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잡문집은 말 그대로 잡문집이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하는 것부터, 음악에 대해서, 또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에 대해서, 번역과 하루키가 보는 사람들과 초 단편 소설도 실려 있는 등 아무튼 오리온 종합 선물 과자세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볼펜으로 줄을 긋거나 낙서 같은 걸 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줄을 그어놨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별로 중요한 단어도 아닌 것에 얼씨구 표시까지 해두었다. 내가 줄을 그어가며, 각주를 달아가며 읽은 책은 소설 ‘남한산성’이 유일무이한데 조선시대 그대로의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오냐, 김훈 소설가, 내가 질 쏘냐 같은 마음으로 전부 이해하면서 읽어내리! 그런 각오를 하고 읽었는데 참 오래 걸린 기억이 있다.

하루키는 우드스톡이 발아하는 과정, 그 속에 있었다. 60년대에는 예술과 노래로 전쟁을 막고 기근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보브 딜런을 비롯한 당시의 가수들은 생 날 것으로 총앞에서 자유와 평화를 노래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그런 기운은 마음을 뜨겁게 하기에 충만하다.

하루키는 짐 모리슨의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그건 좋아했다는 표현보다 음악이 피부로 스며들어와서 몸을 그대로 자유화시켰다. 하루키가 노르웨이 숲을 펴낼 때 전공투 시위가 한창이고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대학생들을 기점으로 해서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국가는 싫어했고 간섭했다.

짐 모리슨의 음악은 마음의 여러 곳에서 꽃을 피우게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무대에 선 것처럼 보이는(보여지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는 늘, 언제나, 항상 분출이었고 자유분방함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박애가 깔려 있었다. 짐 모리슨과 제니스 조플린은 28살 즈음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도 28살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의 왼손 기타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헤이 죠'는 우드스톡을 시작으로 최근 ‘글래스톤베리’까지 울려 퍼졌다.

지미 핸드릭스 이후 방황하던 우리는 커트 코베인을 찾아냈다. 주류에 들어가기 싫은 뉴 제너레이션 세대. 커트 코베인은 왜 주류에 들어가기를 극심하게 싫어했을까. 60년대부터 불던 부모 세대에게서 저항을 느낀 이들이 일명 부모 세대, 전쟁세대에게 도움을 받기를 거절하면서 창고 같은 데서 지내면서 자기들의 생활은 자기들이 알아서 책임지겠다며 나오는 세대가 생겼다. 그것이 뉴 제너레이션 세대인데 그중에는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커트 코베인 역시 친척 집을 떠돌면서 물질만을 쫓는 부모 세대들에게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창고 같은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그러니까 이전 세대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은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부모 세대처럼 살면 안 된다, 이전 세대, 물질을 찬양하고 쫓는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신의 음악을 부모 세대가 열광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정신적으로 받은 손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경멸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찬양하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은 대단했다. 오로지 헤로인 만이 그를 ‘무’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관객과 스타의 무대를 없애버린 장본인. 왼손 기타의 얼터너티브 록을 하던 코트 코베인은 기성세대들에게 욕을 왕창하고 싶어 반항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반항을 더 좋아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서 오는 괴리는 커트 코베인의 내면에 깊고 깊은 상처를 새겼다. 도저히 약을 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들의 연속. 결국 코트 코베인 역시 지미 헨드릭스를 따라 28살에 돌이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아이 씨발 불꽃처럼 가버리다니.

하루키가 짐 모리슨의 음악을 들은 것이 18세였다. 나 역시 17, 8세 그즈음에 ‘도어스’를 들었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라디오로만 듣던 음악 경로가 뚫려 제니스 이안, 레드 제플린, 엑스재팬의 히데, 롤링 스톤즈가 물밀듯이 내게로 밀려왔다. 나는 학창 시절 장국영에게도 빠져 있었다. 아비정전의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그런 말을 했다. 1960년 4월 16일 너와 나는 일분을 같이했어, 난 이 소중한 일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장국영도 과거가 되었고 짐 모리슨도 과거가 되었다.

하루키는 서른네 살에 짐 모리슨의 더 도어스의 앨범을 들으며 밤을 불사르고 있었다. 짐 모리슨이 그를 위해 마련된 소울 키친으로 사라진 지 십이 년이 흘렀다고 83년에 그랬다. 지금은 얼마나 과거가 되었을까. 짐 모리슨은 결코 전설이 아니라고 하루키는 말한다. 왜냐하면 전설로도 짐 모리슨의 공백은 채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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