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다호 하면 당연하게도 리버 피닉스가 떠오르고 기면증, 한국제목, 엉터리 번역, 다 잘라먹은 한국버전이 떠오른다. 이 저주받은 걸작은 미국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먼저 개봉을 했고 뉴욕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나서 미국 전역에 개봉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봉을 했을 때에는 멀쩡한 제목을 놔두고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가 되었으며,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잘라서 시간을 압축시켜 개봉을 해서 뭐야? 이게 무슨 내용이야?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거기에 번역을 개똥같이 해서 영화 마니아들에게 욕을 들었다.
마이크가 기면증으로 잠이 들었을 때 스코트는 길바닥에서도 멀쩡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마이크의 다리를 꼬아준다. 축 쳐진 몸으로 잠든 게 아니라 잠시 잠이 든 것처럼 보이게 만드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마이크가 기면증으로 잠이 들면 스코티가 유일하게 도와주는 친구가 된다.
사창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마이크, 포틀랜드 시장인 아버지 때문에 가출을 한 스코트, 이들의 방황은 우정과 동성애를 분간할 수 없게 되어서 깊고 깊은 감정의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들의 방황은 너무 아픈데 고통스럽지 않다. 이제 상처가 아물어 마치 그대로 피부의 한 부분이 된 것만 같아서 아프지만 더 이상 통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방황을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리버 피닉스는 23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만약 리버 피닉스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배우가 되었을까? 그러면 스코티 역의 키아누 리브스가 아직 연기를 하고 있기에 겹치게 된다.
멋진 배우가 되어 있을 거야.
왜냐고? 리버 피닉스니까.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리버 피닉스. 오래전 김혜리 영화 기자도 리버 피닉스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야 미안해]에서 한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했다.
버려진 일상에서 방황을 끝없이 하며 추락의 길에 섰을 때 나를 잡아준 운명이 있다면, 설령 동성이라도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이크, 하지만 사랑보다는 호감이었던 스코티.
초반부터 끝까지 19금 대화와 대사, 그리고 묘사 때문에 오래전 한국 영화판은 아이다호를 자르고 또 자르고 재단을 하고 재단을 해서 무슨 영화인지 도통 모르게 만들었다.
슬프다면 마이크와 스코티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둘이 폴짝폴짝 뛰어가는 장면을 보자.
우울하다면 젖은 듯한 눈매와 늘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 그리고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리버 피닉스가 길바닥에 쓰러져 잠든 장면을 돌려서 보자. 그 당시의 리버 피닉스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 장면이니까.
저주받은 걸작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