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슈바빙에 앉아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공 ‘나사라’는 미대생 3학년에 나이트클럽에서 댄서로 일을 하며 성적 취향도 독특했다. 사라는 키도 컸고 미인이었다. 사라를 제외한 가족이 미국으로 가버렸기에 소설 속, 사라는 모두가 바라는 이상형에 가까웠다. 게다가 대범하여 한지섭 교수가 강의시간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하자 사라는 담배를 피워 버린다. 환호성은 책 속과 밖에서 동시에 들렸다.
“한지섭 교수가 마광수 자신 같지?”라고 득재가 말했다.
“그리고 사라는 마광수가 바라는 어떤 뮤즈이고 말이야.” 개구리가 말했다. 개구리가 말을 하면 득재가 유순한 눈동자로 개구리를 쳐다봤다.
즐거운 사라는 너도 나도 돌려봐서 책이 너덜너덜했다. 테이프로 덧 입혀야 했고 세세한 묘사는 꼭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즐거운 사라는 출판금지가 되었다. 책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즐거운 사라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계속 읽게 되는 책은 드물었다. 우리는 잘 몰랐지만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썼다는 이유로 정부 직속 산하 기관에 탄압을 받고 잡혀간 모양이었다.
“마광수는 어쩌면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지도 몰라. 사랑을 못 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더 애가 타는 소설을 적어내지”라고 슈바빙의 주인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마광수에 대해서 슈바빙 주인 누나에게 더 물었다.
“마광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사람이야. 평생 윤동주를 연구했지. 그러다 하루아침에 즐거운 사라를 적었고 그 여파는 실로 컸어.”
슈바빙 주인 누나는 윤동주를 연구했던 마광수 교수는 멋진 사람이라고 했다. 개구리를 비롯해 기철이, 상후와 효상 그리고 득재는 슈바빙에 둘러앉아 즐거운 사라에 대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와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미국의 그녀 이름이 사라였다. 나에게 있어 사라라는 이름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집에는 몇 년 동안 그녀에게 받은 편지가 수 백 통이 있었다. 슈바빙에 일찍 가서 편지를 적고 있으면 슈바빙 주인 누나가 그녀에 대해서 묻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주절주절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흐르는 분위기, 편지로 받은 그녀의 묘한 느낌을 주인 누나에게 잘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게 참 이상했다. 입으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면 어쩐지 모호해지고 그녀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멋진 거야. 너 혼자 있을 땐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편지를 적고 있을 땐 너에게 빛 같은 것이 느껴져”라고 슈바빙 누나가 말했다. 그때 기분이 살짝 우쭐해졌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스무 살의 11월에 그녀가 한국으로 왔다. 그때, 사랑은 하기 이전에 빠지는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