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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평점 :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실내 인테리어 스타일 중에서 플랜테리어가 인테리어의 한 콘셉트로 자리매김하였다. 집안을 자연친화적으로 꾸미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파 뒤, 침대 협탁 위, 거실 창가 등에 식물 화분으로 포인트를 주면서 초록초록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공기정화에도 좋은 역할을 한다고 하여 이러한 식물 인테리어가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나무와 화초를 다분히 인테리어용 혹은 실내 공기 정화용으로 조금 키우는 단계를 넘어서 식물 키우기가 어엿한 취미가 된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반려 동물이 있듯이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다.
그들 중 일부는 식물 키우기 취미로 온실까지 만들어 희귀 식물을 모으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날씨와 일반적인 주거 환경을 감안할 때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들은 그 몸값이 매우 높아져서 이제는 식물 재테크로까지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추세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온실이었다. 제대로 된 온실을 갖추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온실을 꾸리는데 일회용 투명 컵과 투명 뚜껑이 그중 하나다. 구멍이 뚫리지 않는 컵에 녹조류 일종인 담수 조류를 넣고서 발아를 시키거나 삽목 하여 뿌리를 내리는 용도로 쓰는데 그와 비슷하게 밀폐된 유리 용기에 작은 식물을 재배하는 테라리움의 효시가 된 식물 상자! 그 상자가 바로 '워디언 케이스'이고 이 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 상자를 테마로 하여 세계사를 훑어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했다. 요즘 많은 역사책들이 테마를 잡아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식물 운반용 상자, 워디언 케이스라는 제재가 매우 호기심을 자극했다.
워디언 케이스는 1829년에 첫 발명되었다. 발명가의 직업이 외과 의사, 아마추어 박물학자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 발명가 이름은 너새니얼 백쇼 워드, 워디언 케이스로 불리는 이유다. 워드는 우연히 식물이 물 없이도 밀폐된 유리 상자 속에서 꽤 오래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식물을 자신의 저택에서 4년간 키우게 되고 전 세계 식물 운반에 쓰일 운반용 유리 상자를 만들게 된다.
이 책은 그 상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1925년, 1948년 생물적 방제 수단으로 사용되며 여정을 끝마칠 때까지의 워디언 케이스의 역사를 담고 있다.
워디언 케이스가 발명되기 전에도 식물 운반용 상자는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신 정원사를 동반해야 했고 환기(통풍)에 신경을 써야 하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상자였다가 워디언 케이스가 사용된 이후 상업적 식물 거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한다. 땅에 심은 식물은 어떤 것이든 다 담아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워디언 케이스는 전 세계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백 년간 식물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자 우리 환경에서 보지 못한 희귀한 식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침입종, 질병, 병원균 등도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나라마다 검역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분야를 활성화시켰는데 환경 관리, 생물 다양성 보존 등과 같은 연구가 그것이다.
워디언 케이스는 앞에서도 적었듯이 마지막으로 생물적 방제로 사용되어 곤충을 운반한다. 워드는 자신이 만든 식물 상자의 미래가 이렇게 될 줄을 알았을까? 자신이 만든 식물 상자가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 지구 환경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견했을까 싶다. 이 식물 상자가 전 세계에 온갖 식물을 옮기면서 환경과 생태까지도 바꿨다는 점에서 가히 변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는 많은 자료들을 사진으로 담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흑백 또는 컬러 사진, 컬러나 흑백으로로 표현된 매우 뛰어난 세밀화, 이동 경로 지도 자료 등으로 담아 놓았는데, 이러한 편집 구성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세계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