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일본 잡지 ‘앙앙’에 실린 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잡지 앙앙을 보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볼거리가 다양하다. 그 말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 당시 잘 나가는 연예들의 인터뷰도 실려있고 그 외에 핫한 인물들의 소식과 인터뷰, 사진화보까지 볼 수 있다. 앙앙은 최근까지 살아남아서 방탄소년단의 인터뷰도 했고 방탄이들의 멋진 사진들을 볼 수도 있다. 앙앙은 한국까지 진출하여 한국에서도 앙앙이 출간이 되었는데 몇 년 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다. 2008년 정도 이후에는 한국에서 앙앙 잡지를 볼 수 없다.


예전 청계천이 지금처럼 바뀌기 전에는 그곳에 몇 달에 한 번씩 가서 보그나 코즈모폴리턴 잡지를 저렴하게 한 스무 권씩 사 오고 했다. 주로 독일이나 이태리, 프랑스에서 출간한 잡지들이었다. 미국의 잡지보다 좀 더 섬세하고 질감이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잡지의 속지는 분명 종이다. 프린트된 종이이지만 사진보다 출력물의 상태가 더 살아있다. 그것이 잡지가 가지는, 사진 잡지가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글을 읽을 줄 몰라도 상관없다. 잡지니까, 사진이 대량으로 실려 있으니까 넘기며 보는 재미가 좋다. 독일의 보그지는 몹시 야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진이 잡지에 실릴 수 있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그런 잡지들을 그놈의 아이패드로 전부 볼 수 있다.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지만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점이자 안 좋은 점이다.  


여하튼 그런 잡지에 실린 하루키의 에세이니까 연령층이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에 조지아 오키프에 관한 챕터가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오키프는 1938년에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 사의 초대를 받아 하와이에 석 달 정도 체류했다. 비용은 전부 댈 테니 마음껏 하와이에 머물며 광고에 쓸 파인애플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는 제안을 했다.

오키프는 이혼의 상처도 달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키프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신선한 것이 그녀의 창작욕구를 부추겼다. 오키프는 다들 잘 알겠지만 꽃을 초현실 예술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화가이다. 벨라도나, 하비스쿠스, 꽃 생강, 연꽃 등 많은 그림을 아름답게, 오키프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파인애플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석 달 동안 파인애플은 한 장도 그리지 않은 채 그대로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난감해진 돌 사. 하루키도 오키프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오 하며 한 번쯤 이렇게 대담해지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키프도 어쩌면 천성이 대담한 여성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는 화가로서 가장 유명하지만 또 근대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전까지는 스티글리츠의 부인으로 더 유명했을 것이다. 오키프는 남편의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실오라기 한 톨 걸치지 않은 채 부끄럽고 민망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다 내보였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는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너무나 재능이 많이 보였다. 특출한 능력을 보고 예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가르쳐주면서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미 스티글리츠는 아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오키프는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는 그런 아름다운 오키프를 두고 또 바람을 피웠다. 그 충격으로 오키프는 두 달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우울증이 심했고 유방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스티글리츠는 다른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오키프는 이 모든 것을 이를 앙 다물고 이겨내고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오키프는 자기 돌보기로 모든 것을 딛고 화가로서 일종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고개를 들고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가 훌쩍 성장하여 청탁이 들어와도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테야,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청탁이 들어온데도 그리지 않을 테야’라며 그리고 싶은 그림만 잔뜩 그리며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자신의 책에 사인을 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노르웨이 숲’이 10만 부가 팔렸을 때는 꽤 만족하여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100만 부가 팔렸다는 소식에는 이제부터는 슬슬 공격이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글에 그 정도의 판매가 되었다며 공격을 해 오고 더불어 자신의 사인이 된 책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술적 고집은 타고나는 부분보다는 강력한 ‘자기 돌보기'가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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