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
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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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관련하여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들은 게 투 트랙의 삶이었다. 워라밸.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라고 말하던 경영학과 교수님이 생각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이 주장이 환상이고 기만이라는 것이다. 삶은 하나고 죽음은 확실하다. 복지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서 왜 일에 대한 불만족이 증가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워라밸이라는 개념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애플티비의 <세브란스:단절> 시리즈는 이 점을 비꼬는 것 아닐까? 비슷한 느낌으로 임금노동도 일종의 사기고 야바위 아닐까 싶다. 맑스이론에서 등장하는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같은 것도 일종의 가상현실이고 기만 아닐까? 나는 내 노동력을 상품처럼 나의 몸에서 떼어내서 팔 수 없다. 나는 그냥 한 명의 인간이다. 내가 근무시간 동안 일터에 귀속될 때 나의 삶 전체가 일터에 귀속되는 것이다. 결국 시간이다. 직장에서 일할 때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하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정제사 마크처럼 뇌수술이라도 받지 않는 한 나는 한 명이고 결국 사라지는 건 돌아오지 않는 나의 시간이다. 저자의 결론은 자신의 삶의 실존과 일을 통합해야 하고 조직이 운영되는 기준도 이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생존 모드에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미리 전제한다. 그렇게 따지면 생존모드에 있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긴 하다만,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라는 게 저자의 충고다. 아리스토텔레스 느낌인데 행복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느낌의 분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지켜야 할 윤리나 미덕에 가까웠다. 저자는 비일상인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런데 의미란 제각기 다를 수 밖에 없으니 필요한 것은 자기성찰이고 자기만의 가치의 사다리를 정립하는 것이다.(이건 어째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를 떠올리게 한다.) 직장에서 할 일은 이러한 자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자기 존중이라고 표현한다. 직장은 상하급자의 위계가 아니라 상호윤리에 입각한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엄정한 이론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일과 관련한 새로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중반부 의미지수가 등장하면서 경영학 이론서 비스끄레 나가는 게 걸리긴 하는데 (저자는 컨설팅 회사의 대표다.) 그래도 꿈꿀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는 책이다.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은 대한민국 직장은 유치한 군대다. 저자는 후반부에 이상적인 조직상을 제시하는데 공상적 사회주의’ ?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믿거나 말거나 저자의 말은 상호윤리와 사랑에 입각한 조직이 결국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떠오르는 비판은 워라밸못지 않게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도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자기성찰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로 알 수 있을까? 어쨌거나 책에 등장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연구에 따르면 커리어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두 가지는 돈만을 좇아 직장을 택한 것과 때가 되었음을 알면서도 직장을 떠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삼전 하이닉스 성과급 때문에 속상한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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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
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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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당한 태도로 자기 경멸을 거부하고 꼭 필요한 자기 존중을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남들이 나의 (혹은 조직의) 도덕적 기준을 무시하려고 하면 건설적 반기를 들어야 한다. 살면서 그 어떤 형태의 압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더 일찍 결심할수록 품위 있는 삶을 살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품위는 의미를 느끼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절대로 희생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유롭다. 젠장! 내가 가진 하나뿐인 삶이 자기 존중을 특징으로 하지도 않고 최대한의 의미를 모색하려고 애쓰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상황이 오면, 그 자리에서 손을 떼고 다음으로 넘어갈 만큼의 자기 존중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우리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시가 그만두겠습니다‘일 때가 있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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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일 - 일과 삶의 갈림길에 선 당신을 위한 철학
모르텐 알베크 지음, 이지연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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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은 우리의 행동 및 결과와 관련되는 반면, 자기 가치는 나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다. 내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경험이 자기 가치를 만들어낸다. 일단 자기 통찰을 통해 자기인식이 생기고 나면 자기 가치가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지금 내 자신감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누구나 경험하는실패의 순간(이별, 실직 등등)에 내가 느끼는 나의 본질적 가치가 얼 - P77

마나 충격을 받을 것이냐 하는 점은 자기 가치가 조절한다. 자기가치가 없으면 인생의 이 중요한 역할을 자신감한테 미룰 수밖에 없는데, 자신감이란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이나 내가 마지막으로 한 행동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지극히 부서지기 쉽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자신감이 곧 자기 가치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미 직업적 재능을 명백히 인정을 받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충분히 존중하는 나머지, 자살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가치 있다거나 내가 찾는 의미를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되는 활동을 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자신감이 아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내가 가진 기술이나 직업적 능력, 자질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능숙한 기술을 가진 개인은 더 높은 수준의 자기 가치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았을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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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 뇌가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되었다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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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보다 더 강력한 언술이 있을까. 더군다나 하버드 대학에서 커리어 절정을 구가하던 신경해부학자의 증언이다. 뇌졸증에서 회복한 뇌과학자라니, 스티븐 나이바우어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신이 내린 우연 같은 느낌마저 든다. <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서도 뇌과학자가 신비주의자의 언어를 써서 경악했었는데 이 책에서 저자가 우뇌를 설명하는 단어를 보면 역시 경악이 들어간 탄성을 지르게 된다. 조건없는 사랑, 우주적 의식의 일부 등등,, 이거 아니타 무르자니가 임사체험 후에 한 말이다. 임사체험이라는게 우뇌 의식으로 가는 거였나? 더 나아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브라흐만의 묘사이기도 하다. 자꾸 들으면 허황된 말도 혹시,하고 흔들리는데 이렇게 연이어 두들겨 맞으면 진짠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니타 무르자니야 인도인이었으니 평소의 문화적 배경이 환각으로 나타났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저자의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스켑틱하게 해석할까? 하버드대에서 경력을 망친 과학자의 일탈? 저자는 뇌를 우반구, 좌반구, 각 반구를 두 개의 영역, 총 네 개의 캐릭터로 소개한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좌뇌(캐릭터 1,2) 는 개인적 정체성과 타인과 분리된 자의식을 나타내고 우뇌(캐릭터 3,4) 는 바탕에 깔린 무의식, 우주적 흐름과의 연결을 나타낸다. 일단 저자의 관점이 지극히 유물론적인 것은 맞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고통이 결국 뇌세포의 기능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그건 신경회로망의 작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선택하고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일종의 스토아 철학 느낌의 마인드셋이 나온다.) 하지만, 우뇌(캐릭터 4)를 우주의식과 연결되는 생물학적 플랫폼 정도로 묘사하고,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비유적 의미가 아니다.) 우파니샤드 세계관에서는 구십도로 튄다. 오감으로 지각할 수 없는 우뇌의 대안적 현실은 좌뇌 성향의 선형적 (저자에 따르면 시간을 선형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좌뇌, 오로지 현재만 지각하는 것은 우뇌의 몫이다.) 실험으로는 증명할 수 없고, 좌뇌는 이를 거부할 것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학적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저자가 공들여 서술하는 것은 캐릭터 1,2,3,4의 특징이다. 독자는 자신의 4 캐릭터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권유받는데 나중에 등장하는 두뇌회담을 위해서다. (저자의 경우 각 캐릭터 이름은 헬렌, 애비, 피그펜, 여왕 두꺼비다.) ‘두뇌회담은 현재 자신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차리고 각각의 캐릭터를 처럼 운용하며 삶의 순간에 대처하는 일종의 기법이다. 내용이 여기서 자기계발서 비스끄레 흘러가는데 명상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의 뇌과학 버전같은 느낌이다. 유용할 것 같긴 한데 불충분하게 기술된 것인지 저자의 두뇌회담 기법이 아주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아예 다이어트 프로그램처럼 패키지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자동화된 반응을 멈추고, 자신에게 감정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기법 같다. 그렇게 보면 정말 알아차림 명상의 뇌과학 버전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뇌과학 서적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융심리학과 캠밸의 영웅신화가 등장한다. 각 캐릭터를 융의 원형과 대비시키고(그러니까 융 심리학의 생물학적 기반이다.) 우뇌로 가는 것을 영웅신화의 영웅의 여정에 비유한다. 영웅신화에서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영웅의 귀환이다. 깨달음을 얻은 영웅은 다시 속세로 귀환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한다. 영웅은 속세와 단절한 채로 살 수도 있고, 속세와 자신의 깨달음을 조화시키며 주변과 연결을 유지할 수도 있다. 저자는 모든 캐릭터가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전뇌적삶을 살고 균형을 유지하라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두뇌회담은 속세로 돌아온 영웅이 살아가는 방법같기도 하다. 저자는 캐릭터 4의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캐릭터 1을 방문하는 식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자아가 먼지 한 톨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어째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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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덧붙임 ˝사랑은 하는 거지, 읽는게 아니에요˝


(AMORE 이탈리아식사랑 이야기 중)




자신의 소설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4)에서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경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다. 전투 준비!"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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