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제가 변화되는 원인에 대해

왜냐하면 사람들은 (1) 이득과 (2) 명예 때문에 서로에 맞서 자극을 받게 되는데,

바로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 자신을 위해서 그것들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는 정의롭게 어떤 이는 정의롭지 않게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3) 오만(hybris), (4) (통치자들의) 공포, (5) 우월성, (6) 경멸[하는 태도], (7) 비례에 어긋나는 성장 때문이다.

게다가 또한 다른 방식으로서

그것은 (8) [편애적인] 관직 선거 운동, (9) 하찮게 여김, (10) [신분상의] 비천함 혹은 (11) 비슷하지 않음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옮김, <정치학>, 1302b1~4

각주 62:

(7~11번은) 직접적인 개인적 모멸감의 문제가 아니라 폴리스의 권위에 의해 발생하는 공적인 잘못들로 인해 생기는 것들이다.

각주 63:

파당(내분, stasis)을 일으키는 원인은 일곱 가지이다.

(1) 이득, (2) 명예, (3) 오만, (4) 통치하는 자들의 공포, (5) 우월성, (6) 경멸, (7) 비례에 어긋나는 성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1) (2) (3) (4)는 정치적 지위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정치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보이는 외적 태도 혹은 성향을 말하는 듯하다.

오만과 이득이 어떤 종류의 힘을 갖는지, 어떻게 그것들이 그 원인이 되는지는 매우 명백하다.

왜냐하면 관직에 있는 자들이 오만을 부리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할 때,

시민들은 서로에 맞서, 또 관직을 가진 자들에게 그런 권위를 준 정치체제에 맞서 파당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정치학>, 1302b5 ~7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hybris)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이러한 도덕 감정은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이민자들이나 아웃소싱에 대한 반항 차원을 넘어,

포퓰리즘의 불만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향한다.

그리고 그 불만은 정당화된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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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민주정의 탄생과 발전 (반양장)
윌리엄 포레스트 지음, 김봉철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개론서라기엔 정리가 잘 안 되어 있고, 논의도 명쾌하지 못하며, 번역도 깔끔하지 못해, 읽었어도 머리에 남는 것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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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의 멸망은 정치사상적으로도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사유를 요구했는데, 많은 사람은 현실 정치에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 이로써 세속적 정치사상이 흥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속적 정치사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정치적 흥망성쇠는 민심의 향배와 군신의 정책 및 품질에 달려 있다는 사상이며, 다른 하나는 ()’의 신비성 감소이다. 먼저 후자를 더 자세히 보겠다.

 

서주 시대에는 천은 상제와 하나의 존재로 최고 신이었다. 그러나 서주 말에 이르면, 천을 자연현상을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종래 신비주의적 입장에서는 하늘이 특정한 형상으로 사람에게 뜻을 드러낸다는 천상시인설이나 하늘이 사랑의 일에 감응한다는 천응인사설 등 천을 신비화하는 입장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제는 천과 인간은 관련이 없다는 천인상분의 태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춘추 시대, 신비화된 천이 정치 세계에서 빠지면서, 인간이 정치 세계의 주체가 되었다. “사람이 중시됨에 따라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사람을 중시하고 신을 경시하며, 사람을 앞세우고 신을 뒤로하는 관념이 출현했다.”

 

이상의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춘추시대에는 인간을 정치 세계의 주체로 삼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에게 정치의 흥망성쇠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신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관념을 사실상 한 쪽으로 밀어내 버렸다. 천을 자연으로 생각하게 된 것과, 천도를 객관 필연적 범주로 사용하게 된 것도 천의 신비적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두 가지 인식이 발전하면서 서로 합심 협력해 신권정치를 쇠락의 길로 힘껏 밀어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군주 전제 제도는 더욱 강화되었고, 군주에 관한 논의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군주 전제의 기본원칙은 나라가 둘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군주의 권력 역시 하나일 뿐 둘이 될 수 없고, “군주는 반드시 권력을 자기 수중에 즉각적으로 확실하게 장악해야만 했다.”

 

춘추시대의 또 다른 한 특징으로는, 군주의 지위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었다는 것이 있었다. 사백은 천명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일을 더욱 중시했다. 비정은 군주에 대한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의가 군주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군주의 권력이 지고무상해야 하며 군주가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논의가 우세해졌고, 군주의 독점성과 독재성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왜 그러한가? 저자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아마 혼란하던 당대 사회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통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춘추 이전 "시대까지는 아직 군주권이 확립되지 않고 그 친척이나 관료와의 사이에 신분상 큰 차이가 없어 그 지위가 몹시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군주권이 차츰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주위와 마찰이 생기기 쉬웠고, 이것이 오히려 비극을 야기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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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사상사> 1권은 상나라부터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정치사상을 살펴본다. 1장의 제목은 ()대의 정치 관념”, 2장은 서주(西周)의 정치사상이다.

 

먼저, 상나라부터 봐보자. 상은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지배적이었던 샤머니즘 사회, 주술적 사회였다. 상나라 사람은 매우 미신적이었다. 그래서 상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신권 정치가 나타났다.

 

상나라에서 최고의 신은 상제라고도 하는 제()였다. 상제는 최고 신이었으므로, 일체의 자연현상을 관장할 뿐 아니라 인간 세상의 주재자이기도 하였다. , 전쟁, 경제, 건설 등을 주재했다. 상제 숭배 외에도 조상에 대한 숭배도 성대하게 행해졌다. 상제와 조상신은 상나라 정치사상의 핵심적인 관념이다. 상나라의 왕은 상제를 왕의 수호신으로 하였다. 상제는 세상사를 관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왕의 권력을 보호하는 수호자였던 것이다. 조상 숭배 역시 상왕의 통치 정당성을 비호했다. 상왕의 선조는 살아있을 때는 인간의 왕이었지만, 죽은 뒤에는 귀왕이 되어 귀신의 세계를 관리한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시에 인간 세상에서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현세의 은왕을 돕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나라의 왕은 자신의 힘을 강화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상나라에서 중요한 정치적 관념은 세 가지, 즉 상제, 조상, 은왕이 있는데, 이 삼자의 관계는 상제와 조상신이 은왕의 권력을 수호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은왕은 이들의 힘으로 권력을 강화해갔다.

 

이러한 은나라에서 왕이란 어떤 존재였는가? “왕은 광대한 토지와 노예를 점유하고 인민에 대한 생사여탈의 대권을 장악하여 강력한 통치를 수행하였다.” 광대한 토지와 노예라는 경제적 기반은 은나라 왕이 인민에 대한 생사여탈의 대권을 장악하게 된 핵심이자 왕의 통치 근거이기도 했다. 경제력이 은왕의 권력의 현실적 기반이라면, 이념적으로는 상제와 조상신이라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있었다. 후대에 상제와 은왕은 결합되어 여일인이라는 사람과 신이 결합된 성질을 지니게 되었다. 하늘을 받들고, 조상을 승계하며, 백성을 구제할 지위에 있는 여일인은 일종의 신의 대리자 같은 인상도 준다.

 

주나라도 상제 신앙을 계승하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은나라 때와는 달라졌다. “그 핵심은 명()이 항상 일정치 않은 바이니 오로지 덕 있는 자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공의 정치사상에서는 상제와 함께 덕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는 정신적 보호망으로서의 상제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면서도 동시에 인사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 다른 말로 천명은 상황에 따라 권력자를 바꿀 수도 있다.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다. 여기서 윤리와 정치가 합치되어 하나가 되었다. 권력자에 대한 천명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은나라 때라면, 점을 쳐서 알아냈겠지만, 주공에 이르러서는 백성의 정서에 있다. 이제 민심은 천명의 지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 관념에서의 변화는, 주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발생했다. 은의 종속국이었던 주나라는 무력으로써 상나라를 무너뜨렸다. 그렇기 때문에 주나라는 건국의 정당성을 계속해서 주장해야 했다. 이러한 정당화 논리가 바로 천명에 따르고 인심에 반응했다는 순천응인의 혁명론이다. 주나라는 혁명을 했다. 은나라 말기의 폭정으로 민심이 동요했고, 천명이 더 이상 나쁜 왕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천명이 변한 것이다. 그래서 주나라의 혁명은 천명에 의해 정당화되고, 여기서 덕이 강조되었다. 덕을 정치에 적용하면 보민이라는 주공이 제기한 새로운 정치 개념이 탄생한다. 은에서도 덕이 있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개념이었다.

 

주공은 고대 중국 정치사상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지니는데, 그의 중요한 업적이 바로 왕조의 성립 근거를 찾기 위해 천명의 중요성과 민정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천명사상이라는 관념적 신비주의가 국가와 왕권을 정당화하는 작용을 하였지만, 동시에 민심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됨을 일깨운 것도 주공이다. 이 부분에서 은과 주의 통치 메커니즘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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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8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의 저 천명론이 대대손손 이어지면서 우리 역사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되었던걸 생각하면 사상의 힘이 대단하긴 한 것 같아요. 은주의 정치사상의 차이가 명쾌하게 정리되네요. 정치사상사라고 하면서 은주부터 시작하다니 대단한 역작일듯합니다.

Redman 2022-01-18 20:40   좋아요 0 | URL
예 분량부터 어마어마한 두께의 대작이죠 ㅎㅎ 한해동안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정치학>,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서평에 덧붙여서.

인민은 민주주의적 이상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 중 일부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모든 사람이 공동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데 있다. - P35

시민은 무관심에서부터 익명화로 그리고 비인간화로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 결과, 시민은 공권력에 의지하게 되며, 시민사회의 경직화라는 상태가 시작된다. 우리 문밖에는 외부의 적들이 때때로 존재했다. 하지만 내부의 적은 언제나 존재한다. 바로 이 내부의 적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매우 유해한 무기력증이며, 이는 우리의 삶과 미래를 그 어떤 핵무기보다도 더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이끌 자신의 힘에 대한 믿음의 소멸보다 더 암울하고 파괴적인 비극은 있을 수 없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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