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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얼짱,몸짱을 갈망한다. 기준은 물론 섹시미다. "섹시하다"는 건 "난 너한테 성욕을 느껴!"."난 너랑 자고 싶어" 이런 표현이 아닌가.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말이다. 한데, 모든 매체에서 이 괴상한 낱말을 시도 때도없이 밥 먹듯이 써대고 있다. 게다가 듣는 이들도 수치심은 커녕 오히려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보통 사람들까지 온통 섹시미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이러다 전 국민이 다 섹시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면 남보다 더 섹시해지기 위해 또 다시 뜯어고칠테지.섹시미의 무한질주? 그럼,서로가 서로에게 성욕만을 느끼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흡!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미숙,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중) 

어어,저 아가씨, 미니스커트에 시원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네.잘 하면 엉덩이 밑부분까지 보이겠는걸. 요샌 광택나는 스타킹이 유행인가 보지? 내가 아는 어떤 녀석은 저런 차림을 한 아가씰 보면서 한마디 하더군  "스타킹을 확 찢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녀석 애기임.내 애기 아님.절대 아님) <왕립우주군>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남자주인공이 방바닥에 엎드려서 여자주인공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 주인공을 겁탈하려고 하다 실패한다(물론 성폭력책임이 여자한테 있다는 애기 아님,절대아님)  여자들은 과연 자신들의 노출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남 따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동모일보에 이런 기사도 났었지. "그녀의 히든카드, 다리"- 내용인즉슨  얼굴이 딸리면 다리로라도(섹스로라도) 승부할 수 있다, 이런거?(혹시 다리 성형외과에서 밀어 준 기사인지도 모르겠다.아님 말고) 

"80년대 신디로퍼와 마돈나중에서 마돈나가 뜬 이유는 2000년대 이효리가 뜬 이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나도 저렇게 거침없이 하고 싶다 이런거요" (배캠에서 임모씨가 한말,원문과 약간 차이남) 

으음,언니들이 원하는게 거침없이 뭘 어떻게 하는 거였군. 뭘 어떻게 거침없이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저기 저 언니가 나한테 거침없이 아무것도 안 해주리라는 건 방금 깎은 내 발톱을 걸고라도 자신할 수 있다. 이럴때 지미코리건(36살의 연애경험 전무의 대머리 아저씨)의 아빠가 한 말을 들어보자 

"됐어 자기.줄듯 말듯 빼기만 하는 년하고 시간낭비하느니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보람있을 테니까."  (원문과 약간 차이남) 

교훈: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ps: 강남역 사거리를 걷다보면 여자들이 여기,여기하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거기에는 우월감과 자신감,안도감과 불안함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섹시피로"라는 말도 존재할 수 있을까.성에는 폭력적인면도 공격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셈이다.김연아에 이어 나온 손연재를 보며 좀 피곤하지 않으신지.얼마 전 본 스포츠찌라시에는 손연재의 <명품11자다리> 사진이 실려 있더라.("최강"의 섹시걸그룹도 떳다고 하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찾아보시길)김연아와 에어콘 경쟁도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아직 어린 손연재의 아름다움이 돈으로 이어지는 루트,약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으신지. 예쁘면 돈을 벌 수 있고 돈이 있으면 예뻐질 수 있다. 지하철에서 성형전후를 비교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생각없이 몇 번 봤었는데 언젠가 성형전도 자연스럽고 못 생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전철에서 심심하면 한번 찾아보시라) 요즘 나오는 걸그룹도 결국 장사수단 아닌가. 그걸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결국 팔게 없으니까 더 어린애들을 파는 건 아닐까. 예전에 "빨간 마후라"가 나왔을 때 사회는 분개했다. <키노>에서 "어른들의 영역을 침해한 아이는 벌을 받는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있었는데 하루키소설 주인공마냥 신문지위에서 첫섹스하는 학생들을 용인한다손 치더라도 저건 그냥 장사속 아닐까. 더 이상 사회는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키스방에서 여대생 선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쁜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부 예쁜 사회는 좀 피곤할 것 같다. 왠지 천박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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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게 따지다 - 고통이란 물음에 철학으로 답하다
유호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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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수첩에다 내가 싫어하는 리스트를 적어 본 적이 있다. 교통사고로 죽기, 허리디스크에 걸리기,  등등.... 우리가 싫어하는 리스트는 한이 없을 것 같다. 그리스의 모씨가 말한 것처럼 태어나지 않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고 그 다음에 좋은 것은 태어나자 마자 죽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속에서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선동적인 어조를 동원하지 않는다. 무턱대고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고통은 이 세상에 분명 많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고 한번 살아보는 것이 그래도 낫지 않겠냐는 투로 조심스레 삶을 권유한다. 신이 있다면 우리가 받는 고통에 있을 것이고 신이 없다면 우리의 고통에 의미가 없다고 화를 낼 일도 없다. 감성은 우리를 고양시키지만 그 고양은 쉽게 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신 이성은 벽돌쌓기와 같아서 끈기가 필요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주장대로 저자는 하나하나 고통에 대한 사유를 펼쳐 나간다. 나갈 수 있는 사유의 방향을 검토해 보고 행여라도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 사유해 본다. 마치 신중한 대학교수님과 차 한잔 마시면서 멘토링을 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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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나이가 많아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착해진 걸까? 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히어애프터>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왠지 말랑말랑한 느낌이 든다. 누구든지 삶을 축복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마다 온기대신 죽음을 느꼈던 맷 데이먼이 마지막에선 천생연분을 만나서 손을 잡고 마침내 상대방의 온기를 느끼는 장면을 보면 누구라도 가슴이 훈훈해질 것이다. 그렇다. 누구라도 상대방이 필요하고 온기를 전하고 전해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냉소적인 무신론자(극중 인물처럼 죽음이 전기가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가 본다면 훗하고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어어 죽은 형이 동생을 구해주네~~, 일본 대지진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중에선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봐~~" 하고 말이다. 물론 잘 만들고 좋은 영화지만 약간 걸렸던 점. 맷 데이먼은 직장에서 짤리고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까? 답: 아직 젊고 가족이 없기 때문? , 또하나 걸린점 . 저렇게 천생연분 만나는 것도 맷데이먼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좋겠다. 능력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여자라니).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치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영화를 만진 것 같은 이물감이 들었다. 그리고 애꿎게도 그 다음날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말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이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다" 이런 뉘앙스의 문장이 나오는게 <안나 카레리라>였던가? (하루키도 인용했던 거 같은데.) 이 문장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 같은 게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이제는 나이들어버린, 한 때는 펍에서 정치를 외쳐대고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가는 곳마다 젊은애들이야하고 투덜대고, 친구의 젊은 아들에게 반해버리는 사람들. 구차함과 안쓰러움이 극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된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꿀꿀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코믹하다.그래서 난처한 웃음이 터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에 닿는 대사들을 무심하게 등장인물들이 내뱉는다. "누구든지 대화상대가 필요해". "우리 전부 노인이 되잖아요, 운만 좋으면"(맞다.노인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그냥 매일매일 즐겁게 살려구요","그게 최고죠 뭐" <히어애프터>의 해피엔딩 만남에 비하면 이 영화의 메리와 톰의 형의 만남은 그 가혹한 패러디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불행해진 걸까? 알 수 없지 뭐. 일부러 그랬겠어.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앉을 의자는 없어졌더라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쥐처럼. 영화는 끝까지 행복과 불행을 무심히 바라 볼 뿐이다. 거기엔 화해도 없고 의미도 없는 거 같다. 삶이란 게 쓰나미 같은 거 아니겠어. 네가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미야기현 해변에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닥쳐오는 파도를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을 거야.  그들의 삶과 불행도 그런 것이겠지. 코엑스에서 영화를 봤는데 끝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난 전형적인 혼자 노는 스노우캣 타입인데 이 때만큼은 북적거리는 푸드코트에서 혼자 밥을 먹기가 싫었다. 다 괜찮아. 지금 네 앞에 있는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고 한껏 멋을 낸 예쁜 아가씨도 결국 저런 차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싫든 좋든 저게 저 아가씨의 운명이고 삶일 테니까.   

사족: 메리역의 레슬리 맨빌, 이 영화로 두 개의 상을 받았네. 대단하세요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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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 오늘날 일본가족의 재구조화 아이아 총서 101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장화경 옮김 / 그린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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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콘 <쩨쩨한 로맨스> 에서 김기열이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 줄때 객석 한구석에서는 여성분들의 경악하는 소리가 퍼집니다. 얼마 전까지 남보원에서는 남녀평등을 부르짖었는데 말이죠...  

데이트 할 때는 왜 남자가 페이를 할까요? 저자는 남자-샐러리맨-경제력, 여자-전업주부-미모 라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에게 결혼이란 "감정"과 "경제"의 두 축으로 설명됩니다. 근대 이전의 먹고 살기 힘들 때엔 경제가 감정을 압도했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감정과 경제가 등장했다는 것이죠. 전후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는 종신고용제와 남편의 경제력,그 남편을 뒷받침하는 전업주부가 "더 나은 내일"을 목표로 성별분업을 하고 공동체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혼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국가적인 목표인 고도 성장을 외면했다는 것이죠.하지만,(맑스가 애기했듯) 자본의 이윤율은 한계가 있는 법이죠.저성장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가족형태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 감소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성과의 접촉기회도 늘어나게 됩니다. 남자가 경제적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지면서 미혼남이 늘어납니다.(이 부분에서 감정이입 100%). 여자는 자신보다 나은 경제력을 지닌 배우자를 찾으면서 미혼녀가 되구요. (이 둘이 결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이미 경제적 풍족은 전제되었기 때문에 공동의 목표도 없습니다. 이럴 때 "감정"의 문제가 터지면 두 배우자는 양육비,위자료(남자) 재취업(여자)라는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여기서 저자의 주장은 외부적인 질서보다 이혼! 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무엇보다 저자는 방점을 둡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풍족한 생활을 하는게 결혼의 목적" 이라는 것이죠 포스트모던시대에서는 전근대처럼 감정과 경제가 다시 분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저자가 은근히 지지하는 이혼조건의 완화가 저자가 말했듯이 연애의 양극화를 가져올 건 뻔합니다. 옛날 일본에서는 일부다처제에서 많은 수의 남성이 배우자가 없었다고 하더군요(고미숙,임꺽정,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저자 애기처럼 했다가 사실상의 일부다처제가 부활하지 않을까요? 지금 현대는 누구 말마따마(지그문트 바우만?) 모든것이 유동하는 시대입니다. 매트릭스의 네트워크럼 비정규직,세계화,신자유주의 등으로 모든 것이 부유하는 시대입니다. 이혼 규제완화가 결국엔 이 유동화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요?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가 자의식과잉의 시대라고 했습니다.(나쓰메 소세키,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대인은 서로 맞선보는 남녀처럼 옹색해지고 옹졸해진다는 거죠. 소세키는 이런 자의식을 키워주는 "자유" 때문에 결국 인간이 부자유해지고 부모자식이 멀어지는 것은 물론 최종적으론 부부도 따로 떨어져 살거라고 했습니다. 소세키가 이 책을 읽으면 무릎을 치면서 박장대소하지 않았을 까요?  거봐, 내 말대로지! 하구요, "자유"가 인간을 어디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소세키 말대로 서양의 문명은 틀린 것일까요? (저는 싫으니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p.s 저자는 과거 일본이 성과 가족에 있어서 훨씬 관대했다고 합니다. 고미숙씨도 <임꺽정>에서 과거 남녀간의 관계가 예상외로 유연했다고 합니다. 고미숙씨 말대로 이런 미풍양속, 지금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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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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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런 책을 읽으면 이런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혹시, 내가 완전히 잘못 사는 거 아닐까? , 아마존 원주민들 보다 내가 열등한게 아닐까?"  

나같은 도시 범생이에게는 아마존이라는 단어자체가 일종의 위압감을 지니게 되죠."너 따위가 그런 데 가면 살 수 있겠어?" 이런거요.. 여기서 보여지는 원주민 공동체에는 부정적 면도 있을 것이고,긍정적 면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의 어조가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원주민 공동체가 좋으네,나쁘네 평가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저자가 이 공동체에 우호적인 어조를 띤다면 자신이 무신론으로 돌아서게 한 이유 중 하나를 제공했기 때문이겠죠.. 

그 이유는 아무래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과 "보편성에 대한 거부"라는 것일테죠. 저자의 종교가 죄책감이라는 성격을 띄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블루칼라가 쓴 "신 벗어던지기"라는 책에도 죄책감이라는 게 요점이긴 합니다만).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어째 니체가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분명 보편성이 필요할 테지만,저자는 오히려 보편성을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일종의 폭력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두가지 점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무신론으로 전향한 것이겠죠.  

한가지 궁금한 것은  그 아내입니다. 물론 남편인 저자가 원주민과의 생활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아내는 전향하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시점과 경험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던 것일까요? 또 한가지. 피다한 사람들은 숫자개념을 모릅니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45세란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곳은 마치 존 레논의 이매진 같은 세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저자는 아내와 이혼한 후 원주민 공도체로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원주민 공동체가 저자에게 마냥 좋은 이상향은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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