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은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몰락에 대한 고전 문헌학적인 탐구를 넘어서, 음악과 비극이란 무엇이고 진정한 아름다운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예술 철학적 탐구이고, 세계의 궁극적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이며,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탐구이고, 논리적인 지성에 입각한 학문을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로 내세우면서 비극적인 음악과 신화를 비하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의 서양 형이상학과 이러한 형이상학에 입각한 서양 역사와의 대결이기도 하다. - P295

아울러 이 책은 니체 자신의 사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니체가 나중에 전개하게 되는 영원회귀 사상과 힘에의 의지의 사상, 그리고 관점주의 철학의 단초를 이미 담고 있다. <비극의 탄생> 이후 니체의 사상 전개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미 제시되고 있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경험과 근본 이해를 쇼펜하우어적인 개념도식이 아니라 사태 자체가 요구하눈 개념에 따라서 재해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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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9o8p7h6i5s4t 2022-03-1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번을 읽었는데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

Redman 2022-03-11 13:2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전 해제민 읽었는데 벌써 어질어질 하더군요
 

"기독교가 성공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상대가 약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이다. 이교는 학문과 자신, 이 양자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한편, 기독교는 그것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다......기독교 통치하에서 이교도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가 더 관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교가 그 당시 목숨을 걸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64p)


"우선 기독교의 배타성 자체, 대안적인 숭배 형태들에 대한 가치 부여의 거부, 이것들은 오늘날 종종 약점으로 느껴지지만, 그때 상황에서는 강함의 원천이었다. 보통의 그리스-로마적인 관행이었던 종교적 관용은 당혹스러운 대안들의 집적체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숭배와 너무나 많은 비의, 너무나 많은 삶의 철학이 있다. 여기서 당신은 하나의 종교 보험 위에 다른 것을 계속 쌓을 수 있지만, 그런데도 안심할 수 없다......불안의 시대에는 '전체주의적' 신조가 강력한 매력을 펼친다." (165p)


"둘째, 기독교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원칙상 사회적 차별을 하지 않았다." (165p)


"셋째, 지상의 삶이 점점 더 가치 절하되고 죄책감이 널리 퍼진 시기에 기독교는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들에게 다른 세상에서의 더 나은 상속을 조건부로 약속했다. 몇몇 이교 경쟁자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큰 채찍을 휘두르고 더 단 당근으로 달랬다. 그것은 공포의 종교로 비난받았고, 엄숙주의자들의 손안에서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생생한 희망의 종교였다." (166p)


"교회는 사회적 안전의 기본을 제공했다. 과부와 고아, 노인, 실직자 그리고 장애인을 돌보았으며, 빈자에게는 장례 비용을 대주었고, 역병이 도는 시기에는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이러한 물질적인 혜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줄 수 있었던 소속감이었다." (pp. 168~169)



"역병은 이방 종교와 헬라 철학이 설명하고 위로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던 반면, 기독교는 왜 인류가 이런 끔찍한 시대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보다 만족스러운 해명을 제시했고 희망찬, 때로는 활력적인 미래상을 제시했다." (117p)


"초기부터 기독교의 사랑과 선행의 가치관은 사회봉사와 공동체 결속으로 현실화되었다. 재앙이 닥쳤을 때 기독교인은 더 훌륭하게 대처했고 그 결과는 '월등히 높은 생존률'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매번 역벙이 휩쓸고 간 후, 기독교인은 새로운 개종 없이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pp. 117~118)


"율리아누스는 자신의 구제 기구와 조직화된 이교의 구제 활동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회적 서비스가 부족한 제국에서 작은 복지국가'를 창출해 낸 기독교인의 노력에 견주면 초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독교의 구제 사업은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다', '남에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와 같은 기독교의 가르침의 씨앗이 결실을 맺은 결과다. 그러나 4세기 율리아누스의 시대에 와서 기독교의 거대한 구제 사업을 따라잡으려니 이미 너무 때늦었던 것이다." (pp. 131~132)


"기독교가 여러 시급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규범과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관계를 제시했고, 이로써 그레코-로만 도시인의 삶을 재활성했다는 것이다. 노숙자와 빈민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구제뿐 아니라 희망도 제공했다. 신착자와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즉각적 애착관계의 토대를 제공했다. 고아와 과부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신개념의 확장된 가족을 제공했다. 폭력적인 인종분쟁으로 갈가리 찢겨진 도시에서 기독교는 사회 응집의 새로운 토대를 제시했다. 그리고 역병, 화재, 지진과 마주한 도시에서 기독교는 효과적인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pp.241~242)


"여하간 기독교인은 잔인성과 쇼 관람 둘 다 정죄했다.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터툴리안은 독자들을 일깨웠다. 그리고 경기 관람이 일반화되자 기독교인은 이런 '경기'를 관람해선 안 된다고 금했다. 더 중요한 점은 기독교인이 이교도가 관습적으로 가볍게 행하는 잔인성과는 전적으로 양립 불가한 도덕적 비전을 효과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개종자에게 선사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덕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었다." (3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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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2-03-1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재미있어 보이네요~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Redman 2022-03-11 13:28   좋아요 0 | URL
예~!! 둘 다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ㅎㅎ
 

 "건장한 신체를 지니고도 실업상태에 있는 이들의 처우에 대해 로크가 한 제안은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현대의 학자들이 그에 대해 언급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비참함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도 그 당시의 기준에 비추어서 옹호하기도 한다. 좀더 중요한 논점은 그러한 제안이 로크의 가정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구빈원(감화원)의 책임자들은 그들을 제조공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 것을 요청받고 있었으며, 치안판사들은 그들에게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세 살 이상 된' 실업자의 자녀들은 국가의 불필요한 짐이었다. 그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그들의 생활비를 더 많이 벌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실업이 경제적인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한다는 명백한 근거 위에서 정당화되었다. 로크가 무역위원회의 위원자격으로 1697년에 서술했듯이, 실업자의 증대는 '기율의 해이와 풍속의 붕괴 이외에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발생하지 않는다. 실업자들을 정치체제의 완전한, 자유로운 구성원으로서 처우하는 것은 로크에게는 생각조차 되지 않았다. 그들이 전적으로 국가에 예속된다는 것도 똑같이 의심할 바 없다. 그리고 그들이 합리적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이기에 국가는 그런 식으로 처우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257~258)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보자. 로크에 따르면, 실업자가 생기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율의 해이와 풍속의 붕괴' 때문이다. 실업자들은 '합리적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서 합리성의 의미는 극단적으로 물화되어 재산 소유 여부, 즉 재산이 많냐 적냐가 합리적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며, 재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산이 있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해 재산이 많아야 한다. 참으로 섬뜩하고 부박한 논리이다.


로크에게 있어 재산이란, 인간의 신체와 그러한 신체로부터 만들어지는 노동력이다. 즉, 인간은 노동하는 신체의 소유자이다. 로크의 논리를 따른다면, 노동을 통해서 재산을 형성한 자만이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취급받으며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하게 부르주아적 논리이다.


로크는 사상사적으로 자유주의를 정초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로크가 토대를 쌓은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했으며, 이는 - 로크가 설령 그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 현실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사유재산의 무제한적 확장에 기여했다. 이렇게 볼 때, 자유주의는 부르주아들의 이데올로기다.


한국 자기개발서들의 논리도 기본적으로는, 사유재산의 소유를 인간 합리성의 척도로 삼은 로크의 사유적 개인주의와 유사하다. 이런 것도 읽어보자며 주식 투자 책, 자기개발서적 등을 뒤적거려도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손이 안 가는데, 아마 이런 요인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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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는 인간 개개인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정치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모두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고유의 개별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개인이다. 이러한 고유의 정체성이야말로 정치에서 인간이 중요한 존재라고 전제하는 이유이다. 이 개인은 서양 근대 철학에서 주장하는 추상 속의 무연고적 자아가 아니다. 그들은 피와 살을 지니고 이름을 가지며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 존재하는 개인이다. 정치란 개개인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이름을 찾아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공적인 삶, 정치적 삶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정치적 삶과 문학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문학은 구체적 시공간 속에 살고 이름을 가진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친다. 과학은 이름을 무시하거나 추방하는 한편, 문학은 그 이름들을 사용하고 존중한다." (Harvey Mansfield, "How To Understand Politics")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도 문학, 특히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의 책은 정치에서 아주 중요한 함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저명한 정치철학자이기도 하면서 문예비평에서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녀는 시카고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과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를 읽었다. 문학 작품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는 동정과 자비, 공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등에 대해 토론했다."


누스바움이 이렇게 법학도와 정치학도들에게 문학을 옹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태도의 필수적인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학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현실에서도 이러한 공감을 적용할 수 있다. 좋은 문학을 통해 마주하는 타인은 우리에게 격렬한 감정(Thymos)을 불러 일으키고, 불안을 야기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저자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소설을 강조한다. 소설의 서사와 묘사는 다른 문학과 비교할 때 매우 구체적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나와 같이 신체를 지니며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보다 보편적으로, 문학은 개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인물의 처지를 생생하게 상상 가능하다. 이러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야말로 현실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들과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저자는 문학읽기를 통해 우리가 적절한 감정을 함양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감정은 공적인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할 불안정한 인지 능력이 아니다. 감정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분명한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감정은 특정한 믿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약 내가 분노를 느꼈다면, 그것은 무언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고의로 해를 입었다는 믿음에서 기인하며, 분노의 대상은 그 해를 입힌 대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은 주체로 하여금 특정 종류의 의미나 가치를 지각할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는 능력)은 정치적 삶에서 우리의 판단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맹목적으로 문학과 감정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누스바움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빌린 개념인 "분별 있는 관찰자"로 이를 설명한다. 분별 있는 관찰자는 우리의 감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줄 것이다. 이는 사건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아 편향적이지 않으면서도 특정 상황에 처한 사람들 각각의 처지와 느낌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적절한 감정의 함양은 시민적 삶에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감정의 부재는 사회적 무관심과 둔감함으로 이어진다. 이런 장면은 숱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문학과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더 선호한다. 나 역시 디킨스나 박완서보다는 애덤 스미스나 앨버트 허쉬먼 같은 이들의 책이 훨씬 더 사회정의에 어울린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나의 편견일 뿐이었다. 사회적 인간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공동체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을까? 마사 누스바움은 문학에서 그 답을 길어올리고 있다. 문학은 구체적 상황 속에 있는 개개인의 얼굴을 마주보게 한다. 사회적 삶 역시 얼굴과 이름을 가진 개개인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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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26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도 정말 좋아했지만 이 책에 대한 김민우 님의 리뷰도 너무 좋네요. 시적 정의를 책장에서 꺼내와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저는 늘 소설을 사랑했는데 제가 소설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Redman 2022-02-26 20:06   좋아요 5 | URL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소설과 친하지 않은 저에게는 소설과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초란공 2022-02-26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민우님의 소개로 이 책을 더디지만 읽고 있습니다^^ 많이 생소한 분야라 진도가 느리지만 남은 부분 읽기에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Redman 2022-02-26 20:50   좋아요 4 | URL
좋은 독서가 되셨으면 합니다. 저도 두 번 정독해서 겨우 책의 윤곽을 이해했네요 ㅎㅎ

바람돌이 2022-02-27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의 저를 만든 많은 부분이 소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어요.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는 힘을 제게 준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감정을 이렇게 정의한 책이 있고 김민우님이 리뷰로 그 근거들을 짚어주니 진짜 좋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dman 2022-02-28 18:22   좋아요 4 | URL
이 책에서 말하는 문학의 긍정적 기능을 경험하셨군요!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실 것 같습니다

얄라알라 2022-03-02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필사했던 그 문장,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태도의 필수적인 보이기 때문이다.˝ 김민우님의 리뷰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 역시 초란공님과 마찬가지로 생소한 분야인지라 빨리 못 읽고는 있지만 음미하며 나가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Redman 2022-03-02 17:50   좋아요 1 | URL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군요! ㅋㅋㅋ 얄라알라님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