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산다 심플하게 산다 1
도미니크 로로 지음, 김성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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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의 유니클로 울트라스트레치 진 광고 컷을 언어로 푼다면, 에세이로 쓴다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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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0-0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까페에 가서 책 보고 계신가요? 어떤 책 읽으셨습니까?

dreamout 2012-10-07 19:47   좋아요 0 | URL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 읽고 왔어요. ^^
4분의 1 정도 읽었는데, 맘에 들어요.

해피대디 2012-10-2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파타고니아. 한번 가보고 싶어요~

dreamout 2012-10-28 22:44   좋아요 0 | URL
네. 아직도 저도..
 

호모 루덴스, 요한 하위징아, 이종인 옮김

 

모노클(외알 안경)로 보기. ‘놀이하는 인간은 모노클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만큼 그리 단순한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호모 루덴스를 한 알의 렌즈로 생각하는 것이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모노클은 흩어진 생각들을 꿰어주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진실의 단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생각보다 생각거리를 많이 자극한다.

 

 

 

 

소설과 소설가(The Naive and The Sentimental Novelist), 오르한 파묵, 이난아 옮김

 

적절한 심상을 말하는 오르한 파묵은 파묵답다. 그래, 그럴 것 같았다. 먼저 이미지. 단어가 아닌 것이다. 역시, 오르한 파묵에게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예찬보다 눈에 띈 것은 이런 말. 도스토옙스키가 우리에게 주는 지식이나 지혜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적 또는 이 말이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만 – ‘단어적인것입니다. 죄와 벌을 다시 읽기 위해 민음사판(김연경 역)을 들춰 봤을 때, 팍 와 닿은 문장이 새로운 걸음,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을 그들은 제일 두려워하지……’ 였다. 그때 떠오른 것이 , ‘낱말죄와 벌 다시 이해하기. 라는 주제였는데파묵의 이런 문장을 만나니 뭐가 뭔지도 모르게 왠지 반갑다.

 

 

 

 

미생(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윤태호 글 그림

 

골든타임이 리얼하게 병원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샐러리맨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으니 떠오르는 드라마가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들어본 기억도 없다는 것은 뭔가 씁쓰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병원 의사도 샐러리맨이니까. 하고 말지만샐러리맨이라고 할 수 있나? 모르겠네. 하고 만다.

 

인생은 게임이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을 알고 있다. 지금도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직장생활은 게임이야. 라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직장생활은 바둑과 다를 것이 없어. 라고 주장하는 이 만화는 그래서, 때로 도움되는 말들이 튀어나와 새롭게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서 좋다. 그래서? 리얼한가? 그러기도. 아니기도.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 정재승 기획

 

세계적 과학지 <<사이언스>> 2005년에 창간 125주년을 맞아 우주, 자연, 생명, 의식에 관한 가장 중요한 125개의 질문을 선정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 몇 가지를 선정해서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의견을 모아 놓은 글이다. 미안하지만 별로. 다른 교양과학 책을 보는 것이 낫겠다. 다만 책 말미에 붙어있는 125개의 질문(스물 일곱 페이지 분량) 자체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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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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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뢰즈는 『경험주의와 주체성』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심리학자이기 위해 우리는 심리학자이기 이전에 먼저 모럴리스트나 사회학자나 역사가일 수밖에 없다.” 『생의 이면』의 작가는 심리학자였다. 지나고 보니 그 점이 보다 확실히 느껴진다. 그런데 그때 내가 알았던 심리학자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그의 전체 모습 중 일부분에 불과했음이 이 소설로 드러난다. 그는 심리학자이기 이전에 모럴리스트, 사회학자 그리고 역사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럴리스트로서의 작가(화자). 도입 부분에서 천산 수도원의 벽서에 대해 쓰인 문장.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연희가 사촌동생 를 만나길 꺼려하는 대목에서의 그러니까 그녀의 단호함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 편이 나았다.”는 문장 같은 데서 작가(화자)의 모럴리스트적 감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곧 문장들로 형상화되어 소설 전체 분위기를 주도한다.

 

 

2.

『생의 이면』과 첫 느낌이 꽤 다르다. 3인칭과 1인칭이 모두 나타났지만 그 소설은 확실히 1인칭의 목소리가 강했던 반면, 이 소설은 3인칭이다. 그래서 읽어나가기가 『생의 이면』보다 낫다. 숨쉬기가 낫다는 얘기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대와 섹스를 한다고 치자. 『생의 이면』은 줄곧 상대가 위에 있고 나는 아래에 깔린 체위였다면, 『지상의 노래』는 그의 배 위에서 내가 그를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별볼일 없는 방 안과 헝클어진 옷가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몰입도는 어떨지 몰라도 뭐랄까. 좀 더 견딜만하다. 물론 이 보기 싫고 보기 꺼려지는 섹스 상대는 또 다른 나다.

 

 

3.

주인공 는 왜 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이름에 비해 튀는 이름이어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책을 읽는 도중 작품해설을 들춰봤다. 소설에 덧붙여져 있는 해설은 안 읽는 편인데, 왠지 내 의문에 대한 해석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있다. 작품해설을 쓴 이는 후를 who, whoever 등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과는 동기에 의존하지만 그러나 동기는 결과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문장을 읽고서 로 읽었다. 가 있으니 이 있을 것이고 그 은 작가 자신 또는 화자(작품해설에서는 이 소설을 교회사 전공 강사 차동연이 쓴 소설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라면 은 차동연일 수도 있겠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야기를 쓴 사람, 즉 작가 자신을 소설 속으로 밀어 넣은 느낌이 강하다. 자신의 욕망으로, 자신의 의도로 쓴 소설이지만 결과를 제어할 수 없다는 말로 비친다. 작가 말고 주체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또 다른 이가 있다면 당연히 독자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도식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 또는 화자의 욕망)-(주인공 또는 소설 자체)-(앞의 로 촉발된 독자의 욕망)-(또 달리 뻗어나갈 욕망). 무한히 연결되는 욕망의 사슬. 또는 영향력에의 의지. 때가 때인지라 작가의 여러 욕망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독재자와 한정효와 군인 과 수도원 지하에 묻힌 수도사 형제들. 한 세대를 건너 그 독재자의 욕망이 또 다른 사슬이 되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이 묘한 시기.에 그것은 확실히 이승우에게서는 기대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4.

---후의 욕망의 고리. 라는 말을 썼지만, 물론 그런 방식으로 꼬여있진 않다. 거기엔 매개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함께 엮여 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식으로 느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첫 문장. “천산 수도원의 벽서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그 벽서의 운명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에서 천산 수도원이 그 매개물의 역할을 한다고 여겨졌다. 벽서는 말하자면 또 다른 . 매개물은 아닌 것이다. 천산 수도원은 장소. 이 소설에서 장소라고 불릴 만한 것이 꽤 나온다. 천산 수도원, 동네를 삼켜버린 땅, 술집 들국화의 문 잠긴 방, 한정효의 아내가 한정효에게 선물한 성경, 미장원, , 천산 수도원의 지하 무덤(카타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을 암송하여 제 몸에 내재화한 수도사(‘도 포함된)들이나 들국화의 그 문 잠긴 방을 제 몸에서 떨쳐낼 수 없는 연희처럼.. 인물들 또한 바로 장소다. 인물들은 장소를 꽉 잡고(take),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take place. 사건이 일어난다.

 

 

5.

지상의 노래. 가 어떤 의미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다만, 지상의 노래노래일 수 있다면 그것은 슬픈 것을 슬프게, 기쁜 것을 기쁘게 부르는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기만적인 것은 절대 노래가 아니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슬픈 것을 슬프게, 기쁜 것을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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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9-13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에 대한 생각이 작품해설 이상이네요.
'슬픈것을 슬프게, 기쁜 것을 기쁘게'라는 문장,
오늘 하루를 담담히 마무리하도록 하는 묘한 힘이 있군요.

dreamout 2012-09-14 07:47   좋아요 0 | URL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리뷰는 리뷰이기 때문에, 소설과 시와는 다르다. 좋은 리뷰는 오히려 기획안, 보고서, 품의서 쪽에 가까운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클리셰를 잘 구조화 하는 것. 전통을 훌륭하고 디테일 하게 잘 따르면서도 리뷰어만의 새로운 시선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리뷰를 포스팅 할 때마다, 나는 좀 못 견디겠다. 라는 생각을 그래서 많이 한다. 전체적인 그림과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결국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다. 회사에서 기획안, 보고서 등을 쓸 때 나는 내 안의 비평의 목소리를 늘 켜 놓고 문서를 작성한다. 그래서 대부분 즐겁지 않다. 블로그에 포스팅 할 때만은 그 제3의 목소리를 끄고 그냥 쓰고 싶다.

 

하지만, 내가 다른 이들의 리뷰를 읽을 때는 뭐랄까.. 전체적인 그림과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꼼꼼히 챙긴 글이 역시 읽기 편하고 쉽고 좋다.

 

서서 비행하기. 하니까 클레의 천사 그림이나 샤갈의 공중부양 그림들이 떠오른다. 민들레 홀씨도 생각난다. 고속으로 날아야 하는 것들은 모두 엎드려야 하지만 서서 비행하는 것들은 대신 (헬리콥터처럼) 정지비행이 가능할 테다. 목적지가 분명한 경우에는 엎드린 것들이 유리할 테고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는 서서 비행하는 것들이 훨씬 유리하겠지. 자기가 내려야 할 곳에 딱 내릴 때에도 서서 비행하기가 훨씬 나을 것이다. 제목의 書書 비행이 내겐 그렇게 읽혔다. 좋은 시작인 것 같다.

 

 

 

 

쾌락, 고통, 지식, 성취, 미덕, 사랑. 삶의 을 결정하는 이런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그 살펴보는 방식이 분류하기 다. 매우 평범한 어투로 평범한 단어로, 그리고 평범한 방식으로 나아가는데도 적잖은 탁견들이 튀어 나온다. 이분법적 분류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분법적 사고가 주는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반어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다. 다 읽은 후에도 왠지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를 읽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 그것들은 작업자의 내면에 서로 엉켜 있어서 따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경우가 더 많다.”

 

가치는, 언어는 그 잘린 단면의 모서리 어딘가에 생각보다 훨씬 더한 복잡성을 숨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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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0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벌써 시작하셨군요.

2012-09-03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3 18: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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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3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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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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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4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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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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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2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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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1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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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7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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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7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7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와 세계 최강국의 핵심 권력자들이 자행하는 악. 소설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 둘은 짐승의 길이다. 그리고 아마도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구하고자 하는 용병 조너선 예거와 10만 명의 어린아이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온 열의를 다하는 고가 겐토와 정훈의 길은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스로 대표되는 초인류의 길도 펼쳐진다.

 

소설에서 제노사이드는 아프리카에서 현재도 자행되고 있는 여론의 관심 밖인 종족 말살 사건들, 미행정부에 의한 초인류 말살 작전, 그에 응전하는 초인류의 인류에 대한 말살 가능성 암시. 이 모두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얘기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이 중에서 선진국의 자원 갈취와 얽힌 아프리카에서의 제노사이드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이와 더불어 현실과 연결고리를 갖은 채 비판하는 또 다른 것은 (아들 부시 행정부를 대놓고 카피한)미국 정부가 자행한 짓들인데, 하지만 이 분노는 때가 너무 늦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제노사이드는 진행형인 반면, 이미 물러난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은 지금으로서는 울림이 크지 않다.

 

소설이 담고 있는 것이 참 많다. 하지만 또 아주 많은 것이 없다.

 

제노사이드는 제네시스(창세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큰 주제였지만, 그 주제에 울림을 부여할 철학은 빈곤했다. 짐승, 인간, 초인류의 길에서 초인류가 짐승인 인간을 제어한다는 생각은 평범하다 못해 위험하기까지 하다. 신을 처음으로 창조한 인간(아마도 첫 번째 제사장이 되었겠지), 스스로 절대권력을 행사한 제왕과 독재자들도 처음엔 모두 그 논리였을 것. 뭐든 더 강한 것, 더 올바른 것이 존재하고 그들이 우리를 보살피거나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은 세상을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 중 하나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라는 큰 주제와 걸맞지 않는 저자의 이런 안이한 대처(철학)는 등장인물들의 입체성을 현격히 떨어뜨렸고, 스토리의 결말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읽어나가면서 누스는 왜 하필 폐포 상피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기프트(컴퓨터 프로그램)를 주었을까? 고가 겐토를 도와주는 일본과 미국의 조력자는 누구인가? ‘누스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 또는 누구인가? 어떤 결말을 보여줄까? 등등의 수수께끼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가 너무 쉽게 풀린다. 작가 스스로가 독자가 알아채지 못할까 봐 안달이 난 사람처럼 너무 눈에 띄게 쉽게 정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복선이란 것이 알듯 모를 듯 표현되어야 제맛인데, 김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평범해서 지루했다. 그나마 기름도 다 떨어져가는 민간 제트기가 어떻게 F-22 Raptor를 따돌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흥미로웠다.

 

세 번째는, 새로움이 적다. 소설에서 다루는 정보 중 눈에 띄는 것들은 인류의 진화방향(또는 종말 시나리오), 신약 개발 과정, 미국의 정보기관 관련 정보, 미국의 각종 신무기 정보 등이다. 나는 무기 관련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와. 내가 이렇게 무기에 대해 많이 아는지 몰랐다.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무기를 다 알고 그 성능까지도 꽤 알고 있었다는 점. 즉 소설에서 다루는 무기 정보가 전혀 새롭지 않았다. 국제관계 뉴스는 꽤나 집중해서 보는 편인데 알게 모르게 그때 습득했던 듯 하다. 마찬가지로 정보기관 관련 정보도, 종말 시나리오도 전혀 새롭지 않다. 신약 개발 과정만이 흥미로웠지만 기프트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신약 개발 과정은 거의 생략된 채였다. 전에 내가 일본 SF만화를 너무 많이 봤나무엇 하나 새롭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놀랄 지경.

 

아프리카 소년병이 지옥(제노사이드의 한 가운데)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총격 장면. 앞날이 뻔한 제약 연구원과 역시 앞날이 뻔한 용병과 미국의 수재 연구원과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과 아프리카에서 제노사이드된 사람들과 강대국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 준 것. 이 두 가지는 매우 무겁고, 의미 깊다.

 

그렇지만 독자를 지독한 갈등에 빠뜨릴만한 팽팽한 철학적 대립, 흥미를 배가시키고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SF라면 으레 기대하는 최첨단의 새로운 지식(또는 진기함). 이런 것들, 많이 아쉽다.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은 외국시의 일부를 시제처럼 올려놓고, 그에 대한 시인의 자유로운 감상(?)을 시로 읊은 시집이었다. 올려놓은 외국시와는 거의 상관없는 듯, 그러면서도 그 핵심은 뭔가 깊이 관여된 듯.. 모호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이성복의 시. .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는 한국시의 일부를 좌측 페이지에 실어 놓고, 우측에 소설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한 사랑이야기를 펼쳐놓고 있었다. 비평가여서 그런지 날카롭고 과장된 낱말들이 줄을 이었던 게 생각난다.

 

권혁웅은 한쪽에 한 편의 한국시 전체를, 그리고 그 시에 대한 해설 & 감상을 직접 시로 적어 나가고 있었다. 언뜻 읽으면 무슨 얘기인 줄 몰랐던 시를 그의 설명 시()를 읽으니 확연히 알겠다. 몬스터 멜랑콜리아에서도 느꼈지만 설명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인간의 피부는 세 가지 면에서 독특하다고 한다. 털이 없고 땀을 흘린다는 점, 검정색에서 흰색까지 자연적으로 매우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장식에도 사용된다는 점. 그 중 특히 털과 땀의 이야기는 놀랍다. 뜨거운 외부 환경, 커지는 뇌 크기(뇌가 커짐에 따라 에너지도 더 많이 소요)에 적응하기 위해 체온 조절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던 인간이 선택한 진화의 역사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털을 없애고 땀(걸쭉하고 진득한 땀이 아닌 거의 물에 가까운, 에크린 땀샘으로부터 생성된)을 많이 흘리게 된 사연(?)을 알게 되니 정말 진화생물학자들은 영화나 드라마 없이도 살겠구나 싶다. 이렇게 드라마틱하니자외선과 멜라닌과 비타민 D 합성의 관계도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됐다.

 

 

 

 

 

하나의 문장. 그 문장을 문 열듯 힘껏 젖히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하나, 세상에는 그 자리에 못이 박혀 꼼짝도 안 하는 문장, 독자의 눈을 붙들고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손을 굳어 버리게 만드는 문장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산양들의 왕과 산양을 사냥하는 사냥꾼의 대결은 깊었고 아득했다.

 

소설로부터 기대하는 건 통찰력, 아득함, 새로움. 이 셋이 가장 크다 여긴다. 나비의 무게. 에리 데 루카의 이 소설은, ‘허공 위에 남겨진 바느질자국이다.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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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1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위에 책 몇권을 올려두고는 뭘 읽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제노사이드인데 여기서 보니 급 반갑네요. 드림아웃님 서재에만 오면 꼭 책을 보관함에 넣게 되는데 오늘도 그렇네요. 지금 비와요, 드림아웃님.

dreamout 2012-08-20 08:20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 갑자기 하얗게 비가 쏟아져 놀랐어요. 다행히 출근준비 마쳤을 때는 잦아져서..무사히 가고 있지만... 하루 더 쉬고 싶은마음이 강해지는 아침.

... 2012-08-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노사이드 시작했어요. 하지만 언제 다 읽을 지 모른다는게 함정.
이번 달에 (현재까지) 읽은 책 0권!

나비의 무게, 담아가요.

dreamout 2012-08-20 20:58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정작 읽고 싶은 책들에는 손이 안가서,
좀 가벼운 책들을 찾아 읽고 있어요. 나비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지만 두께가 얇아서 읽었더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