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90년대 뉴욕 배경으로 한 영화가 최고다. 대도시의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도 캐럴이 흘러나왔고 눈도 내려서 몽글몽글한 크리스마스는 역시 90년대다.
34번가의 기적은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영화다. 그 분위기, 따뜻한 털실 같은 그 느낌이 물씬 나는 크리스마스 영화다.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는 10살의 수잔에게 최고의 선물인 가족과 집을 선물하는 산타인 크리스의 이야기. 백화점과 백화점의 경쟁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 불타오른다.
백화점의 진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영화를 보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확 올라온다. 요즘 공원에 가면 사계절의 옷차림을 다 볼 수 있는 희한한 계절이다. 반팔, 긴 티셔츠, 겨울 겉옷, 오리 털까지 보이고 대형 백화점은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친 곳도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 캐럴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매년 삭막해지는 것 같은 크리스마스지만 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다. 수잔의 엄마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퍼킨스는 고급 지게 예쁘다. 키도 크고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고급 지다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이다.
수잔의 아빠가 되는 딜란 맥더모트는 이때가 정말 리즈시절이다. 너무 잘 생겼다. 딜란하면 가장 생각나는 건 개인적으로 아호스에서 였다. 그 외에 떠오르는 영화가 없네.
무엇보다 수잔 역의 열 살의 마라 윌슨의 연기가 똑 부러졌다. 산타는 없는 거죠? 할 때에는 아니 저 어린애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하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라 윌슨은 이 영화보다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에서 마틸다 역으로 기억에 박혀있다. 너무 사랑스럽고 연기를 잘했다.
영화 속에서 마틸다를 괴롭히는 아주 못된 계부로 대니 드비토가 나온다. 마라 윌슨은 마틸다를 끝내고 공황장애에 정신질환까지 힘든 시기를 가졌는데 이유는 마틸다 촬영 당시 엄마가 암에 걸려 너무 고통스러워했는데 그걸 보면서 마틸다를 연기해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 뭔가 뇌의 어느 부분이 긁혀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어할 때 영화 속 계부였던 대니 드비토가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도와주었다. 암이 너무 심해 임종이 다가왔을 때 아직 마틸다가 나오지 않았는데 1차 편집본을 들고 대니 드비토가 가장 먼저 마라 윌슨의 엄마에게 들고 가서 보여 주었다. 당신의 딸이 이렇게 주연으로 세상의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거야, 그러니 마라 윌슨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마라 윌슨의 엄마는 죽음을 맞이했다.
마라 윌슨은 그 후로 공황이 심해 연기는 하지 않고 뉴욕대에 입학해서 공부에 몰두했는데 그때에도 대니 드비토가 도움을 주었고, 얼마 전에 마틸다 멤버들이 모여 그 당시를 이야기하는데 마라 윌슨에게 엄마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현재는 서른 중반인가? 서른 초반인가? 전업 작가라는데. 34번가의 기적은 마라 윌슨의 연기와 산타를 보낸 재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90년대 뉴욕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건 너무나 어렵지만, 진정한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신과 같은 산타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마지막 재판정에서는 실수가 많은 인간이라도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 ‘34번가의 기적’이었다.
이 영화는 47년도 버전, 73년도 버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