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최소화해서 소설 쓰며 살아가는 이모와 인간관계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엄마와 아빠를 사고로 잃은 조카의 동거 이야기


인간관계라는 건 미묘하고 어려우며 너무나 복잡하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우화의 강’으로 토해낸 마종기 시인의 시에서 그 강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실제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골이 있고 그 골에는 불순물이 잔뜩 껴 있고, 타인과의 이해관계가 끈적거리는 타액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영화의 이모와 조카의 사이도 그렇다. 


서로 친밀해질 수 없는 그 사이를 조금씩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간극을 좁혀 나가는 이야기.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아주 모호하다. 운무가 가득한 산길을 거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저 앞에 무엇이 있는지 가봐야 알 수 있다. 짐작으로는 알 수가 없다. 


대부분 자기 방식으로 자기 방식에 의한 표현법으로 상대방을 대하지만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는다. 조카는 친구에게도 제일 먼저이고 싶고, 이모에게도 제일 먼저이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흐른다. 


이모는 죽은 자신의 언니와 너무나 안 좋게 자매 관계를 끊어버려서 조카라도 마음을 쉽게 열 수 없다. 가족은 언제나 힘인 동시에 짐이다. 마음을 여는 존재이지만 마음을 다치게 하는 존재가 가족이다. 


조카는 고민이 많다. 둘도 없는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어 일 순위가 자신이 아닌 다른 애가 되고, 음악을 하고 싶어서 작사를 해서 이모에게 보여주면 바로 응답이 오지 않고 생각을 하는 모습에 고민이 많다. 왜 바로 칭찬을 하지 않지?


외향적인 성격이란 밝은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밖을 더 생각하는 성격이고 내향적인 성격이란 자신을 더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에 이모와 조카는 다가가는 영화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말한다. 그 경계가 질기기도 하고 연하기도 하다. 홧김에 시작한 불편한 동거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금씩 타인을 통해 자신을 더 돌아보는 이야기. 자신을 보면 비로소 상대방이 보이는 이야기. 


영화는 만화 원작으로 이렇다 할 사건이나 이벤트가 없다. 그럼에도 거의 두 시간 삼십분이 넘는 시간이 지속되어서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흐뭇하게 봤다. 이젠 연예인이 아니라 진정 배우가 된 각키와 조카 역의 이코이의 세대차이나는 동거 이야기 ‘위국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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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렌 코번 원작의 시리즈다. 늘 그렇듯이 보는 내내 빠져들어 아주 흥미롭다. 이 작가의 스타일을 조금 알게 되었다. 패턴이랄까 등장인물들의 비밀스러운 과거와 진실을 파헤치고픈 주인공들 그리고 자식들이 나오며 부모와 마칠을 겪는 사춘기들이라 비밀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고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구고 뭐고 다 필요 없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위선을 보인다. 대체로 시리즈 대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상상력이 대단해서 그런지 시리즈를 잘 만들어서 어떤 시리즈를 보더라도 훅 빠져든다.

이번 시리즈 역시 폴란드 시리즌데 봤던 배우들이 왕창 나오기에 같은 배우를 돌려 가면서 이 원작자의 시리즈에 나오나 싶었는데 지난번 ‘숲’ 시리즈의 뒷이야기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때 주인공의 어린 딸 카야가 고등학생이 되고 친구가 죽으면서 ‘숲’ 시리즈에서 주인공이었던 검사 아빠는 여기서는 뒤로 물러난 조력자 같은 조연으로 등장하고

학생인 딸 카아야 주인공 한 사람으로 중심에서 사건에 접근한다.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라 자식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나라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 드라마와 비슷하다. 자식들의 실수, 잘못, 비밀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다.

내가 라디오를 매일 듣는데 라디오에서는 초등생 아들이 엄마 생일 맞아 처음으로 아침에 계란 프라이를 해줬다며 행복한 사연이 소개되는 반면 스레드에서는 아들을 처음 키우는데 도대체 아들은 왜 그러냐 하도 씻지 않아서 욕실에서 몸 샤워하라고 했더니 머리 팔 다리 빼고 몸만 씻고 나오질 않나, 머리 감으라고 했더니 머리 중간에 물만 묻히고 나와서 마찰이 늘 일어난다는 이야기

그 밑에 댓글에 아들 셋 키우는 맘인데 그 시기를 지나면 반 친구들 사춘기 냄새난다며 자신에게도 날 거라며 욕실에서 한 시간 넘게 있는다며 사춘기 아들과의 마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런 문제는 당사자는 힘들고 짜증 나고 숨막히지만 자식이 있는 가정이라면 늘 거쳐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을 너무 간섭하고 감시한다고 느껴 탈선을 하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특히 요즘처럼 청소년 도박에 빠지기 쉽고, 약물에 노출이 많은 지금은.

우리 집 애를 잘 아는데 우리 집 애는 그러지 않는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꼭 한다. 우리 애의 잘못입니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다. 모두가 남의 탓이고 내 자식은 깨끗하다고 한다.

아무튼 이 시리즈 역시 6부작으로 깔끔하게 끝나고 시작은 죽음으로 출발하여 많은 등장인물의 복잡한 사건이 나오며 하나씩 떡밥의 회수가 된다. 내가 할렌 코번의 시리즈를 뒤죽박죽으로 보고 있는데 만약 이 시리즈를 먼저 보고 숲 시리즈를 봤다면 좀 망했겠지.

일부 어른들의 문제라면 유아기든 사춘기든 자신도 겪었다며 현재의 사춘기 애들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위국일기’에서 다 너를 위해서 모두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렸다는 선생님 식이다. 자식은 부모를 속이려 들고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한다.

이 시리즈는 미스터리지만 부모 자식의 심리가 잘 표현되었다. 그게 미스터리 스릴러라서 더 재미있다. 마지막에 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5분 정도 남겨두고 거기서 반전에 반전이 나온다. 이 시리즈에도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전부 의미가 있는 캐릭터인데 초등생 어린 딸까지 마지막에 한 건 해 버리는 ‘홀드 타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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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에는 겨울에 탈의실 중간에 평상이 있고 앞에 거기에 난로가 있었다. 난로 위에는 큰 냄비 안에서 오뎅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하나에 얼마였는지 기억은 없지만 목욕을 하고 나와서 머리에 물기가 덜 마른 채로 어른이고 아이고 발가벗고 서서 오뎅을 먹는 모습이 어쩐지 의식을 치르는 모습 같았다. 기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목욕을 나와서 오뎅을 하나씩 먹었다. 


장사가 잘 되었다. 너도나도 전부 오뎅을 먹었으니까. 당연하게도 여탕의 탈의실 모습은 모르겠지만 남탕의 모습은 꽤나 재미있다. 주로 아버지들의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라이기로 머리는 말리지 않고 사타구니만 말리는 아저씨, 수면실(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에서 하나만 입고 잠을 자는데 그 하나가 양말인 아저씨, 등을 미는 때 미리 기계에 등만 얼마나 세게 밀었던지 등말 벌겋게 된 아저씨 등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온도차이로 생긴 수증기가 가득한 목욕탕에서 있는 힘을 다 해 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으면 아버지는 시원하지도 않으면서 아 시원하다고 하면서, 팔다리도 가는 나에게 넌지시 용기와 칭찬을 주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대 놓고 속에 있는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게 아버지로서 최대한 자신의 의사표현이었다. 목욕탕을 나오면 맞이하는 겨울의 공기는 아주 차갑고 몹시 상쾌했다. 새벽의 이슬 같은 느낌일까. 투게더를 양손으로 들고 집으로 오면 그때서야 저녁을 먹었다. 대략 저녁 8시 정도. 우리는 밥상에 둘러앉아서 겨울 저녁을 먹는데 어머니가 오뎅탕을 끓여 왔다. 집에서 먹는 오뎅탕은 밖에서 먹는 오뎅과는 맛이 다르다. 좀 더 정돈된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밖에서 먹는 오뎅보다는 맛이 떨어졌다. 


하지만 밖에서는 오뎅탕에 밥을 말아먹지 못하지만 집에서는 가능하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둔 투게더를 꺼내서 먹었다. 하드는 여름에 맛있지만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맛있었다. 겨울의 토요일 저녁은 행복했다. 밤이 되면 전부 이불을 덮고 티브이를 보았다. 아마 토요명화 같은 프로를 봤을 것이다. 겨울이니까 크리스마스 대소동을 봤다고 치자. 코미디 영환데 적당히 야한 장면이 가득한 미국미국 한 영화다. 아주 어린 줄리엣 루이스가 나온다. 줄리엣 루이스는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그렇고, 그 옛날 로버트 드니로가 무시무시하게 나온 케이프 피어에서도 그렇고, 당차고 거센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런 외국 배우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게 좋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코로나가 도래하기 전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서 포장마차에 서서 오뎅을 하나씩 사 먹었다. 특히 겨울에 먹는 오뎅은 유독 맛있었다. 이유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덧입혀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통 8킬로미터 정도를 조깅을 하니까 겨울에 그 정도 달리면 후끈하지만 금세 몸은 식어버리고 만다. 그때 버티고 서서 먹는 오뎅은 꿀맛이었다. 오뎅국무 역시 맛있었다. 오뎅국물은 그저 무로 시원하게 우려낸 국물이 좋다. 그 안에 게껍질이나 새우를 넣어서 우려낸 국물은 나는 별로다. 매운 국물도 별로다. 그저 무로 끓여낸 오뎅국물이 좋다. 그렇게 겨울에도 오뎅을 하나씩 먹으면 사라져 가는 어린 시절의 겨울철 오뎅 맛을 느끼려고 했다. 오뎅과 행복을 결부시켰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가 되면서 포장마차가 문을 닫았다. 조깅을 하는 활동 반경 내에 있던 오뎅 포장마차가 전부 사라졌다. 코로나 시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뭔가 바이러스가 옮겨질 것 같은 분위기는 아예 없애 버렸다.


바이러스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바이러스가 전염이 잘 되는 곳이 목욕탕이었다. 어릴 때는 당연하지만 그걸 몰랐다. 감기가 걸리면 어른들은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갔다가 오면 낫는다고 했지만 목욕탕을 나오면 기침이 더 났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지금은 감기가 걸리면 사람들이 피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학교도 가지 않고 신경을 쓴다. 그러다 보면 날카로워지지만 어릴 때는 기침을 하면 좀 포근한 느낌이었다. 부모님은 따뜻하게 보리차를 끓여 주었고 담요를 덮어 주었다. 그래도 기침이 심하면 약을 하나 먹고 잠을 푹 자고 나면 기침이 싸그라 들었다.


요즘은 손을 자주 씻어서 그런지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오뎅도 먹지 않는다. 인공지능으로 세상은 재미있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적어도 나는 재미가 없다. 몸에서 재미라고 하는 세포들이 점점 떨어져 나간다. 일상을 공허하게 보내고 있다. 만약 바쁘게 보낸다고 해도 바쁜 일상이 공허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공허라는 공간이 있다면 나는 지금 그 어떤 상황이든 그 공간을 지나가야만 해서 중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뿐이다.


오뎅탕으로 따뜻하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두꺼운 이불속으로 쑥 들어가 토요명화를 본다. 머리만 빼꼼 드러내놓고 더빙된 토요명화를 보고 있으면 잠이 오소소 떨어진다. 잠들지 않으려고 아버지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재미없는 영화라도 아버지가 영화를 설명해 주면 마법처럼 재미있었다. 더불어 잠은 더 쏟아졌다. 창밖으로 휘이잉 하는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려고 화가 났지만 우리는 절대 창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잠이 쏟아진다. 잠들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버티지만 결국 천사의 망치를 맞고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어 버린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보던 겨울의 토요명화의 결말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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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탕과 오뎅국


차이가 뭘까.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글자에만 있는 것일까. 사실 오뎅탕과 오뎅국의 차이는 크게 없다. 술집에서 안주로 먹으면 오뎅탕이고 집에서 밥으로 먹으면 오뎅국 정도가 아닐까 싶다. 오뎅이 땡기는 계절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오뎅을 찾게 되고 오뎅을 먹으면 어린 시절의 겨울이 떠오른다. 고개를 들어 진열장 위의 아버지 사진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에 살던 마당이 있던 집이 생각난다. 겨울에는 추웠지만 따뜻한 기억. 물론 난방이 지금처럼 잘 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겨울을 보낸 추억만 가득하다.


겨울방학이 오기 전까지 국민학교 점심시간에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그 시간도 행복했다. 겨울방학은 보통 12월 24일에 했는데, 12월이 되면 교실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주렁주렁 지금 보면 촌스럽겠지만 아이들이 교실의 여기저기에 장식을 달고 교실 가장자리에 트리를 만들었다. 트리는 학교에서 교실마다 제공해 주었다. 6학년 내내 그랬던 건 아니었다. 1학년에 입학을 했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다른 학교에 다녔다. 전학은 아니었고 이동이었다. 


대체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배정을 해주었다. 그러나 2학년 때의 국민학교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9살 인생은 그렇게 따분함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을 때 장식을 했는데 그때 트리를 장식하는 담당이 나였는데 장식을 하다가 산타할아버지모형의 집개를 슬쩍 들고 집으로 와 버렸다. 조마조마 떨리면서도 짜릿했다.


3학년부터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3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겨울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한 동네에서 죽 자랐고, 한 동네의 여러 집으로 이사를 다녔다. 3학년에 이사를 간 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주인집이었다. 엄마는 주인집과 친하게 지냈다. 주인집 할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했다. 여고도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한 버는 동생과 함께 여고에 놀러 갔을 때 매점 안에 들어가서 여고생 누나들에게 과자를 팔았다. 재미있었다. 


그 여고가 있던 자리를 매일 조깅을 하면서 돌아온다. 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 자리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여고는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학교처럼 소나무가 많고 정원이 예쁘게 가꿔진 학교였다. 담벼락이 있고 담벼락 바깥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담벼락은 겨울에는 스산했는데 여름에는 무섭게 느껴졌다. 국민학생 때라 단순하게 공포영화 포스터가 여름에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담벼락 맞은편에 붕어빵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포장마차는 핫도그도 팔고, 붕어빵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오뎅도 팔았다. 이 정도면 이 작은 동네에서 중소기업이었다. 핫도그 하나에 오뎅국물이 최고의 조합이었다. 핫도그에는 설탕과 케첩을 듬뿍 뿌리는 게 맛있다. 하지만 주인아줌마는 설탕은 잔뜩 묻혔는데 케첩은 듬뿍 뿌려주지는 않았다. 겨울의 칼바람이 차단된 포장마차 안에서 오뎅을 먹는 맛은 정말 좋았다.


그 길의 끝에는 동네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 하면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는 목욕탕에 혼자 못 가니까 늘 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을 갔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토요일 저녁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아무리 기억을 떠 올려도 겨울의 목욕탕 기억 밖에 없다. 아버지와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목욕탕을 갔을 텐데 겨울에 목욕을 하고 밖에 나와서 찬 공기를 맞으며 입김을 후후 불었던 기억. 그리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그걸 동생과 함께 먹었다. 투게더를 먹기 위해 저녁을 대충대충 빨리 먹었다.


그 동네는 작년에 완벽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전까지는 조깅을 하면서 그 동네로 둘러 오면서 몇 년을 지켜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생활을 하다가 점차 떠나가고 철거 페인트가 칠해지고 전부 철거되더니 벌판이었다가 현재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동네에 딸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도 가끔씩 꿨지만 근래에는 전혀 꾸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동네에는 두 군데의 목욕탕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가던 목욕탕은 꿈에 나타나지 않지만 혼자서 가끔 가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꿈은 얼마 전까지 잠이 들면 꿈속에 나왔다. 


동네의 풍경도 꿈에 지도처럼 나타났다. 하지만 꿈이라 목욕을 하는데 옷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옷을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가거나, 아직 반도 씻지 않았는데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나가라고 하거나, 목욕탕에는 들어갔지만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꿈이 다 지나가버렸다. 꿈이라서 현실처럼 목욕탕에서 몸을 담그고 때를 미는 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꿈이란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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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 밖의 빛이 막 산란하는 게

휴일이의 노래 속 같네

광모의 사진도 떠오르고

우리의 사랑은 부서지기 쉽고

사랑이 깨지는 소리는 겁이나고

그래도 넌 내 꿈이야


검정치마 에브리띵 https://youtu.be/Aq_gsctWHtQ?si=jjhf09uQI0Lr3WLn


사진가 광모의 작품들




제목이 ‘별을 쫓는 아이들’라는 사진은 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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