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끌리는 단어를 잘 봐
삶은 그런 단어와 어울리려 하는 것
좋아하는 단어를 찾고 만드는 것
아마도 너의 이름이 내게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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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 être’말하기 dire’간의 이 미친 방정식이 좋습니다. 저는 지식인들을 그저 지상의 소금으로 보거나, 사회라는 기계의 운전자로 보거나, 도시의 현자들 혹은 봉급 받는 도시 교육자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의 그런 하찮고 초라하고 알맹이 없는 자부심보다는, ‘존재는 말들을 필요로 한다고, ‘존재해체속으로 가라앉아 버리지 않고 끈기 있게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자의 위대한 편집광이 더 좋습니다.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철학 하는 태도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은 대화가 아니다.

선을 긋는 일이다.

말들로 존재의 선을 긋는 일.

 

 

 

 

콘셉트에 담아야 할 why에 대한 6가지 대답

(1)?..... 의미 있잖아. (허세거리=meaningful thing)

(2)?..... 대세잖아. (안심거리=mega trend)

(3)?..... 내 이야기야. (진심=sympathy)

(4)?..... 내 생각과 같아. (교감거리=motivation)

(5)?..... 네 잘못이 아냐. (핑계거리=because of)

(6)?..... 이거니까. (본질=originality)  

 

팔기 위해 우리는 콘셉트를 잘 잡아야 한다. 박신영은 why 부터 시작하라고 내내 주장한다.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한 단어. Why.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말과 박신영의 말이 겹치는 어느 영역인가에 우리는 늘 빠져있지만, 전체 레이아웃을 살피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레이아웃은 각 디자인 요소를 전체 미적 계획에 맞춰 한정된 공간에 적절히 배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태와 공간의 경영이다. 레이아웃의 주된 목적은 독자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텍스트와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달하는데 있다. 훌륭한 레이아웃은 독자들이 복잡한 정보들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

 

독자들의 의식적인 노력을 감해주기 위해 디자이너는 레이아웃에 주의를 기울인다. 내 삶을 사는데 있어 나는 독자였나? 디자이너였나? 레이아웃을, 콘셉트를, (개념)들을나는 만드는 사람이었나, 주어진 것들을 그저 이용만 했을 뿐인가.

 

 

 

무의식은 신비한 방향타. 인터넷서점 카테고리로 보면 전혀 다른 책들임에도, 내 무의식은 개 코처럼 킁킁댄다. 생각 없이 걷던 길 한가운데서 다시금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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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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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0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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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0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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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3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독일어 작품이고, 사유소설 이라고 하길래 나는 저 제목 특성 없는 남자그것없는 남자의 이야기로 생각해 왔다. 즉 배 아래 얘기는 하나도 없고 뇌와 입으로만 진행되는, 특정한 스토리라인이 없는, 휑한 회색 빛 콘크리트 같은 소설일 것이라고. 이건 오해였고, 이 오해는 또한 오해였다.

 

첫 번째 오해. 0.1밀리미터의 하찮은 오해는 생각보다 꽤 큰 즐거움이 된다. 기대 없이 본 영화가 생각보다 괜찮았던 경우와 비슷한 느낌. 이 소설에는 남자도 여자도 많이 나온다. 사유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유는 충분히 알겠지만, 그것만큼 이 소설은 캐릭터 중심 소설이기도 하다. 다만 이 캐릭터들은 사유가 곧 몸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인물들이라는 것이 두드러진다.

 

여성 등장인물들이 특히 관심이 갔다. 레오나는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이자 가끔 매춘도 하는 여성. 보나데아는 착하고, 유부녀고, 여러 남자들과 바람 피우는 여성으로. 울리히의 친구인 클라리세는 천재를 탐하는, 발터(울리히의 남자친구)의 아내이자 발터와 섹스리스 생활을 한지 꽤 되는, 남편이 천재라고 생각하고 결혼했지만 예상과는 다르다고 예감하는 여성으로. 울리히의 먼 사촌인 디오티마는 특유의 능력으로 나름의 권력을 쥐게 된, 아우라를 지니게 된, 그렇지만 알게 모르게 속물인 듯한, 아른하임(울리히와 여러모로 반대되는 인물)을 사모하게 된 여인으로. 게르다는 반유대주의 사상에 빠진 남자를 만나 유대인인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게 된 여성으로. 라헬은 디오티마의 어린 하녀고, 한 아이의 엄마인 인물로. 등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들과 주인공 울리히와의 관계다. 1~2권에서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오는 여성은 두 명(레오나와 보나데아)이지만, 다른 여인들과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한 마디로, 특성 없는 남자는 발기불능의 남자는 아니었던 것.

 

따라서 휑한 회색 빛 콘크리트 같은 소설이라는 내 오해는 불식되어야 했지만, 실은 이 소설은 더한 소설. 회색 빛인데다가 거칠기까지 한 콘크리트 같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섹스와 육욕은 있지만, 사랑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점차 쓰레기화되어 가는 느낌. 근대적인 사유들이 각각의 인물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부여하고 그 욕망들이 예전에 인간적이라고 불렸던 가치들을 거침없이 찢어발기고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중 언어로 말하면 모두다 현실 감각만 키워가고 가능성 감각은 상실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2.

개념을 기다리고 있는 체험. 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특성 없는 남자를 읽으며 메모한 짧은 문장들을 지금 하나하나 보니, 대부분이 우리가 사는 현대를 날카롭게 사유한 결과들이었다. 개념화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물론 대부분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봐서 이젠 새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표현들).

 

적대적 행위를 통해 존재. 채워지지 못한 방들로서의 환상. 실용적 관심사. 사람 없는 특성들의 세계. 불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생각. 미확(미확정)이라는 주문. 세가지 논문(침묵하기, 필요한 일만 하기, 무덤덤하기). 명령할 군대가 없는 폭군들. 사방 1밀리미터(만큼 전문화된). 자기들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을 때라야 큰 기쁨을 느끼는. 스펙터클에 매달리는 히스테릭한 애착. 실증주의자, 모두 비슷비슷하게 나쁜 생을 영위. 결혼 밖에서 생생한 여성의 이상을 발전. 모든 인간이 우주의 중심.

 

이 중에서 예를 들어, ‘아주 불운한 사람이나 행운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나쁜 생을 영위하지만이라는 표현은 톨스토이를 표적으로 삼은 말일 테다. 울리히의 사유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에 흘러 넘쳤던 여러 사상들에 대한 반박과 지지를 통해서 움직인다. 언뜻 보이는 것만해도 20세기 초. 당대를 주름잡았던 웬만한 사유들은 다 등장하는 듯.

 

그리고 그 시대. 1913년 전후. 사유들이 마치 휘발성 있는 물질인 것처럼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던 시절. 전쟁과 파시즘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전 유럽의 불안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을 채우고 있다. 캐릭터 중심 소설이라는 말을 했지만 이 소설은 또한 시대소설이기도 하다. 다만 그 시대가 짧은 유행의 한 시기가 아니라 1913년에서 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큰 틀의 시대라는 점에서 여느 시대소설과 다를 뿐.

 

 

 

아직 그 유명한, 책을 읽지 않는 사서(가장 기대하고 있는 대목), 여동생도 등장하지 않았다. 전부 번역된다면 다시 읽고, 작가 스스로 에세이즘.이라고 명명한 그 형식의 독특함을 해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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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6-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무척 읽고 싶었지만 사유소설 이라는 말에 몇 장 안넘기고 다음에, 라고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드림아웃님의 이 글을 보니 이 책은 나름의 재미를 충분히 갖추었을거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마침 제가 어제 본 영화 [셰임]이 떠오르기도 해요. 영화속 남자는 집에서는 노트북을 통해 성적 유희를 즐기고 회사에서는 노트북에 포르노를 다운받고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는 길에서 섹스를 할 정도로 섹스에 집착하지만, 정상적인 데이트에서 오는 성관계는 잘 해내지 못하거든요.

이 책 다음에 읽기 시작한 책은 어떤건가요, 드림아웃님?

dreamout 2013-06-17 22:47   좋아요 0 | URL
A. S. 바이어트의 소유.요. 아주 오래전에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껏 읽지 않다가.. 이제서야 시작해 보려구요. 이런저런 다른 책들도 있어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요. ^^

다락방 2013-06-17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아아아악 소유 좋아요 드림아웃님!! 저도 읽은지 오래되어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제가 가진건 미래사 책이네요.

dreamout 2013-06-17 23:09   좋아요 0 | URL
6월14일로 큰일 하나를 해치웠고, 내일.. 18일 또 하나의 큰일을 해치워야 하는데.
무사히 마무리 된다면 수요일부터는 숨 좀 돌릴 수 있어요.
그렇게 좋으셨다니, 속도를 내보고 싶은 맘이 드네요.
 

 

형식 Form

후고 리만은 형식이 다양성 속에서 통일감을 주는 요소라고 했습니다. 1800년 이전의 미학자들도 음악적 캐릭터에 대해 리만과 같은 의견을 취했었지요.

 

나는 형식과 캐릭터(느낌, 심리, 분위기, 표현, 감정)를 일란성 쌍둥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음악 작품의 형식과 구조는 눈에 보이는 것이고 악보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쌍둥이인 캐릭터는 경험적인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실증적인 존재인 형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쌍둥이를 자신에게 종속시켜 버릴 수도 있지요. 음악 작품을 악보를 보며 분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형식을 느끼는 것은 그보다는 어렵고, 한 작품의 심리를 캐낸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랍니다 

 

 

작품과 인물 opus – person

작품의 이해를 위해 그 작품을 쓴 음악가의 전기를 열심히 탐구하는 연주자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인물은 동일한 것이다. 개인의 성향은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반영된다. 개인의 성실성이 작품의 완벽함을 보장해 준다는 주장들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맞습니다. 특히 음악에서는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죠.

 

베토벤의 편지나 자필 악보를 보면 엉망인 글씨체가 눈에 띕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의 집안도 엉망이라지요!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그의 음악은 빈틈 하나 없이 질서정연하답니다.

 

 

 

 

칸타빌레, 아르페지오, 싱커페이션, 크레셴도, 디미누엔도, 트릴 등 음악용어에 포커스를 맞춰 브렌델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는 줄만 알았는데, 단순히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생각들이 풀숲의 작은 야생화처럼 드문드문 드러난다.

 

 

 

 

 

 

 

앤드루 와이어스는 겨울에, 마음이 겨울일 때 보는 게 좋다.

어느새 살갗에 파고든 찬 기운은,

다 벗겨진 이후에도 남아있는 무언가가 내 안에 아직도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한줌의 힘.

그것만이 내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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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와 지하철 개찰구에 다다랐을 때 든 생각. 오늘 내가 양치질을 했나 머리는 감았나 세수는 했나. 당연히 했겠지. 그러지 않고 여기까지 왔겠어?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세면대 앞에 있었던 시간들은 어디로 날아가 버린 걸까. 집에서 나와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회사로. 퇴근할 때는 그걸 다시 리버스. 근데 그 걸었던 거리에서 내 눈에 들어왔을 그 무엇, 피부로 느꼈을 그 무엇이 백색의 종이 위에 백색의 연필로 스윽 적어놓은 것처럼. (0)으로 남을 때.

 

한편으로 그것은, 일에 몰입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 하지만, 그 일이 일한만큼 성과가 커지는 성격의 업무가 아니라 커트라인만 넘으면 되는 업무인 경우, 과연 그 일은 몰입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인가? 아닌가? 하는. 일에 대한 의구심이 곧 삶에 대한 의구심이 되어가던 때에

 

만난 이날을 위한 우산은 사색적이어서가 아니라 관찰적(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이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일에 대한 값어치를 생각한다.고 했을 때, 속으로는 그 일의 값어치를 누군가 알아봐주길 원하는 마음에 그 일에 조금이라도 무심한 모든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마구 찍어내고 있던 게 아니었나. 라는 반성을 했다. 그건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지만, 이 소설의 이런 메시지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사색의 흐름이 산책자의 걸음걸이와 동조화 될 때, 그리고 그 걸음걸이가 또한 호구지책과 연결되었을 때. 사색과 관찰과 경험과 생활과 욕망이 겹쳐서 함께 걸을 때, 유머까지 그 곁에 조용히 함께 하는 풍경을 생각한다면, ‘이날을 위한 우산이 그와 같다고 말해도 좋겠다. 고 또 판단 내리고 만다. (이건 정말 지독한 습관인데, 작중 화자이자 주인공의 말을 인용하자면 하나의 감미로운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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