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드의 깨끗한 욕실. 먼저 들어가 씻은 이는 롤런드였다. 그곳에서 그는 그와 발(롤런드의 연인)이 살고 있는 집의 좁고 지저분한 욕실을 떠올린다. 다음에는 모드. 그녀는 거기에서 옛 애인인 퍼거스 월프와 여기저기 구겨져 있던 자신의 침대를 떠올리며 진저리 친다.
두 번째는 실 코트의 욕실. 크리스타벨 라모트가 살았던 곳의 2층 욕실. 세상을 덮을 만큼 눈이 쌓이던 그날. 먼저 들어가 씻은 이는 모드. 나중이 롤런드였다. 욕실은 물론 욕조가 있겠지만, 욕조에 누운 모습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욕실에서 씻을 때 주인공들은 서 있는 모습이다. 서 있다. 그리고 순서가 있다. 먼저 한 사람이 씻고 나중에 다른 사람이 같은 욕실을 사용한다. 실 코트의 욕실에 나중에 들어간 롤런드는 모드의 자취를 읽는다.
정체성 문제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하다. 존재의 문제. 다른 누군가에게 용해되어버려 자기 자신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존재를 녹일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방어기제의 작동.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 욕실은 작동한다.
2.
침실에서 연인들은 동시에 같은 곳에 있다. 숨소리, 긴장된 피부, 고정된 눈동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온갖 사랑의 행위들. 그것은 일종의 스펙터클. 그리고 물론 오르가슴이겠고, 그때 각각의 개별 존재는 순간 사라지고 더 높은 존재로 승화되거나 더 낮은 존재로서 전투를 치른다.
빈 방의 하얀색 침대. 롤런드와 모드가 꿈꾸는 공간. 그 침대는 욕실과 거의 매칭되지만, 그럼에도 침대는 빈 방의 하얀색 침대로만 남을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그것은 구겨지게 되어 있는 것. 빈 방의 하얀색 침대는 일종의 투사일 것인데, 그것은 또한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했음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침대는 사랑의 장소, 서로가 서로에게 용해되는 장소,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곳이다. ‘사랑’을 떠올릴 때 딱 붙어 다니는 이미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사랑, 결혼의 이미지.
침실의 사랑학이 있고 욕실의 사랑학이 있다. 누군가를 온전히 소유하고 싶기도, 누군가에게 온전히 소유되고 싶기도. 자기 자신으로 자립하여 존재하고 싶고도,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슬쩍 기대고도 싶기도 한 욕망.
3.
각 챕터의 맨 처음을 장식하는 것은 거의 시(詩)다. 크리스타벨 라모트 또는 랜돌프 헨리 애쉬의 작품들. 이 시들이 내내 장애물이 되었다. 상징성을 듬뿍 담은 이 시들은 배경지식이 얕은 독자인 나로서는 이해도, 공감도 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레오노라(크리스타벨 라모트의 또 다른 연구자)가 라모트의 묘지에 찾아간 것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묘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아차! 했다.
그 시들은 모두 결국엔 묘비명(epitaph)이라는 것을.
묘비는 서 있다. 주검은 누워 있다. 서 있음과 누워 있음이 공존하는 곳. 몸에 맞는 관 하나가 땅속에 누워있고 작은 묘비 하나가 그 위에 서 있다. 욕실과 침실의 공존. 아, 결국 사랑과 존재에의 욕망이 겹쳐진 우리의 삶을 시(詩)로써 반복해 읊었던 것을. 그것이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때 우리 삶에 대해 쓸 수 있는 단 몇 줄의 가장 중요한 문장들이라는 것을.
수직의 욕망(욕실, 존재)과 수평의 욕망(침실, 소유)에 대한 어마어마하게 풍부한 상징을 담은 지적인 이야기면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유쾌하기까지 한 이야기. 읽고 있는 중에 이미 아주 많은 것들을 내 속에 침묵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작품. ‘풍부하다’는 평을 이런 소설에 쓰지 않으면 대체 어디다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