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의 멸망은 정치사상적으로도 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전혀 새로운 사유를 요구했는데, 많은 사람은 현실 정치에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다. 이로써 세속적 정치사상이 흥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속적 정치사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정치적 흥망성쇠는 민심의 향배와 군신의 정책 및 품질에 달려 있다는 사상이며, 다른 하나는 ()’의 신비성 감소이다. 먼저 후자를 더 자세히 보겠다.

 

서주 시대에는 천은 상제와 하나의 존재로 최고 신이었다. 그러나 서주 말에 이르면, 천을 자연현상을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종래 신비주의적 입장에서는 하늘이 특정한 형상으로 사람에게 뜻을 드러낸다는 천상시인설이나 하늘이 사랑의 일에 감응한다는 천응인사설 등 천을 신비화하는 입장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제는 천과 인간은 관련이 없다는 천인상분의 태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춘추 시대, 신비화된 천이 정치 세계에서 빠지면서, 인간이 정치 세계의 주체가 되었다. “사람이 중시됨에 따라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사람을 중시하고 신을 경시하며, 사람을 앞세우고 신을 뒤로하는 관념이 출현했다.”

 

이상의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춘추시대에는 인간을 정치 세계의 주체로 삼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에게 정치의 흥망성쇠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신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관념을 사실상 한 쪽으로 밀어내 버렸다. 천을 자연으로 생각하게 된 것과, 천도를 객관 필연적 범주로 사용하게 된 것도 천의 신비적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두 가지 인식이 발전하면서 서로 합심 협력해 신권정치를 쇠락의 길로 힘껏 밀어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군주 전제 제도는 더욱 강화되었고, 군주에 관한 논의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군주 전제의 기본원칙은 나라가 둘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군주의 권력 역시 하나일 뿐 둘이 될 수 없고, “군주는 반드시 권력을 자기 수중에 즉각적으로 확실하게 장악해야만 했다.”

 

춘추시대의 또 다른 한 특징으로는, 군주의 지위에 관한 논의가 활발했었다는 것이 있었다. 사백은 천명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일을 더욱 중시했다. 비정은 군주에 대한 다른 태도를 보였는데, “의가 군주보다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다양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군주의 권력이 지고무상해야 하며 군주가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논의가 우세해졌고, 군주의 독점성과 독재성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왜 그러한가? 저자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아마 혼란하던 당대 사회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중국통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춘추 이전 "시대까지는 아직 군주권이 확립되지 않고 그 친척이나 관료와의 사이에 신분상 큰 차이가 없어 그 지위가 몹시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 군주권이 차츰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주위와 마찰이 생기기 쉬웠고, 이것이 오히려 비극을 야기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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