상승, 근로 빈곤층 증가, 중간 숙련 수준의 일자리 감소 등이  있다.

정치인과 언론이 불평등과 일자리 불안정 등을 입중 조명하고 있으나 황금시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우리나라도 부모세대보다 집을 사거나 잘 살 수 있는 기대가 사라졌는데 그런 건 비슷하다.

중간 수준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일자리 감소 현상은 고착화되고 있다.

유리천장이라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이 책을 통해서 계층 천장의 등장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법률이나 금융, 의료 등 전통 전문 직군에선 기업 관리직이나 전문 직종자 자녀가 계속 다수를 점하고 있다.

부모가 전문직이나 관리직이 아닌 이들이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진출하더라도 보수는 많이 받지 못한다.

전문직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직군 내 최정상에는 오르지 못한다.

정치는 어렵고 여러 계층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어렵다.

영국은 인종갈등도 있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복잡한 정치가 더 복잡해질 것 같다.

엘리트들이 비엘리트들을 이해하고 버리면 안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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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영어의 비밀 Nominalism
유지훈 지음 / 투나미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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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도 독학으로 매일 공부하고 있고 영어도 독학으로 매일 공부하고 있는데 일어는 확실히 어순이 같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나오는데 영어는 애매할 때가 많다.

저자의 노미널리즘이라는 얘기는 나도 처음 들은 것 같다.

영어를 읽을 때 긴 문장이나 고급 문장에서 막히는 사람들은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바로  나이다.

저자도 직독직해를 얘기해주는 것 같다.

나도 영어에 대한 책을 여러 권을 보지 않을 때는 뒤에서부터 해석을 했는데 영어공부법에 대한 책을 많이 보니까 직독직해, 직청직해를 하게  됐다.

일어는 그런 거 필요없이 우리나라말처럼 하면 되는데 말이다.

영어를 대할 때 저자가 어떤 아이디어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잘 알라고 하는데 그건 어떤 책을 읽거나 문제를 풀 때 제시문분석을 할 때도 필요한 능력같다.

저자는 영영사전을 안 보고 한영사전을 봐도 된다고 하는데 나도 영영사전을 여러 권을 또 산 것 같다.

지금은 집에 쌓아뒀다.

노멀리즘 개념은 2주정도만 연습을 하면 된다고 하니까 2주정도 해보면 될 것 같다.

저자가 영어의 틀을 알려 주니까 그것도 잘 배우고 싶다.

영어공부법을 많이 보니까 따라할 게 많고 왠지 영어발전이 일어나고는 있는 것 같다.

나도 저자를 통해서 영어의 비밀을 깨닫고 영어업을 하고 싶다. 






동사나 형용사 등이 명사로 바뀌면 문장은 한층 간결해지지만 읽고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지는데 이때 어떤 어구가 명사로 바뀌는 현상을 명사화, 노미널리제이션이라 하고 이를 역추적하여 영문을 읽어내는 기술을 노미널리즘이라고 한다.

영어의 틀은 누가, 한다, 무엇을이다.

동사는 다른 품사로 바뀌어도 주어가 있어야 한다는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사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동사를 명사로 바꾸는 이유는 경제성때문이다.

동사가 없어지면 문장이 좀 더 간결해져서이다.

동사가 없어지면 문장은 간결해지지만 소유격떄문에 문장의 의미가 애매해진다.

영어가 길어지는 이유는 접속사를 쓰고 부연설명을 위해 수식하는 어구를 덧붙인 탓이다.

그러나 핵심어구인 명사와 동사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명사와 동사를 중심으로 의미를 파악하고 부차적인 양념인 형용사나 전치사구들은 버린다.

줄을 그으면서 읽는다.

저자는 영어로 쓴 문장에서는 동사가 중요한데 가끔 동사를 무시하라고 한다.

명사를 동사로 바꾸면 기존의 동사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파생명사를 찾고 주어와 목적어를 구분하면 문장이 술술 읽힌다.

저자가 얘기하는 노미널리즘은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학습하면서 감을 잡아가는 이론이다.

다양한 예문을 접할수록 영문을 보는 관점이 그만큼 넓어진다.

s나 of는 주어뿐만 아니라 목적어 시그널로도 쓰이지만 by는 오로지 주어를 가리킨다.

s+by, of+by가 결합된 문장에서는 무조건 by를 주어로 보면 된다.

s, of는 목적어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책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책 뒷편에는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주어를 암시하는 시그널과 중복되는 어구가 있다.

of뿐 아니라 소유격과 s도 목적어 신호로 쓰일 때가 있다.

of는 무조건 주어를 암시한다는 일반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호는 문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목적어 신호로 on을  명사로 쓰는 명사가 따로 있다.

전치사가 on과 함께 쓰이는 동사가 명사로 바뀔 때 전치사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쓰인다.

목적어를 암시하는 신호가 저자가 얘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파생명사가 레이더에 잡히면 시그널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노미널리즘을 훈련하면 문장을 읽을 때 신호와 명사에 촉각을 세우게 된다.

저자가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습관이다.

원포인트 레슨이 있다.

in은 진행 중이거나 착용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전치사이다.

영화 제목 '맨인블랙'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내들이라는 뜻이다.

in반대말은 out of 이다.

문장이 길어지는 이유는 수식어를 붙인다거나 문장을 잇는다거나 전문 용어를 남발할 때 문장이 장황해진다.

문장이 짧을수록 좋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꼭 옳은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이 보고서를 내는데 구어체로 짧게 쓰면 격이 떨어지니 품격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쓸때는 격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읽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디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니 키워드 중심으로 신속히 작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수식어나 기능어를 건너뛰는 기술이 필요하다.

에필로그를 보면 링컨의 연설이 나온다.

케티즈버그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 11월 19일, 남북전쟁 당시 미국 펜실니아 주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연설로 게티즈버그 교전 때 숨진 병사를 위해 건립된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헌정식에서 발표된 바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연설이자 에이브러햄 링컨의 가장 위대한 연설로 꼽힌다.

이 연설은 링턴이 편집하고 비서에게 나눠준 판본이 여럿 있는데  뜻은 같지만 어구나 문장의 배열 등이 좀 다르다.

본문은 링컨 기념비에 기록된 판본이다.

지금까지 짚어본 노미널리즘 이론을 적용하여 명언의 뜻을 다시 새겨보라고 한다.

저자의 이론은 저자가 예시로 들어 준 문장을 자신이 적용을 해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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