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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참 좋아
이은소 지음 / 새움 / 2023년 2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나를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부터 나는 혼자였다. 불안과 슬픔의 강 한가운데에서 홀로 서 있어야만 했다. 강 한가운데에서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밤마다 기도했다.
'제발 안 되길, 제발 안 되길, 제발 그런 사람이 안 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열 여섯, 그런 사람은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는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 평생 수도자처럼 홀로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p54
"좋아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끔찍이 여길 만큼 나쁜 일일 테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뭐가 나빠? 싫어하는 마음이 나쁜 거지"
"고마워. 난 네가 나를 피하고 멀리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
그러나 준영이의 미소가, 준영이의 안도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준영이는 왜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며 살아야 할까. 준영이는 왜 타인의 이해에 고마워해야 할까. 앞으로 얼마만큼의 이해에 안도하고 또 괴로워해야 할까. 준영이는 나처럼, 보톤 사람들처럼,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인데.p114-115
"내 마음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 몸도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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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들킬까봐 조마조마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준영, 그리고 준영을 짝사랑했지만, 그의 커밍아웃으로 누구보다 준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준영의 편 친구 소우주를 중심으로 챕터별로 둘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예민하고 흔들리는 시기, 준영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
준영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준영의 짝사랑 상대 교회 형과 무리들은 그를 혐오하고, 학교에서도 준영을 향한 수군거림은 계속된다. 또 누군가는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해 준영을 다치게 해 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준영이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병이라 치부하며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시키고, 아빠는 외면하며 준영을 멀리하지만, 누나들은 준영에게 괜찮다고, 위로하고 응원한다.
유일하게 준영의 편에 서서 준영을 위로하고 웃게 해주는 친구 소우주는 내내 준영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게이에 대해 공부하고, 솔직하게 그의 심정이나 상황들을 묻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함께 웃고 울고, 필요할때 어깨를 내어주는 소우주의 마음이 무척이나 뭉클했고, 그런 친구가 곁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이 죄로 치부되는 종교와 세상에서 준영은 상처받고 울고 괴로워하며,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 아팠다.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내딛는 것 자체가 버거운 준영의 마음과 그런 준영을 바라보는 소우주의 마음들이 세밀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가정, 학교, 종교, 사회가 성소수자인 아이를 부정하며 행하는 가혹한 정서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들을 그리며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냈다.
따뜻하고 뭉클하고 예쁜 마음이 담긴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건 '날씨가 참 좋아' 라는 말은 성소수자 사이에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쓰이는 은어라고 한다.
참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과 표현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어렵고 힘든 일....
한 개인의 마음을 왜 사회와 타인들이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건지, 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왜 TV에서 토론거리가 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종교적 탄압이나 그들의 태도는 동의가 어렵고, 언제나 종교가 취하는 입장은 아쉽기만 하다.
누군가는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성소수자의 삶을 응원한다.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성을 바꿔서라도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을 나는 존중한다.
차별과 혐오, 억압과 지탄들을 감내하고서라도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려는 그들의 선택을 누가 감히 반대하며 욕할 수 있을까.
소수자란 이유로 누구에게도 차별받고 상처받지 않기를....
녹록찮은 그들의 삶이 참 좋은 날씨처럼 찬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