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오니 아 날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에 있으면 몹시 쌀쌀한데 해가 비치는 양지바른 곳은 따뜻했다. 어린 시절에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게 참 좋았다. 아버지와는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여름에는 가지 않았고 날이 쌀쌀해지면 아버지와 함께 주말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차디찬 겨울에 아버지와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도 좋았지만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겨울과 봄의 길목에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게 좋았다.


이맘때가 되면 기시감이 늘 드는데 기시감이 드는 꿈도 부쩍 자주 꾼다. 하지만 꿈은 늘 호러블하다. 꿈속에서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꿈 속이니까 꿈속에서도 꿈속만의 리얼리티를 느끼니까 현실은 아니라서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리얼하니까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는 꿈을 꾼다. 옷을 입은 채로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한다. 그러나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과 이질감이 없다. 역시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이상하지 않다.


옷을 입은 채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상상을 어릴 때 왕왕했었다. 그러다가 진짜 기회가 한 번 왔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목욕탕 집 아들내미가 있었다. 그 녀석과는 썩 친하게 지내지 않았는데 그 녀석이 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듣던 앨범을 빌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나는 그 녀석에게 음악감상실이라는 세계에 눈 뜨게 해 주었다.


목욕탕 옥상에 그 녀석의 집이 따로 있었다. 와 정말 부러웠다. 그 녀석은 실천력이 좋은지 방에 좋은 오디오와 스피커를 사들여 놓았다. 빵빵한 사운드로 듣는 마이클잭슨은 정말 너무나 멋졌다.  그리고 그날은 그 녀석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목욕탕 옥상에 따로 마련된 그 녀석의 작은 집은 정말 좋았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담하고 멋진 방이었다.


소파와 침대가 있고 기타 그리고 오디오, 여러 대의 스피커. 컴퓨터도 두 대나 있었다. 창문을 열면 밤하늘의 별이 바로 보였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녀석을 나를 깨우더니 목욕탕에서 씻자고 했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은 대중목욕탕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때 옷을 입은 채 목욕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샤워기를 들고 옷을 입은 채 물을 몸에 뿌리고 싶었다.


살다 보니 간단하게 하면 되는데 간단하지만은 않은 경우가 있다. 옷을 입고 목욕을 하는 것, 옷을 입은 채 영화처럼 샤워를 하는 것도 그렇다. 옷을 입고 샤워를 한다고 해서 뭔가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질타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쉽게 하게 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속이 상한 일이 있을 때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옷을 입은 채 크게 울고 싶어도 잘 안 된다.


너무 쉬워서 언제라도 하면 되지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지금 해야지 언젠가 하려고 하면 잘하게 되지 못하거나 마음이 꺾이거나 누군가와 함께 하려고 했는데 그 누군가가 없어지고 마는 경우가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히잡도 그렇다. 저쪽 나라의 히잡 그거 그냥 벗어버리면 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히잡 벗었다가 몸이 난도질 당해 죽음을 당하게 되기도 하다. 그놈의 히잡 그게 뭐라고, 쉽게 그냥 벗어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엄격하고 오래된 잘못된 관습이 그걸 막고 있다.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시나씨는 한국 방송에서 튀르키예 지진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그 나라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국의 여러 방송, 국영방송이 아닌 민영, 개인 방송에까지 제재가 들어왔다. 알파고가 속해 있는 기획사 대표에게 대사관에서 제제가 들어왔다고 한다. 알파고가 거짓된 가짜뉴스를 말한다면 제재를 가해도 되지만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도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알파고의 한국방송 출연 재재를 가한다. 게다가 튀르키예 한국 전문가들도 알파고와 함께 방송에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게 흘러가는 건 여러 곳곳에 존재한다. 그것이 설령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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