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까 개늑시가 아름다워



'긍까'가 뭐냐면 ‘그러니까’다. '그러니까'의 줄임말이라고 할까. 이 '긍까'가 어디에서 많이 나오냐면 정치평론하는 평론가들의 입에서 들을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오전 7시가 되면 유튜브부터 공중파 라디오에서 평론을 하기 시작해서 하루 12시간 정도 평론을 하는 거 같다.


근데 대부분 시간은 촉박하고 할 말은 많으니 말과 말 사이의 ‘그러니까’를 대체로 ‘긍까’로 말을 한다. 거기에 집중해서 듣다 보면 심각한 평론 중이라도 큭 하며 웃음이 나온다. 신사에 반듯하고 조근조근한 말투의 김성완 평론가도 '긍까'로 말을 한다. 현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낼 때 '긍까'는 여지없이 발휘되고 만다.


성격이 급한 평론가 있잖아? 한 변호사 출신의 평론가는 '긍까'도 아니야, 그냥 ‘까’라고 한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말을 하다 보면 더 화가 나서 막 말이 빨라지고 소리도 높아지고. 그런 것처럼 평론가들도, 성격이 급한 평론가도 윤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화가 나서 인지 말이 빨라지고 톤이 높아지다가 '그러니까'를 '긍까'로 해야 하는데 그냥 '까'가 되더라고.


정치 평론가만 그런 게 아니다. 처음 들었던 게 영화 평론가였다. 걔는 '긍까'가 전매특허였다. 한 번은 한 번 나와서 영화 평론을 하는데 '긍까'를 몇 번이나 하는지 카운터를 해 본 적도 있었다. '긍까'를 빼면 거의 말을 못 할 정도로 많이 했다.  


사실 내 주위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서 ‘긍까’는 잘 들어보지는 못했다. '긍까'보다는 동의를 한다는 의미로 '그니까'는 많이 듣는다. 주위에서 물론 말을 평론가들처럼 많이 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긍까’를 내 주위에서는 듣지 못했다. 요즘은 이런 부분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주위에서 하는 말들을 자세하게 듣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너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구나] 같은 말을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좀 그렇고 해서 그, 그래,라고 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평론가들이 하는 말 중에 많이 하는 말이 ‘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좀 이야기를 오래 했다 싶을 때,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가고 싶을 때나 패널들의 신경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자’라고 운을 띄운 다음 말을 한다. 이 역시 평론가, 즉 사람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따라 ‘자’라는 말도 사람마다 다르다. 크고 굵게 끊어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주 짧게, 작은 소리로 ‘자’라고 빨리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자’라는 말은 평소에도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주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자‘라고 하는 것 같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20대에서는 들을 수 없고, 30대도 잘 들을 수 없고 40대가 넘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주위는 그렇다.


‘긍까’와 ‘자’는 개인적으로 평소에는 잘 들을 수 없다. 주로 정치평론가들이 이번 총선을 두고 나와서 각자 열을 내서 말하는 도중에 많이 들었다.


근데 말을 아주 많이 하지만 ‘긍까’와 ‘자’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평론가가 있는데 신인규 평론가다. 다른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말을 아주 많이 하는데 비슷한 톤을 유지하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을 한다. 열받는 기사에 평론을 한다고 해서 목소리 톤이 확 오른다거나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긍까’와 ‘자’가 없이도 평론을 잘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인규 평론가는 다른 평론가에 비해서 크게 인기는 또 없다. 


그나저나 사람이 성공에 도취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변하는 것일까. 지금 대통령은 2년 동안 그야말로 권력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 도취에서 깨어날까.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인간의 뇌에는 [보상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이 부분이 작동한다.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을 분출시키고, 그것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촉진해 보상 네트워크를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권력은 항우울제다. 또 도파민은 좌뇌 전두엽을 촉진해 권력을 쥔 사람을 좀 더 스마트하고, 집중력 있고, 전략적으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이 된다는 얘기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된다.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권력은 코카인, 섹스, 돈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이라는 공동 통화를 사용한다 = 2014년 7월 5일 자 조선일보 로버트슨 교수 인터뷰



도파민에 중독되면 정말 헤어 나올 수 없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대통령을 보면 그게 너무나 잘 나타난다. 그렇게 지나친 권력에 중독되고, 너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기 혼자 59분 동안 말을 하고, 늘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렇게 많이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실패에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잡아넣은 사람을 풀어 주고 또 그 사람을 한 자리에 꽂아 놓고. 부산 엑스포, 잼버리 같은 대형 국가적 이벤트가 실패하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남일 보듯이 할 뿐이다.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는다. 총선 후 각종 뉴스에 나오는 대통령의 기사를 보면 그 시야가 경주마처럼 아주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의 부인은 또 어떻고. 현재 페루 대통령은 롤렉스 시계를 차서 대통령 관저가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대통령 부인은.


오직 목표 달성이란 열매를 향해서만 돌진하게 되는 건 좀비와 같다. 좀비는 신념 하나만 있다. 다른 아무것도 없다. 인간을 먹어야 한다는 그 하나의 신념으로만 덤빈다. 그래서 삼일 밤낮 잠도 자지 않는다. 지치지도 않는다. 그저 신념으로만 움직일 뿐이다.


이제부터 또 평론가들의 입에서 ‘긍까’와 ‘자’를 들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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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뭐가 놀랐냐면 작정하고 사진을 담을 일이 없는 한 룰룰루 다니다가 피사체가 등장했을 때 바로 찰칵 찍을 수 있는 기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기기를 켜서 사진 셔터를 누르는 터울이 카메라보다 아이폰이 짧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고작 10여 년 전에는 거의 혁명에 가까웠다. 나는 아이폰3지에스를 사용하기 전에 아이팟터치 1세대인가 그걸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팟터치 1세대는 아이폰과 모든 것이 같았지만 카메라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투지폰, 익서스캐논 카메라 일명 똑딱이, 아이팟터치를 들고 다녔다.


아이팟터치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아주 신기해할 때였다. 땅 따먹는 게임 시초 뭐지? 아무튼 그걸 하고 있으면 옆에서 구경하기도 했고 트위터가 막 시작 될 때였다. 트위터 어플이 몇 개나 되었다. 한창 셀럽들이 트위터를 했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휴대폰의 판도가 달라졌다.


나도 아이팟터치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탔는데 너무 좋았다. 3대의 기기를 늘 들고 다녔는데 그 3대의 기기가 하는 일을 아이폰 한 대가 전부 다 했다. 게다가 빠릿빠릿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새것 같아서 나도 놀라고 있다.

인터넷이 좀 느릴 뿐 다른 건 빠릿하다 신기함


사진을 찍어서 바로 트위터에 올릴 수 있었다. 트위터는 용량 한계 같은 것이 없었다. 샾을 붙여서 무슨 사진이라는 것을 올리면 되었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셀럽들이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두산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에서 가장 큰 인기였는데 회장님이 나를 팔로우한 것이다. 그리고 옆 나라 성인배우 마리아 오자와도 나를 팔로우했다. 또 휴 헤프너가 살았을 적 그의 아내였던 크리스털 해리스도 나를 팔로우했다. 엄청난 일이었다.


트위터가 너무 재미있었다. 또 피디수첩의 오행운 피디도 나를 팔로우를 하는 것이다. 새벽에는 영화요정 김혜리 기자와 트위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김종서와도 그렜다. 그때는 이외수 소설가가 살아 있어서 핫한 인물이었는데 이외수의 트윗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적이었다.


또 봇이라는 것이 유행을 해서 하루키봇이 적절한 시간에 올리는 한 문장의 트윗을 보는 것 역시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팔로워 수가 칠천 명이 되었다. 그때는 그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옴니아가 처음으로 나왔을 때라 옴니아로 올리는 트윗사진과 아이폰으로 올리는 트윗사진이 열심히 경쟁을 할 때였다. 그 때문인지 아이폰 3으로 사진을 찍어서 곧바로 올리는 내 사진에 많은 반응이 있었다.


근데 나의 트위터가 몇 해 전에 폭파당했다고 해야 하나. 안 되는 것이다. 이미 그때는 사람들이 전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돌아선 상태고, 트위터는 이상하지만 진영논리의 공론장이 되었다. 트위터의 흥미를 완전히 잃었던 때라서 나는 폭파된 트위터 계정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요즘은 트위터가 일론 머스크가 받아서 엑스로 바뀌었더라고. 성인 인증만 받으면 엑스에서는 포르노에 가까운 영상이 너무 많이 볼 수 있다는 장단점이 있다.


아무튼 그 당시 아이폰3지에스로 담은 사진들 몇 장을 투척(이라는 말도 예전에 트위터에서 사용하던 유행어였다) 해 본다. 조금 뿌옇고 흔들리고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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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이 확 따뜻해졌다. 좀 덥다는 말이 어울리는 날이다. 오전 10시의 햇볕은 뜨거웠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뜨거움을 더 했다. 평일의 오전 10시에도 사람들은 강변을 거닐고 조깅을 하고 운동을 했다. 바람은 없고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서는 참새 소리가 들렸고 노인정에서 보살피는 길고양이 순이는 그늘에 늘어져 있었다. 평온한 날이다.


인간의 모든 관념이 수치로 확립되어서 숫자로 표기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희망이나 기쁨, 불안이나 공포는 수치 그 너머에 있다. 직관적으로 통계된 표기보다 더 수치가 크거나 축소된다. 전날까지 선거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럽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방과 공격을 하던 때를 벗어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니 불안하기까지 하다.

오늘은 출근하는데 늘 다니는 도로가 막혔다. 이러면 십중팔구는 사고 때문이다. 천천히 가면서 보니 사고가 나서 자동차의 앞부분이 완전히 짓이겨져서 수습 중이었다. 사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구급차가 와서 실어 갔는 모양이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저렇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을까. 요즘은 크게 다치면 큰일이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응급실에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을 수 있다. 의료대란 때문이다. 평온한 이면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다.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고 있으면 한창 들었던 그때로 나를 확 데리고 간다. 라디오헤드와 함께 가장 기시감을 깊게 가지게 만든다. 봄이라는 계절도 다른 계절에 비해 기시감 백배다. 봄이 떨어져 흩날릴 때가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죽음의 계절인 봄에 핑크 플로이드를 듣고 있으면 몸이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몸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기분이다.

음악은 정말 그 시간을 옮겨다 준다. 마치 사진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든다. 사진도 음악처럼 그 시간을 붙잡아 둔다. 조급함이 들 때에는 기시감을 잔뜩 느낄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는다. 가만히 멍하게 듣고 있으면 바보 같아지지만 바보 같아져서 좋다. 세상에는 바보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별로인 게 아닐까. 봄에 수영장에 들어와 있는 물처럼 느껴지는 무력감과 불안은 벚꽃의 만개와 동시에 떨어지는 봄처럼 흩어졌으면 좋겠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심장과 비슷하다. 태어나면서 한 번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뛰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들이 천천히 변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완전히 변해있다. 시간은 그렇게 서서히 간섭을 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형태가 있건 없건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만다. 천천히 조금씩 확고한 변화를 준다.


추위가 물러갈 때도 조금씩 천천히 물러간다. 추위라는 건 한 번에 확 물러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뜸을 들여가며 물러간다. 아직 발밑에는 작은 스팀을 켜 놓고 있을 정도로 추위가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추위라는 건 성가시다. 이제 두꺼운 옷은 입을 수 없다. 그 틈을 파고들어 피부에 닿아 신경 쓰게 만든다. 밖으로 나가 5분만 걸어 다니면 후끈할 정도로 체온은 이미 추위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해가 들지 않는 곳에 가만히 있으면 머물렀던 추위가 다시 몸에 달라붙어 질척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보면 완벽하게 추위는 물러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가 천천히 변한다. 마을도 천천히 모습이 변한다. 오래된 마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철거가 되고 평지가 되고 새롭게 건물이 들어서는 것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세상은 급변하는 거 같은데 대체로 변화는 천천히 이뤄진다. 지구도 아주 천천히, 몹시 천천히 오염이 되어 간다.

여기도 곧 천천히 변하겠지


그 감지를 인간의 리듬으로는 알 수가 없다. 인간의 변화 역시 천천히 이뤄진다. 천천히 변하지만 확실하게 변한다. 절대적이다.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아주 소수에 적용되지만 인간의 확실한 변화는 그 소수에 해당된다. 인간이 변하는 건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인간은 분명하게 변해있다. 인간의 변화는 노화에 기인한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늙어간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한 20년 후에 만나면 그 사람은 분명 변해있다. 어떻게든 변하는 게 인간이다.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면 하루하루는 평온하겠지.

어제는 조깅을 하고 오는데 저 먼 밤하늘에 눈썹달 떴다. 고즈넉하고 적막하고 적요하고. 그래서 몹시 평온한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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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사람이 이상해지니까 될 수 있는 한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해. 그래서 최대한 봄을 덜 느껴야 한다고. 봄을 마구마구 느끼게 되면 자꾸만 알 수 없는 구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


구멍 하니까 영화 [존 앤드 더 홀]이 생각나네, 좀 남 다른? 아들이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를 음식에 수면제를 타서 잠들어서 깨지 못하는 틈을 타서 집 근처 산에 있는 벙커에 넣어두고 지켜보는 이야기 말이야. 얼핏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였지. 감독은 파스쿠아 시스토라는 감독인데 요르고스의 분위기를 약간 맛본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정말 흥미롭게 봤거든. 기생수는 흥미 없게 보고 이런 기묘한 이야기는 또 흥미 있게 봤네. 이 영화에 배우들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주로 한 가족이 전부인데 유명한 배우들이 나와. 아빠로는 너무 재미있게 전 시리즈를 봤던 덱스터의 마이클 C 홀, 엄마 역의 제니퍼 엘은 여러 영화에 나왔지만 하정우가 나왔던 우리나라 영화 더 벙커(여기도 벙커네)에 나왔고, 누나로 나오는 배우는 아주 유명한 타이사 파미가야. 타이사 파미가는 사실 언니가 더 유명하지 베라 파미가로 베라 파미가는 역시 하정우와 꽁냥꽁냥 하는 영화 [두 번째 사랑]에도 나왔지. 그때의 베라 파미가의 미모는 하늘을 뚫고 나갈 것 같았어.


베라 파미가 하면 여러 수많은 히트 친 영화에 나왔지만 역시 총괄 제작자이자 주인공으로 나왔던 [베이츠 모텔] 시리즈가 최고였다. 노먼 베이츠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의 주인공 이름이며 거기에 나온 모텔의 또 다른 이야긴데 싸이코의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많았지. 시리즈 전체가 이토록 재미있을 줄은 몰랐어.


[존 앤드 더 홀]에서 존은 좀 남달라. 질문이 아주 많은데 연결되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 마구잡이로 질문을 하는 이상한 아이지. 벙커 속에서 깨어난 가족이 벙커 위에서 쳐다보는 존에게 꺼내 달라고 하지만 그저 무표정으로 계속 보기만 하는 존. 그리고 먹을 걸 던져줘. 그때 가족은 아들이 자신들을 벙커에 집어넣었다는 걸 알아. 그러면서 존은 혼자 집에서 자유롭게 지내. 엄마가 없다고, 아빠가 없다고 전혀 슬퍼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아. 하루에 한 번 정도 먹을 걸 던져주던 존이 가족에게 먹을 걸 던져주는 걸 잊어버리게 돼. 그러면 가족은 이틀이고 그냥 굶는 거야. 존은 왜 그러는 것일까. 아주 위태롭고 엉망처럼 보이지만 느긋하고 아무렇지 않은 존. 존은 엄마아빠를 찾아오는 엄마친구에게도 기괴한 질문을 해.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아주 흥미로워. 도대체 13살짜리 소년이 마음을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뭐든지는 테러블 쪽으로 말이야. 아이가 무서워지면 정말 무서운 거 같아.


아무튼 봄날에 봄냄새를 맡으면 그런 이상한 구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상한 구멍으로 말이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토끼가 들어가는 그런 구멍이 아니야. 아주 호러블 하고 이상한 구멍이지. 봄날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그런 기분에 휩싸이는 풍경에 들어갔거든. 그나마 다행인 건 봄이면 늘 다니면서 봄을 느끼던 곳들이 전부 바뀌어서 아파트단지가 되었다는 거지. 그래서 이전에 비해서 봄을 덜 느끼게 되는 거야. 예전의 봄날에 담아 놓은 사진들을 보면 매년 같은 곳을 찾아서 사진으로 담았는데 이제는 그런 곳들이 대부분 사라졌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빛과 어둠으로만 나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빛과 어둠 사이에는 그늘도 있고, 흐린 부분도 있고, 덜 밝은 부분, 짙은 어둠도 있잖아. 빛과 어둠 사이에도 다양한 빛이 존재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빛과 어둠으로만 나누려고 하는 것 같아. 양극으로만 나뉘는 거지.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숨죽이며 지내야 하고 극과 극으로 나뉜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면 공격을 하고 말아. 강도가 높아.


영화 속처럼 만나서 치고받으면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댓글이나 sns를 통해서 공격을 하니까 그 수위는 더 높고 언제까지나 남아. 파란색과 빨간색이 대립을 해서 지금 세상에는 그 두 컬러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색이 존재하잖아. 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나 말이야 굴을 좀 샀는데 이리 먹고 저리 먹어도 좀 남아서 샌드위치에 올려서도 먹었거든. 근대 색이 너무 예쁘지 않아? 보기 좋은 색이 먹기도 좋다고 말이야 이토록 색이 좋을 수 있을까. 굴을 올리니 더 멋진 컬러 같아. 굴은 생으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물에 살짝, 아주 살짝 데쳐서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아. 라면을 먹을 때에도 넣어서 먹고, 밥을 안칠 때에 넣으면 밥맛도 좋아. 사실 밥이라는 게 맛이 늘 좋아. 밥맛이 좀 덜 좋아야 하는데 왜 모든 음식이 맛있을까.


어릴 때는 편식도 많이 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음식들까지 왜 맛있을까. 왜! 왜! 왜! 그래서 샌드위에 굴을 올려 먹어도 맛있다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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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틀에 걸쳐 마지막까지 봤다. 스포일러 왕창이니까 시리즈가 궁금하신 분들은 읽지 마시길. 다 본 결과 원작보다는 못하고 흥미가 느껴지지 않다가 맨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흥이 올라왔다. 마지막 1분. 신이치가 나타나서 “당신 뭐야?”라고 말하는 더 그레이 팀장에게 오른손을 내밀면서 끝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다.

기생수는 88년에 나왔다. 오래된 작품이다. 그동안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기생수의 세계관에서 기생수가 어째서 인간의 몸에 기생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기생하는 동안 인간처럼 보여야 하기 위해서 인간사회를 학습하는 것들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생수가 왜 인간을 알아가야 하는지, 인간사회를 학습하는 모습을 더 그레이에서 굳이 자주 보이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이번 더 그레이로 기생수에 입문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런 장면을 넣었다면 일본 영화판처럼 한 장면으로 함축적이게 확 보여주는 연출이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머리를 점령한 기생수가 티브이 앞에서 인간 사회를 학습하다가 아이들이 오니까 얼굴이 변하면서 다음 장면으로 전환된다. 전부 시체가 되었고 그 한 장면으로 보는 이들이 대번에 기생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가장 별로인 건 수인이와 기생수 하이디인데, 기생수로 변한 구교환 누나가 하이디에게 어쩌고 해서, 그래서 너는 강하구나,라고 한다. 그런데 하이디가 강한지 그게 시리즈 내내 나타나지 않는다. 15분 정도 활동 할 수 이는 하이디는 그 시간 동안 모든 칼부림을 한다는 말인데 원작의 신이치의 ‘오른손이’처럼 변종이라 자신과 신이치를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강해지는데, 그에 비해 수인과 하이디는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몸놀림과 칼부림을 할 뿐이다.

신이치는 오른손이의 세포를 받아서 심장을 살린 다음에 3미터 높이도 뛰어오르고, 오른쪽이와 함께 창을 던지는데 - 학교 옥상에서 저 아주 멀리 있는 다른 건물에 있는 기생수에게 정확하게 던질 정도로 강화된다. 하지만 수인은 전혀 그런 게 없다. 움직임도 그냥저냥 일반 여자들과 다를 바 없다. 어딜봐서 하이디가 특별하게 강한지 알 수가 없다.

무엇보다 기생수가 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계음처럼 동일한데 하이디까지 그렇다는 건 너무 이상하다. 변종이 아닌가. 변종인 하이디까지 다른 기생수와 같은 목소리 톤으로 말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리즈라 긴 호흡인데 기생수가 말하는 생존과 사람의 생존과는 다른 면이 있는 것을 대화로 주절주절 하는 게 별로였다. 그저 먹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생존으로 받아들이는 기생수와 인간의 생존이란 사회에서 따돌림당하지 않으며 인관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것이 생존이라는 것을 짧은 대화로만 끝내버리는 건 잘 와닿지 않는다.

원작 애니메이션과 영화에서는 타미야 료코가 자신의 몸을 실험을 하여 인간에 대해서 알아간다. 인간에게 기생하면서 인간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그리고 남자와 잠을 자면서 아기를 가진다. 아기를 잉태하여 10달 동안 몸의 변화를 느끼고 아기라는 존재와 교감을 하고 나중에 그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맞고 죽는다. 그때 타미야 료코의 대사가 좋다. 그게 애니메이션이고 영화지만 눈물까지 났다.

다양한 기생수의 모습이 나오는 원작에 비해서 더 그레이의 기생수는 다 똑같다. 전부 머리가 그렇게 변해서 상모 돌리기나 한다. 이게 소리만 강하지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 왜냐하면 이정현이 맡았던 팀장과도 수없이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고 기생수가 촉수를 휙휙 날리지만 이정현의 느릿한 몸놀림으로도 다 피한다. 2화까지 보고 한 말이지만 기생수니까, 그리고 넷플릭스니까 자비 없이, 무자비하게 마구 인간들을 쓸어 버리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고작 권해효와 김인권의 머리가 날아가는 장면이 그게 다다. 기생수가 인간들을 먹고 있다는 것도 대사로만 끝낸다. 기생수 세계관의 철학적인 대사들도 여기서는 신파에 가깝게 들린다.

구교환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구교환은 구교환했다. 구교환은 표정도 좋고 연기도 잘 하지만 구교환이 나오면 좀 다 엇 비슷하다. 그래서 재미있고 좋다. 그래서 디피에서 정말 재미있었다. 구교환이 구교환에서 좀 벗어나서 연기한 괴이는 그래서 실패했다. 이번 기생수에서도 구교환이 구교환해서 재미있었는데 구교환만 재미있다는 게 문제다. 구교환을 빼고 모두가 심각하니까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구교환 캐릭터가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는 없어도 되는 존재같다. 여기 캐릭터들은 대체로 영화 반도에서 나온 캐릭터를 서로 바꿔 가면서 하는 느낌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원작을 재미있게 봤다면 별로일 것이다. 모든 것이 별로다. 액션도 대사도 던지는 메시지도. 하지만 기생수 세계관이 처음이라면 그냥저냥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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