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막스의 노래가 오전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리처드 막스의 노래를 들으며 계란말이를 먹고 있으니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이렇게 파가 속속 박혀 있는 계란말이가 도시락 반찬으로 들어 있을 때는 친구들의 젓가락이 우르르 오기 때문에 경계대상이었다.


계란말이가 다 맛있지는 않았다. 파가 들어간 계란말이의 맛에 한 번 빠지고 나면 파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그저 계란만으로 계란말이를 하면 맛이 덜 했다. 퍽퍽한 계란말이가 시간이 지나 말라서 도시락 반찬으로 있으면 친구들 젓가락도 오지 않았다.


계란말이는 식어도 맛있는데 그건 파가 들어야 맛이 났다. 파는 촉촉함을 유지시켜 준다고 해야 할까. 그냥 계란만으로 만든 계란말이보다 파가 들어가면 이렇게나 맛있었다. 기억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계란말이도 참 기묘한 음식이라 집집마다 맛이 달랐다.


어떤 집 엄마의 계란말이는 맛이라는 게 전혀 나지 않았고, 어떤 집 엄마의 계란말이는 치즈가 같이 녹아 있어서 아주 맛있었다. 어떤 집는 몹시 짰는데 그게 엄마의 계획이었다. 짜니까 다른 친구들이 먹지 않을 테고 밥을 많이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장 그 집 아들도 못 먹을 지경이었다.


계란을 매일매일 먹는데 질리지 않는다. 이런 음식이 또 있을까. 계란은 다양한 요리로 먹을 수 있기에 가능하다. 아침에 날 계란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 먹는 맛이 있고, 계란 프라이는 말해 뭐 하고, 계란찜으로 먹는 맛 역시 좋다. 라면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두부에 계란 옷을 입혀서 먹어도 맛있다. 맛에서 멀어지지 않는 게 계란이다. 그중에 계란말이는 맛 중의 맛이다.


계란은 한때 품귀현상으로 가격이 올라 수입까지 해 오는 경우가 얼마 전에 있었다. 우리는 한낱 계란에서 위로를 얻는다. 오전에 아파트 복도에 계란 프라이 냄새가 퍼지면 정말 정신이 혼미하다. 그 오전이 일요일이라면 어느 정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지만 평일의 아침이라면 ㅁ 벙비상태라 냄새에 무너지고 만다.


계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상하게도 늘 추억의 음식이다. 요네하라 마리도 ‘미식 견문록’에서 ‘아버지가 삶은 달걀 껍질을 까주신다. 내가 하나를 먹으면 또 하나를 까주신다. 아, 얼마나 행복한지. 그 달걀도 홀랑 입속으로 넣는다’고 했다. 달랑 두 줄인데 요네하라 마리의 글 속에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위트와 추억이 있다. 계란은 우리에게 그런 음식이다.



Richard Marx - Endless Summer Nights https://youtu.be/1NvsMKYgCsM?si=enLi5cGOkFu7wF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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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구름이야ㅋㅋㅋ


역대급이라는 말이 싫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기예보 뉴스에는 역대급이라는 단어가 떴다. 역대급 더위, 역대급 홍수, 역대급을 안 갖다 붙이면 이젠 기사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이다. 그놈의 역대급이라는 말이 없으면 이젠 아무것도 내보낼 수 없는 모양이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뒤 매년 여름이 되면 역대급 가뭄이라는 기사가 내가 사는 도시에도 늘 떴다. 나는 매일 강변을 조깅하는데 역대급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가뭄이면 강이 말라서 강바닥 정도는 보여야 하지 않나. 그러나 태화강이 바닥을 보인 적은 한 번도 못 봤다. 가뭄이 심했을 때에도 태화강은 늘 적정 수위로 잘 흘러갔다.


도대체 그놈의 역대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나. 작년에 역대급 센 놈이 왔으면 올해는 역대급보다 더 한 표현을 써야지. 티브이 예능에서도 이건 역대급이야, 같은 말을 한다. 듣기가 아주 싫다.


예전에 ‘니마이’라는 말이 유튜브 속 개그맨들에게 유행처럼 떠돌았다. 말 끝마다 니마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이런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유행시키는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니마이’라는 말을 썼다. 물론 안 쓰는 개그맨들도 많았다. 그때 니마이를 입에 달고 유튜브를 하는 개그맨(개그우먼 포함)들은 너네들은 어떤 일정한 수준은 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공중파 출연이나 유튜브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그 생각처럼 되었다. 그런 ‘니마이’ 같은 유행어를 입에 달고 지내는 개그맨, 개그우먼들보다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또 듣기 싫은 말이 해리티지다. 문화유산을 말하는 단언데 언젠가부터 시계에 붙기 시작하면서 티브이 광고에서도 해리티지 타령이다. 롤렉스에 해리티지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더니 이 해리티지라는 단어가 좋은지 여기저기서 갖다 쓰고 있다.


해리티지라는 단어를 입에서 사용하는 사람 역시 이 단어를 이때에 이 발음으로 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여서 참 별로다.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사용되어야 해리티지라는 말도 듣기가 좋을 텐데 난무의 범위에 들어서게 되면 정말 듣기 싫은 단어가 된다.


롤렉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가진 거 개뿔도 없으면 롤렉스에는 왜 그렇게 미쳐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시계 하나가 너를 결정짓는 것도 아닌데, 여유가 되고 롤렉스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겠지만 생활 때문에 끙끙거리면서 롤렉스를 차고 다니는 것은 도대체 뭐야.


45년 차 시계장인이 롤렉스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https://youtu.be/qTkIHsSrhOQ?si=H0_-cH1KjsHVnU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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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봤을 때 나만 그런지 몰라도 안야 테일러 조이의 목소리가 9년 전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였던 샤를리즈 테론의 목소리 같아서 좀 놀랐다.

그때 영화의 뒷 이야기를 하자면 톰 하디 이 새끼가 항상 지각이라고 한다. 지각도 몇 시간 정도 늦는 게 아니라 8시간씩 막 그렇게 늦게 와서도 나한테 시비 걸지 마 찌발 같은 태도였다고. 그래서 샤를리즈 테론과 사이가 참 별로였다네. 영화 촬영 할 때만 빼고는 같이 있지도 않았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밀러가 피를 갈아서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지 와 정말 재미있었다. 보면서 인간의 뇌에서 나올 수 있는 서번트는 다 나온 것 같았다. 아드레날린, 도파민, 아세틸콜린 같은 물질이 쥘쥘 흘렀다.

그에 비해 이번 퓨리오사는 분노의 도로만큼 뇌에서 분비물이 수돗물처럼 나오지는 않는다. 이 생 날 것의 추격전이 분노의 도로를 꽉 채웠던 만큼 퓨리오사에서는 덜 해서 그런지 분노의 도로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번 퓨리오사는 퓨리오사의 캐릭터에 초점이 많이 가 있어서 그런지 몸이 들썩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 밀러는 나처럼 이렇게 영화를 찍으면 환장하게 될 걸,라고 여실히 보여주었다.

액션씬만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또 언제 매드맥스 후속 편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임모탄 버전은 안 나오나. 임모탄이 개 양아치 같은 리더인 줄 알았는데 인간미가 흐르는 그런 캐릭터잖아.

매드맥스 하면 1편인가, 80년대 세상이 망하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빌런을 전부 박살 내는 멜 깁슨의 액션이 정말 좋았다. 초초초 저예산으로 카체이싱 액션신을 이렇게 담아냈다니.

퓨리오사는 인간미를 버려야 했다. 인간미를 발휘하다는 엄마처럼, 잭처럼 될 수 있다. 퓨리오사의 전사로의 성장통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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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사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하야오는 전쟁에 대한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바람이 분다,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비판을 가득 담고 있다.

아직 어린 히미가 미래의 마히토를 만나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잖아”라고 말한다. 비록 히미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히토를 낳겠다는 심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이렇게 태어났다.

그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는 존재가 없다. 할머니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오늘 나온 통조림을 보며 기뻐하고 음식에 열의를 보인다.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반복의 순환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지구본은 돌아가고 우리는 그 지구본을 열심히 돌려야 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전부 열려 있다. 보는 이들이 보는 대로 생각하면 그게 장면 장면이 말하는 의미이자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게 뭐지? 난해하고 이상한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정확하게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이상하기만 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죽 불행하다가도 한 번 행복함에 우리는 그때 웃기도 한다.

히미처럼, 실수하더라도 그리하여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마히토를 다시 낳겠다는 것처럼 그 실수가 실패는 아니기에 우리는 두 발로 바닥을 딱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야오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 원작 소설을 가져온 이유는 전쟁 속에서도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생명은 계속 이어져야 하며 죽음이라는 건 삶의 대극이 아니라 한 부분이라는 걸 히미와 마히토를 빌어 절실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야오가 팔순이라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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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인공지능의 영화로 나오는 사람이 총 4, 5명이 다다. 그래서 다른 인공지능 영화보다 볼거리는 없다. 인공지능, 쳇GPT 만든 인공지능 소녀로 미성년 성범죄자를 잡는 내용인데 썩 볼거리는 없는데 가장 현실과 흡사하다.

김태웅 의장이 말하는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이 영화를 보면 현실적으로 알 수 있다. 다른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실의 챗디피티처럼 자기 학습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걸 잘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영화적 허용으로 끝이 나지만 김태웅 의장의 요즘 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나름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같은 인공지능의 수준이 지금 애플이나 구글, 앤비디아 같은 회사에 비해 떨어지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니까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영화와 무관하지만 우리나라는 신뢰비용이 들지 않는 부분이 많은 나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끈 덕분에 거기에 충당하는 비용이 들지 않아서 그 비용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간혹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카페에서 자신도 모르게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갔다가 와서는 아! 내가 한국사람이 다 되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거나, 노트북 심지어는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화장실에 가도 그 누구도 노트북을 가져가거나 휴대전화를 훔쳐 가지 않는다. 신뢰 덕분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이 택배라고 한다. 아파트 복도에 택배가 문 앞에 널브러져 있어도 그 누구도 그 택배를 들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시티브이가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는데 런던의 6. 6%, 베이징의 몇 퍼센트더라? 아무튼 세계 1, 2, 3위의 도시에 비해 터무니없이 카메라가 적다. 즉 신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이 적게 든다. 만약 신뢰가 바탕이 없다면 경찰을 부르고 카페는 한 동안 장사에 지장이 있고 매니저가 나오고 사람들이 커피를 대기하는 등,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 신뢰비용이 하루, 한 달, 일 년 정도 쌓이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기차를 탈 때 예전처럼 일일이 수검하여 펀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으로 치면 하루에 몇 만 명, 돈으로는 얼마, 시간으로는 엄청난 시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사기의 나라, 사기꾼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 신뢰로 이어져 있는데 어째서 사기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을까. 사기를 치는 건 신뢰로 묶여 있는 일반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지닌 사람, 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끼리의 리그 속에서 똘똘 뭉쳐서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해 먹을 대로 해 먹어도 수감되지 않거나 들어가도 곧바로 나온다. 그래서 사기가 판을 치는 것이다. 미국의 사기를 다루는 학자(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한국을 엘리트 사기 카르텔의 나라라고 했다. 아주 예전부터 늘 이런 카르텔이 있어 왔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투명해진 요즘 그들의 행각이 드러나니까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뭘 어쩌지 못한다.

그래서 권력을 가지려고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 검사와 정치인을 보면 된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고 요만큼의 투자로 이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는 허황된 욕망이 꿈틀거리게 된다. 이것이 후광효과다. 사기는 사람들의 불온한 마음에 붙어서 점점 커진다. 그래서 사기가 사라질 수 없다는 현실이 허망하기만 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독재자들의 권력에 혀를 내두르다가 그들을 처단하는 혁명을 이루었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다. 피노체트의 이야기를 비틀어서 만든 영화 ‘공작’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독재자들은 권력을 휘둘렀다. 거기서 죽어나는 것은 일반 서민들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는 망발을 한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단두대에서 목이 날아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독재자들을 혁명으로 끌어내렸는데, 그런데 혁망가들에서, 일반 사람들에서 수장이 된 사람이 독재자들보다 더 악랄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사기를 치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기꾼이 점점 많아지고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다. 수원에서는 지속적으로 전세사기(뭐 다르게 불리는 말이 있던데)가 나오고 있는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수원에는 평균 4천 건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은 만 팔천 건의 사건이 밀려있다. 그러니까 사건을 돌봐야 할,,, 아무튼 그렇다. 자세하게 쓰려고 해도 나도 무섭다.

이렇게 되면 신뢰비용이 들어가게 되는데 삶의 터전이나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종교에 귀의하여 그 이후의 문제가 또 터지는 연쇄가 일어난다. 무한굴레의 늪. 인공지능아 너의 좋은 능력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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