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주의적 표현이겠지만 세련된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홍상수 영화 중 특히 식사장면을 보면 속세적?, 촌스러움? 같은 한국적?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비슷한 정서를 서구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며 느낄지 모르겠다. 단 몇 개의 단어로 소설을 썼다는 헤밍웨이 이야기처럼 배우의 몇 개의 동작이나 표정으로 켜켜이 쌓인 정서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다. 때문에 이영화는 별다른 스토리라인이 없는데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듯 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다. 관람 후에는 내가 뭔가를 놓친 거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자막 때문에 한눈에 영화가 들어오지 않는 게 있으니.) 가족이라면 응당 서로를 잘 알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유대감이 있어야 하거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허물어지는 유대감의 잔재거나 실은 우리는 가족을 모른다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 모두 돈이 갈등요소로 등장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매는 아버지 부양을 놓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반대로 인정받기를 여전히 바라는 두 딸이 슬그머니 어머니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고 한다. (케이트 블란쳇은 역시 연기를 잘한다. 축 처진 어깨와 큰 뿔테 안경은 진짜 더블린 문화재위원회 위원같다.) 돈과 관련하여 그나마 제일 화기애해한 장면은 마지막 에피소드의 쌍둥이 남매가 같이 커피를 마시고 한 쪽이 커피값을 전부 내는 장면이다. 아직 젋고 같이 시간을 보낸 경험이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수십년 전 도올이 강의 중에 한 말이었나 책에서 읽었었나 가물가물하는데 자기가 닭을 키운 경험이다. 닭이 병아리를 낳아서 살갑게 돌보다가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닭은 철저히 병아리를 외면하고 자기 자신만 돌보더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마루야마 겐지 할아버지가 말하듯 제대로 된 부모라면 오로지 자식의 독립만 바라야 할 것이고 독립 후에 부모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자식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 쓰는 것이 질척질척한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는 건강한 관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칼같이 베어버릴 수 없는게 가족아닐까. 영화는 그 머뭇거림과 애매모호한 다정함을 보여준다. 짐 자무시 다른 영화처럼 음악이 여기서도 끝내준다. 보고나면 특별히 한 건 없는데도 왠지 잔잔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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