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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조선경 글 그림 / 노란돌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언젠가 큰 건물의 화재현장에서 구조대원에 의해 구출된 아기가 있었는데, 화재로 불이 탄 건물이 무너져 내린 그 곳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기를 온 몸으로 감싸 안고 있던 어머니의 희생에 의해서였음을 듣고 당시 눈물을 흘리며 가슴아파했더랬다. 이 책을 읽고나서 그 어머니가 문득 떠오른 것은 파랑새를 위해 높은 산 위, 높은 나무가지 위에서 뛰어내린 멧돼지의 모습과 겹쳐져서가 아닐런지...
가느다란 펜으로 그린듯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는 그림들, 흑백으로만 표현된 그림 속에서 빛을 내는 건 파랑색뿐이다. 파랑색 새알과 그 알에서 태어난 파랑새. 모든 어미의 눈에는 자식만이 두드러져보인다. 멀리 있어도 내 아이가 우는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고, 아이들이 무리지어 다녀도 내 아이가 눈에 띄듯이 그렇게, 멧돼지의 눈에도 파랑새만이 아름답게 빛나 보인건 아닌지...
길을 가고 있던 중이였을까? 멧돼지는 땅에 떨어진 파란색 새알을 보게 된다. 잠시 바라보던 멧돼지는 그 새알을 거두어 품에 품는다. 커다란 위험이 닥쳐와도 품에서 버리지 않고 꿋꿋히 지켜내던 어느 날... 그 알이 깨지고 파랑새가 태어난다.
아, 엄마.......
멧돼지를 향해 파랑새가 던진 첫마디... 멧돼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는... 엄마,라는 한 줄 문장과 멧돼지의 눈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만으로도 엄마가 되었을 때 표현하기 힘든 그 마음을 애잔하게 풀어 놓았다.
눈만 뜨면 엄마 꼬리 조올~졸 조올~졸
배터지게 먹고, 꺼~억 트림하며 헤헤헤
하는 짓도 꼭 닮았다며 하하하
날개 하나 배 위에 올려놓고 트림하는 파랑새와 다리 하나 배 위에 올려놓고 트림하는 멧돼지. 닮을 수 없는 멧돼지와 파랑새지만, 그 둘은 똑닮아 보인다. 어미와 아기처럼 그렇게... 함께 생활하면서 닮기도 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닮고자 하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멧돼지는, 이젠 파랑새를 떠나 보내야 할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아직 날개짓도 해본적 없는데... 멧돼지를 따라 다니며 하는 짓도 멧돼지 엄마를 꼭 닮은 파랑새인데...
이제 멧돼지는 파랑새에게 날개짓만을 가르친다. 그냥 여기에서 살거라는 파랑새 말에도, 묵묵히 그저 날개짓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에만 열중한다. 부모는 언젠간 아이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것을 안다. 아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그건 기쁨이기도 할게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냈으니 보람이기도 할터이고 말이다. 그렇게 키우는 동안의 희생이 값진 것은, 기쁨과 보람이 훨씬 크기 때문일테지...
까마득하게 가파른 산 위, 그 산 위에 서있는 나무 위로 파랑새를 품에 안고서 올라간 멧돼지는 날개짓을 흉내내며 뛰어내린다. 그런 멧돼지 엄마를 쫓아서 처음으로 날아 보는 파랑새. 드디어 날 수 있게 된 파랑새가, 날아 오른 하늘에는 친구들은 가득했지만 엄마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항상 내 곁에만 있을 것 같았던 엄마... 엄마가 보이지 않자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크다. 친구들이 파랑새 주변에 가득 하늘 메우며 나는데도, 파랑새는 이렇게 말한다. 벌써 엄마가 보고 싶다,고.
파랑새... 어른이 되어 알을 품고 새끼 새를 키우고 날개짓을 가르쳐 줄 때 즈음이면 멧돼지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게 될까?
엄마... 괜히 부르기만해도 코가 찡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기만 해도 코가 찡해지기 시작한 것은 사춘기를 지나서도 한참 더 자란 후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더욱 가슴저림으로 다가오는 '엄마'는,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노심초사 지켜보며, 잘되기만을 바라는 기도, 기쁨과 자랑으로 키웠을, 그 마음을 느끼며 더해진다.
이 책은, 엄마의 희생과 사랑의 크기를 우리아이들에게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라서 반갑고 더욱 소중하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멧돼지의 희생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느낄 수 있을것이기에...
우리아이는 멧돼지가 날개도 없는데 뛰어내렸다며 걱정을 하더니, 엄마 쫓아 날아오른 파랑새가, 친구 새들과 함께 나는 하늘에서 멧돼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끝내 소매부리로 눈을 가리더니 고개를 돌린다. 묻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 <파랑새>... 섬세한 그림 표현과 간결한 문장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답게 그 희생과 사랑을 표현해 놓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