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희생 -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한국 해군 전투정이 북 어뢰로 추정되는 공격에 의해 침몰당한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나고 있다.

사건의 전말에 대한 정부와 비정부의 견해는 아직 대립 중 이다.

군 당국 자료와 민간주장의 간극이 점차 요원해져 가는 듯 보이기도 하다.

 

원인과 전모를 떠나 천안함 사건은 한국사회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대북, 국방개혁 등 보안에 대한 정부차원의 개선과제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용사 46명을 남겼다.

 

정부당국은 당시 수장당한 46명의 군인에 대해 전사자로서 최고수준으로 예우했다.

국가배상 관련 법 규정도 개정했고 전국민 성금도 모아졌다.

그들의 영결식은 실시간 방영되었고 전 국민 묵념의 시간도 마련되었다.

'숭고한 희생'으로 추앙한 것이다.

 

그런데 천안함 사망에 대한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다카하시 데쓰야는 '국가와 희생'을 통해 순국이라는 희생 레토릭의 허구성을 지적하였다.

다카히시 데쓰야의 관점에서는 46명의 사망자는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근대국가가 전사자에 대한 추모시스템을 강화시켜온 맥락에서 의미없는 죽음을 희생으로 가공했다는 것이다.

 

용산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전국 5개 국립묘지, 부산 유엔묘지 등의 순국추모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유사상황 시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이미지트레이닝의 목적이 내재되어 있는 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희생이 국가 위기상황에서 국민이 의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와 관련된 모든 상황의 사망을 희생으로 통칭하여

추앙하는 것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당시 상황과 사망자의 자발적 의지를 검토해서 희생의 지위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전쟁상황과 무관한 경우임에도 전사자로 처리하는 것은 어색한 조치였다.

개인의 지나친 부주의에 의한 과실사를 두고 군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희생이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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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대로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개비로 창밖이 뿌옇게 보인다.

황사와 안개가 조합된 것이다.

대기오염의 대부격인 런던 스모그가 떠오른다.

 

원래 청결했는데 외부에서 불결한 것이 유입되어 더렵혀진 상황을 '오염'이라 하는 것 같다.

물질적인 오염도 있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

최근 방사는 오염은 물질과 정신의 모두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의 방사능 물질이 세계를 오염시킬 태세이다.

바람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정부발표에

신뢰감이 생기기 않는다.

 

구제역 통제미흡과 사후대응의 미숙함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세슘이 검출되었다. 곧이어 뉴욕에 도달하고

아이슬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유럽 아라비아 인도 동남아 중국을 지나면

한반도다. 대진진 이후에도 지구는 여전히 둥글다.

 
사고는 발생원인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은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관건이다.

심각한 장애를 유발하는 사태인 만큼 진중한 대응책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요오드 대량생산을 가동하여 만일의 품귀에 대비해야 한다.

바람을 부리지 못하면서 언제까지 바람 덕만 보려고 할 것인가.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으로

울리히 벡 교수의 '위험사회'가 있다.

체르노빌 오염문제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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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5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의 지적활동을 충족하는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일전에 지적한 대로
동네도서관에 가보니 피엠피 보는 중고생이 태반을 넘어 대다수다.

 사전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일도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전자사전도 진부하다.
스마트폰 영어사전이 일상화에 도달하게 되었다.

 

대학 강의실도 무색해졌다.
하바드대학 강의도 디비디 플레이어로 보고 있으니
자격증이며 취업 관련 동영상 강의는 지적할 바가 있겠는가.
대학생은 교수보다 동영상에 나오시는 분들을 더욱 신뢰할 지도 모르겠다.

전자책도 점차 진보의 속력이 붙고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도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지식습득을 시도해 왔다. 

동영상, 전자사전은 물론이고 엠피쓰리를 통한 듣기 강좌도 종종 이용한다.

 그런데 이러한 매체를 통한 지식습득의 효과성은 냉정히 평가해볼  대목이다.

 일단 활자를 통한 눈 맞춤과 영상 또는 소리의 접촉은 각각 
두뇌자극을 다르게 하는 것 같다.

 단언하건대 공부가 되기 위해 거쳐야될 순서는
우선 읽어야 하고 그 다음에 쓰고 끝에 정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영상 강의와 엠피쓰리 강좌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남는 것이 있으려면 반드시 받아 쓰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할때는 본인의 생각도 적어보는것을 권한다.

 그런데 문제는 엠피쓰리 강좌 청취를 이렇게 하면 책읽는 것에 비해 그리 편리할 것이 없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쓰기 대신 한번이라도 더 듣는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럼 애초에 지적한 문제로 회귀되는 것이다.

요즘 책 읽는 일이 전보다 게을러지고 있는 것 같기에
스스로 다짐해 보는 차원에서
읽기 중요함을 되새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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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과목에서 베이컨이 주장한 네 가지 우상은 빈번한 출제테마였다. 
간략하게 기억해 보기로 한다.  

종족의 우상은 선입견 때문에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인간의 경향을 지칭한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성격적 특성 때문에 추론에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뜻한다.
시장의 우상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용법들이 부적절해서 생기는 언어적 혼동을 의미한다.
극장의 우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과 잘못된 방법이 결부디어 있는 철학 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장대익,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김영사, 2010. p. 47). 

 베이컨은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위의 네 가지 우상으로 부터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관찰과 실험에 근거한 자료를 토대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간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일상을 객관적으로 이끌기 위해
매우 중요한 점점사항들이라 할 수 있다. 고전 독서는 수백 수천년을 견뎌온 지혜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므로 약간의 계획을 세워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번에 내가 경험한 종족의 우상은 '국제공항'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다녀본 국제공항은 국내외를 합하여 10곳 정도 되는 것 같다. 공항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공간이었다. 다만 이용시간이 새벽이나 심야이었던 적은 전무했다.이러한 경험이 종족의 우상을 만든 것이다.
얼마전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 정도였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 공항에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입국장이 고요한 것이었다. 유동인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공항의 적막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잠깐동안 생각한 결과 우상효과를 깨닫게 되었다.
편견을 형성시킨 정보절차는 경험과 가설 그리고 둘의 결합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내가 방문한 모든 국제공항은 언제나 유동인구들로 붐볐다.(경험)
2. 지구 전체를 목적지로 정하고 있으므로 공항은 24시간 편의점 체제를 유지할 것이다.(가설)
3. 경험을 근거로 가설을 검증했다는 오류.

공항은 결코 24시간 체제가 아니었다. 공항의 정상영업 개시는 06시 30분이었고 클로징은 22시 정도였다.  공항이용에 참조하시라는 간단한 취지의 내용을 몇 자 적어보려던 취지였는데  길어져 버렸다.

정제된 정보만을 습득하여 누적시키는 자세의 중요성을 베이컨이 깨달은 것이 17세기의 일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도 고전의 영역내에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작은 전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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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학을 전공하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인문전공자에 대한 컴플렉스를 전해들었다. 회사생활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글과 말의 능력이 부족하여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때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공대 출신과 '불량작문'은 상관성이 희박하다. 예상가능한 반박일 수 있겠지만 지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을 이 곳에 간략하게 적어보기로 한다. 

 
  공대 전공자들이 인문공부한 사람들에 비하여 글쓰기 역량은 오히려 높을 수 있다. 수학과 글쓰기는 유사한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중에 공대출신자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연관성에 기인한다. 이를테면 수학문제를 주관식으로 풀어쓰는 듯한 논리적 흐름을 문자로 변형하면 주관식 시험의 모범답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원리의 터득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공대 출신자들은 일정 수준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재능을 구분하여 연마할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이때 글쓰기가 제외되는 것 같다. 기호나 부호 사용습관도 작문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호에는 상당한 분량의 작문이 숨어있다. 물론 한개의 부호가 에이포 한매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작문은 그러한 부호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인문사회에서 소논문의 적정분량은 에이포 20여매가 된다. 그런데 공대논문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분량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공대출신자들은 인문사회영역의 글밥에 질려하고 놀라워하는 경향이 있다. 알고 보면 그렇게 생각할 일이 절대 아니다. 인문전공자들은 공대논문의 소개된 많은 수식들 중에서 하나도 제대로 해독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단 공대생들은 문자나열을 귀찮아 하는 잘못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자꾸 써보는 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이다. 작문연습 초기에는 빠른 실력 증진을 경험할 수 있어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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