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고마코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영상으로 옮긴 여러 버전 중 가장 최근의 2022년 버전이다. 시마무라로 타카하시 잇세이가 나오며, 여리여리 눈 같은 기생에는 나오가 나온다.


눈으로 시작하여 불로 끝나는 이 소설은 너무나 유명한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시작한다. 영화도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이 문장 보다 이 문장 바로 뒤에 오는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라는 문장에 온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릴 것만 같다.


이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소설인지 에세인지 넋두린지 플롯이 애매애매하다. 어쩌면 시에 가깝고 그 시를 이어 붙여 아주 긴 산문시 같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영화(는 아니지만)도 야스나리의 시적 내레이션이 아주 많이 나온다.


유리창이 거울이 되어 건너편의 여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 얼굴 가운데에 등불이 타올랐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손가락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인상이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보며 이렇게 표현했다. 소설의 내용은 다 알겠지만 세 번 눈의 고장에 있는 여관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고마코와 그녀가 데리고 있는 요코와 시마무라 세 사람이 설국의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소설은 머릿속으로 설국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고 영화는 운통 눈으로 덮인 설국에서도 눈에 띄게 하얗고 맑은 고마코를 보는 재미가 있다. 고마코는 예전 흑백 영화의 고마코가 더 예쁘다.


야스나리는 자살했는데 아끼는 제자 미시마 유키오가 자살을 한 다음 해에 자살했다.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는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가서 막 욕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에 불가할 뿐이야! 라며 다자이 오사무를 폄훼했다. 그때 오사무는 어허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니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다,라며 응수했다.


야스나리는 34년 우리나라 무용가 최승희(당시는 북한의 무용가로 숙명여고를 나와 고전 무용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는데 57세에 숙청당했다)가 일본 데뷔를 하는데 그때 그녀의 무용을 본 야스나리는 일본 내에서도 신진 여류 무용가 중에서 제 일인자로 꼽았다. 소설 무희에서 최승희에 대해서 다루었다.


유튜브에서 snow country 2022라고 치면 전편을 다 볼 수 있다. 배우 나오의 얼굴은 아오이 유우와 쿠로키 하루를 섞어 놓은 듯한 얼굴이다. 그런 계보를 잇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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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오니 아 날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 있으면 몹시 쌀쌀한데 해가 비치는 양지바른 곳은 따뜻했다. 어린 시절에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게 참 좋았다. 아버지와는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여름에는 가지 않았고 날이 쌀쌀해지면 아버지와 함께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차디찬 겨울에 아버지와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게 좋았다.


이맘때가 되면 기시감이 늘 드는데 기시감이 드는 꿈도 부쩍 자주 꾼다. 하지만 꿈은 늘 호러블하다. 꿈속에서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꿈 속이니까 꿈속에서도 꿈속만의 리얼리티를 느끼니까 현실은 아니라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리얼하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는 꿈을 꾼다. 옷을 입은 채로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한다. 그러나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과 이질감이 없다. 역시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지 않다.


옷을 입은 채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상상을 어릴 때 왕왕했었다. 그러다가 진짜 기회가 한 번 왔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목욕탕 집 아들내미가 있었다. 그 녀석과는 썩 친하게 지내지 않았는데 그 녀석이 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듣던 앨범을 빌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음악감상실이라는 세계에 눈 뜨게 해 주었다.


목욕탕 옥상에 그 녀석의 집이 따로 있었다. 와 정말 부러웠다. 그 녀석은 실천력이 좋은지 방에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를 사들여 놓았다. 빵빵한 사운드로 듣는 마이클잭슨은 정말 너무나 멋졌다.  그리고 그날은 그 녀석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목욕탕 옥상에 따로 마련된 그 녀석의 작은 집은 정말 좋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담하고 멋진 방이었다.


소파와 침대가 있고 기타 그리고 오디오, 여러 대의 스피커. 컴퓨터도 두 대나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밤하늘의 별이 바로 보였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녀석을 나를 깨우더니 목욕탕에서 씻자고 했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은 대중목욕탕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샤워기를 들고 옷을 입은 채 물을 몸에 뿌리고 싶었다.


살다 보니 간단하게 하면 되는데 간단하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옷을 입고 목욕을 하는 것, 옷을 입은 채 영화처럼 샤워를 하는 것도 그렇다. 옷을 입고 샤워를 한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질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쉽게 하게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속이 상한 일이 있을 때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옷을 입은 채 크게 울고 싶어도 잘 안 된다.


너무 쉬워서 언제라도 하면 되지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지금 해야지 언젠가 하려고 하면 잘하게 되지 못하거나 마음이 꺾이거나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했는데 그 누군가가 없어지고 마는 경우가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히잡도 그렇다. 저쪽 나라의 히잡 그거 그냥 벗어버리면 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히잡 벗었다가 몸이 난도질 당해 죽음을 당하게 되기도 하다. 그놈의 히잡 그게 뭐라고, 쉽게 그냥 벗어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하고 오래된 잘못된 관습이 그걸 막고 있다.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시나씨는 한국 방송에서 튀르키예 지진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그 나라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국의 여러 방송, 국영방송이 아닌 민영, 개인 방송에까지 제재가 들어왔다. 알파고가 속해 있는 기획사 대표에게 대사관에서 제제가 들어왔다고 한다. 알파고가 거짓된 가짜뉴스를 말한다면 제재를 가해도 되지만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도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의 한국방송 출연 재재를 가한다. 게다가 튀르키예 한국 전문가들도 알파고와 함께 방송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게 흘러가는 건 여러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이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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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의 격투가 아닌 견자단의 무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할만하다. 김용의 활극의 엄청난 서사를 영상으로 뽑아냈다. 김용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무공을 좀 더 봤더라면 좋았을 법했다.

주성치의 쿵푸허슬은 할리우드에서 촬영팀도 부르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중무장을 해서 엄청난 자본이 들어갔는데 그 많은 자본 중에 반 이상이 영화 속에서 사용하는 무공의 저작권에 들어갔다. 바로 김용이 만들어 낸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주성치는 얼마가 들어가더라도 돼지촌에서 일어나는 캐릭터의 무공을 전부 김용의 무공으로 사용했다.

천룡팔부에서 교봉이 사용하는 휘이이익 황룡십팔장 같은 무공이 더 많이 나와야 좀 더 김용 무협스러웠을 텐데 아쉬웠다. 이제부터 아쉬운 걸 말하자면 영화가 2시간이 넘는데 1시간 정도는, 그래 이렇게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고 그건 오해야 그러니까 아니라고, 같은 내용을 말하기 위해 지루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1시간이 지나면서 무협 액션 활극 장면이 나온다. 판타지 액션 활극치고는 타격감이 좋다. 예전 풍운(망했지만 재미있었음 개인적으로)은 타격감은 별로 없고 판타지 액션의 맛만 났다면 이번 교봉전은 견자단이 무술까지 감독을 해서인지 타격감이 좋다. 그러나 수십 명이 화살을 몇 백 개씩 쏘아대는데 몸통만 맞는다. 눈이나 얼굴도 맞아야 하는데 얼굴만 빼고 몸통만 화살을 맞는다 뷁.

천룡팔부는 영화 마지막에서 다음 편을 예고하면서 끝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뭐야? 견자단이 모용박보다 왜 늙어 보이지? 했는데 2편은 교봉의 전 세대, 아버지 세대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견자단이 1인 2역을 했다.

옛 향수를 자극하며 견자단이 한국까지 와서 열심히 홍보를 하며 극장 상영을 감행했지만 상영관 안에 사람은 거의 없거나 별로다. 중국 내에서는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오티티 서비스로만 하는 걸로 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예전만큼 만만찮다. 4디 상영관에서 두 명이서 영화를 보고 팝콘이나 음료를 마시면 5만 원 돈이 날아간다. 그렇기에 영화를 고르는 관객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천룡팔부 같은 판타지 무협 영화는 일단 여자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친구가 나는 싫어, 하면 다른 영화를 봐야 한다. 예전의 무협 향수를 가지고 보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있는 남자들인데 요즘 나이가 든 남자들은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여가에 쓸 돈과 시간은 너무나 중요한 선택사항이다. 나머지가 젊은 남자들인데, 이 계층의 남자들 중 견자단의 진정한 팬이 아니라면 애매하다.

무엇보다 2시간이 너무 길고 1시간이 내용을 설명하기에 힘들다. 시간을 좀 줄이고 액션에 더 과감하게, 그러니까 김용의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 시켰으니 김용의 무공이 많이 나오는 액션 활극이라면 오티티로 풀려도 사람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만고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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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엔 텅 빈 공동(空洞)이 아주 크게 나 있다. 네 살 된 딸이 죽으면서 생겨버린 공동은 아내로 인해 채워질 줄 알았지만 아내와 사랑을 나눌 때마다 조금씩 깊어지고 더 커져서 이제는 그 무엇으로도 공동을 채울 수가 없어졌다.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나의 가슴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이었고, 나의 품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잔다는 걸 알지만 그걸 아내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아내가 나를 떠나가게 될까 봐, 그러면 내 속의 텅 빈 공동이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잡아먹어 어둠만이 내 속을 채우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을 잔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걸 애써 꺼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상처를 받았지만 제대로 상처를 받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제대로 상처를 받았다면 아물어 흉터가 생기더라도 상처는 치료가 되지만 제대로 받지 않은 상처는 점점 곪고 곯아서 깊어지기만 한다. 어쩔 수 없다. 살아가는 수밖에. 가끔 우리끼리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내는 길밖에 없다.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없는 맛도 참고 견디며, 평화 따위 없더라도 살아가는 것이다. 제대로 상처를 받는 방법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아내를,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아내를, 거짓 없는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내가 상처를 받는 일이다. 그걸 아내가 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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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가 유치하고 다른 오티티 드라마 시리즈보다 리얼리티가 떨어지지만 뼛속까지 곪고 곯아서 터지지도 않는 사회범죄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재미있다. 현실의 범죄자들 하나같이 교정 시설에 들어가면 잘 먹고 잘 지낸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해봐서 아주 잘 알지. 떠들썩하던 사건도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은 전부 잊는다.

그래서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가 필요하다. 모범 택시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시리즈 내내 끌지 않는다. 우영우처럼 1, 2회 안에 하나의 사회범죄가 해결된다. 그 점이 좋다.

미드 홈랜드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즌 3까지 가도 끝이 나지 않아서 아후 보는데 지친다 지쳐. 홈랜드는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재미있지만 너무 오래 끌고 머무 길고 너무 답답한 캐릭터가 진을 치고 있고 너무, 너무하다.

그에 비해 모범택시는, 그래 이 죽일 만큼 거슬리는 피피엘만 참아낸다면, 뉴스를 장식하는 각종 개싸이코범죄자들을 통쾌하게 잡는 게 좋다. 이렇게 끊임없이 영화든, 드라마든 지속적으로 사회문제를 다뤄야 망각에 중독된 사람들이 빨리 잊지 않고 사회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학폭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니까 임명 하루 만에 아들내미 학폭 때문에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하지 않나. 이 사람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들 학폭 터졌을 때 항소한 것도 사람들은 몰랐을 것이다.

이런 복수극에서 궁금한 게 꼭 있는데 시즌 1에서 엔번방처럼 여자 친구 몰카 찍었던 그놈, 김도기가 곧츄에 드릴 발사했잖아. 몇 방이나 쐈다. 이 자식 어떻게 사는지 존나 궁금하네. 신데렐라가 아름답게 끝났지만 그 후가 너무 긍금하니까 이적이 노래로도 만들었잖아. 림여사의 김도기를 향한, 아니 왕따오지를 향한 복수는 어떻게 될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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