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면, 가치체계의 붕괴, 니콜라이 고골의 '코' 같은 세계, 광신도의 신에 대한 열정, 비 온 뒤 바다의 혼탁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빠져나간다. 이계와 현실의 분간도 어렵다. 가난이 창피하지는 않으나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몽롱하고 모호한 엔야의 노래가 늘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안개가 껴 있는, 그 속에서 발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 기와집은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하는데 매년 장판을 거둬내고 수리를 하는데 연탄가스라는 놈은 비현실의 이종처럼 여지만 보이면 틈을 벌리고 잘도 빠져나와 잠을 자고 있는 우리 가족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 죽일 놈의 연탄가스, 벗어날 수 없는 연탄가스는 다 큰 동생도 정신을 잃게 만들고,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아버지가 동생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거렸다.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그들은 그저 어른이라 연탄가스 중독이 괜찮은 것일까. 뇌에서 어떤 서번트 물질이 흘러나오기에 연탄가스마저 물리치는 것일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단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연탄가스는 힘 빠진 괄약근에서 새어 나오는 방귀처럼 수리한 아궁이에서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와 무거운 여귀처럼 낮게 돌아다녔다.      

            

 추워지는 날씨에 득재의 방에서 자주 잠을 잔 이유는 학교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득재의 방은 보일러였다. 엄마도 득재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하면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득재가 2학년 겨울방학에는 울릉도 집으로 가지 않아서 우리는 몽땅 득재의 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겨울을 났다. 득재의 방은 보일러 덕분에 아랫목이 없고 대부분, 골고루 따뜻했다. 상후를 제외하고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집에 살았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를 보며 인간을 위해 한껏 타오르는 연탄이 좋아야 했지만 우리는 연탄이 싫었다. 그 압도적인 냄새는 이미 얼굴을 으, 이렇게 만들었다.       

          

 득재의 방은 너무 뜨끈뜨끈해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철이는 엉덩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모든 것이 우글우글하게 일그러졌다. 2학년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날, 붉은빛과 반짝이는 불빛과 녹색의 털실 같은 것을 보며 나는 9살짜리 오빠와 5살짜리 여동생의 작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 

오빠, 저기 반짝이는 전구는 따뜻해?     

          

 글쎄, 아마도 따뜻하지 않을까.     

          

 우리 집엔 왜 트리가 없어?   

            

 작은 남자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허리밖에 오지 않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여다본 실내는 따뜻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남자아이와 여동생은 창 안의 트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른 키만 한 트리에는 반짝이는 전구가 쉴 새 없이 깜빡 깜빡였고 네 명의 가족은 트리 옆의 식탁에 앉아서 케이크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크고 따뜻한 만두를 그 집 아이들이 후후 불어서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뜨겁다며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웃었다. 부러웠다. 행복해 보였다.     

          

 오빠,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응, 내년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도 하고 케이크하고 만두도 먹자.      

         

 정말? 와 신난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동생도 오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입으로 에이 또 거짓말,라고 말해 버리고 나면 작은 소망까지 전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집에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는 너무 따뜻하게 들리고 좋아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동생인 여자아이는 외투가 얇았다. 두 아이는 굽은 등으로 창가에 붙어서 여동생은 케이크를 쳐다봤고 남자아이는 왕만두를 쳐다보았다. 창 안의 아름답고도 영화 같은 모습을 보느라 추위도 몰랐다. 발갛게 변해버린 코끝으로 하얀 눈의 결정체가 내려앉아서 녹았다.      

         

 야아, 누이다 오바.       

        

 동생의 입은 얼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동생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눈 내린다 오빠, 아빠는 언제 와?        

       

 이제 곧.        

       

 오빠, 아빠 오면은... 까지 말하고 동생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웃었고 오빠는 동생의 코를 자신의 옷소매로 닦아 주었다. 어린 남매는 남몰래 가슴 한구석에 겨울의 꿈을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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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에서 일을 냈다. 이 영화는 전혀 무서운 영화가 아닌데 보는 내내 무섭고 전율이 느껴졌다. 아주 공포스럽다. 픽션인데 무척 현실적이다. 논픽션 같은 화면과 구성 그리고 곧 이런 세상이 올 것 같은 불안에 더 무섭다.

이 영화는 언제일지 모르나 미국 전역에 큰 내전이 일어난다. 중임제의 미국 대통령이 3선의 독재와 함께 백인우월을 내세워 인종차별을 하면서 민병대인 서부군이 반란을 하며 내전이 일어난다. 미국 내 모든 도시가 고립되고 동시에 약탈과 함께 타락되어 간다.

정부군과 서부군이 도심지에서 전쟁을 치르고 그 사이를 누비며 보도 사진을 담는 프레스 종군 사진기자들의 이야기다. 퓰리처상까지 탄 베테랑 기자 리(커스틴 던스턴)의 일행에 병아리 사진기자 제시가 여정에 따라붙는다. 위싱턴으로 가는 도중에 내전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 영상이 마치 다큐를 보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고 너무나 잔인하고 충격적이다.

프레스 보도기자들은 내전 속에서 총질을 하는 중앙에서 헬멧을 쓰고 종군기자 조끼를 입고 전시 상황을 사진으로 담는다. 모든 카메라는 필름카메라다. 미국 내 모든 기지국이 파괴되면 휴대전화는 전혀 무용지물이고 디지털 역시 무쓸모가 된다.

종군기자는 어느 쪽이든 절대 총을 겨누지도 쏘지도 않지만 전쟁이라는 건 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린다. 영화는 내전으로 망가져버린 미국을 보여준다. 길거리에 버려진 차들과 불타버린 집들, 구호품을 향해 끝없이 걷는 사람들. 살려달라는 군인에게 사정없이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며 제시는 점점 충격이 커져간다.

그러다가 지친 동료들의 얼굴을 담는 제시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런 사진은 메리 엘렌 마크의 사진을 닮았다. 흑백으로 메리 엘린 마크의 뷰에 들어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체념과 포기와 희망이 동시에 스며들어 있다. 전쟁은 모든 것들을 앗아간다. 총알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리의 눈에 하늘하늘 꽃들이 들어온다.

덩케르크였나 전쟁 중에도 자연은, 계절은 바뀌고 풀은 봄이 되면 땅을 뚫고 올라오고 꽃을 피운다. 이 영화를 보면 전쟁장면은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나 현실적이라 무서운데 배경 음악이 랩이거나 화면과는 다르게 너무 좋은 곡이 흘러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무섭게 다가온다.

지금 당장 전쟁이 일어나서 휴지 하나만 세상에서 없어져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휴지로 하던 걸 다른 물건으로 대처해야 한다. 카카오톡 몇 시간 먹통이 되어도 마비가 되고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서로 으르렁 거렸다.

영화와 상관없지만 내전이 일어나면 동물원을 폭파시켜야 한다. 허기진 맹수들이 전시에 동물원을 나오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도 버려지면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라 독기를 품은 사나운 동물이 된다.

영화에 돈을 투자해서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 거짓말 같은데 보다 보면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현실이구나 같은 착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진짜 현실 같아서 무섭다. 공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게 공포가 아닐까.

베테랑 리는 트라우마 때문에 전시 중 해야 할 때 움직이지 못하고, 병아리 기자 제시는 총알 사이로 다니며 사진을 담는다. 나이가 많아서 이동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새미는 세 사람을 군인들에게서 구해주고 총을 맞는다. 잔인한 군인으로 제시 플레먼스가 나온다. 부부가 한 작품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화 마지막 2, 30분은 정말 긴박감이 극도에 달한다. 추천하는 영화 ‘시빌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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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슈바빙에 앉아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공 ‘나사라’는 미대생 3학년에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로 일을 하며 성적 취향도 독특했다. 사라는 키도 컸고 미인이었다. 사라를 제외한 가족이 미국으로 가버렸기에 소설 속, 사라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대범하여 한지섭 교수가 강의시간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하자 사라는 담배를 피워 버린다. 환호성은 책 속과 밖에서 동시에 들렸다.

“한지섭 교수가 마광수 자신 같지?”라고 득재가 말했다.

“그리고 사라는 마광수가 바라는 어떤 뮤즈이고 말이야.” 개구리가 말했다. 개구리가 말을 하면 득재가 유순한 눈동자로 개구리를 쳐다봤다.

즐거운 사라는 너도 나도 돌려봐서 책이 너덜너덜했다. 테이프로 덧 입혀야 했고 세세한 묘사는 꼭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즐거운 사라는 출판금지가 되었다. 책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즐거운 사라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계속 읽게 되는 책은 드물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정부 직속 산하 기관에 탄압을 받고 잡혀간 모양이었다.

“마광수는 어쩌면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지도 몰라. 사랑을 못 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더 애가 타는 소설을 적어내지”라고 슈바빙의 주인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마광수에 대해서 슈바빙 주인 누나에게 더 물었다.

“마광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사람이야. 평생 윤동주를 연구했지. 그러다 하루아침에 즐거운 사라를 적었고 그 여파는 실로 컸어.”

슈바빙 주인 누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마광수 교수는 멋진 사람이라고 했다. 개구리를 비롯해 기철이, 상후와 효상 그리고 득재는 슈바빙에 둘러앉아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미국의 그녀 이름이 사라였다. 나에게 있어 사라라는 이름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집에는 몇 년 동안 그녀에게 받은 편지가 수 백 통이 있었다. 슈바빙에 일찍 가서 편지를 적고 있으면 슈바빙 주인 누나가 그녀에 대해서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주절주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분위기, 편지로 받은 그녀의 묘한 느낌을 주인 누나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입으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모호해지고 그녀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멋진 거야. 너 혼자 있을 땐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편지를 적고 있을 땐 너에게 빛 같은 것이 느껴져”라고 슈바빙 누나가 말했다. 그때 기분이 살짝 우쭐해졌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스무 살의 11월에 그녀가 한국으로 왔다. 그때, 사랑은 하기 이전에 빠지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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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학교 가기 진짜 싫었는데, 그래서 야자도 도망 나오고, 나는 사진부라 사진부 핑계 대고 수업을 째기도 했다.

학교 가는 게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지만 쉬는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소풍이라든가 방학 이럴 때 행복이 넘쳐났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요일이 좋았지.

그런데 일요일에 학교에 가는 날이 있는데 미칠 것처럼 학교 가기 싫은데 이상하게도 일요일의 학교는 또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한적하고 고즈넉이 흐르는 고요한 학교에 있는 건 나쁘지 않았다.

교실에는 아무도 없고, 학교에도 사람이 없어서 휑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일요일의 학교는 평일의 학교와는 달라 보였다. 학교는 싫은데 교실은 괜찮은 느낌? 아무튼 그랬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졸지 않고 엎드려 편안하게 잠들 수 있고 배고프면 교문 밖에서 나가서 마음껏 라면을 사 먹었다. 교실에서는 책을 펼쳐 놓지만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의 교실.

학교는 참 싫은데 일요일의 학교는, 교실은 괜찮은 느낌. 이 시리즈가 그런 느낌이다.

일요일의 교실은 너무나 다른 세계 같아서 교실에 앉아 책을 펼쳐 놓았지만 책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서 창밖으로 떨어지는 햇살을 봤다. 평일에는 절대 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평일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을 아무도 없는 일요일의 교실에서는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있으면 친구가 왔다. 우리는 명목상 공부 때문에 학교에 왔지만 책을 펴 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부는 저 멀리 가버리고 만다. 나 같은 경우는 정말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앉아서 뭔가를 쓰고 외운다는 것을 고등학생 때까지 왜? 하지? 같은 생각이었다. 바보 같은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1학년 초에는 전교에서 17등을 덜컥하는 바람에 담임의 사랑을 잔뜩 받았지만 그건 운이었다. 그 뒤로는 밑으로 밑으로 하락세를 걸었다. 수학은 빵점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건 중학생 땐가? 아무튼 그때 선생님이 빵점은 백점보다 맞기 어렵다면서 대단하다고 했다. 담임의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보가드로가 별명이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촌지 받는 걸 좋아했던 선생님이었다. 사진부에 들어갔다고 많이 혼났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사진부 활동을 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이후락이 만든 학교로 부지가 커서 교정이 넓었다. 학교 건물도 두 채였고, 소규모 대학교의 캠퍼스만큼 좋았다. 나는 사진부 일로 일요일에도 왕왕 학교에 나왔다. 그럴 때 학교의 정취에 심취하기도 했다. 사진부 실은 교무실 바로 맞은편에 있었는데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도 어쩐지 공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과는 친하지 않았는데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과는 사진부 실과 교무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일요일에 나온 선생님은 갓 부임하거나 젊은 선생님이었다.

그땐 전부 필름 카메라라 일단 현상을 하거나 인화를 해야만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디지털처럼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그래서 그때 사진부 아이들 사진을 보면 주로 정적인 사진이 많았다. 일요일에 텅 빈 사진부 실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있으면 꼭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 때문에 일요일에 사진부에 올 일이 있으면 내가 온다고 했다. 그 덕에 선배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텅 빈 일요일의 교실에 있는 게 나름대로 좋았던 기묘한 그 기분은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서 국민학교 때의 일요일에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날을 정해서 일요일 오전 7시에 아이들이 전부 청소를 했다.

일요일 7시면 푹 자야 하는 시간이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기 때문에 아침잠을 늦게 까지 잘 수 있는 날은 일요일뿐이다. 그런데 날을 정해서 청소한다고 7시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청소를 한다. 안 나가도 된다. 하지만 나온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전부 앞집 옆집 뒷집 이렇게 붙어서 살기 때문에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엄마가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서 동네로 나가면 전부 부스스한 얼굴로 모여서 청소를 한다.

그런데 청소를 하다 보면 또 재미있다. 청소는 사실 할 것이 없다. 동네 곳곳을 다니며 쓰레기를 줍줍 하는 것인데 내가 살던 동네는 달동네였지만 깨끗했다. 아이들은 인원점검을 마친 뒤에는 모여서 신나게 놀았다.

오전 8시에 마을의 공터에서 논다. 나는 여자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는데 공기놀이도 내가 제일 잘했다. 그래서 나를 편으로 집어넣으려는 누나들이 있었다. 일요일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건 싫었지만 막상 일어나서 어울리는 그 오전의 일요일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나 장소가 있다. 평소에는 너무 싫은데 막상 어떤 날에는 그 장소가 괜찮은 것이다.

아마 사람도 그럴 거야. 곁에 있는 사람이 늘 좋기만 하지는 않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좋다, 싫다 같은 개념이 없지만 곁에 늘 있는 사람은 매일 좋을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참 정의가 어렵다. 왜 학교에서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을까. 사랑하는 방법이나 제대로 분노하는 법 같은 거나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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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책은 그렇게 굵지 않고 두텁지 않은데

이야기에 알 수 없는 무게가 침잠되어 있어서

손으로 들고는 읽을 수 없었어


소년이 온다가 너무 무거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봐야 했지


책은 읽는 거라지만 마치 테이크가 지나가듯

그저 눈으로 봐야 했어, 글은 입이 되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어


내가 보여줄게, 한 번 봐, 고민은 너의 것이야


홧홧했고 아프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절박했지, 때로는 글자가 일어나서 내 목을 꾸욱 눌러 숨을 쉴 수 없었지


내려놓은 책 대신 손에 들고 있는 볼펜이 그렇게 무섭게 보였던 적이 없었어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시취를 맡을 새도 없이 상무관에서

시체를 수습하던 고등학생들

피비린내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코끝에 남아 있었지


이 뿌리에 고여있던 비릿한 피가 곧 터지기를 바라지만

터져 버리면 지금까지 느꼈던 암담한 슬픔까지 터져 버리지나 않을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책은 얇는데 말이야

코끝이 자주 찡해지니까

자주 쉬어야 했어


조용하고 고분고분하게 말하는 작가 때문에

더 가슴이 답답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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