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의 무게 푸른숲 어린이 문학 43
나탈리 라가세 지음, 김자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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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봐도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였다.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캄캄한 동굴에 들어가거나, 거대한 털북숭이 거미가 다리를 타고 올라왔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것은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과 불안감이 한데 섞인 것이었다. 목구멍에 걸려 있는 덩어리처럼 불편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두려움이었다.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쁜 기억이 이마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미간 사이에 주름을 깊게 새겼다.p14

심각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잖아. 이렇게 마음을 다독거려 보려고 애썼지만, 그건 진짜 내 감정이 아니었다. 그 애가 내 몸에 손을 댄 것도 아닌데 왠지 공격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 놀란 건 내가 자책감에 사로잡혔다는 거다. 어제 그 장면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면서, 목구멍에 걸린 덩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p18

내 삶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변화의 문을 열고 싶지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나비로 변해서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걸 엄마가 발견한 거라면 좋겠다. 날개가 가슴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머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몸이 앞서 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가슴은 이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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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는 하교길에 또래 남자아이들을 마주치고, 그들은 갑자기 바지를 스윽 내려 로지를 성희롱 하고 로지를 만날때 마다 노골적으로 놀리며 가슴을 쳐다보는 등 계속 성희롱을 하며 괴롭한다. 로지는 이 사건으로 인해 강한 충격을 받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남자아이들이 무섭고 싫어진 로지와는 달리 가장 친한 친구 아나는 내내 남자아이들 이야기를 해 로지를 불편하게 한다.
로지의 생일, 아나와 같은 반 친구 마테오가 로지에게 생일 카드를 보내고, 로지는 자신을 성희롱 하던 아이들을 향한 마음과는 다르게 마테오에 대한 관심과 호감에 당황스러워한다.
자신의 알 수 없는 마음과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기복에 혼란스러워하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지나가는 길에 공사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두명이 로지와 엄마에게 휘파람을 불며 희롱을 하자, 로지 엄마는 그들을 향해 단호한 태도로 잘못된 행동이며 불쾌하다 당당하게 말하고 사과를 받는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로지는 자신을 내내 괴롭히던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고, 엄마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사춘기의 십대 소녀의 여린 마음과 고민들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갑작스런 성희롱에 내내 괴로워 하던 십대 소녀 로지를 보며 가해자는 떳떳하고, 되려 피해자는 자책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이겨내려 애쓰고 끝끝내 자신을 괴롭히던 기억에서 벗어나 당당해지는 모습이 뭉클하다.

2차 성징으로 인해 여성의 신체적 변화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나, 이성에 관심이 있으나 선뜻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 해결방안을 찾지 못해 내내 괴로워하는 모습들은 사춘기 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들이기에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생각지도 못한, 원치 않았던 일련의 과정들은 아이를 조금씩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아이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보호자와 어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메시지도 좋고, 멋진 일러스트까지 가미되어 있어 마음에 드는 책이다.

모쪼록,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아이들이 홀로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기고 원하는 길로 당당하고 멋지게 나아가고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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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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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 화가라 불리는 7인의 화가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김흥도, 신윤복, 정선을 비롯해 김득신, 김희겸, 신한평, 조영석 화가의 그림에 대한 해석과 배경, 역사가 담겨 있다.
내겐 낯설지만 저자인 탁현규님은 고미술 최고 해설가로 불리며 그가 기획한 전시와 강연들은 매회 성황리에 열린다고 한다.

저자가 선별한 50점의 그림들은 조선 후기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며, 평민들의 노동하는 모습과 양반들이 즐겨하는 매사냥과 투전, 그리고 기생과 어울리는 모습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것 하나 허투로, 실수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그려진 소품과 구도, 옷차림과 색상, 앉아 있는 위치 등 그 하나하나에도 숨겨진 의미가,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능력들의 경계를 잘 보여준다.

계절을 즐기는 풍류 뿐 아니라,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서양미술과 현대 미술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의 한 자락을 알 수 있게 한다.
놀랍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다채로운 그림들 감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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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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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하고 독창적인 이야기와 상상력을 원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거리를 나서는 작가이자 화자인 '나'는
맨 처음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 다짐한다. 우연찮게 길을 걷다 마주친 평범한 할머니 마들렌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글을 쓰고 싶다 말하자 그녀는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 그 제안을 수락한다.
42년째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마주친적 없는 이웃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그녀가 시작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다른 가족들의 등장으로 약한 치매증상이 있는 마들렌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닌, 남편과 관계가 소원해진 둘째 딸 발레리, 가족 관계와 직장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발레리의 남편 파트릭, SNS와 스포츠에 외에는 관심 없는 손자 제레미, 관심 있는 남성이 있으나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하는 손녀 룰라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간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화자인 나는 이들을 관찰하며 이 평범함이 진정한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늘 자극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만 하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권태와 필오, 소통의 부재, 소원한 관계로 인한 가족관의 갈등 속에서 자신이 해야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도움이 되려 노력하는 나의 변화나, 나의 어떤 결심으로 인해 자극받은 가족들의 변화들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가족을 비롯한 내 곁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느껴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따뜻하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일상을 뒤흔들 자극적 소재가 없어도 괜찮다.
우리는 상처받고 실망하고 아파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할 힘을 누군가에게 얻고,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하며 또 한걸음 성장해 나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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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우리는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문경민 지음, 이소영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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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키우고 싶었다. 주먹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자신 앞의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한 방에 깨 버리고 싶었다.p148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때는 계란이나 벽돌 조각이 아니라 단단한 지렛대를 쓰고 싶었다. 더 밝고 더 따듯하고 더 아름다운 곳에 세상을 올려놓고 싶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이 또 생기겠지만, 보다 나은 모습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흔들리는 건 이미 해 봤으므로.
보리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녕. 나의 열세 살.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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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권고에 맞서다 지방으로 좌천된 아빠와 늘 힘들고 피곤한 엄마의 잦은 다툼에 늘 상처받는 보리와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잃은 아빠와 입원중인 새엄마, 쌍둥이 동생들을 챙기는 루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거친 언행과 거짓말이 익숙한, 갑작스레 전학 온 세희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는 성장소설이다.

직장을 잃고 고공농성을 위해 철탑에 올라야만 했던 아빠와 바쁘고 힘든 일상에 지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이,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새 엄마와의 생활에 적응하며 어린 동생을 돌보는 아이의 마음이,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아이들 눈에 비친 부조리하고 치열한 세상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게 없다는 무력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뭉클하다.
소통의 부재와 가족과의 갈등, 학교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와 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겨내려 안간힘을 쓴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자신의 진심을 다해 닥친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뜨거운 한때를 겪어 내며 어려운 시절을 딛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떼며 힘껏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는 문경민 작가의 진심이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또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를 숨기려 한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하찮게 여기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외면하고 모른척 하고...
차가운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보듬고 돌봐주는 어른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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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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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잊히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건 싫고 무서웠다. 꼭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가 아니어도 좋으니, 내 세계는 끝나 없어지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세계 어느 한구석에는 끝내 남아 있고 싶었다. -모든 것들의 세계 中-p30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모든 것이 조금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일도, 사랑받아본 일도 그전까지는 없었으니까. 도일의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고, 나는 인간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으레 이렇게 하는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 것였다. 마치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무한대로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을 얻은 것처럼 나는 방탕하게 사치를 부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상에 그런 것은 없었다. 남에게 받은 것 가운데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고, 돌려줄 방법을 모른다면 애초에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마음소리 中-p50

<모든 것들의 세계>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은 게임중독인 고양미와 게이 천주안이 영혼 결혼식으로 만나고, 두 사람은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눈다. 양미는 매일 PC방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고, 주안은 애인이 그립지만 무서워 찾아가지 못한다. 양미는 용기 없는 주안과 함께 그의 남자친구 집에 함께 가준다.

<마음소라>
평생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마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소라'가 있는 세상!
고미는 도일에게 마음소라를 받고, 그의 사랑과 일방적 희생이 당연하다 여기며 오만하게 굴다 결국 도일을 떠나게 만든다. 잊고 살던 어느 날 그의 아내라는 양희가 찾아오고, 그의 마음소라를 돌려달라 말하며 그의 마음을 들어봐달라고 부탁한다.

<페어리 코인>
요정을 키우는 부부가 어느 날 전세사기를 당한다. 남편의 친구는 요정을 이용해 '페어리코인'을 만들자 제안하고, 부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순수하기만 한 요정을 이용해 돈을 버는게 맞는지, 친구의 과거를 돌아보자 과연 친구를 믿을 수 있는지 의심하며 고민한다. 그리고 전세사기를 벌인 집주인의 딸이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된다.

-에세이 이유리위원회 산하 의문규명위원회의 어떤 오래된 어젠다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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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은 잊고 잘 살기를 바라지만, 실은 잊혀지기 두렵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조건없이 주는 사랑을 당연하다 여기며 오만하게 굴다 결국 잃고 난 후에야 소중함을 느끼며 후회하는 마음을,
당한 만큼 복수하고픈 마음과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마음을 짧은 단편에 잘 녹여냈다.

언제나 독특한 상상력으로 매력 넘치는 글을 쓰는 이유리 작가가 참 좋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브로콜리펀치 에서 그랬듯,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이야기들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애틋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각박하고 무섭고 힘든 세상 속에서 인물들은 반성하고, 후회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치유한다.
쉽지 않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울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서로를 구원한다.

아마도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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