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불교는 어떠했을까
나카무라 하지메 지음, 원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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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들은 풍월 늘리기에 적합하다. 한 가지 의문은 초기불교가 아트만을 인정했다고 서술하는 부분이다. 아트만의 유무는 지금도 힌두와 불교의 주요 대립항으로 알고 있다. 참고로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월폴라 라훌라 지음, 전재성 옮김) 의 한 부분이다. 363) 주석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하지메가 이 책의 저자다.

 

 

그러나 최근에 불교의 정신과는 아주 모순되게, 붓다의 가르침속으로 자아의 관념을 끌어들이려는 몇몇 학자들의 헛된 시도가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63) 이들 학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찬양하고 숭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불교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명철하고 심오한 사상가라고 생각한 붓다가 그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아트만, 곧 ‘자아‘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363) 영국에는 Mrs. Rhys Davids와 같은 학자가 있다. 그녀의 Gotama the Man, Sakya orBuddhist Origins, A Manual of Buddhism, What was the Original Buddhism을 보라. 독일에서는 간트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던 Georg Grimm과 같은 학자가 있다. 그의 Die Lehre des Buddha, die Religion des Vermunft, 1915를 보라. 일본에는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와 같은 학자가 있다.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월폴라 라훌라 지음, 전재성 옮김) 16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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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웃었다

"부인이 요구하는 것은 남성이며,
마음을 쏟는 것은 장식품과 화장품이다.
부인이 의지하는 것은 자식이며,
집착하는 것은 남편을 독점하는 일이다.
궁극적 목표는 지배권이다" (《앙굿따라니까야> Ⅲ, p. 163).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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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불교는 어떠했을까
나카무라 하지메 지음, 원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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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로는 부처님과 악마의 대화 형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악마가 말하기를) 인간의 수명은 길다. 훌륭한 사람은 그것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젖을 먹고 배가 부른 아기처럼 행동하라. 지금은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
(부처님이 말하기를) 인간의 수명은 짧다. 훌륭한 사람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카락에 불붙은 듯이 행동하라. 죽음이 오지않는 일은 없다"[《쌍윳따니까야》 IV, 1, 9(vol. I, p. 108)].

"(악마가 말하기를) 낮과 밤이 지나가는 일은 없다. 생명도 다하는 일이 없다. 수레바퀴가 굴대를 도는 것과 같이 인간의 수명도 돌고 돌아 - P96

다함이 없다.
(부처님이 말하기를) 낮과 밤은 지나가고, 생명도 다하고 만다. 작은냇물이 말라붙듯이 인간의 수명도 없어지고 만다" [쌍윳따니까야》Ⅳ.
1. 10(vol. I, p. 109)].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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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숭산 지음, 현각 엮음, 허문명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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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달라이라마, 팃낫한 등과 함께 4대생불로 추앙받았다는데 익숙치 않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지만 ‘또 우리만 몰랐네’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숭산스님이 해외에서 한 법문을 다시 번역한 책이다. 대중을 상대로 한 법문이니까 당연히 쉽고 재미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쉽게 볼 게 아니다. 한 문장 뒤에 많은 배경지식과 수행경험이 깔려 있을 것이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를 차례로 개관해서 입문서로 적당하다. 소승불교는 12연기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적 개념이고 서구의 인식론이나 현상학을 떠올리게 한다. 나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기 때문에 나무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승불교가 왜 나왔는지 대충 느낌이 온다. 소승불교는 출가자들을 위한 수행론 같은 성격이라 저변을 확대하려면 열반과 속세의 구분조차 ‘공’하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가와드 기타의 ‘행위의 요가’같은 느낌이랄까. 저자는 ‘공’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대승불교를 설명한다. 수행조차 분별심이 될 수 있으니 소승불교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을 말하는 것 같기는 하다. 제일 눈에 띄는 부분은 선불교 부분이다. 제일 안드로메다같은 느낌인데,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언설이 있긴 하지만 만물이 일체라는 식의 주장은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를 떠올리게 한다. 불립문자를 강조하는 부분은 라캉의 실재계, 상징계, 외디푸스같은 정신분석 이론을 연상시키도 한다. 무문관 같은 공안은 상징계 안의 실재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과 모양이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늘‘도 만들고 ‘푸르다‘도 만들고 ‘나무‘도 만들고 ‘초록색‘도 만들고 ‘개‘도 만든다. 우리는 "하늘이 푸르다"고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The sky is blue"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소라와 아오이데스"라고 한다.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이름과 모양은 진리가 아니다. 실제로 없는, 가짜 생각이다. 당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싶으면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만물이 우주처럼 맑은 지점을 의미한다. 마음이 우주처럼 맑으면 우주는 완벽히 하나가 된다. 분리도, 생각도, 주체도, 객체도 없다. 눈이 천천히 열리고, 귀가 천천히 열리고, 코가 열리고, 혀가 열리고, 몸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맑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맑다. 그러면 하늘과 하나가 된다. ‘하늘은 푸르다‘ 나무와 하나가 된다. ‘나무는 초록색이다‘ 개와 하나가 된다. ‘멍멍‘ 설탕과 하나가 된다. ‘달다‘ 그것을 표현하는 이름이 바로 진리이다.아주 단순하다. 진리란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수행은 진실로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옳은 방향,진리, 바른 삶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본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 마음 안에 있다.

                                                                  (409P)

 


스님이 줄창 강조하는게 “나는 무엇인가”, “오직 모를 뿐”을 참구하라는 것이다. 아마 분별심을 없애라는 얘기 같은데 느낌이 잘 안 온다. 이런 게 수행의 차이일 것이다. 스님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실용‘이다. 깨달았으면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 쉽고 재밌어서 스님이 말하는 경지가 언어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 번 읽고 말 책은 아니다.

불교는 무신론인가? ‘불교무신론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불교는 회의주의와도 완벽히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 설법 중에 자주는 아니지만 ‘단전’, ‘우주의 에너지’같은 단어들이 등장해서 ‘스켑틱’한 사람들의 입맛에는 거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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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 미처 몰랐던 불교, 알고 싶었던 붓다 ㅣ 종교문해력 총서 2
강성용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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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서 완전히 초짜라면 약간의 허들이 있고 ‘들은 풍월’이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들은 풍월’의 정확한 의미를 짚어주기 때문이다. 사문유관이 구라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고 고타마 싯다르타가 왕자가 아니고 귀족 정도라는 것(지금이면 당대표 아들 정도 될까?), 고타마가 이름이 아니라 성이고 싯다르타도 후에 덧붙여 졌다는 것 등 어렴풋이 알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했다. 새로 알게된 것은 붓다를 출산한 어머니의 이름을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야 부인'의 마야는 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보통명사이다. 즉 '마야부인'은 '부인 부인'이라는 뜻에 가깝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방법론이 문헌학일 것이다. 산스크리트어의 어미 변화와 철자를 따져가며 문헌을 비교해서 붓다의 최초 육성을 더듬어 가는 작업인데 슬쩍 보기만 해도 갑갑하다. 맨 땅에 헤딩해가며 삽질해가는 작업이라는게 문외한인 내가 봐도 기겁할 거 같다. 정말 고맙게도 이 책은 그런 답답한 과정은 생략하고 학자들의 노고를 거친 결과물만 소개하고 있다. 책은 주로 초전법륜이나 중도 같은 붓다 최초의 가르침과 붓다 성도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불교와 자이나교를 주로 언급하는데 마치 약간의 유전자 차이가 인간과 원숭이를 나누는 것처럼 약간이 차이가 불교와 자이나교를 구분하게 한다고 한다. 나는 전부터 팔정도가 의아했는데(‘바른 생계’에서 ‘바르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팔정도가 최초에는 출가자들을 위한 계율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바른 생계는 걸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른 판단’은 ‘삶은 고해’라는 판단을 의미하며 출가자가 걸식하며 수행해서 결국 선정에 이르는 과정을 요약한 것이 팔정도인 것이다 .팔정도가 일반 재가자들로 확대된 것은 후기의 일이라고 한다. 12연기도 후대에 정립된 것이고 최초에는 3연기 내지는 8연기였다고 한다. 붓다가 과연 윤회를 말했을까? 스티븐 배철러같은 불교무신론자는 붓다가 윤회나 업을 비유적 의미에서 썼다는 쪽이지만(<어느 불교무신론자의 고백>) 이 책에 의하면 붓다는 의식의 미세입자가 윤회한다고 했다. 나는 빨리어 경전을 원시불교의 최초의 모습으로 신뢰했는데 이 책을 보면 그것도 약간 아닌 것 같다. 붓다가 쓴 언어는 인도 동북부의 마가디 방언인데 팔리어는 인도 서북권의 언어이고 경전이 쓰여진 것도 붓다 사후 100년 후라고 한다. 즉 팔리어 경전도 한 번 ‘필터링’된 경전인 것이다. 과연 붓다의 최초 육성에 다가갈 수 있을까? 저자는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캐치해낼 수 있다는 쪽이다. ‘정혜쌍수’라는 단어로 불교의 두가지 흐름을 짚어내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약간의 집중력은 필요하지만 읽고 나면 왠지 똑똑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 지적인 포만감을 가득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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