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면서 전기 작가로 유명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만큼 역사와 문명의 악을 의식한 사람은 없다”고 평했다. 톨스토이의 사상을 츠바이크의 한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역사와 문명의 악을 의식’하면서 살아간 톨스토이는 자신의 생애를 자세하게 기록한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선 톨스토이 <인생론>의 완역서는 아니다. 출판편집부에서 이 책 ‘작품 해제’에 밝혀 놓았듯이 <인생론>에서 140편의 내용을 골라서 편역한 선집이다. 그러다보니 책의 볼륨도 꽤 적다. 전체 190여 쪽 정도이며 본문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사진을 포함하고 있으니 곱씹어 읽는 시간을 갖는다 해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제껏 톨스토이 작품은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통해 만나왔는데, 앞서 쓴 츠바이크의 평이 아니더라도 톨스토이의 사상은 그의 작품 속에서 면면히 인식되어오던 터였고 ‘대문호’라는 칭호를 톨스토이라는 이름에 앞세워 달아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가이기에, 아직 읽어보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인생론>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았다고 해야겠다. 그러다보니 톨스토이 <인생론>에서 가려 뽑아 편역했다는 ‘작품 해제’의 글이 아니였다면 조금은 실망했을 책이기도 하다. 또한 글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은 바꿔 번역하지 않았나란 생각도 든다.
<인생론>을 쓴 목적을 톨스토이는 ‘지은이의 말’에서 ‘폭넓은 독자들이 다양한 작가들의 위대하고 지적인 유산에 좀 더 쉽게 다가가고, 날마다 읽으면서 최고의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에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인용한 작가들의 사상을 자신의 문체로 바꾸어 표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 선별되어 수록된 글은 유명한 저자들의 사상과 작품 속에 실린 글도 있지만 저자명이 없는 글도 꽤 많다. ‘지은이의 말’을 통해 보면 이러한 글들은 톨스토이의 생각을 다듬어 담아 놓은 글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사상’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상은 당신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질문에 답할 때만 당신의 인생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빌려와 당신의 머리와 기억으로 받아들인 사상은 당신의 삶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본문 76쪽)
‘사상’에 대한 이러한 톨스토이의 생각은 이 책 <인생론>를 펴내는 데 있어서도 크게 작용하여 콜리지, 칸트, 루소 등의 글을 원문 그대로 실지 않고 자신의 사고의 틀을 거쳐 좀 더 톨스토이화된 문장으로 써 놓았으리라.
짤막한 글 모음 중에서, 어느 한 글은 그 문장 속 행간이 주는 울림이 깊어 뜻을 헤아리며 많은 생각을 퍼올리기도 했고, 어느 한 글은 내 생각과 달라 비판적으로 읽기도 했다.
글과 함께 실린 흑백 사진은 이 책을 읽을 때의 분위기를 어느 한 편으로는 감성적으로 만들어 준다. 글과 부합하는 흑백 사진 한 컷이 글맛까지 살려주었다 하겠다. 하지만 제목이 주는 ‘인생론’의 묵직함을, 골라 실은 140편의 글 속에서 얻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