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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계약서에는 계약 기간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3,6,9개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구 개월이 지나면 어차피 다른 공정으로 보낸다고 했다. 면전에 대놓고 '우리는 사람 쓰다 버릴 겁니다'란 선언을 들은 듯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p109
티브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해달라 절규하는 하청 직원들을 보았는데, 현실은 동일 노동조차 안 시켜주는 셈이었다. 진짜 욕 먹어야 할 주체는 재벌과 대기업이건만, 유달리 노조가 더 비난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재벌의 횡포가 아메리카노 정도라면 눈앞에서 직접 체험하는 차별은 에스프레소 원액만큼 썼다.p111
언제 해고통보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곳. 외통수에 몰린 내 모습을 더올리니 목구멍 안에 바삭해지는 느낌이었다.p113
"야, 현우야. 우리 없으면 누가 다리 만들어주냐? 우리뿐만 아냐. 청소부, 간호사, 택배, 배달, 노가다, 이런 사람들 하루라도 일 안하면 난리 나. 저기 서울대 나온 새끼들이 뭐하는 줄 알어? 서류 존나 어렵게 꼬아놓고, 돈으로 돈 따먹기만 하고, 땅 덩어리로 장난질이나 치지. 그런 새끼들보다 우리가 훨씬 대단한 거야. 기죽지 마."p116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는 안내에 영감님 한 분이 길길이 날뛰는 중이었다. 안타까웠다. 넉넉한 사람이면 왜 굳이 나랏돈을 축내겠는가. 쪼들리고 힘겨우니 몇 달이나마 인간답게 살 기간 좀 달라는 것 아닌가. 분명 어느 정도 나라의 책임도 있을터인데, 온갖 눈총 혼자 다 받으며 퇴장하는 노인의 뒷모습이 못내 씁쓸했다.p124-125
사교육과 대학 서열화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의 소산물인 돈이 만들어낸 결과물. 평등과 이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이 안 되니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연히 자신의 욕망 외 다른 가치를 모른 채 어른이 된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만들어졌다.p215
대다수는 부의 정점에 오른 다음에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했다. 노동자를 밟아 누르고, 중소기업을 피눈물 쏟게 했으며, 정치인과 야합해 나라를 제 입맛에 맞게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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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원칙이 없었거나 권력을 얻으며 잃어버렸다. 방향성 없는 권력은 블랙홀처럼 팽창하며 약자들을 집어 삼킨다. p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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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시절을 보낸 청년 노동자 천현우 작가.
굶주림과 학대에 방치 되었던 어린시절과 외로움과 방황 속에 보냈던 청소년 시절,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매일매일이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꿈도 희망도 없는 20대 청년시절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다.
특성화고등학교를 나와, 하루에 3-4시간을 자며 일해도 200만원 남짓한 월급에 어머니의 빚과 병원비에 허덕이며 치열하게 산 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평과 공정, 평등이 없는 나라에서 시작점이 다르니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의 굴레와 현실에 씁쓸해진다.
지방, 전문대, 용접노동자, 청년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혐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용역과 하청업체, 직장 괴롭힘과 갖가지 폭력, 복지 사각지대와 제도적 허점들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살고자 했고,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고,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한 청년의 절규와 치열한 삶과 분투가 진솔하게 다가온다.
한 걸음씩 내딛고, 한 단계씩 성장해 왔고, 성장해갈 그의 모습을 응원한다.
시대착오적 노조탄압과 69시간 근로시간제로 장시간노동착취로 반노동정책을 펼치는 윤석열정부가 절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할 삶이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렇게 치열하고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