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 요보비치가 나오지 않는데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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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익숙한 공포영화들이 떠오른다. 괴물들이 서로의 몸을 집어삼키며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모습은 '더 씽'을 생각나게 하고, 라쿤시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도로와 터널, 건물들은 '사일런트 힐'의 미로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단순히 어디선가 본 것을 가져다 붙인 느낌은 아니다. '레지던트 이블' 특유의 괴물과 고어가 다른 영화의 공포와 섞이면서 나름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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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의료용품을 배달하러 갔던 브라이언은 어쩌다 라쿤시티까지 긴급하게 백신을 배달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사람이 살아갈 만한 도시가 아니다. 오염으로 변이된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브라이언은 그 안을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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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다. 백신을 가지고 들어가서 배달하고 살아남으면 된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문제다. 총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이라 총을 쏘는 모습부터 어설프고, 괴물을 만날 때마다 튀어나오는 욕과 추임새도 심각한 상황과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 사람이 영웅인지 그냥 운 좋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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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오히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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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크레거가 감독을 맡은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웨폰'과 '바바리안'에서 보여줬던 불편하면서도 기묘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감각이 이번에도 느껴진다. 공포를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무서운 장면 한가운데에 이상한 웃음을 끼워 넣는다. 그래서 끔찍한 장면을 보다가도 피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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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은 이전의 '레지던트 이블'보다 한층 더 과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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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가 몸에서 뻗어나오고, 하나의 괴물이 다른 괴물을 흡수하면서 더 크고 끔찍한 형태로 변한다. 괴물의 몸이 더 이상 인간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계속 변해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더 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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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괴물이 기억에 남는다. 얼굴이 갈라지면서 완전히 다른 괴물로 변하는데, 이상하게도 새하얗고 고른 치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저 치아를 굳이 저렇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뭘까 싶었다. 무서운 장면인데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다. 이런 순간이 이 영화에는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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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쿤시티에 들어간 뒤의 공간도 보는 재미다. 도로에서 터널로, 터널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디로 가든 정상적인 길이 아니다. 공간 자체가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꼬여 있다. '사일런트 힐'에서 죄의식과 공포가 도시를 미로로 만들어버린 것처럼, 이 영화의 라쿤시티도 사람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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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브렐라 역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거대한 조직처럼 묘사됐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앞으로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후속작에서 다시 엄브렐라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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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은 그 와중에도 백신을 정말 자기 목숨처럼 끌어안고 다닌다. 어떻게든 배달을 끝내려고 한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배달기사는 정말 투철하다. 그런데 치아가 하옇고 고른 어린 괴물에게 팔을 물린 뒤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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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영화가 기존의 '레지던트 이블'과 조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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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 요보비치가 연기했던 앨리스처럼 처음부터 강력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브라이언은 강하지도 않고 싸움을 잘하지도 않는다. 총도 제대로 쏘지 못한다.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면 맞서 싸워서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도망가고,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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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게임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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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괴물이 나오면 그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약점을 찾거나, 운이 따라주거나, 주변의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겨우 살아남는다. 그래서 괴물을 죽였을 때의 통쾌함보다 ‘이번에도 살았네’ 하는 안도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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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래서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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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레지던트 이블'의 주인공들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다면 브라이언은 그냥 그곳에 떨어진 평범한 사람이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이 정상인 사람. 그런데 그 평범한 사람이 끝까지 백신을 들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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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순한 이야기가 이상하게 끝까지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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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공포영화였다. 밀라 요보비치가 없어도 '레지던트 이블'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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