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공화국 - 법은 정의보다는 출세의 수단이었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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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과 조희대가 왜 저렇게 ‘원만한지‘에 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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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작업 - 꿈과 적극적 명상을 통한 자기 탐색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이정규 옮김 / 동연출판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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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얻은 팁 중에 하나가 "직관을 믿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대안이 이성적 또는 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몸이 거부한다면" 다시 재고해 보라는 것이다. <블링크>(말콤 글래드웰)의 직관부터 철학쪽으로는 니체가 "몸이성"을 언급한 적이 있고,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다른(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자기계발서가 기억난다. 장의 신경세포가 어쩌구 하면서 장이 제2의뇌 블라블라가 근거였다. (물론 안티테제도 만만찮다. 그냥 우연과 주관적 느낌을 자기중심적으로 과잉해석하지 말고 정확한 정보와 숫자로 의사결정을 하라는 얘기다. 이들의 무기는 통계학과 확률론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 마냥 나도 남이 좋다고 하면 한번씩은 따라해 보는 편이라(<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고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헷갈리는게 이게 정말 내 안의 '위대한 나'가 내는 목소리인지 사탄의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영 선생님의 바가와드 기타의 강의를 듣던 중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선생님 답변인 즉슨 "대부분 에고의 목소리에요. '내면작업'같은 거 먼저 해 보세요"

이 책은 융의 "영혼의 지도"를 바탕으로 해서 1부 꿈작업 2부 적극적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핵심은 무의식,전일성이다. 저자는 현대인이 겪는 파편화, 무의미는 의식이 무의식과 단절된 결과이며 꿈과 적극적 명상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라고 한다.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결국 우리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는 뜻이며 의식이 하는 일은 무의식이 한 일을 나중에 합리화하는 것이다. 꿈이 그냥 뇌의 전기신호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저자는 우리 안에 각자의 힘을 가진 다양한 자율적인 주체들이 있으며 그들의 역학관계가 보내는 신호가 꿈이라고 한다. 즉 돼지꿈 꾼 후에 우리가 보통 찾아보는 인터넷 해몽이 삽질이라는 것이다. 꿈에 원형적인 이미지가 나올 때조차 개인적인 연결점을 찾아야 한다. 적극적 명상은 우리가 하는 수동적 환상-멍때림 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환상에 참여해서 상상 속의 인물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무슨 애들 장난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은 절대 상상으로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 글쓰기 선생님이 글에는 자신의 인격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굳이 융의 '영혼의 지도'를 백그라운드로 깔지 않더라도 자신(저자 입장에서는 자신 안의 다른 인격)과의 대화를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을 파악하는 하나의 기법이 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상상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 무의식의 파묘는 험한 것을 나오게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오컬트 의식 수행하는 것 마냥 적극적 명상 중의 주의사항을 이건 절대 하면 안돼,하고 알려준다. 무의식의 체험은 마치 라캉의 정신분석이 겉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지만 무의식을 '갱신'시키는 것처럼(<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가타오카 이치타케,이학사)) 깊은 곳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 동력 등을 재배치할 것이다. 한 권이 통째로 자기계발서이지만 쌈마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내면작업을 진행하는 방법을 서술하는데 지루하다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야기꾼의 솜씨이거나 융심리학이 가지고 있는 초월성 때문일 것이다.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저자는 마치 인드라망처럼 무의식의 통합을 이룬 사람은 그 자체로 무의식을 통해서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고 서술한다. 깨달은 사람이 깨달았다는 그 자체만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승불교적(?) 논리가 연상된다. 이 한 권으로 내면작업을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약간 무리고 옆에 두고 계속 참고를 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뭐 저자 입장에서는 이 책이 마중물이 돼서 심리상담까지 가기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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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고라니는 말한다
J.G. 니이하트 지음, 김정환 옮김 / 두레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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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나면 트럼프 이민정책부터 백인의 인종차별이 갓잖게 느껴진다. 이민자 와지쿠 주제에 뻔뻔하게 염치도 없이......"미국의 기원"에 관해 "늑대와 춤을" 부터 에단 호크의 만화(<죽은 자들>,위즈덤하우스)까지 봐 왔지만 역시 '당사자'의 목소리가 가장 실감나고 설득력이 있다. 내가 하는 가장 폭력적인 일이란게 시위나가서 구호 외치는 정도인데, 소년시절의 살인을 담담히 묘사하고 , 또 그렇게 쉽게 인디언들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장면은 다시 만난 '다른' 세계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 세계에서 사치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가자와 우크라이나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다큐 <프리 철수 리>에서 살인자  철수를 돕는 한인 기자가 이렇게 말한다. 같은 이민자지만 그는 운이 나빴고, 저는 운이 좋았죠. 차이는 그것 뿐이에요. 나는 지금 운좋게 가자와 우크라이나에서 살지 않는 것 뿐이다. 불과 100여년 전의 미국의 이야기이니 격세지감이다. 처음부터 미국이 지금 이 모습이었게 아닌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의 부동산 중에 라코타 부족의 땅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해 갈까?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의 시대, 길가다가 땅이 꺼져서 사람이 죽는 시대. 검은고라니가 자신의 계시를 끝내 실현하지 못한 것은 영성과 물질주의의 싸움에서 영성이 패배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과연 모든 것은 단지 "서브스턴스"일 뿐이고 검은고라니의 계시는 회의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뇌의 환각 정도일 뿐이란 말인가... 태양춤같은 인디언 의례와 계시들의 묘사가 약간 지루함. 인디언 역사와 문화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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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 융 심리학이 말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 자기탐구 인문학 1
로버트 존슨.제리 룰 지음, 신선해 옮김 / 가나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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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존슨 콘텐츠의 또 다른 변주다. 차이가 있다면 훈련 매뉴얼이 추가돼서 좀 더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고 불교나 인도 신비주의 서적에서 볼 수 있는 표현들-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든지, 깨달은 자는 같은 일을 다른 의식으로 한다든지-이 추가돼서 좋게 보면 관점의 확장이지만 난삽하다는 느낌도 든다. 읽고 나면 왠지 마음이 안정되고 영혼이 풍성해진 느낌이 들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정색하고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데?“ 하며 따져들면 막막해지는게 특징이다. 이 사람 콘텐츠 중 가장 래디컬한 주장이라면 ‘미덕의 상대성’일 것이다. 거의 ‘새로운 윤리’의 창조까지 가는 내용인데 모든 미덕은 반대쪽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며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억압된 그림자는 반드시 돌아와서 자신의 지분을 주장한다. 해야 할 일은 기존의 미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덕에 의해 억압된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이다. 농담처럼 말하면, 윤석열탄핵찬반 집회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그런 느낌? 만약 미덕이 너무 강조돼서 신경증을 일으키는 사회라면 저자의 처방이 설득력이 있을 텐데 미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미덕의 준수가 오히려 필요한 사회라면 저자의 주장은 초등학생에게 대학강의를 하는 셈일 것이다. 저자가 이런 대극을 통합하기 위해 내놓는 대안은 빅터 프랑클 식의 무조건적인 긍정이다. 저자들의 ‘그림자’론은 사실여부를 떠나서 논리적인 정합성이 있다. 모든 미덕은 상대적이다라는 주장은 니체까지 갈 것도 없이 여행 좀 많이 해보면 느낄 수 있다. (물론 상대성을 초월한 근본적인 미덕-예를 들어 생명은 소중하다- 은 동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초반에는 그런 미덕을 추구하는 패턴이 도움을 주지만 해가 정오를 지난 중년에는 그런 미덕에 의해 억압된 것이 문제를 일으키는데 사람들은 기존 미덕의 패턴만 반복해서 문제를 키운다는 주장도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가 삶의 대극을 끌어안은 대안으로 내세우는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 삶의 이중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호하다. 이런 태도는 선불교 일화부터 빅터 프랑클까지 이미 여러번 언급된 관점이고 이 대목에서 갑자기 왜 이런 관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원래 그런 거'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그 말 자체는 물론 듣기 좋은 말이지만 설득력이란 관점에서 볼 때 나쁘게 보면 이 책이 불교나 신비주의 전통 담론을 모아놓은 페스티쉬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용적으로 이 책을 본다면 중년의 위기를 기존 미덕을 반복적으로 추구하는 패턴(컴플렉스)에서 도래한 것으로 보고 그 해결책을 그림자를 통합한 완전성으로 극복하라는 도식인데 영성적 인간관을 배경으로 한다는 게 특징이다. 융심리학이 원래 영성적인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상징기법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로버트 존슨의 <내면작업> 이 있다. 이 책은 로버트 존손의 기존의 여러 콘텐츠와 심층심리학을 요약 정리한 맛보기 인트로 느낌이다. 서문에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감별할 수 있는 앙케이트 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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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전사, 마법사, 연인 - 어른이 되기 어려워하는 남성들을 위한 심리 수업
로버트 무어.더글러스 질레트 지음, 이선화 옮김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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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심층심리학 서적이다. 이 책도 다른 융심리학 서적처럼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고대에는 소년이 성인이 되는 입문의식이 있었지만, 전통과 의례가 사라진 개인의 시대에서 미성숙한 남성성이 유해한 영향을 세계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입문의식이 사라진 게 비록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소년은 남성이 될 책임이 있다. 지금 소년은 전통과 의례에 기대지 않고 각자 성숙한 남성이 되어야 한다. (이건 마케팅이겠지. 그러니까 자기들 책 사 보고 자기들한테 상담해라,이런 거) 소년의 특징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면으로는 익살스러움, 즐거움,활기 등 이겠지만 이 책에서 드는 성장하지 못하고 흑화한 소년의 특징은 가학성,수동성,무력함,통제욕 등이다. 일단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집단무의식이나 원형같은 융심리학의 기본전제를 깔고 소년의 원형을 신성한, 조숙한, 오이디푸스,영웅적인 아이원형으로 나눈 후 이들의 특성과 이들이 흑화할 때 어떻게 변하는지를 각각의 버전으로 서술한다. 이러한 소년의 원형이 성장한다면 왕, 전사, 연인, 마법사가 되는데 역시 이 성숙한 남성의 원형도 흑화한다면 다른 버전으로 바뀔 수 있다. (왜 흑화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까지는 안 나온다.) 각각의 원형을 서술할 때 저자들의 통찰이 곁들이지면서 각 원형의 설명을 돕는다. 가부장제하에서의 남성은 아이인가? 저자는 가부장제를 소년지배사회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가부장제의 특징은 여성성과 진정한 남성성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한 것이고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연약한 소년심리에 근거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가학성, 폭력성이 과도한 남성성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여성성에 압도된 결과라고 저자가 진단한다는 것이다. (<페니스 파시즘>(강준만외, 개마고원)도 이 메카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소년이 성숙한 남성으로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형은 영웅 원형이다. 영웅원형은 소년이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고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또 다른 심층심리학자인 로버트 존슨은 소년기의 중요과제가 마더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내 안의 여성성 마주하기>로버트 A 존슨, 동연) 이는 패배하고 싶은 욕망이고, 라캉이라면 죽음충동이라고 불렀을 법한 욕망이다. 다시 자궁으로 돌아가 돌봄받고 싶은 욕망이고 중세 신화에서 용과의 전투로 상징될 만큼 처절한 전쟁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싸우던 영웅(소년심리)은 죽음을 맞이하고, 초월적인 목표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며 겸손을 아는 남성성이 탄생하게 된다. 성숙한 남성성인 왕,전사,마법사,연인은 힘을 가진 자비로운 사람이미지다. 그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성장하도록 조력하는 왕국의 규율자이고, 수호자이며 타인과 공감하는 연인이다. 그는 내면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목표를 위해 고통을 견딜 만큼 강하고, 자신의 감정에 지배되지 않을 만큼 지혜롭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소년이 남성성으로 성숙되는 과정은 거창해서 벅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에고의 죽음이 소년을 남성으로 이끈다는 것인데 이는 불교식으로 하면 해탈 개념 아닌가. 뭐 옛날에는 이런 어른들이 많이 있었다고 저자들이 개탄하니 할 말은 없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원형과 그 흑화버전을 주변사람들에게 대입해 봐도 재미있을 것같다. 예를 들면 신성한 아이흑화 버전인 소년 폭군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직장상사 이미지 아닌가?(아니 나만 커리어를 바닥으로 찍은건가? 나이 많은 부장,팀장님이 어린 여직원에게 놀아줘 놀아줘 하면서 과외의 업무를 맡기지 말자. 손만 안 댔다 뿐이지 그것 역시 부당한 짓이다. 격노는 겁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수괴님도 이 버전이 아닐까 짐작한다.)

몇 가지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마루야마 겐지였는지 나카지마 요시미치였는지 헷갈리는데 술에 취해 귀가한 직장인 가장을 아이 다루듯 하는 아내를 보고 일본 가정의 실상을 알게 됐다는 외국인 이야기다. 언젠가 강신주씨가 강의 중 한 이야기인데 등산하다 보면 일가족 단위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반응이 다르다고 한다. 부모가 어차피 자신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남자아이는 기본적으로 힘들다고 뗑깡 모드로 들어가는데, 버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여자아이는 힘들어도 아닌 척 애교를 부린다는 것이다. 예전에 50대 여사님들과의 대화에 낀 적이 있는데 그 여사님 왈 자기 남편이 괜한 고집피우고 삐지는게 둘째 아들과 똑같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나. 그 말 듣던 다른 여사님 왈 이제야 그걸 아셨어요.” 그렇다고 또 발끈할 필요는 없다. 저자들은 지금까지 남성성이 (아마도 페미니즘에 의해)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딱히 태어나면서부터 성숙하거나 책임감이 있는 건 아니라고. 남성들이 해야 할 일은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여성들을 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고 한다. 책은 성숙한 원형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마무리되는데 능동적 심상화,주문걸기, 롤모델 존경하기,원형처럼 행동하기이다. 능동적 심상화는 로버트 존슨의 <내면작업>(동연) 과 비슷하고, 다른 방법은 일종의 자기암시를 세련되게 만든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다른 심층심리학 서적처럼 비슷한 장단점이 느껴진다. 읽을 때는 위안이 되고 마음을 가라앉히지만 읽고 나면 정작 건더기는 많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 마지막 해법에 좀 더 저자들이 힘을 줬다면 달라졌겠지만 그러면 이 책은 자기계발서에 더 가까워 졌을 것이고, 여타의 다른 영성자기계발 서적처럼 왠만해서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읽고 나서 어떻게 이 책의 지침을 따를지는 독자에게 달렸지만.) 한번 이들의 지침을 따른 후 삶이 정말로 달라졌는지 챌린지 같은 거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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