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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20년 9월
평점 :
감정이 다친다는 것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마음상함’은 이상화된 자아상이 공격받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데이트폭력부터 국가간 전쟁까지,엄청난 이데올로기 대립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본질은 ‘빈정이 상해서’ 인 경우가 많다고 고미숙씨가 말했던 게 기억난다. (고미숙씨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이유다.) 이런 이슈에서 곧장 연상되는 단어가 ‘자존감’인데 저자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이를 대비시키며 설명한다. 논란도 많고 약간 식상한 느낌도 드는 단어인데, 저자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심지가 굳은 사람이고 상처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나르시스트는 극단적으로 이상화된 자아상으로 극단적인 열등감을 감추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대가 좌절될 가능성이 많고, 낙폭이 크기 때문에 상처도 크게 받는다. 더 문제는 자신의 진짜 감정, 진짜 욕구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반면 건강한 자존감은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기대를 하고 자신의 장단점, 자신의 욕구와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마음상함’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저자는 어린시절의 유대감, 조건없는 사랑 등의 유무로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기원을 설명한다. 게슈탈트심리학자라는데 어떤 사람은 왜 상처를 잘 받을까? 라는 것을 ‘내사’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 형성되는 부정적 ‘상처회로’로 흔히 우리가 ‘버튼이 눌린다’라는 표현하는 상태다. 자기 안의 ‘내사’를 투사한 내담자는 마음상함의 안경을 쓰고 매사를 본다. 저자가 수록한 상담 케이스는 어린시절의 ‘내사’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부정적인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저자가 삶을 보는 관점은 스토아 철학과 비슷하다. 결국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할 수 없는 일에 기대를 하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마음상함’으로 귀결된다. 두 가지 일을 구분하는 것은 지혜의 영역일 것이다. 만약 관계에서 ‘마음상함’을 겪었다면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며 관계를 단절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태도로 그 부분을 상대와 다루어야 할 것이다.(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저자의 이상적인 주체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는 주체다. 이런 주체는 상대의 비판이나 거부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비판조차 상대방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통제할 수 없기에 상대의 거부 역시 상대의 자유이고 거기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저자는 거절이나 거부를 당하고 완벽하게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절,거부, 비판은 다 큰 어른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런 ‘마음상함’의 문제는 자아를 ‘얼음땡’상태로 만든다. 자아는 완성품이 아니며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여행을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계속하는 법에 관한 것이다. 책의 구조가 아주 명확하지는 않고 논리가 약간 단편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건강한 자존감'이라는게 그렇게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걸까?), 가독성이 좋다. 국내로 치면 하지현씨 책 같은 느낌이다. 마초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조근조근 말하는 어투가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거친 세상의 갑옷을 입는 법에 관한 여러 팁을 얻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국 문제는 실천 아닌가. 저자가 원하는 건 물론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서 자신의 심리상담소까지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