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이는 걷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래도 센터에서 타라고 하는 전동차는 죽어도 타기 싫다. 전동차를 타면 편하다. 하지만 편해지는 만큼 두 다리의 힘은 빠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영이는 무용을 하고 싶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자신의 두 다리로 걷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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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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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다리가 꼬여 넘어지기도 한다. 창피하고 힘들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걷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벚꽃이 피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조깅을 한다. 소영이는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나도 저렇게 한 번 뛰어 보고 싶다. 그게 소영이의 소원이다. 겨울을 지나 봄을 보내고 어느 따뜻한 날, 소영이는 동네 공원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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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갈고닦은 무용을 혼자 펼친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 박수도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무용을 하는 동안만큼은 날 수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소영의 노력]은 장애를 바라보는 흔한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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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몰아가지도 않고, 소영을 안타까운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인데도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카메라의 시선 때문이다. 영화는 소영을 바라보는 카메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소영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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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기록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움직이지 않는 몸,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말, 점점 굳어가는 몸을 자기 손으로 찍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습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럼에도 소영은 카메라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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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 있다. 그래서 소영에게 무용은 단순히 춤을 추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가깝다. 소영 곁에는 희정 선생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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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영의 김소영도 대단하지만 옆에서 끝까지 소영을 잡아주는 희정 선생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면서 소영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희정 선생님이 더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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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이 포기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서 동작 하나하나를 반복하게 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으키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 자신의 역량을 알고 삼십 대에 현역 무용수의 길에서 내려와 무용을 가르치는 사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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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선생님 역시 자신의 불안과 우울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영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자신도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희정 선생님은 소영에게 동작을 가르친다. 잘되지 않는 동작을 다시 하고, 잊어버리면 다시 기억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또 처음부터 한다. 결국 무용도 삶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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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넘어졌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하고 또 하는 것. 그 과정에서 희정 선생님이 소영에게 말한다.“소영아? 잘한다 못한다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선생님이 쳐 줄 거야. 알겠지? 당황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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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와 반복된 고된 노력에 소영은 희정 선생님 앞에서 결국 눈물을 터트린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연습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한다. 공연 당일까지 몸을 붙잡고 또 연습한다. 그렇게 어렵게 공연을 끝낸다. 공연이 끝났다고 소영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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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돌아간 뒤에도 소영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카메라를 들고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이유로 마지막에 찬란한 음악을 깔고 끝내지 않는다.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는 식으로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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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된다. 걷는 일도 계속해야 하고, 몸과 싸우는 일도 계속해야 한다. 무용 역시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소영에게 노력은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갱년기라면 처음부터 눈물을 줄줄 흘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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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소영이 공원에서 혼자 춤추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춤을 추던 소영. 그 순간만큼은 몸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달릴 수 없지만 춤출 수 있고, 마음대로 말할 수 없지만 몸으로 말할 수 있다. 몸이 점점 굳어가더라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까지 굳어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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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영의 노력]은 장애를 극복하는 영화가 아니라,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이 자신의 몸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영화에 가깝다. 소영은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도 걷고, 다시 연습하고, 춤을 춘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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