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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말피타노에 관하여
로베르토 볼라뇨, 송병선, 열린책들
광기와 만남의 관계를 생각했다. 광기의 정의는 얼마든지 내릴 수 있겠지만, ‘유사하지 않고 인접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났거나 만나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해도 될 것 같다고. 신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이나 만나기를 강력하게 원하는 사람들 보고 ‘제정신 아닌’ 사람이라고 흔히 말하듯. 아말피타노의 딸아이의 엄마, 롤라는 ‘시인’을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간다.
몬드라곤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인’을
만나러 간다고, 어린 딸을 내버리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무덤에서 자고, 자신을 내팽개치고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홀려서 떠돌아
다닌다.
하지만 이건 내 판단일 뿐이다. 나는 ‘유사하지 않고 인접하지 않은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혹은 타인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롤라에겐 무의미하다. 그녀를 반면교사 삼아 교훈을 뽑아낼 수는 없다. 그런 광기를 두려워하거나, 함께 물들기를 바라는 게 전부일지 모른다. ‘미쳐야 미친다’는 베스트셀러 제목을 꺼내보자면, 1부. 비평가들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운 좋게도 ‘미쳐야 미친다’라는 구호에 알맞게 미쳤다. 롤라는 그 방향이 삐끗했을 뿐이지 않을까.
아말피타노는 스페인에서 멕시코 산타테레사로 왔다. 딸과 함께. 소설의 처음은 ‘무엇을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아말피타노를 보여준다. 이렇게 소설은 두 발이
지상 10센티미터 정도 뜬 것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한다. 그러고는
우기가 시작된 오카방고에 물줄기가 모여들 듯 쉼표 없이 쭉쭉 흘러간다. 롤라를 회상하는 전반부가 그렇다. 후반부엔 산타테레사에서의 아말피타노의 삶을 보여주는데, 다시 건기가
찾아와 땅에 균열이 시작되는 분위기다.
산타테레사는 1부에서도 2부에서도
중요한 장소다. 아마도 소설 전체 분위기를 덮어버릴 것으로 추측된다.
엄청난 더위, 따분함과 무기력, 연쇄살인 사건의
도시. 그러니까 아말피타노는 ‘무엇을 하러 왔는지 모르는
상태’로 유사하지 않고 인접하지 않은 ‘장소’와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짜맞춘 얘기다. 그는 칠레 사람이고 스페인을 거쳐 멕시코로 왔다.
그곳들은 ‘인접’ 지역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억지를 부려서라도 짜맞춘 이유는 산타테레사가 U.S.A와
인접한 지역이고 그것은 스페인과 칠레와는 다른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국과 빈국의 국경지대라는 위치는
무시할 수 없는 광기의 조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와 B,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C. 아말피타노가 무의식적으로 낙서한 도형의 꼭지점에 각기 적어놓은 이름들처럼 ‘어디’도 ‘누구’처럼 광기에 관여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 없는 역사를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그
제정신 아님이 ‘마술’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얻게 된 사실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비아냥거리면서도 비아냥의 대상을 던져 버리지도 못하는 화자의 스탠스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에이즈에 걸려 딸 로사를 마지막으로 보러 온 롤라가 낮 시간(딸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에 다시 말없이 떠나리라고 추측한 아말피타노의
생각과 달리 저녁을 함께 먹고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잠든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떠나는 장면은 나를 흔들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