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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치미는 냉면처럼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다. 별미다. 이상하지만 동치미는 겨울에 찾게 된다. 다른 계절에는 전혀 찾지 않게 되다가 겨울만 되면 보고 싶은 사람처럼 찾는다. 겨울이 되면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를 찾아서 듣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동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팥죽이다. 단팥죽이 아니라 그냥 팥죽. 역전시장에 가면 팥죽 거리가 있다. 죽 붙어있는 팥죽 파는 가게는 온전한 가게라는 형태보다 그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고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팥죽을 퍼 담아서 내어 주는 형식이다. 전통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팥죽은 거기에 앉아서 먹으면 맛있지만 동치미가 딸려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포장을 해서 집에서 이렇게 동치미와 함께 먹는다. 이 정도의 동치미를 통에 담으면 한 번에 다 먹어 치운다. 동치미는 온전히 어른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당이 있던 어린 시절에는 화단 한 편에 독을 묻고 거기에 동치미를 담갔다. 그리고 겨울에 그것을 꺼내서 먹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동치미를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다. 또 그때는 무가 큼지막해서 젓가락으로 꼽아서 먹거나 해야 했는데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동치미에 맛을 들인 건 대학교 때 자주 가는 닭갈비 집이 있었다. 거기 이모는 늘 닭갈비를 주문하면 동치미를 내주었는데 닭갈비보다 더 맛있었다. 시원하고 새콤하면서 와삭하고 씹는 무는 너무나 맛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다 보니 주인 이모와 친하게 되었다. 동치미를 여러 번 달라고 해도 싫은 내색 한 번 내지 않았다. 나는 닭갈비보다 동치미가 좋아서 동치미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러면 주인 이모는 나를 위해 동치미를 한 그릇 더 떠주고 밥도 더 주었다. 닭갈비 집은 한 건물의 9층에 자리했는데 9층이 닭갈비 타운이었다. 그 안에는 닭갈비 집이 10집이 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니 그 집만 늘 북적북적거렸다. 테이블이 고작 4개밖에 안되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많으니 조금씩 소문이 퍼져 그 집이 장사가 제일 잘 되었다. 그 덕분에 그 닭갈비만 돈을 왕창 벌어서 입지 좋은 곳으로 옮겨서 크게 닭갈비 집을 열었다. 아마도 동치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콤한 닭갈비의 맛을 살며시 눌러 주는 건 동치미다.


동치미는 단체 생활하는 곳에서는 잘 먹을 수 없다. 군대 같은 곳에서는 동치미를 먹을 수 없다. 오로지 집에서 조금씩 담근 동치미를 겨울에 맛보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야만 맛에 눈을 뜨는 음식 중에 하나다. 동치미는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김치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동치미의 다른 맛을 맛보는 것 역시 좋다.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런지 죽 전문점에서 딸려 나오는 조금은 달달한 동치미의 맛도 좋다. 그래서 왕왕 가는 죽 전문점에서는 죽을 구입할 때 동치미 국물만 따로 몇천 원어치씩 사 먹기도 했다. 


겨울의 동치미의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겨울의 팥죽이다.  둘 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이 좋은데 겨울에 둘 다 먹으니 아주 맛있는 것이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동치미를 떠먹는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꿀꺽 넘어간다. 그리고 무를 씹으면 동치미 국물을 가득 물고 있어서 무를 씹는 맛이 좋다. 팥죽을 입 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 먹고 동치미를 한 국자 떠먹는다. 아흐. 정말 어르신들이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갈 때 나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치미는 쌉싸름한 와인과 같이 먹어도 맛있다. 동치미의 가장 별미는 국수 소면을 삶아서 동치미에 넣어서 후루룩 먹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가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고 했는데 동치미에 국수 소면을 말아서 먹는 동안은 행복하다. 동치미는 내 외할머니를 늘 소환시킨다. 주글주글한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내 외할머니. 


내 외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외할머니와 중학생이었던 내가 한 번은 둘이서 식당에 갔다. 나는 갈비탕을 시키고 외할머니는 냉면인가, 동치미국수인가를 시켰다. 나는 그게 너무 맛있게 보여서 조금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밥그릇에 국수를 담았다. 국물도 조금 부었다. 그리고 담은 밥그릇을 자기 앞으로 당기고 큰 냉면그릇은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동치미를 와삭와삭 씹고 있으면 외할머니도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 동치미는 그런 메타포를 지니고 있다. 


나는 한 동안 겨울에는 동치미를 조금 큰 텀블러에 담아서 들고 다녔다. 모두가 텀블러에 커피를 잠아서 마셨는데 나는 시원한 동치미를 담아서 마셨다. 그러다가 무도 먹고 싶어서 큰 보온병으로 바꾼 다음 동치미를 이만큼 담아서 하루 종일 홀짝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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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잡문집은 말 그대로 잡문집이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하는 것부터, 음악에 대해서, 또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에 대해서, 번역과 하루키가 보는 사람들과 초 단편 소설도 실려 있는 등 아무튼 오리온 종합 선물 과자세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볼펜으로 줄을 긋거나 낙서 같은 걸 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줄을 그어놨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별로 중요한 단어도 아닌 것에 얼씨구 표시까지 해두었다. 내가 줄을 그어가며, 각주를 달아가며 읽은 책은 소설 ‘남한산성’이 유일무이한데 조선시대 그대로의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오냐, 김훈 소설가, 내가 질 쏘냐 같은 마음으로 전부 이해하면서 읽어내리! 그런 각오를 하고 읽었는데 참 오래 걸린 기억이 있다.

하루키는 우드스톡이 발아하는 과정, 그 속에 있었다. 60년대에는 예술과 노래로 전쟁을 막고 기근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보브 딜런을 비롯한 당시의 가수들은 생 날 것으로 총앞에서 자유와 평화를 노래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그런 기운은 마음을 뜨겁게 하기에 충만하다.

하루키는 짐 모리슨의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그건 좋아했다는 표현보다 음악이 피부로 스며들어와서 몸을 그대로 자유화시켰다. 하루키가 노르웨이 숲을 펴낼 때 전공투 시위가 한창이고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대학생들을 기점으로 해서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국가는 싫어했고 간섭했다.

짐 모리슨의 음악은 마음의 여러 곳에서 꽃을 피우게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무대에 선 것처럼 보이는(보여지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는 늘, 언제나, 항상 분출이었고 자유분방함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박애가 깔려 있었다. 짐 모리슨과 제니스 조플린은 28살 즈음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도 28살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의 왼손 기타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헤이 죠'는 우드스톡을 시작으로 최근 ‘글래스톤베리’까지 울려 퍼졌다.

지미 핸드릭스 이후 방황하던 우리는 커트 코베인을 찾아냈다. 주류에 들어가기 싫은 뉴 제너레이션 세대. 커트 코베인은 왜 주류에 들어가기를 극심하게 싫어했을까. 60년대부터 불던 부모 세대에게서 저항을 느낀 이들이 일명 부모 세대, 전쟁세대에게 도움을 받기를 거절하면서 창고 같은 데서 지내면서 자기들의 생활은 자기들이 알아서 책임지겠다며 나오는 세대가 생겼다. 그것이 뉴 제너레이션 세대인데 그중에는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커트 코베인 역시 친척 집을 떠돌면서 물질만을 쫓는 부모 세대들에게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창고 같은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그러니까 이전 세대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은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부모 세대처럼 살면 안 된다, 이전 세대, 물질을 찬양하고 쫓는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신의 음악을 부모 세대가 열광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정신적으로 받은 손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경멸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찬양하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은 대단했다. 오로지 헤로인 만이 그를 ‘무’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관객과 스타의 무대를 없애버린 장본인. 왼손 기타의 얼터너티브 록을 하던 코트 코베인은 기성세대들에게 욕을 왕창하고 싶어 반항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반항을 더 좋아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서 오는 괴리는 커트 코베인의 내면에 깊고 깊은 상처를 새겼다. 도저히 약을 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들의 연속. 결국 코트 코베인 역시 지미 헨드릭스를 따라 28살에 돌이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아이 씨발 불꽃처럼 가버리다니.

하루키가 짐 모리슨의 음악을 들은 것이 18세였다. 나 역시 17, 8세 그즈음에 ‘도어스’를 들었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라디오로만 듣던 음악 경로가 뚫려 제니스 이안, 레드 제플린, 엑스재팬의 히데, 롤링 스톤즈가 물밀듯이 내게로 밀려왔다. 나는 학창 시절 장국영에게도 빠져 있었다. 아비정전의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그런 말을 했다. 1960년 4월 16일 너와 나는 일분을 같이했어, 난 이 소중한 일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장국영도 과거가 되었고 짐 모리슨도 과거가 되었다.

하루키는 서른네 살에 짐 모리슨의 더 도어스의 앨범을 들으며 밤을 불사르고 있었다. 짐 모리슨이 그를 위해 마련된 소울 키친으로 사라진 지 십이 년이 흘렀다고 83년에 그랬다. 지금은 얼마나 과거가 되었을까. 짐 모리슨은 결코 전설이 아니라고 하루키는 말한다. 왜냐하면 전설로도 짐 모리슨의 공백은 채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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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는 하여간 재미있는 곳이다. 들어가면서부터 이미 뭘 구입할지 선택 물품이 정해져 있고 그걸 다 고르고 나면 어디 어디 코너로 가서 무엇을 구경할 것인가가 프로그래밍이 된 동선이 있다. 동선을 따라서 다니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가버린다.

주차를 하고 마트에 내려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에는 옷 가게들이 있고 마고리엄의 장난감 공장 같은 곳이 있다. 주인이 세계를 떠돌며 모아놓은 것 같은 상품들을 파는데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물품들을 구경하느라 마트에 내려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를 박은 기차나, 말처럼 생긴 코끼리나 허공을 빙빙 도는 물고기 모빌 등이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끈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대형 마트에 서점이 다 있어서 서점에 들어가서 책 구경도 했었는데 어느 날 모든 대형마트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마트 속에서 서점이 싹 사라졌다. 대형마트는 대형 마트답게 세일을 했는데 책도 그랬다. 그래서 마트에 딸린 서점에 자주 가다 보면 앉아서 책도 읽고, 책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적립도 하고, 이래저래 괜찮았는데 싹 없어졌다. 서점 코너에는 항상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앉아서 그림책을 보는 모습은 늘 정겨웠다.

마트로 내려가서 그로서리 쇼핑을 한다. 컵라면과 라면은 늘 탑처럼 쌓여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저 쌓여있는 라면탑을 달려가서 몸으로 무너트리고 싶다. 영화를 보면 잘도 그러는데 실제로는 그러면 안 되겠지요. 라면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수많은 종류의 라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라면을 이만큼 집어서 바구니에 넣고 싶다. 일을 마치고 밤에 가니까 초밥은 늘 세일을 한다. 그래서 먹고 싶은 연어 초밥만 한 통 담아서 넣을 수 있다. 마트 초밥은 먹을 게 못 되니 제대로 된 초밥을 먹으라는 말을 왕왕 듣는데 나는 마트 초밥도 맛있다. 제대로 된 초밥집에는 제대로 된 시간에, 제대로 거기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귀찮다. 그에 비해 맛이 썩 떨어질지 몰라도 언제나 가면 그 자리에 초밥이 있어서 쓱 건져오면 된다. 무엇보다 내 입맛에 마트 초밥도 맛있다는 것이다. 


멍게도 꽤 먹을만하다. 멍게는 집에 오면 바로 미나리와 고추장과 함께 밥에 넣어 슥삭슥삭 비벼서 먹으면 맛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고래고기 수육도 맛볼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고래고기 수육은 비린내가 아주 많이 나기 때문에 먹고 난 후 다른 가족의 반응이 격해질 수 있다. 양치질로는 어림도 없으니 각오를 해야 한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몇 해 전에는 물개 기름도 팔았다. 물개 기름을 숟가락으로 떠서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고래나 물개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살아야 하니 몸을 보온하기 위해 기름이 가득하다. 요즘은 알약으로 영양제 형태로 나오는 모양인데 아무튼 그런 것도 팔았다. 대단히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던 기억이 있다.   

피규어를 좋아하니까 피규어 코너를 가면 건담이나 마징가 프라모델을 비롯해서 진열되어 있는 모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마트에서든 아이들을 붙잡기 위해 이런 피규어 장식과 파는 곳이 있지만 규모가 전부 다 다르다. 내가 돌아가면서 들리는 마트는 세 군데로 각 곳의 피규어 코너만 놓고 봤을 때 모두가 그 담당 직원 때문인지 확고하게 색이 다르다. 구입하지는 않을 테지만 지난번에 왔을 때 없던, 마음에 드는, 새로운 버전의 마징가 프라모델이 나오면 집었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예정에 없던 물품이므로 가격이 저렴해도 서서 아주 고민을 하게 된다.

마트에 가면 늘 구경하는 것이 어항 속 열대어다. 10시가 되면 어항에 보자기를 덮어 씌운다. 열대어들도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실컷 구경을 해야 한다. 열대어들의 유영을 멍하게 보는 건 아주 평안해진다. 집에서 구피들을 키웠을 때에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 버린다. 열대어들은 조금 큰 녀석들보다 작은 녀석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해주며 잘 지내보자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인간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어두워서 다 잔다고 하지만 또 그때 미워하는 서로에게 대들어 싸울지도 모른다. 

어항 속에 반드시 물고기가 없어도 된다. 그저 한들거리는 수초만 바라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다. 나는 그만큼 재미없는 인간이다. 나만큼 재미없는 인간은 재미없는 것에서 또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평소에 심심하다던가 지루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열대어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높은 굽과 날씬한 다리를 덮은 가죽바지, 리얼 폭스의 코트가 대형마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의 여자였다. 하지만 수수한 화장의 여자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1년 전에 찾았던 룸살롱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여자였다. 미인이라 할 만큼 예쁜 얼굴은 변함없었고 큰 키 덕분에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마트 2층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잔했다. 나는 커피 원액을 주문했고 여자는 녹차를 마셨다. 계산은 여자가 했다. 나는 요즘도 잘 다니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이제 룸살롱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했다. 여자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매춘부에게 육체적인 사랑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욕망의 주체인 남자는 육체의 사랑에 집착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한 손님에게 그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침에 손님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돈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의 주체는 타자였다. 자신이 아니라 남자를 주체로 보고 욕망에 맞춰 나가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님을 사랑하게 된 후,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 된 것을 알고 정신적으로 마찰이 일어났다.


그녀의 마음속에 또 다른 자아라고 하는 슈퍼에고를 느끼고 손님에게 매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손님에게 그녀를 그저 욕망의 분출구일 뿐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까지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떻든 마트라는 곳은 재미가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게 되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재미있는 대형마트도 언젠가부터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오면 한 시간 반 정도가 너무 쉽게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으로의 귀가가 늦어지기 일쑤다. 


오랜만에 들린 마트에서 어항 구경도 끝이 나고 음식을 파는 곳으로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담아 왔다. 튀김과 닭발 편육을 담았다. 닭발 편육은 매콤한 맛이다. 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맛이 좋다. 편육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간장에 빠진 양파를 곁들여 오물오물거리고 있으면 음음 다음에 또 들러야지, 하는 생각이 순간 든다. 


튀김은 식어도 괜찮다. 치킨과 튀김은 뜨거울 때 후후 불어서 아흐 같은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게 맛있지만 식어도 맛있는 게 튀김이다. 담아주는 간장에 겨자를 뿌려서 거기에 찍어 먹는다. 나는 튀김을 항상 김말이와 오징어튀김만 집어서 온다. 김밥 튀김을 좋아하지만 마트에는 팔지 않는다. 김밥 튀김은 조깅하면서 오는 전통시장에서만 판다. 튀김 몇 개는 그대로 먹고 몇 개는 밥 위에 올려서 먹는다.  뭐든 튀기면 맛있다. 그 맛있는 튀김을 밥과 함께 먹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작은 행복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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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31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2-01 12:44   좋아요 0 | URL
두부는 사진에 안 나왔을 뿐 거의 매일 밥상 위를 채우고 있어요 ㅎㅎ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일본 잡지 ‘앙앙’에 실린 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잡지 앙앙을 보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볼거리가 다양하다. 그 말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 당시 잘 나가는 연예들의 인터뷰도 실려있고 그 외에 핫한 인물들의 소식과 인터뷰, 사진화보까지 볼 수 있다. 앙앙은 최근까지 살아남아서 방탄소년단의 인터뷰도 했고 방탄이들의 멋진 사진들을 볼 수도 있다. 앙앙은 한국까지 진출하여 한국에서도 앙앙이 출간이 되었는데 몇 년 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다. 2008년 정도 이후에는 한국에서 앙앙 잡지를 볼 수 없다.


예전 청계천이 지금처럼 바뀌기 전에는 그곳에 몇 달에 한 번씩 가서 보그나 코즈모폴리턴 잡지를 저렴하게 한 스무 권씩 사 오고 했다. 주로 독일이나 이태리, 프랑스에서 출간한 잡지들이었다. 미국의 잡지보다 좀 더 섬세하고 질감이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잡지의 속지는 분명 종이다. 프린트된 종이이지만 사진보다 출력물의 상태가 더 살아있다. 그것이 잡지가 가지는, 사진 잡지가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글을 읽을 줄 몰라도 상관없다. 잡지니까, 사진이 대량으로 실려 있으니까 넘기며 보는 재미가 좋다. 독일의 보그지는 몹시 야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진이 잡지에 실릴 수 있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그런 잡지들을 그놈의 아이패드로 전부 볼 수 있다.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지만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점이자 안 좋은 점이다.  


여하튼 그런 잡지에 실린 하루키의 에세이니까 연령층이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에 조지아 오키프에 관한 챕터가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오키프는 1938년에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 사의 초대를 받아 하와이에 석 달 정도 체류했다. 비용은 전부 댈 테니 마음껏 하와이에 머물며 광고에 쓸 파인애플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는 제안을 했다.

오키프는 이혼의 상처도 달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키프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신선한 것이 그녀의 창작욕구를 부추겼다. 오키프는 다들 잘 알겠지만 꽃을 초현실 예술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화가이다. 벨라도나, 하비스쿠스, 꽃 생강, 연꽃 등 많은 그림을 아름답게, 오키프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파인애플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석 달 동안 파인애플은 한 장도 그리지 않은 채 그대로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난감해진 돌 사. 하루키도 오키프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오 하며 한 번쯤 이렇게 대담해지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키프도 어쩌면 천성이 대담한 여성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는 화가로서 가장 유명하지만 또 근대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전까지는 스티글리츠의 부인으로 더 유명했을 것이다. 오키프는 남편의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실오라기 한 톨 걸치지 않은 채 부끄럽고 민망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다 내보였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는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너무나 재능이 많이 보였다. 특출한 능력을 보고 예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가르쳐주면서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미 스티글리츠는 아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오키프는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는 그런 아름다운 오키프를 두고 또 바람을 피웠다. 그 충격으로 오키프는 두 달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우울증이 심했고 유방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스티글리츠는 다른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오키프는 이 모든 것을 이를 앙 다물고 이겨내고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오키프는 자기 돌보기로 모든 것을 딛고 화가로서 일종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고개를 들고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가 훌쩍 성장하여 청탁이 들어와도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테야,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청탁이 들어온데도 그리지 않을 테야’라며 그리고 싶은 그림만 잔뜩 그리며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자신의 책에 사인을 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노르웨이 숲’이 10만 부가 팔렸을 때는 꽤 만족하여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100만 부가 팔렸다는 소식에는 이제부터는 슬슬 공격이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글에 그 정도의 판매가 되었다며 공격을 해 오고 더불어 자신의 사인이 된 책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술적 고집은 타고나는 부분보다는 강력한 ‘자기 돌보기'가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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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거의 매일 먹는 나로서는 하루키의 두부 이야기는 흥미롭기만 하다. 하루키는 신주쿠 술집에 굉장히 맛있는 두부를 내놓는 집이 있는데, 처음 갔을 때 너무 맛이 좋아서 한꺼번에 네모나 먹고 말았다고 한다. 간장이나 양념 같은 것은 일체 치지 않고 그냥 새하얀, 매끈매끈한 걸 꿀꺽하고 먹어치우는 것이라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말하고 있다.

두부 하면 하루키다. 그는 갓 사 온 두부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룻밤 지난 두부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귀찮으니까 지난 것이라도 먹자는 주의가, 방부제라든가 응고제 같은 것의 주입을 초래한다고 했다. 두부 장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침에 된장국에 넣으라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열심히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건데, 모두들 아침에 빵을 먹는다든가, 슈퍼에서 파는 방부제가 들어 있는 좋지 않은 두부를 사 먹거나 하니까, 두부장수 쪽에서도 의욕이 떨어져 버리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두부를 만드는 우수한 두부 가게가 거리에서 한 집 한 집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고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렇지만 공장 두부도 좋아한다. 손두부(어촌 시장의 손두부 집은 많이 사라졌는데 백화점에서 손두부를 만들어서 팔고 있다. 생각해보면 묘하다)를 먹을 때도 있고 공장 두부를 먹을 때도 있는데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장 두부도 공장에서 갓 나온 두부를 먹으면 눈이 번쩍할 만큼 맛있다. 단지 전국 각지의 슈퍼와 편의점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처리를 하는 것이다.

두부는 인간이 잠들어 있는 바다에서 인간의 땅으로 온다. 맛있는 두부는 간장도 양념도 필요 없다. 갓 나온 두부는 두부 본연의 맛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두부 역시 간수로 만들어진다. 간수가 중요하다. 간수를 맞추지 못하면 두부의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 두부는 두부 장수의 뒤틀어진 팔의 생명을 나눠 정당한 맛을 낸다. 오직 적요한 시간, 그제야 으스러지지 않고 두부는 근사한 언어를 지닌 채 인간의 곁으로 온다.

밥상 위에 두부가 사라진다는 건, 카메라에 의존하는 사진쟁이는 피사체로 사진을 꽉 채우고, 어설픈 그림쟁이는 여백을 두려워하고, 사색 없는 글쟁이는 수식어가 많은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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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1-30 12: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니요 못 먹어 봤어요. 저는 슈퍼 같은 곳에서 파는 공장 두부도 맛있어 하구요. 손두부도 맛있어하고 특별히 가리는 건 없어서 ㅎㅎ 두부를 거의 매일 먹기 때문에 슥 집을 수 있는 곳에서 파는 두부면 들고와서 먹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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