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는 고통을 느낄까
예전에 낙지의 고통에 대해서 알아보니 낙지는 사람과 닮았다는 부분이 있고 척추동물과 연체동물은 약 5억 년 전에 같이 나타났는데 인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해. 그래서 낙지 실험을 전 세계에서 많이 하거든. 유럽에서는 낙지를 실험할 때 꼭 마취를 하도록 연구 윤리 규정이 있다고 하지.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을 보다 보면 물고기의 고통에 대해서도 잘 나오는 거 같아. 고통이라는 건 우리 몸의 통감 세포가 고통을 인지하면 전기 신호가 발생하여 이것이 척추를 죽 따라 대뇌 신피질로 가서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이라고 해.
예전 한 신문의 칼럼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속이 타 들어가는데 생각 없는 시어머니는 싱싱한 회가 먹고 싶다고 채근한다. 동트지 않는 새벽 4시, 횟집에 들른 그녀 앞에 살점은 사라지고 뼈만 남은 채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인다. 어젯밤 주방장이 손님들 앞에서 솜씨를 부렸는데,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 있으되 산 것이 아닌 삶. 그녀는 저 물고기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다]로 칼럼은 포문을 열어. 드라마에서 실제 장면으로 첫 장면을 그렇게 촬영을 했데. 며느리의 삶이 사실은 수족관에 갇혀 살이 발린 고통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 신세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지.
그런데 이런 장면은 독일에서는 절대 내보낼 수 없는 장면이라고 해, 독일에서는 물고기 역시 척추동물로 인정해서 비인간적인 학대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해서 물고기를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위는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
낚시꾼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해. 물고기는 사람과 달리 대뇌 신피질이 없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고 했지. 그걸 연구한 연구진은 진통제가 물고기에게 듣지 않는 것도 사람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어.
근데 독일 과학자들은 달랐어. 독일정부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물고기나 새우, 게, 바닷가재 등 사람들이 즐기는 해산물은 모두 구통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했어.
그해 초 영국 퀸스대 로버트 엘우드 교수 연구진은 ‘실험 생물학 저널(이런 잡지가 세상에 있다니)’에 [게와 새우 같은 갑각류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발표했지. 연구진은 게의 다리에 전선을 연결하고 두 동굴 중 한쪽에 들어갈 때만 전기 자극을 줬거든. 그러자 전기 자극을 받았던 동굴에 들어가는 횟수가 크게 줄었지. 심지어 전선이 달린 자기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가는 게도 있었지.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기억까지 한다는 말이야. 엘우드 교수는 갑각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통념 때문에 다른 동물이라면 결코 허용되지 못할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지.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과거 백인들은 흑인 노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학대를 했다고 했어.
그 드라마의 뼈가 드러나서 수족관을 유영하는 물고기의 장면은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이라고 해. 낙지의 고통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이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고통을 감수하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인간도 마찬가지고.
낙지는 참 맛있지만 티브이 먹방 프로그램에서 살아있는 낙지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 정도는 빼버려도 상관없잖아. 그렇다고 산 낙지를 먹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산 낙지를 치킨이나 라면처럼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가끔 뉴스에서 길고양이 머리에 못을 박아서 죽였다거나, 친구집의 강아지를 죽으면서 그 모습을 즐긴 초등생들의 기사나, 동물을 학대해서 죽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정신이상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는 거야. 그런 모습은 어쩌면 권력이나 부를 거머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생계를 위협해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왜냐하면 인간만이 그러니까. 오직 인간이 나 아닌 생명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