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성공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상대가 약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이다. 이교는 학문과 자신, 이 양자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한편, 기독교는 그것을 위해 죽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었다......기독교 통치하에서 이교도 순교자는 거의 없었다. 기독교가 더 관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교가 그 당시 목숨을 걸기엔 너무 초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64p)
"우선 기독교의 배타성 자체, 대안적인 숭배 형태들에 대한 가치 부여의 거부, 이것들은 오늘날 종종 약점으로 느껴지지만, 그때 상황에서는 강함의 원천이었다. 보통의 그리스-로마적인 관행이었던 종교적 관용은 당혹스러운 대안들의 집적체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숭배와 너무나 많은 비의, 너무나 많은 삶의 철학이 있다. 여기서 당신은 하나의 종교 보험 위에 다른 것을 계속 쌓을 수 있지만, 그런데도 안심할 수 없다......불안의 시대에는 '전체주의적' 신조가 강력한 매력을 펼친다." (165p)
"둘째, 기독교는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원칙상 사회적 차별을 하지 않았다." (165p)
"셋째, 지상의 삶이 점점 더 가치 절하되고 죄책감이 널리 퍼진 시기에 기독교는 상속권을 박탈당한 자들에게 다른 세상에서의 더 나은 상속을 조건부로 약속했다. 몇몇 이교 경쟁자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더 큰 채찍을 휘두르고 더 단 당근으로 달랬다. 그것은 공포의 종교로 비난받았고, 엄숙주의자들의 손안에서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생생한 희망의 종교였다." (166p)
"교회는 사회적 안전의 기본을 제공했다. 과부와 고아, 노인, 실직자 그리고 장애인을 돌보았으며, 빈자에게는 장례 비용을 대주었고, 역병이 도는 시기에는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이러한 물질적인 혜택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줄 수 있었던 소속감이었다." (pp. 168~169)
"역병은 이방 종교와 헬라 철학이 설명하고 위로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던 반면, 기독교는 왜 인류가 이런 끔찍한 시대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보다 만족스러운 해명을 제시했고 희망찬, 때로는 활력적인 미래상을 제시했다." (117p)
"초기부터 기독교의 사랑과 선행의 가치관은 사회봉사와 공동체 결속으로 현실화되었다. 재앙이 닥쳤을 때 기독교인은 더 훌륭하게 대처했고 그 결과는 '월등히 높은 생존률'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매번 역벙이 휩쓸고 간 후, 기독교인은 새로운 개종 없이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pp. 117~118)
"율리아누스는 자신의 구제 기구와 조직화된 이교의 구제 활동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회적 서비스가 부족한 제국에서 작은 복지국가'를 창출해 낸 기독교인의 노력에 견주면 초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기독교의 구제 사업은 '나는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다', '남에게 대접받기를 바라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와 같은 기독교의 가르침의 씨앗이 결실을 맺은 결과다. 그러나 4세기 율리아누스의 시대에 와서 기독교의 거대한 구제 사업을 따라잡으려니 이미 너무 때늦었던 것이다." (pp. 131~132)
"기독교가 여러 시급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규범과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관계를 제시했고, 이로써 그레코-로만 도시인의 삶을 재활성했다는 것이다. 노숙자와 빈민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구제뿐 아니라 희망도 제공했다. 신착자와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즉각적 애착관계의 토대를 제공했다. 고아와 과부로 가득 찬 도시에서 기독교는 신개념의 확장된 가족을 제공했다. 폭력적인 인종분쟁으로 갈가리 찢겨진 도시에서 기독교는 사회 응집의 새로운 토대를 제시했다. 그리고 역병, 화재, 지진과 마주한 도시에서 기독교는 효과적인 간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pp.241~242)
"여하간 기독교인은 잔인성과 쇼 관람 둘 다 정죄했다.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터툴리안은 독자들을 일깨웠다. 그리고 경기 관람이 일반화되자 기독교인은 이런 '경기'를 관람해선 안 된다고 금했다. 더 중요한 점은 기독교인이 이교도가 관습적으로 가볍게 행하는 잔인성과는 전적으로 양립 불가한 도덕적 비전을 효과적으로 선포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개종자에게 선사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덕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었다." (3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