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핵심은 어쩌면 이승윤이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승윤을 찍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면 세 명의 감독이 자기 자신을 찍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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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은 영화 일을 하다 지쳐 한없이 밑으로 꺼져 있던 2018년, 우연히 만난 선배에게 “너 살아있었네?”라는 말을 듣는다. 그 한마디가 영화의 제목이 된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듣보라는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한데 어디에도 자리가 없는 사람들.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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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은 그때 무명 가수였던 이승윤의 노래를 듣는다. 자신의 처지와 묘하게 겹치는 노래였다. 지쳐 있던 자신에게 누군가 건네는 선물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팬이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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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내가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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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 수 없는 자신감이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이승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해보기로 한다. 친구 두 명을 끌어들인다. 셋 다 이름을 알린 감독이 아니다. 말 그대로 듣보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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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수와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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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하나로 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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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승윤에게 연락을 한다. 답장이 올 리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답장이 온다. 그리고 실제로 만난다. 그때부터 세 사람은 정말 맨땅에 헤딩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장소를 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무대를 만들고, 의상까지 준비한다. 전통시장을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누군가는 안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어렵다고 하고, 코로나라는 상황까지 앞을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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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건 그들이 안 된다는 말을 들을수록 더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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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 계속 생긴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돈도, 인맥도, 유명세도 없는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동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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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면 편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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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승윤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빠져든다. 이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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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보고 시작할 수 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저 사람과 일하고 싶어서, 저 사람의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다. 그런데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었는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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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역시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명한 가수가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아서 2020년까지만 활동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2021년 [싱어게인]에서 우승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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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이승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승윤보다 훨씬 풋풋하다. 아직 이름을 알리기 전의 얼굴이 있고, 그때의 노래가 영화 곳곳에 흐른다. 훗날 유명해진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이면서 동시에,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을 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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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 명의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대단한 사람들이 대단한 일을 해낸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계속 움직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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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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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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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고 말하는 데 꼭 유명해질 필요는 없다. 아직 아무도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 자체가 생존신고일지도 모른다. 세 사람은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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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를 보는 나는 그 생존신고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조금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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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살아 있나 보다, 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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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제목은 [더 페이블: 죽이지 않는 암살자]다. 흔히 페이블 2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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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가 직업인 남자가 잠시 일을 접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신과 비슷한 인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결국 라이벌과 맞붙게 된다. B급 감성에 액션을 버무린 일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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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만화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걱정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카다 준이치가 아키라를 맡으면서 꽤 괜찮은 영화가 되었다. 액션은 액션대로 제대로 해내면서, 이상하게 힘을 빼고 있는 듯한 B급 코미디까지 아주 찰지게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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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1편이 나왔고 2021년에 2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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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는 암살자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통한다. 어느 날 보스에게 명령을 받는다. 아무도 죽이지 말 것. 그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갈 것. 이게 아키라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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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와 남매로 위장해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평범하게 살라는 명령을 받은 암살자가 평범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습 자체가 웃긴다. 오카다 준이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도 재미있고, 요코 역의 키무라 후미코도 만만치 않다. 둘이 붙어 있을 때 영화의 B급 냄새가 확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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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는 결국 액션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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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준이치와 키무라 후미코의 액션이 생각보다 훨씬 좋다. 특히 오카다 준이치의 표정이 재미있다. 아침에 막 일어나서 아직 정신도 덜 깬 사람 같은 얼굴로 총을 쏘고 사람을 때려눕힌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총질을 하는 게 오히려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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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는 츠츠미 신이치, 사토 코이치 같은 배우들도 나온다. 배우 보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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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액션은 건물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다. 공사장의 구조물을 이용해 뛰고 구르고 매달리면서 싸우는데, 성룡식 액션에 존 윅의 살벌함을 조금 섞어놓은 느낌이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2편을 다시 볼 이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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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블 같은 일본식 B급 액션을 좋아한다면 몇 번씩 다시 보게 될 영화다. 이퀄라이저처럼 묵직하게 멋을 부리는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한번 보고 나면 또 생각난다. 특히 아키라의 그 멍한 얼굴과 후미코의 귀여움과 섹시 그 어디쯤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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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이는 걷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래도 센터에서 타라고 하는 전동차는 죽어도 타기 싫다. 전동차를 타면 편하다. 하지만 편해지는 만큼 두 다리의 힘은 빠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영이는 무용을 하고 싶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자신의 두 다리로 걷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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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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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기도 한다. 창피하고 힘들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벚꽃이 피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조깅을 한다. 소영이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나도 저렇게 한 번 뛰어 보고 싶다. 그게 소영이의 소원이다. 겨울을 지나 봄을 보내고 어느 따뜻한 날, 소영이는 동네 공원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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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갈고닦은 무용을 혼자 펼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 박수도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무용을 하는 동안만큼은 날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소영의 노력]은 장애를 바라보는 흔한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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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몰아가지도 않고, 소영을 안타까운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인데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카메라의 시선 때문이다. 영화는 소영을 바라보는 카메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소영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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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록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움직이지 않는 몸,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말, 점점 굳어가는 몸을 자기 손으로 찍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럼에도 소영은 카메라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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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그래서 소영에게 무용은 단순히 춤을 추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가깝다. 소영 곁에는 희정 선생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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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영의 김소영도 대단하지만 옆에서 끝까지 소영을 잡아주는 희정 선생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면서 소영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희정 선생님이 더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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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이 포기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서 동작 하나하나를 반복하게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으키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 자신의 역량을 알고 삼십 대에 현역 무용수의 길에서 내려와 무용을 가르치는 사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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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선생님 역시 자신의 불안과 우울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영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자신도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희정 선생님은 소영에게 동작을 가르친다. 잘되지 않는 동작을 다시 하고, 잊어버리면 다시 기억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또 처음부터 한다. 결국 무용도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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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넘어졌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하고 또 하는 것. 그 과정에서 희정 선생님이 소영에게 말한다.“소영아? 잘한다 못한다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선생님이 쳐 줄 거야. 알겠지? 당황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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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와 반복된 고된 노력에 소영은 희정 선생님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린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연습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한다. 공연 당일까지 몸을 붙잡고 또 연습한다. 그렇게 어렵게 공연을 끝낸다. 공연이 끝났다고 소영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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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돌아간 뒤에도 소영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카메라를 들고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찬란한 음악을 깔고 끝내지 않는다.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는 식으로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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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된다. 걷는 일도 계속해야 하고, 몸과 싸우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 무용 역시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소영에게 노력은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갱년기라면 처음부터 눈물을 줄줄 흘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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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소영이 공원에서 혼자 춤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춤을 추던 소영. 그 순간만큼은 몸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달릴 수 없지만 춤출 수 있고, 마음대로 말할 수 없지만 몸으로 말할 수 있다. 몸이 점점 굳어가더라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까지 굳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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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영의 노력]은 장애를 극복하는 영화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이 자신의 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에 가깝다. 소영은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도 걷고, 다시 연습하고, 춤을 춘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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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 요보비치가 나오지 않는데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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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익숙한 공포영화들이 떠오른다. 괴물들이 서로의 몸을 집어삼키며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은 '더 씽'을 생각나게 하고, 라쿤시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도로와 터널, 건물들은 '사일런트 힐'의 미로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단순히 어디선가 본 것을 가져다 붙인 느낌은 아니다. '레지던트 이블' 특유의 괴물과 고어가 다른 영화의 공포와 섞이면서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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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의료용품을 배달하러 갔던 브라이언은 어쩌다 라쿤시티까지 긴급하게 백신을 배달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사람이 살아갈 만한 도시가 아니다. 오염으로 변이된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브라이언은 그 안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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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다. 백신을 가지고 들어가서 배달하고 살아남으면 된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문제다. 총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이라 총을 쏘는 모습부터 어설프고, 괴물을 만날 때마다 튀어나오는 욕과 추임새도 심각한 상황과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 사람이 영웅인지 그냥 운 좋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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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오히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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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크레거가 감독을 맡은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웨폰'과 '바바리안'에서 보여줬던 불편하면서도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감각이 이번에도 느껴진다. 공포를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무서운 장면 한가운데에 이상한 웃음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끔찍한 장면을 보다가도 피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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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이전의 '레지던트 이블'보다 한층 더 과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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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몸에서 뻗어나오고, 하나의 괴물이 다른 괴물을 흡수하면서 더 크고 끔찍한 형태로 변한다. 괴물의 몸이 더 이상 인간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계속 변해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더 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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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괴물이 기억에 남는다. 얼굴이 갈라지면서 완전히 다른 괴물로 변하는데, 이상하게도 새하얗고 고른 치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저 치아를 굳이 저렇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 싶었다. 무서운 장면인데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다. 이런 순간이 이 영화에는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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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시티에 들어간 뒤의 공간도 보는 재미다. 도로에서 터널로, 터널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디로 가든 정상적인 길이 아니다. 공간 자체가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꼬여 있다. '사일런트 힐'에서 죄의식과 공포가 도시를 미로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이 영화의 라쿤시티도 사람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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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브렐라 역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조직처럼 묘사됐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앞으로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후속작에서 다시 엄브렐라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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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은 그 와중에도 백신을 정말 자기 목숨처럼 끌어안고 다닌다. 어떻게든 배달을 끝내려고 한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배달기사는 정말 투철하다. 그런데 치아가 하옇고 고른 어린 괴물에게 팔을 물린 뒤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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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영화가 기존의 '레지던트 이블'과 조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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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 요보비치가 연기했던 앨리스처럼 처음부터 강력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브라이언은 강하지도 않고 싸움을 잘하지도 않는다. 총도 제대로 쏘지 못한다.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면 맞서 싸워서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도망가고,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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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게임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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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괴물이 나오면 그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약점을 찾거나, 운이 따라주거나, 주변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겨우 살아남는다. 그래서 괴물을 죽였을 때의 통쾌함보다 ‘이번에도 살았네’ 하는 안도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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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래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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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레지던트 이블'의 주인공들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브라이언은 그냥 그곳에 떨어진 평범한 사람이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이 정상인 사람. 그런데 그 평범한 사람이 끝까지 백신을 들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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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순한 이야기가 이상하게 끝까지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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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공포영화였다. 밀라 요보비치가 없어도 '레지던트 이블'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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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하우스를 한번 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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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액션영화를 보고 있으면 묘한 흐름이 느껴진다. 기존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하나둘 전성기를 지나면서, 최근에는 리처처럼 선이 굵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액션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어쩌면 할리우드에서 마동석을 보고 배운 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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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드 하우스'의 제이크 질렌할은 조금 다르다. 몸이 크고 강한데 움직임은 굉장히 날렵하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 같으면서도 동작 하나하나가 빠르고 정확하다. 아무리 봐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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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가 제이크 질렌할의 운동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인터뷰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본인도 운동을 엄청 좋아하고 많이 하는데 제이크 질렌할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 단계를 아예 넘어선 사람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다시 보니 그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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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질렌할은 원래 액션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한 배우가 아니다. '페르시아 왕자'에서는 굉장히 벌크업한 몸으로 액션을 보여줬고, 이후에도 액션영화에서 몸을 쓰는 모습은 계속 인상적이다. '로드 하우스'에서는 아예 액션배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액션배우가 아니었던 배우가 액션배우보다 더 액션배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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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제이크 질렌할이 비슷한 역할만 해온 것도 아니다. '옥자'에서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박사 역을 맡았고, '라이프'에서는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인다. '나이트크롤러'에서는 인간의 광기를 보여주었다. 역할을 바꿀 때마다 사람이 달라 보이는 배우인데, 그 사람이 몸까지 만들어 액션을 하니 묘하게 더 강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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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하우스'가 1989년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동명 영화를 다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제이크 질렌할은 이 영화의 주연을 위해 엄청난 양의 훈련을 했고, 그 과정을 맨즈헬스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상을 찾아보면 왜 화면 속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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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코너 맥그리거다. 실제 격투기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와 제이크 질렌할이 한판 붙는 장면은 액션 자체가 꽤 통쾌하다. 배우와 실제 선수가 부딪히는 데서 오는 묘한 날것의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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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봐도 액션은 여전히 멋있다. 특히 제이크 질렌할이 그렇게 만들어진 몸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액션영화를 한두 편 더 찍어줬으면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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