웡카

따뜻하고 슬프고 애틋한 뮤지컬 영화다. 착한 웡카와 꼬마 여자애는 내내 당하다가 끝에 가서 복수한다고 하기도 뭣하고 아무튼 끝에 가서 해피엔딩이다.

음파룸파 난쟁이로 휴 그랜트가 나와서 디게 잘 어울리데 ㅋㅋ.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많이 비교되는데 재미로만 보자면 후자가 더 재미있다.

웡카는 선한 쪽은 전부 약자로 그려지고 있고 티모시 살라메가 다리를 휙휙 올리며 뮤지컬 노래를 부르며 초콜릿을 팔기 때문에 4학년 정도가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4학년.

영상미가 좋다. 하늘을 날고 온갖 초콜릿의 그래픽도 자연스럽다. 당연하지만 국뽕 때문에 정정훈 촬영감독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정정훈 촬영 감독은 이방인이라는 점 때문에 언제나 화재인데, 에드가 라이트와 손잡고 라스트 나잇 인 소호도 촬영했지(영상미 알지?), 언차티드도 촬영했지, 좀비랜드 더블 탭, 그것 등 할리우드 영화들부터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까지.

온통 그래픽이라 배우들이 촬영할 때 허공에 대고 연기를 많이 했을 법하다. 웡카를 보며 느낀 건 만약 배우들이 영화에 몰입해서 연기를 한다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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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롭다 하지만 처절하고 겁이 나는 전쟁이 이토록 미학적이라니.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과 맞써는 공군의 이야기다. 대단히 조마조마하며 당시 비행기들의 전투씬에서 총알을 맞아서 머리가 박살나는 장면은 너무나 실제 같다. 그럼에도 영상미가 말도 못하게 좋다.

1988처럼, 전쟁에서 하늘의 전투는 미사일이나 총알로만 죽는 것이 아니라 고도가 높으면 동상이 걸리고, 손가락이 날아가고, 하강 할 때 궤양이 터져 죽기도 한다. 열악한 비행기 안의 환경, 산소 부족,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이 주는 공포가 화면 밖으로 뻗어 나온다.

영화는 비행기 안에서 이뤄지는 당시 긴박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불시착을 할 때 대원들의 행동이라든가. 창문을 들어내서 옮긴다든가.

영국과 미국 간의 군인들 대립이나 작전 후 밤을 즐겨야만 살아낼 것 같은, 그들은 지옥 같은 전쟁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공중전이지만 병사들은 하나 같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가기를 원한다. 나치 독일을 궤멸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공군 병사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매료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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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NKxAoi-MTc?si=bEUhjrsx2EiZoWRU


영상: 코오롱스포츠 KOLON SPORT


서래를 닮은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이렇게 탕웨이와 바다 그리고 아다지에토로 한 번 코오롱에서 제작을 했었지

이때 탕웨이를 봐, 탕웨이가 얼마나 예쁜지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아다지에토는 참 많이 들었던 곡인데

여자에게 관심도 없고 작곡만 하던 41살의 말러가 19살이나 어린 알마 쉰들러에게 빠져들어 사랑을 담아 작곡한 아다지에토

음악이, 그리고 그 울림이 당신을 향한 나의 열망을 더욱 이끌어낸다면,

당신은 매일 아침 이 곡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마 – 말러로부터

아아, 정녕 사랑을 고백을 할 때에는 온 마음을 다 해야 한다고

아다지에토는 수많은 모순의 소랑을 담아내는 영화에 등장했지

알마에 의하면 말러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사람이라고 했지

이 곡이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쓰이면서 명작이 되었지

아다지에토는 미칠 것 같은 추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헤어질 결심에 아다지에토가 계속 흘러, 아다지에토는 서래를 닮았거든

12월 31일이 끝나면 1월 1일의 시작이야

나의 사랑이 끝남과 동시에 너의 사랑이 시작되는 이 모순,

박 감독님은 10년 전 코오롱 광고 속 탕웨이를 보며 내내 헤어질 결심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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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불안하고 타인이라는 시선에 갇혀 지내는 진샤는 보안검색대에서 일을 한다. 그때 초록초록 머리를 한 여자애가 나타나서 진샤와는 다른 자유함을 드러내며 진샤의 심기를 건드린다.

진샤는 3500만원을 마련해서 영주권을 얻으려 하지만 너무나 큰 벽이고 초록초록 머리는 오늘 죽어도 좋아 라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검색대에서 신발 때문에 경보음이 울리자 협조해 달라고 진샤는 말하지만 초록초록 머리는 실실 웃으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검색대를 빠져나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몸에 초록의 색이 칠해져 있다. 진샤는 남편에게 맞아서 생긴 멍의 색이고, 초록초록 머리는 초록의 문신을 가슴 언저리에 했다. 둘은 약을 판매하는 구매자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게 되고 거기서 나오는 돈을 진샤는 얻기로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이 지내게 된다. 샤워를 하고 돌아서서 머리를 닦는 진샤의 몸에 든 멍을 보는 초록초록 머리는 그 멍을 만져준다. 대부분의 어른은 어른이 된 이후 누군가를 보살피지만 어른도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잘 살린 장면이라 생각이 든다.

두 여인은 결국 거대한 남성들의 세계에 억압받고 있었다. 진샤와 초록머리는 이 설명 할 수 없는 녹야에 젖어 드는데. 과연 이 두 여인이 한 몸이 되어 이 크고 어두운 세계에 어떻게 저항을 할까.

독립영화에 출연을 많이 한 이주영은 원래 이 영화에 출연을 망설였지만 판빙빙이 편지를 써가면서까지 이주영을 섭외했다는 일화가 유명했다.

마블리의 주먼 펀치와 미드의 물량 공습 속에서 섬세한 실 같은 결의 흔들림이 있는 이야기를 보고 싶으면 봐도 좋을 것 같다. 판빙빙의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 ‘녹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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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그림


만약 거짓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진실만 이야기한다면 과연 살기 좋을까. 진실만 있는 세상에서 진실의 가치는 똥과 같다. 우리가 진실을 바라고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건 도처에 거짓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일 거짓말을 수십 번은 할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의 대척점에 있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거짓이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에서 확대되거나 축소된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과 글을 거짓이라는 양념이 묻어있다. 모임에 나갔는데 돈 잘 번다며 얼마 벌어?라고 물었을 때 똑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광고에는 거짓이라는 양념이 다 묻어 있다. 먹으면 다 낫고, 먹으면 다 좋다고 하지 별로 안 좋다고 말하는 광고는 없다. 장사하는 사람들 역시 손님을 향해 대부분 거짓의 양념이 묻는 말을 한다.

살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배우지만 얼굴을 보며 못 생겼다, 뚱뚱하다, 재수 없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어린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어린이들이 내뱉는 말은 진실에 가깝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똥인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은 진실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진실을 말하여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와 아빠에게 상처를 주는 빈도가 높다.

부모 역시 아이들에게 매일 거짓말을 한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은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생각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딸은 집으로 와서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확인받고 싶어 아이는 어떻게 생기냐고 물어 온다. 부모는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축소하거나 확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또는 완전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거짓말은 진실을 돋보이게 한다. 빛을 발하게 만든다. 일상의 거짓말은 일탈 같은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국민의 입이자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니까. 무엇보다 서민들을 위하는 정치지인들이기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이 서민을 대표하기에는 일단 보유한 재산의 차이가 너무 크다. 추운 곳에서 벌벌 떨며 일하거나 장사해보지 않은 엘리트가 정치인이 되어서 무슨 서민을 대표하는 발언을 할 것인가. 그저 거짓말을 할 뿐이다. 월급도 굉장히 많이 받는다. 나라가 어렵거나 곤경에 빠져도 정치인들의 월급은 내려갈 줄 모른다. 그들의 사무실에는 보좌관이 6명에서 9명까지 있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절대적인 건 없기 때문이다. [영원]과 결이 비슷하다. 영원히 사랑할게 하는 말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절대가 그렇다. 그러나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아쉽게도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정치인이다. 사회에서 촉망받고 명망 높은 학자, 변호사. 교수들이 정치지인이 되면 어째서 아이큐 50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정치인이 되어서 그 생활이 일상이 되어 시간이 흐르면 권력의 맛을 한 번 보고 빠져버려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관료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는 국민에게 관심이 없다.

정부는 국민에게 간섭만 한다.

우리는 현 대통령이 창피하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건 우리 편의 장점과 잘하는 것을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잘못된 점을 거짓으로 욕을 하는 게 훨씬 낫다. 나쁜 거짓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는 하루키의 단편 [침묵]을 보면 잘 나온다. 소설 '침묵'은 주인공에게 회사 동료인 오자와가 고등학교 때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다.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것이 걱정이 된 부모님이 친척이 운영하는 복싱장에 보내게 된다. 복싱을 배우면서 오자와는 권투라는 운동은 상당히 고독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복싱을 배우는 사람은 링 밖에서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복싱을 배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오자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동급생인 아오키라는 친구를 때리게 된다. 아오키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친해지기 전에도 오자와는 아오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아오키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것이 딱 집어낼 수 없지만 거짓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아오키는 진짜로 하지 않고 허울과 껍데기뿐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오자와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복싱을 하면서 학교의 어떤 시험이든 일등을 하면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시험에서 오자와는 일등을 한다. 영어 시험은 아오키가 늘 일등을 하던 과목이었다. 일등을 빼앗긴 아오키는 그 뒤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자와가 커닝을 한 것이라고. 소문은 돌고 돌아 오자와의 귀에 들어왔다. 화가 난 오자와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수련이 덜 된 오자와는 아오키와 말다툼을 하던 끝에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뒤로 생활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아오키와 오자와. 어느 날 같은 반의 마쓰모토라는 친구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되었다. 학교의 분위기도 안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오키는 오자와에게 맞았던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아오키는 몇 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첫째, 마쓰모토는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둘째, 오자와는 오랫동안 복싱을 배워왔다.

셋째, 나는(아오키는) 중학교 때 오자와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흘리게 된다. 그 뒤로 사실이 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치 복싱을 배운 오자와가 마쓰모토를 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오자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오자와는 아오키를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다. 오자와는 제대로 아오키의 눈을 쳐다봤다. 후에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적정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진실이란 늘 모호하고 진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실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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