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 클래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송아리 옮김 / F(에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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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서 듬성듬성 빛나는 이 불빛들 중 몇몇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 p8쪽


인간 관계에서의 소통은 인간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생텍쥐페리에게 있어서 관계와 소통은 더욱 더 그러한듯 하다. 1900년에 태어나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1944년 7월 정찰 비행을 떠난 후 실종되어 우리 곁에서 사라진 그를 이 책에서 만났다. 소설로 분류해서 읽히기 보다는 자전적 에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고 한 옮긴이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200여쪽 되는 그리 긴 분량의 책은 아니지만 생텍쥐페리가 바라보는 인간상과 인간존재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조종사로서 겪게 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문장 사이사이 켜켜이 스며든 그의 생각들로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는 <인간의 대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간의 대지>라는 제목을 달고 오래 전 출간되었던 책이다. 내겐 그래서 <인간의 대지>로 더 친숙한 제목의 책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생텍쥐페리라는 걸 몰랐다면 책 제목을 보고 그냥 넘겨버렸을 책이었다. 물론 작가를 보기 전에 책 제목에 눈이 가긴 했다. 페르낭 레제의 표지그림과 함께 말이다. <Terre des hommes>라고 프랑스어로 쓰여진 '인간의 대지'를 읽을 줄 알았다면 바로 알았을테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놓쳐버린 생텍쥐페리의 그 책을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나온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프롤로그에 쓰여진 첫 문장부터 그는 나를 사로잡았다. 왜 이 책을 지금껏 읽지 않았을까?


그가 펼쳐놓은 문장들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행간마다 맞닥뜨리며 읽었다. 어떤 글에선 목이 메였다. 

동료들의 이야기, 특히 안데스산맥에서 실종되었다가 일주일만에 살아 돌아온 기요메의 이야기가 그랬다. 

"맹세컨대, 내가 해낸 일은 그 어떤 짐승도 못할 일이야." / 49쪽

인간이기에 해낼 수 있었고, 그렇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정신'이 깃들어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가장 숭고한 문장'이라고 생텍쥐페리가 표현한 기요메의 이 말은, 생텍쥐페리 마음에 깊이 새겨졌던 모양이다. 이 책은 기요메에게 헌정된 책이기도 하다.


늙은 흑인 노예, 모하메드 벤 라우신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그 자유에 대한 권리를,

리비아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하여 생존 위협을 받으며 겪는 작가의 이야기에서는 그 끝간데 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서, 걷고 또 걸으며 그가 찾고 소리쳐 부른, "인간들아!"처럼, 읽는 나조차 물에 대한 갈증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한 갈증을 얼마나 느꼈던지!


책 제목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은 마지막 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저 무거운 누더기 더미에서 이토록 매력적이고 우아한 걸작이 태어났다니. 나는 그 매끈한 이마, 뽀로통하게 내민 부드러운 입술 위로 몸을 숙이며 생각했다. 이건 음악가의 얼굴이야. 여기 어린 모차르트가 있구나. 여기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 있구나......(중략)......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울통불퉁한 저 사람들도, 저 추함도 아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각자의 내면에서 살해당한 모차르트이다. / p202~203쪽

기차의 3등칸에서 짐덩이처럼 뒤엉킨 폴란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반쯤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 모습에서 생텍쥐페리는 '상처받고 피해 입은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인류'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을 키워내지 못하는 현실을 괴로워한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상황에서 생텍쥐페리가 느낀 인류의 이 참담한 현실은, 종전과 냉전도 지나가버린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또다른 이유로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을, '어린 모차르트'를 내면에서 살해하고 있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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