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책은 그렇게 굵지 않고 두텁지 않은데

이야기에 알 수 없는 무게가 침잠되어 있어서

손으로 들고는 읽을 수 없었어


소년이 온다가 너무 무거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가며 봐야 했지


책은 읽는 거라지만 마치 테이크가 지나가듯

그저 눈으로 봐야 했어, 글은 입이 되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어


내가 보여줄게, 한 번 봐, 고민은 너의 것이야


홧홧했고 아프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절박했지, 때로는 글자가 일어나서 내 목을 꾸욱 눌러 숨을 쉴 수 없었지


내려놓은 책 대신 손에 들고 있는 볼펜이 그렇게 무섭게 보였던 적이 없었어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시취를 맡을 새도 없이 상무관에서

시체를 수습하던 고등학생들

피비린내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코끝에 남아 있었지


이 뿌리에 고여있던 비릿한 피가 곧 터지기를 바라지만

터져 버리면 지금까지 느꼈던 암담한 슬픔까지 터져 버리지나 않을까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책은 얇는데 말이야

코끝이 자주 찡해지니까

자주 쉬어야 했어


조용하고 고분고분하게 말하는 작가 때문에

더 가슴이 답답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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