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포근해졌다고 해도 밤에는 날이 차다.

그런 날 밖에 있으면 추울 수밖에 없다.

몸은 시리고 마음도 시릴 때,

집으로 들어와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따뜻한 음식이 떡국이다.

소고기를 넣은 육수에 떡국떡을 넣고 끓이면 된다.

아마도 라면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

김을 올리고, 파를 썰어 넣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 된다.



또 떡국

떡국떡이 많아서 또 떡국을 해 먹었다.

이번에는 고명을 잔뜩 올렸다.

잘 보이진 않지만 잘 보면 만두도 이번엔 들어갔다.

국물이 빡빡하다.

떡국은 국물을 빡빡하게 해서 만두와 소고기와 고명을 잔뜩 입에 넣어 먹는 맛이 좋다.

겨울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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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 때 경험한 상실은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상실의 공백은 같은 크기로도 채우지 못하고 같은 양으로도 매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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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진적 괜찮은 직장도 취업이 예정되어 있다,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그녀와 친구 덕에 혼자서 살 집도 구했다.

​

친구와 함께 직장을 다니면서 장점을 살려 지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업을 펼쳐보자. 꿈과 미래가 희망의 빛으로 보였다.

​

하지만 한 번 삐끗한 일상은 쉽게 회복이 되지 않고 점점 직장에서 파김치가 되어 집을 오가는 반복만 이어진다. 오직 그녀만이 나의 이 절실함을 받아줄 사람이지만 그녀와는 끝이 예정되어 있다.

​

그걸 알면서도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이 단조롭고 단순해 보이는 일상이 내 생각대로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

얼마 전까지는 삶에 대해서 해답이란 게 보였는데 어제부터 희미해지더니 오늘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답답함은 곧이어 불안으로 번지고 불안은 점점 등에 들러붙어 무게를 늘려간다.

​

상실로 인해 뚫려버린 마음의 구멍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메워지지 않아서 언제나 춥기만 하다.

​

누군가 그랬지, 하루 종일 되는 게 없고 밥도 먹지 못하고 퇴근 후 도시락을 사들고 집으로 왔는데 젓가락과 숟가락을 받아오지 않아서 도시락을 놓고 그냥 울었다고.

​

그럼에도 야속한 시간은 내일을 오늘로 만들고 일어나서 나가게 만든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이 고된 시간이 기억 속에서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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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물들었다. 이제 이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법적규제 때문이다. 캐럴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12월 내내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겨울에는 겨울만의 느낌이 있다. 겨울에는 또 겨울만의 음식도 있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들 말이다. 겨울은 추우니까 따뜻한 음식이 좋다. 국물이 있는 음식들 말이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떡국이 거기에 속한다. 떡국이 하도 몸에 별로라고 하니 예전만큼 손은 가지 않지만, 어릴 땐 겨울에 집에서 자주 어머니가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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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난방이 덜 되었음이 확실한데 사진을 보면 방 안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 보인다.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떡국은 참 맛있었다.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어머니와 다 같이 밥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먹었다. 그 모습이 아버지 눈에도 행복해 보여서 사진으로 남겨 놨으리라. 행복이란 그런 거니까. 찰나로 지나가며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기쁨이라는 걸 아버지는 그때 알았다. 창문으로 해가 들어오고 밥상 위로 떡국에서 올라가는 연기가 엑토플라즘처럼 보였다. 동생과 나는 겨울 내복을 입은 채로 밥상 앞에 앉은 사진도 있고, 어떤 사진 속에는 따뜻한 겨울 털 옷을 입고 있다. 행복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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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역시 추억의 음시이라 그런지 그 맛이 항상 기억 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예전에는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새벽에 김밥천국에서 떡국을 한 그릇 먹고 집으로 갔다. 집에서 해 먹는 것만큼 고기가 들어있진 않지만 술에 취해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으면 아주 맛있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김밥천국도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있었다. 내가 왕왕 갔던 김밥천국은 시내에 있었는데 작은 공간이었다. 테이블에 네 개 정도? 그 정도 있었고, 한 편에 쌀가마니도 쌓여 있었다. 작은 티브이가 있었고 사장은 오토바이 배달도 직접 했다.

​

아주 젊은 남자로 사장님으로 불렸지만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가 실주인 같았다. 하지만 대화를 들어보면 아주머니는 그저 조리를 하는 직원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주 젊은 남자가 사장이라고 생각했다. 김밥천국에는 술을 마시고 새벽에 가서 먹었다. 떡국보다는 떡라면을 주로 먹었다. 항상 늦은 새벽이었다. 김밥천국에서 술이 덜 깬 채 떡라면을 먹고 있으면 배달을 갔던 사장이 돌아와 [맛있으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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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양이 여기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젊은데 타지방으로 와서 김밥천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를 보며 어정쩡한 눈인사를 했다. 나는 인사를 건네면서도 나의 얼굴이 얼마나 엉망인지 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밥천국의 떡라면은 술이 취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는 걸 안다.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다. 겨울에는 종종 그렇게 술을 마시고 김밥천국에서 떡라면을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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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 자주 가던 시기였다. 노래방 화면에는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악당과 맞서 싸우기 위해 스포츠카에서 로봇으로 변신을 하는데 너무 멋진 것이다. 그리고 우주선으로 변신한다. 그 장면이 노래방 화면에 계속 나왔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 영상에 빠져 있었다. 노래방이 미용실만큼 많았다. 노래방은 전부 장사가 잘 되던 시기였다. 나 같은 사람이 노래방에 자주 갈 정도였으니까. 친구들 중에서 노래방에 가면 항상 부르는 노래만 부는 친구가 있었다. 임재범의 고해 같은, 듣기 힘든 노래. 게다가 술에 취했으니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 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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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은 2차로 항상 들리는 곳이었다. 자주 가는 노래방이 있었고 주인과 친해지면 시간을 연장해 주었다. 이상하지만 연장해 주는 시간은 늘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대부분 1절만 불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만큼 노래를 부르는 것에 목매는 시기였다. 시내는 밤이 되고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 백화점 앞에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육개장, 선짓국을 팔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포장마차에 붙어 서서 선짓국을 먹었다. 후루룩 하며 맛있게 먹었다. 겨울에다가 술에 취하면 선짓국은 왜 두 배로 맛있어지는 것일까. 게다가 포장마차의 선짓국은 선짓국 전문점만큼 양도 많지 않았지만 먹고 나면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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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가까이 되면 취객들이 난봉꾼으로 변하기도 했다. 술에 취한 채 서로 싸움을 하면 살벌했다. 도파민 때문인지 자신이 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의경들이 6인 1조가 되어 밤새도록 순찰을 했다. 술에 취하면 의경이고 뭐고 일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이 말려줄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상대방에게 더욱 험하게 달려든다. 시내에는 전화국이 있었다. 전화국 광장도 만남의 장소다. 그곳도 새벽에는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백화점 앞의 포장마차와 다르게 전화국 앞의 포장마차는 테이블이 있고 국수와 각종 안주, 소주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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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시절 전화국 맞은편 건물 2층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여름에는 거기서 먹고 자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재미있었다. 당구를 일단 마음껏 칠 수 있으니 좋았다. 밤새도록 당구 연습을 했다. 포장마차는 겨울에는 난방이 되었지만 여름에 냉방은 안 된다. 그럼에도 당구장에 여름에 일을 마치고 내려가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분명 선풍기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덥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 되면 시내가 전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물들었다. 어디든지 크리스마스 정식이 보였고 캐럴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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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전기문제나, 캐럴 저작권 같은 규제 때문에 사라졌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시즌 단 며칠만이라도 장식이 이곳저곳에 생겨났으면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지금도 12월이 훌쩍 지나가고 있지만 거리에 캐럴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겨울에는 카페에 가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카페에서도 일 년이나 아르바이트를 했다. 겨울의 카페가 겨울의 느낌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이었다. 시내는 카페로 가득한 장소 같아서 서로 경쟁이 심했다. 전투적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고 트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도 있었는데 시내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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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카페치고 실내가 넓었다. 주방이 두 군데가 있었다. 술이나 음식은 판매하지 않았는데 주방이 두 군데라니. 그 카페는 들어가면 홀이 나오고 그 안으로 길쭉하게 이어져 들어가면 또 다른 홀이 있다. 테이블이나 벽면이 전부 질 좋은 나무로 장식이 되었다. 아마 불이 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할 것 같지만 그 카페는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인기가 좋았다. 길쭉한 북도 같은 곳에도 테이블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있는 홀만큼 큰 홀이 있다. 그리고 한 구석에는 그랜드 피아노도 있어서 연주를 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피아노 연주까지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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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카페인데 꽤 질 좋은 문화를 누릴 수 있었다. 벽면에 가득 걸려있는 미술품은 잘 모르지만 유명 화가의 그림을 것이다. 물론 진짜는 아니겠지만, 그 그림들을 보는 재미도 좋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허리를 좀 구부리고 들어가는 자리였다. 중 2층 같은 자리인데 천장이 좀 낮아서 허리를 구부려야 했다. 하지만 일단 앉으면 너무나 편안했다. 흐르는 음악, 고요한 실내, 테이블을 챙기는 직원까지 모든 것이 좋은 카페였다. 그 카페도 겨울이면 장식이 들어섰는데, 고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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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카페는 대부분 머라이어 캐리 캐럴이 나왔는데 그 카페에는 빙 크로스비 화이트 앨범이 흘렀다. 카페는 요즘도 가끔 꿈에 나타난다. 물론 나타날 때마다 조금씩 형태가 달라졌지만 그만큼 그 카페에 대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일 때문이라도 남자와 전혀 카페에 가지 않지만, 친구들끼리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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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하니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국 가수들은 캐럴 앨범을 발표했다. 좋은 겨울 노래 하나를 내놓으면 겨울만 되면 그 노래가 효자 노릇을 한다. 우리나라에는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이 그렇다. 시내에 나가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터보의 캐럴, 이수만 회사의 캐럴 등 흘러넘쳤다. 지금은 나처럼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라디오에서 캐럴이 나오는 정도다. 그래도 라디오가 사리지 않고 남아서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캐럴을 간간이 들려준다. 유튜브로 찾아서 틀어 놓으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 캐럴을 들어도 그렇게 좋다는 느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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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계엄이 터졌던 작년보다 더 크리스마스 기분이 덜하다. 이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그냥 지나가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오랫동안 크리스마스가 지녀온 그 분위기와 모습이 떠올라서 아쉽기도 하다. 재작년까지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었지만 작년에는 만들지 못했고 올해도 전혀 만든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마저 점점 따분하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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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브리짓이 아이언 맨에서 토니 스타크를 박살 내려는 늙은 오베디아로 나왔지만(사실 그때에도 너무 멋있었다. 귀넷 펠트로는 펩퍼로 나오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존경하는 배우 제프 브리짓 때문이었다), 사랑의 행로에서 자존심 하나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잭으로 나온 제프 브리짓은 정말 멋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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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모습으로 삼류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시종일관 피우는 담배마저도 의미가 부여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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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콜걸 출신의 가수로 합류한 미셀 파이퍼는 퇴폐미를 풍기며 베이커 형제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수지가 풍기는 고혹적이고 순수한 미는 퇴폐미다. 뿌연 연기로 가득한 밤거리를 거니는 듯한 재즈가 영화 내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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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나오는 재즈가 쳇 베이커의 영화 에단 호크의 [본 투 비 블루]에 흐르는 음악보다 좋다. 베이커 형제, 형인 프랭크와 동생 잭은 얼굴도 몸도 성격도 전혀 닮지 않았다. 베이커 형제의 재즈는 고급이며 실력이 상당하지만 사람들에게 외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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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는데 정통을 고집하는 잭이다. 점점 부르는 클럽은 줄어들고 자존심을 꺾고 여자 가수를 들이기로 한다. 거기에 콜걸 출신의 수지가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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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존심 하나만 가지고 매사에 낙천적이며 어떤 여자와도 잠을 자는 잭과 가정이 있고 돌 볼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프랭크는 현실과 타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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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순이 결국 두 사람의 균열을 가져온다. 프랭크는 잭에게 수지는 한 팀이라 제발 건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남녀 관계는 누군가 가위로 자를 수 없는 것. 잭의 따뜻함을 원하는 수지에게 얼음보다 차가움으로 상처를 주는 잭.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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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백미가 몇 장면 있다. 수지가 오디션 장소에 늦게 나타났지만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세 명이 한 팀이 되었을 때 빨간 드레스를 입은 수지가 피아노 위에서 농염한 퇴폐미를 풍기며 잭과 프랭크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백미 까지는 아니지만 제니퍼 틸리의 아주 초년 시절을 모습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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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을 가진 재즈와 자존심 그리고 클럽이 넘치는 도시는 낭만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을 벌리면 겨우겨우 끈을 붙잡고 있다. 하루 벌지 않으면 이틀을 굶고, 이틀을 벌지 않으면 나흘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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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손가락에 힘이 풀려 끈을 놓치는 순간 이 낭만은 지옥으로 변해버린다. 이 영화를 보면 꿈의 제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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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어쩌다 행복하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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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게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잭과 프랭크, 수지에게 필요한 한 행복이 아니라 덜 불행하게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이다. 영화 속 베이커 형제는 실제로도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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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하면 당연하게도 리버 피닉스가 떠오르고 기면증, 한국제목, 엉터리 번역, 다 잘라먹은 한국버전이 떠오른다. 이 저주받은 걸작은 미국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먼저 개봉을 했고 뉴욕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나서 미국 전역에 개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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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개봉을 했을 때에는 멀쩡한 제목을 놔두고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가 되었으며,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잘라서 시간을 압축시켜 개봉을 해서 뭐야? 이게 무슨 내용이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거기에 번역을 개똥같이 해서 영화 마니아들에게 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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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가 기면증으로 잠이 들었을 때 스코트는 길바닥에서도 멀쩡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마이크의 다리를 꼬아준다. 축 쳐진 몸으로 잠든 게 아니라 잠시 잠이 든 것처럼 보이게 만드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마이크가 기면증으로 잠이 들면 스코티가 유일하게 도와주는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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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이크, 포틀랜드 시장인 아버지 때문에 가출을 한 스코트, 이들의 방황은 우정과 동성애를 분간할 수 없게 되어서 깊고 깊은 감정의 물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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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방황은 너무 아픈데 고통스럽지 않다. 이제 상처가 아물어 마치 그대로 피부의 한 부분이 된 것만 같아서 아프지만 더 이상 통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방황을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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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피닉스는 23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만약 리버 피닉스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배우가 되었을까? 그러면 스코티 역의 키아누 리브스가 아직 연기를 하고 있기에 겹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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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배우가 되어 있을 거야.

왜냐고? 리버 피닉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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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리버 피닉스. 오래전 김혜리 영화 기자도 리버 피닉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야 미안해]에서 한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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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일상에서 방황을 끝없이 하며 추락의 길에 섰을 때 나를 잡아준 운명이 있다면, 설령 동성이라도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이크, 하지만 사랑보다는 호감이었던 스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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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끝까지 19금 대화와 대사, 그리고 묘사 때문에 오래전 한국 영화판은 아이다호를 자르고 또 자르고 재단을 하고 재단을 해서 무슨 영화인지 도통 모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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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면 마이크와 스코티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둘이 폴짝폴짝 뛰어가는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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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다면 젖은 듯한 눈매와 늘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 그리고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리버 피닉스가 길바닥에 쓰러져 잠든 장면을 돌려서 보자. 그 당시의 리버 피닉스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장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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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걸작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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