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불꽃] 축제가 끝나면 불꽃이 사라진다고 보십니까, 나의 삶은 화약으로 시작해 불꽃과 함께 했습니다. 단 하루의 축제를 위한 불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불꽃. 당신에게 필요한 불꽃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몇 해 전의 한화 광고에서 불꽃놀이를 보여주며 불꽃 장인이 한 대사였어. 불꽃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꽃과 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불꽃은 그걸 가능케 하니까.
활활 타오르는 꽃.
상상만으로도 멋진 장면이지. 장관이랄 수 있어. 어린 시절의 불꽃은 보이는 그대로의 불꽃이었고, 학창 시절의 불꽃은 열정을 말했으며 그 사람과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태운 불꽃을 소진시키며 남은 날들을 보내곤 했지. 비명을 지르며 힘들게 꼭짓점에 도달하는 순간 백만 개의 불꽃으로 잠시 아름답게 타올랐다가 그대로 무화되는 불꽃. 인간의 삶과도 닮았어.
우리는 왜 인파 속으로 들어가 고생스럽기만 한 불꽃을 보러 가는지,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도 불꽃놀이를 하면 그곳으로 가서 불꽃을 보는 것일까.
우리는 이렇게 말을 해. 이번에 불꽃놀이 보러 갈까?라고. 불꽃놀이를 혼자 보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는 거지.
불꽃의 색이나 형태는 잊어버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보는 거야. 불꽃놀이의 날 누구와 보냈는지 만큼은 계속 생각나서 추억이 되니까. 불꽃은 금방 사라져 버리지만 추억은 영원하니까.
[불꽃이 작렬할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춘다. 꼬리를 흔들며 ‘피융’하는 비명에 귀 기울인다. 예고된 불꽃놀이를 부러 탐탁지 않은 사람과 보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불꽃놀이는 찰나적이다. 그리하여 우리 의식에 지워지지 않는 점을 찍는다. 불은 적극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로잡힌 대상을 태워 무화시키는 이율배반적 원소다. 완성의 순간은 수십만 개의 소멸로 흩어진다. 절정은 곧 죽음이다. 흡사 벚꽃의 미학이다 – 김혜리 기자]
불꽃놀이는 추운 계절에는 하지 않아. 여름이나 그 언저리에 언제나 열리지. 한 번 화려하게 타올라 절정과 함께 소멸하는 불꽃은 어쩌면 저 높은 곳에서 성냥갑 속의 성냥개비 같은 우리들을 긍휼히 바라볼지도 모르지.
그림은 불꽃그림의 화가 야마시타 기요시의 그림들이야. 그는 불꽃놀이를 그리는 것이 평생에 걸친 탐닉이었어. 야마시타는 지적 장애가 있었고 세 살 무렵 고열을 앓은 다음부터 걸음걸이도 불편했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이지메가 따라붙었어.
미술만큼은 그가 유일하게 ‘수’를 받는 과목이었고 친구가 없어서 꽃과 곤충에게 말을 걸며 놀았지. 그러면서 자연을 정밀묘사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에 대해서 사납게 일렁이던 소년의 마음이 잔잔해졌어.
18세에 방랑을 하면서 야마시타는 밥을 얻어먹고 마을을 떠날 때면 작품을 남기곤 했어. 도시락 뚜껑, 쟁반, 밥주걱, 부채 등 검소한 서민의 살림살이가 모두 그의 화폭이었지. 1971년 7월에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올해 불꽃놀이는 어디로 갈까?”였데.
야마시타 이야기는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이 되기도 했어. 배우가 실제 야마시타랑 쏙 닮았어 큭큭. 검색해 보면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거야.
치매가 걸린 노모에게 불꽃을 보여주고 싶다. 치매가 걸린 노모와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가면 화려한 불꽃과 함께 노모의 모습에서 눈앞이 흐려지며 지분거릴지도 모른다. 아이같이 되어 버린 노모는 어쩌면 쥐어 짜내듯 피어 올라가서 터져버리는 불꽃을 보며 또 다른 세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 수만 개의 불꽃이 치매 노모의 흐릿한 눈동자 속에 수 만개의 추억으로 명멸할 테니 – 이건 한 번 써본 짤막한 소설 문구